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채색의 미학, 샤를로트 갱스부르
예술가에게는 누구나 스타일을 대변하는 뮤즈가 한 명씩 있다. 뮤즈는 그들의 머릿속에서 막연한 이미지로만 떠오른 영감을 현실에서 보여주는 이상형으로 예술가에겐 꼭 필요한 존재다. 패션 디자이너 최범석의 뮤즈는 프렌치 시크의 정석이라 불리는 샤를로트 갱스부르. 최범석이 그녀에 대한 애정을 듬뿍 담은 연서를 보내왔다.
색이 필요 없을 정도의 매력 그녀를 처음 본 건 흑백 화보 속에서였다. 얇은 꽃잎처럼 가냘프고, 여리다 못해 창백함까지 느껴지는 그녀에게서 신기하게도 시크함, 럭셔리한 오라가 강하게 풍겼다. 그녀를 직접 본 적은 없지만, 그녀를 뮤즈로 여성복을 디자인하고 싶은 욕구가 솟구쳤다. 하얗고 작은 얼굴, 긴 목, 지적인 입술, 아무렇게나 묶어도 멋스러운 머리카락. 옷을 대충 걸쳐도 특유의 분위기가 있고, 그 특별함이 두드러질 때 그녀는 가장 아름답다. 심지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색을 다 빼도 그녀는 어여쁘다. 그래서 모노톤을 그렇게 분위기 있게 소화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남자의 옷을 입히고 싶다 트렌치코트는 마치 샤를로트를 위해 만든 옷 같다. 하지만 내가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그녀의 차림은 얇은 저지 티셔츠에 데님을 매치한 룩이다. 몸에 익은 편안한 저지 티셔츠와 데님을 소화하는 능력은 당대 최고가 아닐까 생각한다. 오버사이즈 코트, 맨즈 라인의 셔츠, 루스 피트 니트 역시 그녀만이 완벽하게 소화할 수 있는 아이템. 훗날 그녀가 입을 옷을 디자인할 기회가 생긴다면, 남성적이고 시크한 오버사이즈 스타일을 시도해보고 싶다. 그녀의 여성스러운 외모와 반대되는, 심플하고 남성적인 디테일이 살아 있는 옷. 또 그녀가 자주 입는 흐르는 듯한 가벼운 원단 대신 딱딱하고 두꺼운 원단의 코트를 입은 모습을 꼭 한번 보고 싶다.
1 클래식한 디자인의 A.P.C 트렌치코트 2 고르고 부드러운 피붓결을 유지해주는 Embryolisse 콘센트레이티드 크림 밀크 3 중성적이고 편안한 향의 Le Labo 상탈 33 4 그녀가 자주 바르는 톤 다운된 핑크 컬러 립스틱은 Chanel 루쥬 코코 리아종 색상
옅은 향이 전해지는 듯한 프렌치 뷰티 손으로 대충 빗어내린 듯한 그녀의 헝클어진 긴 머리는 어떤 액세서리보다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녀는 짙고 정교한 색조 메이크업을 즐기는 대신, 크림 밀크를 가까이하며 아기처럼 보들보들한 피붓결을 사수하고 있는 듯하다. 여느 여인들처럼 피부의 윤기는 그녀에게 그리 중요한 요소가 아니다. 솜털이 만져질 것 같은 복숭앗빛 피부는 과함도, 부족함도 없이 그녀의 스타일을 받쳐준다. 또 그녀는 향수를 갖고 다니지만 수시로 뿌리기 위한 용도는 아니며, 백 속에 넣어 자연스레 소지품에 향이 스미는 것을 좋아한다고 들었다. 그녀는 간결하지만 우아하게 떨어지는 천의 드레이프, 정확히 어떤 향인지 알 수 없지만 계속 맡고 싶은 공기 같은 아름다움을 지닌 여자다.
보호 본능을 일으키는 그녀의 입술 더 나이가 들어도 샤를로트는 덜 여문 듯한 소녀의 이미지, 보호 본능을 일으키는 유약한 이미지를 잃지 않을 것이라 확신한다. 여자의 메이크업에 대해 자세히 알지는 못하지만, 그녀가 그런 이미지를 유지할 수 있는 데에는 립 메이크업이 한몫한다고 본다. 대부분의 여자는 입술이 촉촉하고 글로시하기를 원하는 것 같다. 그런데 그녀는 주시한 과일 같은 입술 대신 푸딩처럼 보송보송하고 부드러운 립 메이크업을 고수한다. 트렌치코트나 편안한 티셔츠를 입을 때는 채도가 아주 낮은 샐먼이나 핑크 계열,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그보다 약간 선명한 컬러를 선택하는데, 어떤 경우도 메이크업이 룩보다 도드라진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 이토록 치밀하지만 그럼에도 항상 자연스럽고 시크한 그녀에게 어떻게 반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Bumsuk Choi
2003년 처음 서울 컬렉션 무대에 서고, ‘제너럴 아이디어’라는 남성복 브랜드를 선보인 디자이너. 파리 ‘오 프랭탕’에 입점하고, 뉴욕 컬렉션을 기점으로 이름 석 자를 세계에 알렸다. 웹사이트(www.generalidea.co.kr)에 방문하면 그의 작품을 볼 수 있다.
에디터 성보람(프리랜서)
글 최범석 일러스트 김상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