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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이 열린다

ARTNOW

오픈 스토리지부터 갤러리형 리서치 센터까지, 세계 곳곳의 뮤지엄이 수장고를 개방하고 있다.

바젤에 있는 샤울라거.

뮤지엄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전시실, 교육실, 조각 공원, 로비, 카페테리아, 극장 등 다양한 공간이 공존하는 뮤지엄에서 단 한 곳, 일반인의 출입을 허락하지 않는 비밀 공간이 있다면? 바로 작품을 보관하는 수장고다. 수장고는 미술관과 갤러리, 컬렉터에게는 무엇보다 중요한 공간이다. 대규모 기관은 물론이고 작은 갤러리와 작가 개인 스튜디오도 수장고를 보유한 곳이 많다. 전시장에서 마주치는 작품이 미술관의 전부가 아니다. 감히 가치를 매길 수 없는 수많은 작품이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 숨어 있다. 수장고는 미술관이 보유한 작품이나 다음 전시를 기다리는 작품 등을 보관하는 미술관의 창고다. 작품 보존이 중요한 만큼 관리 또한 까다롭다. 작품이 손상되지 않도록 온도와 습도를 세심하게 관리하며, 출입 제한이 엄격하고 보안 또한 철저하다. 미술관에서 일하는 직원이라 해도 아무나 수장고에 들어갈 수 없다. 수장고를 담당하는 큐레이터와 동행하거나 허가를 받아야만 출입이 가능하다. 하지만 아쉬워하긴 이르다. 다양한 관람 경험을 선사하는 ‘개방형 수장고’라면 이야기가 다르기 때문이다.

유리창을 통해 볼 수 있는 더 브로드의 수장고.

‘진짜’ 수장고 훔쳐보기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명물 월트 디즈니 콘서트홀 바로 옆에 3년 전 개관한 따끈따끈한 미술관, 더 브로드를 방문했다. 독특한 외관, 건물 밖까지 길게 늘어선 줄, 광활한 로비도 장관이었지만 진짜 볼거리는 따로 있었다. 2층 전시실에 가기 위해 계단을 오르는데, 계단 사이로 사각형 유리창이나 있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철제 구조물 사이로 회화 작품이 빼곡히 걸려 있는 것이 아닌가! 유리 창 너머 보이는 곳은 다름 아닌 미술관의 수장고였다.
물론 전시실처럼 작품을 제대로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수장고의 역할은 작품 보관과 보존이기에, 온전한 모습 대신 작품의 끄트머리나 캔버스 옆면을 볼 수 있을 뿐이다. 하지만 수장고를 볼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흥분됐다. 알고 보니 이 공간은 건축 스튜디오 딜러 스코피디오 + 렌프로(Diller Scofidio + Renfro)가 설계한 더 브로드 건물의 하이라이트였다. 더 브로드의 설립 디렉터 조앤 헤일러의 “미술관에서 ‘정말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볼 수 있는 공간이죠. 어쩌면 미리 구성한 전시 이상으로 뮤지엄에서 일어나는 모든 스펙트럼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라는 말은 일리가 있다.
그런가 하면 유리 벽 너머로 작품의 이동 경로를 볼 수 있는 곳도 있다. 2003년 스위스 바젤의 에마뉴엘 호프만 재단이 소장한 방대한 미공개 컬렉션을 보관하기 위해 지은 샤울라거다. 이름부터 ‘보는 창고’를 뜻한다. 스위스의 건축가 헤어초크 & 드 뫼롱(Herzog & De Meuron)이 보는 수장고 시스템을 도입한 이곳은 특수 미술관의 성공 사례로 손꼽힌다. 아쉽게도 미술관의 모든 공간을 볼 수 있는 건 아니지만, 대부분의 시설이 투명 유리창으로 연결돼 스태프가 소장품을 옮기거나 포장을 제거하는 모습을 생생하게 접할 수 있다.
국내에도 이런 사례가 있다. 나주국립박물관은 수장고 일부를 유리로 개방했다. ‘열린 문화 공간’을 지향하며 국립박물관 최초로 수장고 내부를 볼 수 있는 건축을 설계한 것이다. 수장고뿐 아니라 옥상정원도 개방해 보다 생생한 경험이 가능하다. 국립현대미술관이 청주의 옛 연초제조창을 리뉴얼해 내년에 오픈 예정인 국립미술품수장보존센터(청주관)도 보는 수장고로서 역할을 수행할 것이다. 수장고 본연의 기능은 물론 미술 작품을 보관, 보존하는 아카이브이면서 다양한 전시와 교육 이벤트를 진행하는 복합 문화 공간으로 탄생할 예정이다. 또 2020년엔 국립민속박물관이 파주 헤이리에 개방형 수장고를 오픈한다는 소식을 알리기도 했다.

