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 해결자의 호기심 전시
본래의 기능에 충실하면서도 특유의 감성과 위트를 더해주는 디자인, 소소한 일상을 빛나게 해줄 ‘사물’의 창조자. 스위스 디자인 스튜디오 빅게임을 만났다.

빅게임의 국내 첫 개인전 가 열린 MMMG 남대문점 전경.
빅게임(Big-Game)
빅게임은 스위스 출신 그레구아르 장모노(Gregoire Jeanmonod), 벨기에 출신 엘리크 프티(Elric Petit), 프랑스 출신 오귀스탱 스코 드 마르탱비유(Augustin Scott de Martinville)가 만든 디자인 스튜디오다. 학창 시절 같은 수업을 들은 세 친구가 졸업하자마자 2004년 스위스의 소도시 로잔에 오픈했다. 아무리 친한 친구라 해도 3명의 디자이너가 함께 활동을 이어가는 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닐 텐데, 스튜디오 설립 이유를 묻자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단지 같이 전시하고 싶었다”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만큼 서로의 예술적 미감에 대한 신뢰가 탄탄했던 것. 팀 디자이너로서 발걸음을 내디딘 지 햇수로 14년째인 지금, 빅게임은 감도 높은 디자인으로 전 세계에 고정 팬을 확보하며 그들만의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이들은 제품이 고객의 손에 닿는 시점부터 삶의 한 부분으로 자연스레 녹아들길 바란다.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고 실용적인 디자인을 추구하면서 심미성 또한 잊지 않는다. 끊임없는 질문과 리서치가 이들의 원동력. 의자 하나를 만들어도 주변의 모든 카페를 찾아가 의자에 앉아보고 직접 체험하면서 연구한다. 가리모쿠 뉴 스탠더드를 위해 디자인한 카스터(Castor) 스툴, 프락시스의 펜(Pen) USB, 렉손의 스카우트(Scout) 손목시계는 2014년 스위스 디자인 어워드를 수상했고, 알레시를 위해 디자인한 카고(Cargo) 수납함은 같은 해에 스위스 디자인 어워드와 월페이퍼 디자인 어워드를 동시에 석권하는 등 화려한 이력을 뽐낸다. 더불어 마지스를 위해 디자인한 어린이 의자 리틀 빅(Little Big)과 헤이와 협업해 만든 실용적인 선반까지, 빅게임의 아이디어와 열정은 전 세계인의 일상 곳곳에 뿌리내리는 중이다.

엘리크 프티(왼쪽)와 오귀스탱 스코 드 마르탱비유(오른쪽).
빅게임은 어떻게 시작했나요?
밀라노에서 함께 전시를 연 것이 발단이었어요. 빅게임이라는 이름은 세 멤버의 이름이 다 어렵고 길어서 우리를 공통으로 지칭할 이름이 필요해 만들었죠. 처음에 헌팅 트로피를 함께 디자인했는데, 빅게임의 의미는 ‘당신이 사냥한 큰 동물’이라는 뜻이라 어울린다고 생각했어요.
아무리 친한 사이라 해도 관심사가 조금씩 다를 텐데 어떻게 아이디어를 주고받나요?
벨기에, 프랑스, 스위스 세 나라는 문화가 비슷한 듯 다르죠. 스튜디오에 원형 테이블이 하나 있는데, 거기에 앉아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대화하고 토론해요. 각자 관점이 다 다르다는 사실이 가장 흥미로워요. 무조건 셋이 같이 디자인해요. 세 사람의 뇌가 모이면 혼자 하는 것보다 낫잖아요.
세계 각국에서 디자인상을 수상했어요. 그중 2014년 스위스 디자인 어워드 수상작 ‘Pen for Praxis’가 특히 기발한 것 같아요.
얼핏 보면 펜 같지만 실은 USB 메모리 스틱이에요. 요즘 메모리 스틱이 점점 작아져서 잃어버리기 쉽잖아요. 그래서 물질성을 부여하기로 마음먹고 펜 형태로 만들었어요. 가늘고 길어서 어디든 넣을 수 있고, 잃어버릴 염려도 덜 수 있죠. 컬러도 다양해 누구나 좋아하는 컬러를 고를 수 있고요. 빅게임 스튜디오에서도 각각 다른 컬러를 사용하고 있어요.
‘Beam for Hey’도 발상이 색달라요. 재질과 형태가 재미있네요.
이 제품은 옷을 걸 수 있는 선반이에요. 집 현관에 있는 옷걸이라고 생각하면 되는데, 보통 랙은 H 형태지만 건축물 지지대로 사용하는 I 빔을 사용해 I자 형태로 만들었어요. 일반적으로 옷을 아래로 걸지만 이 제품은 위로 올려서 거는 방식이에요. 발상을 뒤집었죠.
기능성과 심미성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듯 보여요.
실용성을 놓치지 않으면서 일상적 오브제에서 새로운 가치를 발견하는 것이 빅게임의 작업 방식이자 디자인 철학이에요. 소재를 고를 때도 물질 자체에 관심을 두기보다는 디자인과 제품에 가장 적절한 재료인지 연구하죠. 결과적으로 ‘Beam for Hey’는 금속과 나무라는 상반된 재질이 색다른 매력을 끌어내면서 심미성도 잃지 않았어요.

