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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에 쓰는 재료인고?

ARTNOW

남성 소변기를 들고 미국독립미술가협회에 나타난 뒤샹부터 자신의 피를 뽑아 작품을 만든 마크 퀸까지, 전통적 미술 재료로부터 해방을 선언한 미술계 창조자들의 면면.

마르셀 뒤샹의 레디메이드 작품들

포스트모더니즘 이후 미술가들은 마치 발명가라도 된 듯 진기한 재료로 작품을 만들었다. 이는 오늘날 현대미술계에서 전통적 회화나 조각 작품은 찾기 힘들고, 이전에 없던 새로운 형식과 독특한 재료로 만든 작품이 국제적 트렌드로 자리 잡게 된 배경이기도 하다. 그런데 20세기부터 시작된, 미술의 전통적 재료에서의 해방을 주도한 이들은 누구일까? 또 그들이 택한 재료의 의미와 그 동기는 무엇이었을까? 끊임없는 자기 성찰과 시대의식, 거기에 예술적 독창성으로 지속적인 창조의 바람을 일으킨 예술가들을 살펴본다.

1 다리미에 못을 붙인 만 레이의 ‘Gift’  2 다니엘 스포에리의 ‘Eat Art Series’  3 데이미언 허스트의 ‘Thousand Years’

비미술적 재료의 선구자
미술 작품에 사용하는 재료의 혁신과 확장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작가는 단연 현대미술의 전설이자 ‘레디메이드’의시 창자인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일 것이다. “작가의 아이디어만 있다면 대량생산된 물건이나 진부한 일상용품도 얼마든지 훌륭한 작품이 될 수 있다”고 말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는 오래전 주방용 의자 위에 자전거 바퀴 한 짝을 거꾸로 고정한 작품 ‘Bicycle Wheel’(1913년)을 통해 비미술적 재료를 미술의 영역에 도입한 첫 레디메이드 작품을 탄생시켰다. 이후 1917년 뉴욕의 한 가게에서 산 남성용 소변기에 리처드 머트(R. Mut)라는 가명으로 서명한 ‘Fountain’(1917년)을 미국독립미술가협회 전시에 출품했지만, 협회가 전시를 거부해 논란이 됐다. 이 사건은 뒤샹과 레디메이드의 개념을 세상에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됐으며, 이후 그는 기성 예술과 제도, 권위, 사상에 도전했다. 뒤샹의 레디메이드 작품은 미술에 대한 정의를 완전히 바꿔놓았을 뿐 아니라 개념미술의 근간을 마련했고, 미술에 사용하는 재료의 영역을 새롭게 개척해 이후 모든 현대미술가의 개념과 작품에 영향을 줬다.
독일의 다다이스트 쿠르트 슈비터스(Kurt Schwitters)는 버려진 차표와 우표, 담뱃갑, 단추, 잡지 등을 마구잡이로 수집해 콜라주 기법을 이용한 어셈블리지를 만들었다. 그는 ‘메르츠(Merz)’라 명명한 자신만의 창작 기법으로 만든 작품에 비미술적 재료를 사용함으로써, 잘난 체하고 자족하며 살아가는 인간 세계를 표현하는 것에 회화가 이용되는 걸 막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한편 다다이즘과 함께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에 기반을 둔 초현실주의 운동에 참여하기도 한 러시아 출신의 미국 예술가 만 레이(Man Ray)는 다리미의 바닥에 접착제로 못을 붙여 우스꽝스럽고 쓸모없는 물건으로 탈바꿈시킨 ‘Gift’(1921년)를 제작했다. 그 순간 옷을 평평하게 펴야 하는 다리미는 쓸모를 잃었다. 그 다리미를 이용한다면 옷은 펴지기는커녕 만신창이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곧 파괴되었고, 사진으로 남아 있을 뿐이다. 나중에 만 레이는 복제품을 몇 점 만들었고, 한정판으로 다량 제작하기도 했다. 옷을 평평하게 펴는 역할을 하는 매끈한 다리미와 옷에 구멍을 내서 훼손시키는 못의 만남이라니, 얼마나 모순적이며 아이러니한가!
로버트 라우션버그(Robert Rauschenberg)는 추상표현주의의 대표주자 빌럼 데 쿠닝(Willem de Kooning)에게 직접 작품을 받아 6주에 걸쳐 그의 소묘를 지워버린 작품을 선보이며, 과도하게 추상표현주의에 집중하는 모더니즘 회화에 대한 반감을 표했다. 주로 폐품으로 작품을 만들던 그는 뉴욕 길거리의 도로 표지판, 헌 옷, 박제 독수리, 가족사진 같은 버려진 물건을 화면 위에 재구성한 후 그림을 그리는, 회화와 조각을 결합한 형식의 ‘콤바인 페인팅’을 창조해냈다. “그림을 만들기 위한 재료로 유화물감보다는 양말이 더 잘 어울린다”고 말한 그는 그림이란 ‘진짜 세계’에 의해 만들어질 때 비로소 진짜 세계와 같아진다고 주장하며 미술의 영역과 삶의 영역을 결합하려는 적극적인 시도를 이어갔다. ‘White Paintings’(1951년)는 관람자의 그림자까지 작품의 재료로 이용한 그의 실험정신을 가장 극명히 보여주는 작품이다.
한편 라우션버그와 함께 1961년 모마에서 열린 어셈블리지 아트 전시에 참여한 장 뒤뷔페(Jean Dubuffet)는 순수하고 가공하지 않은 미술을 진정한 예술로 보고 진흙과 재, 바나나 껍질, 나비 날개, 닭고기 같은 정제되지 않은 것을 미술 재료로 사용했다.
존 체임벌린(John Chamberlain)은 미국 산업사회의 상징이자 대량생산의 부산물인 자동차 부품이나 철제 폐품을 모은 뒤 순간적 힘을 가해 추상 형태의 조각을 만들고, 이를 통해 실패한 아메리칸 드림과 소비 중심의 미국 문화를 풍자했다.
다니엘 스포에리(Daniel Spoerri)는 음식 또는 식사와 관련한 것을 작품의 소재이자 재료로 사용해 현실적 삶의 형태를 작품에 도입하고자 하는 의지를 보였다. 식사 후 식탁의 상태를 그대로 작품화하고 ‘Attention: Work of Art!’라는 스탬프를 찍거나 직접 사인한 통조림을 갤러리에 내다 팔기도 했다.