1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헨리 R. 루스 미국미술연구센터.
2 크랜브룩 미술관 내부.
3 브루클린 뮤지엄의 시각저장연구센터.

새로운 형식의 디스플레이
이처럼 수장고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개방형 수장고가 대세지만, 수장고의 형태를 끌어와 새로운 디스플레이를 제시한 예도 있다. 대부분 뮤지엄은 작품을 보관하고 전시할 장소가 턱없이 부족하다. 상설전이나 기획전 형식으로 선보이는 작품은 빙산의 일각일 뿐, 보유한 작품의 극히 일부만 대중에게 모습을 드러낸다. 그래서 작품 디스플레이와 소장품 보관이라는 두 가지 목적을 동시에 해결할 방안으로 만든 곳이 리서치 센터 혹은 시각 저장 센터다.
이 분야의 선두주자는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헨리 R. 루스 미국미술연구센터다. 마치 보물섬처럼 수많은 오브제와 작품이 즐비하지만, 작품 사이 간격은 일반 전시실과 달리 사뭇 좁다. 이름처럼 연구 센터에 더 가깝고 실제로 연구가 이루어지기도 한다. 책 대신 작은 오브제나 작품이 놓인 도서관을 상상하면 비슷할 것이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큐레이터 캐서린 로릭(Catharine Roehrig)은 “이 공간 덕분에 뮤지엄이 보유한 오브제 대부분을 관람객에게 노출할 수 있습니다. 방대한 컬렉션을 보존하고 연구하는 일도 한결 수월해졌죠. 처음엔 작품 과부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시도였지만, 관람객의 호응이 점점 높아졌어요. 사람들이 메인 갤러리에만 관심을 둘 것 같았는데 의외로 센터도 인기가 많습니다”라고 언급했다.
브루클린 뮤지엄도 비슷한 공간을 만들었다. “언제 어디서든 작품을 보관하기 위한 공간을 찾아 헤맵니다. 보유한 작품 수에 비해 그걸 감당할 공간은 터무니없이 작아요”라는 수석 큐레이터 케빈 스테이턴(Kevin Stayton)의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뮤지엄은 2005년 시각저장연구센터를 설립했다. 뮤지엄 한 층에 캐비닛과 카탈로그, 문서, 다양한 오브제와 작품 등 형태를 불문한 자료와 작품이 가득 쌓여 있다. 처음엔 그 어지러운 광경에 당황할 수도 있지만, 수만 가지 오브제를 한자리에서 관람할 수 있다는 매력에 빠져들고 나면 시간 가는 줄 모를 것이다. 뮤지엄 컬렉션의 폭을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이다.
뉴욕 히스토리컬 소사이어티도 교육 중심의 컬렉션을 선보이는 오픈 스토리지를 열었다. 디렉터 마기 호퍼(Margi Hofer)에 따르면 그동안 소사이어티의 관람객 수가 적었으나, 오픈형 수장고를 선보인 다음부터는 새로운 형식의 전시회를 보러 오는 관람객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고 한다.
앞서 언급한 개방형 수장고와 이러한 센터의 가장 큰 차이는 바로 큐레이션의 유무다. 오픈형 수장고는 작품 선별 없이 날것 그대로를 보여주고, 수장고 형태를 빌린 디스플레이는 일종의 전시 역할도 수행하기에 별도의 작품 큐레이션 과정을 거친다. 하지만 두 방식 모두 관람객을 시각적으로 자극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어떤 형태로든 수장고의 개방은 전시회 이상으로 관람객과 미술관 그리고 작품이 직접적으로 상호작용하는 기회를 마련한다. 또 기관이 컬렉션을 안전하게 유지한다는 점을 관람객에게 어필하면서 동시에 새로운 관람법을 제안한다. 뮤지엄이 어떤 작품을 보유하고 있는지, 어떻게 작품을 분류하고 정리하는지, 작품 보존은 철저하게 이루어지는지 관람객도 알 권리가 있지 않을까? 오픈 스토리지는 뮤지엄 컬렉션을 효과적으로 드러내고 연출하는 방법이다. “뮤지엄 컬렉션은 공공 유산입니다. 사람들은 더 많은 컬렉션을 볼 권리가 있습니다”라는 케빈 스테이턴의 말에 동의한다.

 

에디터 백아영(xiaxia@nobless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