1 펜을 닮은 프락시스의 USB 메모리 스틱.
2 I 빔을 사용한 구조적 디자인의 빔(Beam) 옷걸이.
3 코르크 소재로 만든 보트(Bote) 선반.
작업 아이디어와 영감은 어디에서 얻나요?
새로운 사람을 만났을 때 혹은 작업 의뢰가 들어오면 여러 제안을 듣게 되면서 문제나 고민이 생기죠. 우리는 문제를 사랑해요. 질문을 던지며 해결책을 모색하는데, 그 질문이 우리에게는 영감의 원천이죠. 넓은 사무실에서 끊임없이 새로운 모형을 만들며 매 순간 의견을 나눠요. 그런 점에서 부엌은 아주 중요해요. 같이 요리하고 식사하면서 주고받는 아이디어가 중요한 영감이 될 때가 많거든요.
7개 도시를 순회하면서 전시를 열고 있죠. 그리고 지금 서울에 왔어요. 전시 제목이 흥미로워요. 어떤 전시일지 궁금증을 자아내죠.
제목 그대로 질문을 던지고 그 답을 얻어내는 전시입니다. 각 나라에서 전시를 열 때마다 제품 10개를 골라서 현지에 있는 누군가에게 보냈어요. 이 제품은 일본, 독일, 멕시코, 프랑스, 오스트리아, 스페인 등을 돌아다녔죠. 그런데 똑같은 물건 10개라도 나라에 따라 현저히 다른 반응이 생긴다는 점이 재미있어요. 물론 지역적 특성뿐 아니라 사람들의 직업, 성격에 따라서도 결과물은 천차만별이죠.
특히 기억에 남는 반응이 있나요? 한국에선 어떤 반응이 나올까요?
일본에서는 현대적 일본 문화를 접할 수 있었고, 프랑스에서는 17세기 예술에 관한 응답이 왔어요. 한국에선 어떤 반응을 보일지 전혀 예측할 수 없지만, 분명 흥미로울 거예요. 한국이라는 나라와 MMMG라는 전시 공간에 빅게임이 거는 기대가 아주 높거든요.
전시 제품을 선정하는 기준은 뭔가요? 한국에서는 어떤 제품을 만날 수 있죠?
한국 전시에서는 각기 다른 브랜드와 협업해 만든 10개의 제품을 선보이고 있어요. 스툴, 동전 케이스, 플로팅 보트, 메모리 스틱, 손목시계, 가정용 공구함, 랙, 틀(문손잡이, 창틀 등), 와인병, 헌팅 트로피 등이죠. 받은 사람마다 다른 영감을 얻고 여러 스토리가 생겨나도록 기능, 모양, 재료를 각양각색으로 골랐어요. 한 가지 더 염두에 둔 건 제품 사이즈예요. 규격 박스(50×60×40cm)에 담을 수 있는 크기의 제품으로 한정 지었어요.
게다가 계속 같은 박스를 사용한다면서요?
맞아요. 제품을 담은 박스가 이곳저곳 오가는 동안 전 세계 우체국의 스티커와 테이프로 덮이죠. 붙였다 떼어냈다 한 흔적도 남고요. 이런 과정을 통해 박스도 작품 못지않은 스토리를 갖게 되잖아요. 그 상자만의 이야기가 쌓이는 것이 좋아서 찢어지기 전에는 계속 쓸 생각이에요.
현재 어떤 작업에 몰두하고 있나요?
스위스에서는 시계를, 프랑스에서는 가구를 만들고 있어요. 그 와중에 문제와 질문이 난무하며 그 사이로 에너지가 넘쳐흐르죠. 앞으로도 이렇게 문제와 질문을 이어가고 싶어요.
에디터 김윤영(snob@noblesse.com)
글 백아영(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