1 아크릴 실과 노끈 등으로 작업하는 프레드 샌드백의 ‘Untitled’  2 크리스토 앤 잔-클로드 부부의 ‘Wrapped Reichstag, Berlin’

미니멀리스트의 비미술적 재료
비미술적 재료를 작품에 이용하는 실험은 미니멀리즘 계열 작가들에 의해 또 다른 방식으로 전개되기도 했다. 그들은 형광등과 벽돌, 플렉시글라스, 합판, 네온, 실, 시멘트 등 기계적으로 생산한 재료를 이용해 예술적 기교나 개성적 표현을 최소화하는 대신, 재료 자체에서 느껴지는 특성을 가지고 절제된 아름다움을 전달하고자 했다. 댄 플래빈(Dan Flavin)은 1963년부터 형광등을 사용한 기하학적 구조의 작품을 고안했다. 그의 초기 작품은 단색의 캔버스에 전구나 형광등을 결합한 어셈블리지 형식을 취했으나, 점차 빛의 번짐과 색의 착시 효과를 이용한 설치 작품으로 변모했다. 그는 대량생산된 일정 크기의 형광등(훗날 원형을 추가함)과 빨강, 노랑, 파랑, 초록, 분홍, 보라와 네 종류의 흰색을 포함한 총 10가지 색상의 상업용 형광등만 사용한다는 원칙하에 작품을 제작했고, 훗날 그것은 공간 전체를 빛으로 포괄하는 설치 작품으로 발전했다. 또 다른 미니멀리스트 프레드 샌드백(Fred Sandback)의 작업은 채색한 아크릴 실과 탄성이 있는 노끈, 금속 와이어 등을 주재료로 물성이 존재하지 않음에도 조각적 부피감을 살린 연출로 주목받았다.
크리스토 앤 잔-클로드(Christo & Jeanne-Claude) 부부는 전통적 전시 공간을 벗어나 대자연과 도시환경을 이용한 장소 특정형(site-specific) 설치 작품을 선보이기도 했다. 이들의 아이디어는 전 세계의 랜드마크를 작품 설치 장소로 선정하고 거기에 있는 암석, 섬, 해변, 강, 다리, 건물 등을 섬유와 끈을 이용해 일시적으로 포장하는 것. 이를 통해 방대한 풍경을 인위적으로 덮어버림으로써 설치 대상 고유의 견고한 구조를 감성적이고 일시성을 지닌 공간으로 변화시킨다. 대상의 복잡한 외관을 가리는 대신 핵심 구조만 드러냄으로써 새로운 시각으로 대상을 보게 하는 것이 이들의 목표. 이들은 자신의 아이디어가 재정적 이유로 변질되는 걸 막기 위해 프로젝트를 위한 모든 자금을 스스로 충당했다. 또 프로젝트에 필요한 복잡한 행정적 절차와 진행 과정을 작품의 일부로 여겼기에, 작품 하나를 완성하는 데 수년의 준비 기간이 필요했다. 이들은 지금껏 파리의 ‘퐁뇌프 다리’, 베를린의 ‘독일 연방의회 의사당’, 마이애미의 ‘비스케인 만’, 콜로라도의 ‘계곡의 커튼’, 뉴욕의 ‘더 게이트’ 등의 작품을 실현했고, 최근작 ‘The Floating Piesr’(2016년)를 지난여름 이탈리아 북부 도시 브레시아의 이세오 호수(Lake Iseo)에 설치했다. 부인 잔-클로드가 세상을 떠난 후 크리스토는 단독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으며, 현재 미국 콜로라도 주의 아칸소강(Arkansas River)을 덮는 프로젝트와 1977년부터 준비한 ‘아부다비 사막 프로젝트’를 실행에 옮기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1 생고기로 작업하는 자나 스터백의 ‘Vanitas-Flesh Dress for an Albino Anorectic’  2 라이크라 소재 주머니에 다양한물질을 넣어 작업하는 에르네스토 네토의 ‘Leviathan’

