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입찰 하시겠습니까?
값비싼 가구와 대저택, 예술품만이 옥션의 전부가 아니다. 와인, 시계, 자동차는 물론이고 오래된 장난감, 헤드폰, 낙서처럼 끄적인 메모 같은 아이템도 옥션에 나오며, 얼마 전에는 흙먼지까지 존재감을 드러냈다. 믿을 수 없다면 지난 7월 20일 뉴욕의 소더비 옥션을 주목하자.

좌중을 휘어잡는 옥셔니어의 모습.
나는 크리스티와 함께 세계 옥션의 양대 산맥 중 하나인 소더비 유럽 파트의 수장 올리버 바커의 팬이다. 원래 옥션에 관심이 많아 런던이나 뉴욕 길가에 나부끼는 소더비의 깃발만 봐도 가슴이 뛰지만, 2008년 그가 옥셔니어로 참여한 데이미언 허스트 옥션을 직접 보고는 댄디하고 젠틀한 진행 방식에 빠지고 말았다. 그때부터 온·오프라인을 불문하고 옥션 현장을 수없이 들락거렸다. 하지만 경매사나 주제가 아닌 단일 품목이 나를 사로잡은 건 이번이 처음이다. 그것도 다름 아닌 흙먼지라니. 물론 일반적인 먼지는 아니다. 1969년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 당시 우주 비행사 닐 암스트롱이 달 표면에서 채취한 흙먼지 표본으로, 인류 최초의 달 착륙 48주년을 기념해 소더비 뉴욕이 기획한 경매 물품 중 하나다. 이날, 닐 암스트롱이 달에서 수거한 자그마한 암석과 먼지 표본은 ‘Lunar Sample Return’이라고 쓰인 12×8½인치 크기의 흰색 파우치에 담겨 등장했다. 나는 옥션 일정이 떴을 때부터 결과를 주시했는데, 흙먼지가 담긴 파우치는 추정가인 200만~400만 달러보다는 낮지만 무려 181만2500달러(약 20억5100만 원)에 낙찰됐다.

1 닐 암스트롱이 채취한 흙먼지 표본이 담긴 파우치. 2 타이태닉호 탑승자의 열쇠. 3 공룡 뼈대도 옥션의 희귀 아이템 중 하나.
인류 역사상 중요한 궤적을 담은 이 파우치는 왜 이제야 경매장에 나타났을까? 그동안 아무도 몰랐던 이 흙먼지의 행방은 <뉴욕 포스트>가 ‘비극적’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다사다난했다. 2년 전 변호사이자 우주광인 낸시 리 칼슨(Nancy Lee Carlson)은 미국 연방보안관실(US Marshals Service)이 개최한 압류 자산 경매에서 ‘Lunar Bag’이라 이름 붙은 파우치를 단 995달러, 우리 돈으로 약 110만 원에 낙찰받았다. 이후 그녀는 예사롭지 않은 흙먼지가 담긴 파우치의 진품 여부를 입증하기 위해 미국항공우주국(NASA)에 표본을 보냈으나 NASA는 흙먼지를 돌려주려 하지 않았다. 하지만 법정 투쟁 끝에 법원이 그녀의 손을 들어주었고, 이번 소더비 경매가 성사됐다. 소더비가 끝내 낙찰자의 신상을 밝히지 않아 흙먼지의 현재 소유자는 알 수 없지만, “대부분의 역사적 아이템은 스미스소니언의 US 국립 컬렉션이 소장하고 있다. 하지만 이 먼지는 국가가 아닌 개인이 소유한 유일한 물품일 것”이라고 덧붙인 소더비 관계자의 말처럼 흙먼지라는 특별한 옥션 아이템은 또 하나의 독특한 역사를 추가한 셈이다.
그보다 며칠 앞선 7월 12일에 열린 소더비 런던 경매에서는 중국의 전 주석 마오쩌둥이 병으로 사망하기 1년여 전에 연필로 끄적거린 메모가 70만4750파운드(약 10억5000만 원)에 낙찰됐다. 마오쩌둥은 말년에 몸이 안 좋아 책을 읽지 못했지만, 문학에 대한 그의 열정만은 꺾을 수가 없었다. 당시 고전문학가 루디에게 문학작품을 낭독하게 하고는 필담 형식으로 대화를 나누곤 했다. 경매에 나온 메모는 마오쩌둥이 1975년 루디와 한담을 나누며 쓴 것으로, 문학에 관한 내용을 담았다. 9쪽짜리 육필 메모집은 글씨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인데도 추정가인 6만~8만 파운드보다 약 10배 높은 가격으로 낙찰됐다. 2015년엔 마오쩌둥이 영국 정치인에게 보낸 편지가 소더비 런던 경매에서 60만 파운드(약 8억9000만 원)에 팔리기도 했다. 이는 마오쩌둥이 영어 타자기로 작성해 1937년 당시 영국 노동당 당수인 클레멘트 애틀리에게 보낸 편지다. 물론 편지가 옥션의 단골 품목이긴 하나, 마오쩌둥의 친필 서명이 포함돼 가치가 완전히 달라진 것.