쓰레기로 작품을 만드는 팀 노블과 수 웹스터의 ‘British Wildlife’

현대미술에서도 이어지는 비미술적 재료 사랑
현대미술은 매체의 특성에 따라 장르를 구분하는 것이 힘들다. 선반 위에 올려 전시하는 조각상은 이제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산업 재료와 일상의 오브제는 물론 텔레비전과 비디오, 컴퓨터를 비롯한 디지털 매체와 자연환경, 동물과 곤충, 심지어 인간의 배설물과 피까지 작품의 재료로 등장함에 따라 세상에 사용할 수 없는 재료는 존재하지 않게 됐다. 물론 이 또한 드라마틱한 시각적 효과를 연출하기 위해 더 철저한 계산 아래 사용했지만 말이다. 조지프 보이스(Joseph Beuys)는 치유와 회복의 상징적 의미로 펠트 천과 기름, 구리, 나무, 동물의 가죽과 뼈, 밀랍, 꿀 등을 작품에 자주 사용했다. 그는 예술과 삶은 분리된 것이 아니며 누구라도 작가가 될 수 있다고 주장했고,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의 공군 조종사로 복무한 경험을 바탕으로 작품을 만들기도 했다. 그가 탄 비행기가 크리미아 반도에서 격추돼 사경을 헤맬 때 타타르족이 보살펴주며 체온을 유지할 수 있게 몸에 발라준 동물 기름과 펠트 천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 ‘I Like America and America Likes Me’(1974년)에서는 펠트 천을 직접 뒤집어쓰고 코요테와 3일간 대화하는 퍼포먼스를 선보이기도 했다.
한편 생명의 순간성과 육체의 연약함을 작품의 주제로 다루는 마크 퀸(Marc Quinn)은 전통적 형식의 자화상을 독특한 재료로 만들며 명성을 얻었다. 그는 5개월간 몸에서 약 4.5리터의 피를 뽑고 자신의 머리를 캐스팅한 후 반투명 형상에 담아 냉동실에 설치한 작품 ‘Self’(1991년)를 만들어 주목받았다. 그의 작품은 냉동장치에 의해서만 형태가 유지되는 특성이 있는데, 훗날 사치 컬렉션의 한 청소부가 실수로 냉동고의 전원을 뽑아 작품이 손상된 웃지 못할 에피소드도 겪었다. 하지만 그 사건은 오히려 생명의 취약함과 죽음을 다룬 작품의 주제를 부각시킨 사건으로 미술계에서 회자되고 있다.
나이지리아 혈통의 영국 작가 크리스 오필리(Chris Ofili)는 코끼리의 변을 작품에 사용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종교와 인종, 포르노를 풍자적으로 표현한 회화 작품을 코끼리의 변으로 받쳐 설치해 작품에 토템적 조각의 속성을 부여하고, 아프리카의 전통을 되살리려 했다. 또 뉴욕 브루클린 미술관에 전시한 ‘The Holy Virgin Mary’(1996년)에선 마리아를 흑인 여성으로 표현하고, 양쪽에 마리아를 수행하는 아기 천사 대신 포르노 잡지에서 오려낸 여성의 성기 사진을 콜라주해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당시 뉴욕 시는 예술을 빙자한 외설 작품을 설치한 브루클린 미술관을 신성모독죄로 고소해 소송까지 벌였다.
작품에 사용하는 재료의 한계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자나 스터백(Jana Sterbak)은 다양한 재료로 옷을 만들었는데, 생고기 60lb를 소금에 절여 얇게 떠낸 후 바느질한 옷을 모델에게 입히거나, 필라멘트를 이용해 전류가 흐르면 불이 들어오는 드레스 작품도 제작했다. 이외에도 그녀는 독특한 재료와 인간의 육체를 결합한 초현실적 오브제를 통해 존재와 권력, 욕망, 죽음 관에해 표현한 작품을 선보였다.
브라질의 설치 작가 에르네스토 네토(Ernesto Neto)는 투명하고 잘 늘어나는 라이크라 섬유와 스티로폼, 정향이라는 향신료 등을 이용해 유기적 형태의 부드러운 조각을 만들었다. 시각과 후각, 촉각을 만족시키는 그의 작품은 관람자들이 작품 속을 돌아다니며 냄새를 맡고, 만지고, 기대고, 누워서 감상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현대미술은 지금도 여러 매체와 재료를 통해 다양해지고 있다. 매체의 특성에 따라 장르를 구분하는 일도 어려워졌다. 미술계에서 곧 요소환원주의는 저물 것이며, 전체 포괄주의의 시대가 가속화되고, 앞으로 현대미술은 다른 모든 영역 과더불어 진화를 맞게 될 것이다. 새로운 시대, 새로운 현대미술을 기대해본다.

사탕을 양탄자처럼 쌓은 펠릭스 곤살레스 토레스의 ‘Untitled’

 

에디터 이영균(youngkyoon@noblesse.com)
채민진(퍼스펙트럼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