그동안 옥션은 오래도록 독특하고 희귀한 아이템에 걸맞은 가치를 매겨왔다. 300년에 가까운 역사를 지닌 소더비와 크리스티의 주된 수입원은 알려진 것처럼 근대미술과 현대미술 분야다. 하지만 두 경매사는 18세기 영국의 귀족이 내놓은 책이나 서류 등을 팔면서 시작됐다. 소더비의 첫 경매 품목은 서적, 크리스티는 보석이다. 현재 두 경매사의 경매 품목은 미술품, 골동품, 서적, 원고, 보석, 와인 등으로 대표되며, 특히 미술은 장르와 시기별로 나누어 상당히 세분화하고 있다. 또한 자동차, 시계, 가구, 장난감, 저택은 물론 증서 형태로 보존한 농구의 규칙 리스트, 완벽하게 보존한 공룡 뼈대, 실내에 있는 모든 장식이나 가구를 포함한 대저택 전체, 컬렉터나 유명인사의 소유물 등 다양한 희귀 품목과 분야를 커버한다.
소더비와 크리스티가 주최한 정통 경매는 아니지만, 작년 미국 에이즈연구재단의 자선행사에서 영화배우 리어나도 디캐프리오가 프랑스에 있는 자신의 저택에서 함께 머물 기회를 경매품으로 출품한 사례는 유명하다. 일주일간 그와 같이 저택에서 지낼 수 있는 상품은 33만6000달러(약 3억8000만 원)에 낙찰됐다. 디캐프리오와 함께 지내는 것은 아니나, 같은 저택에서 일주일간 머무는 상품도 11만2000달러(약 1억2000만 원)에 팔렸다. 디캐프리오는 2년 전 같은 행사에서 자신의 요트에서 함께 저녁을 먹는 경매 상품을 내걸어 주목받은 바 있다.
한편, 지난 9월 9일 이탈리아 자동차 브랜드 페라리의 슈퍼카 ‘라 페라리 아페르타’가 소더비 경매에서 830만 유로(약 112억8800만 원)에 낙찰됐다. 페라리가 브랜드 출범 70주년을 기념해 경매에 부친 한정 모델 라 페라리 아페르타는 추정가의 2배에 달하는 가격에 거래됐지만, 실은 아직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차다. 현재 차가 완성되지 않아 실물이 아닌 3D 모델만 공개한 상태인데도 치열한 입찰 경쟁의 주인공이 된 것.
1년 전인 작년 9월에도 기념할 만한 옥션이 열렸다. 크리스티 옥션이 런던 사우스켄싱턴에서 주최한 ‘Out of the Ordinary’의 현장엔 경매 제목만큼이나 독특하고 예외적인 아이템 90여 점이 한데 모였다. 침몰한 타이태닉호 탑승자의 옷, 여권과 열쇠,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잠수함의 공격으로 침몰한 영국의 대서양 정기선 루시타니아호의 구명 튜브, 영국인 남극 탐험가 어니스트 섀클턴의 유리 체온계 등이 출품됐다. 또한 빅토리아 여왕(1819~1901년)이 입던 속바지는 물론이고 여왕의 결혼식에 쓰인 웨딩 케이크 조각까지 경매 품목에 포함돼 놀라움을 자아냈다. 빅토리아 여왕의 서명이 있는 보증서와 함께 박스에 담긴 케이크 조각은 1500파운드(약 220만6000원)에 낙찰됐는데, 1860년에 산 케이크를 어떻게 보존했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경매의 품목은 경매장의 분위기를 탈바꿈하기도 한다. 물론 경매사의 특징에 따라서도 현장의 흐름이 달라지지만 아이템이나 주제 또한 한몫한다. 때로는 북적이는 엔터테인먼트 현장이 되기도 하고, 옥셔니어의 목소리만 울려 퍼지는 고요한 공간이 되기도 한다. 컨템퍼러리 아트 관련 옥션은 대부분 시끌벅적한 열기로 가득하고, 물품이 오래된 것일수록 경매장의 분위기는 점잖고 조용할 때가 많다.
한국에도 대표적인 두 경매사가 있다. 케이옥션은 미술 작품을 다루고, 서울옥션은 미술 작품과 아트 토이, 여기에 피겨를 더한다. 물론 아직 외국만큼 다양한 품목을 선보이진 않지만 앞으로 더욱 확장하리라 기대한다. 자, 이제 주변을 둘러보자. 지금 당신을 둘러싸고 있는 오브제가 미래에 세계가 주목하는 옥션의 주인공이 될지도 모른다.
에디터 백아영(xiaxia@noblesse.com)
사진 제공 소더비·크리스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