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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적 예능 읽기

LIFESTYLE

지난 겨울 서로 다른 빛깔로 반짝이던 예능 방송과 문학의 잔상.

역사의 선을 넘어
즉흥적이고 시간표 없는 여행을 즐긴다. 하지만 주제나 결론 없는 여행으로 끝난 적은 없었다. 3박5일 일정에 신혼여행지로 바르셀로나를 주장한 건, 가우디의 건물을 직접 보고 싶다는 욕구가 컸기 때문이다. 그런 내게 여행을 테마로 한 예능 방송은 낯선 주제가 아니다.
2018년 봄, MBC 프로그램 <선을 넘는 녀석들>(이하 <선녀들>)의 예고를 접했다. 당시 세계적 이슈였던 미국의 멕시코 국경 봉쇄 현장에 방송인 김구라와 역사 강사 설민석, 배우 이시영이 직접 떠난다기에 챙겨 봤다. 그러고 보니 새로운 TV 방송을 본 것도 오랜만의 일. 이상하게도 나는 그곳에서 예능의 잔잔한 웃음 대신 쉽사리 가지 못할 ‘금단의 선’을 봤다. 카메라가 어둡게 잡은 그곳의 긴박한 분위기는 당시 어느 르포나 탐사 뉴스보다 생생했다. 역사의 현장과 이면을 예능이라는 이름 아래 더 강렬히 느낄 줄이야.
요즘은 콘텐츠가 너무도 다양하다. 사람들은 모바일로 뷰티 브랜드가 만든 20대 웹 드라마를 보고, SNS 링크를 타고 넘어가 유튜브로 핵심만 추린 시사 보도를 본다. 하지만 몰랐던 사실을 토대로 10명의 예능 작가가 달려들어 꼼꼼한 취재와 긴 호흡으로 전하는 영상은 쉽사리 떠오르지 않을 것이다.
<선녀들>은 2019년 봄, 우리 고대사와 근현대사를 배경으로 경주와 제주도 등 한국 구석구석을 보여준 한반도 편에 이어, 가을부터 ‘리턴즈’라는 타이틀로 해외에서 촬영하고 있다. 일종의 근현대사 편. 러시아와 중국, 일본 등 익숙한 나라의 멋진 관광지 대신 낯선 동네를 찾는다. 지금껏 교과서에서 다루지 않은 인물을 만나기도 한다. 상해임시정부를 지킨 정정화와 연미당 같은 여성 독립운동가나 이름 모를 타국 후원자와 얽힌 아픔을 발견한다. 일제강점기, 러시아에서 성공한 사업가였으나 사재를 독립 운동과 동포 교육에 투입한 죄로 흔적 없이 사라진 최재형(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편)의 이야기는 그가 묻힌 것으로 추측되는 호젓한 오솔길에서 들었다. 그 장면에선 시청자로서가 아니라 그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자식으로서 혼란스러웠다. 이른 아침 아버지가 “내가 지금 나가 죽어야 너희들이 산다”라고 말하면 어쩌지? 촬영에 동행한 배우 최희서가 꾹꾹 참다 흘린 눈물, 방송인 유병재의 숨기지 않은 한숨, 가수 김종민의 일갈은 과장이 아니다. MC 전현무가 잠시나마 무거운 분위기를 환기해도 나는 피할 수 없는 마음속 질문과 연신 마주했다.
이런 ‘독한’ 예능이 얼마나 갈 수 있을까. 첫 시즌부터 참여한 정윤정 PD에게 전화를 걸었다. 제작진의 대답은 쉬웠다. “아직 할 얘기가 많아 올해 상반기는 계속 볼 수 있어요. 시즌이 거듭될수록 가지치기로 늘어나는 내용도 많아지고요. 주 타깃인 2040 시청자와 초등학생 시청률뿐 아니라 초청 게스트의 재방문율도 높아요.” 입시나 취업용이 아니면 역사가 주목받기 어려운 시대. 이 기특한 예능의 정의는 명확하다. “지금 어른들은 <먼나라 이웃나라>를 보고 큰 사람들이잖아요. 그 책의 방송판을 만들고 싶었어요.” 역시 여느 대중문화 평론가보다 우리의 평범한 가족들은 방송의 순기능을 진작 느꼈구나. 나도 어린 시절 <먼나라 이웃나라> 책 귀퉁이가 떨어질 때까지 봤는데, 왜 눈치채지 못했을까.
에디터 김미한

우리가 사랑했던 북가좌동에서
신혼집을 북가좌동에 꾸렸다. 1970년대에 지은 낡은 단독주택이다. 이사를 오기 전부터 재개발이 되느냐 안 되느냐를 두고 갑론을박이 오가던 동네라 인근 지역 전세보다 싼값에 들어올 수 있었다. 슬래브 지붕을 얹은 집이라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는 찬 바람이 들어와 등유 난로를 켜야 그나마 지낼 수 있었다.
이 집을 떠날 생각이 없던 이유는 담벼락 아래 검붉은 흙이 가득한 텃밭과 좁은 마당에서 자라는 감나무 두 그루 때문이다. 여름밤이면 풀벌레 소리, 장대비 내리는 소리. 가을 무렵이면 아직 따지 못한 감이 떨어지는 소리, 홍시를 먹으려고 감나무에 앉은 새가 지저귀는 소리. 겨울이면 사부작사부작 눈 내리는 소리, 눈 치우는 소리. 우리 집 고양이 두 마리는 마당에서 산책하길 좋아하고 아내와 나는 거실에 앉아 커피 마시며 그 소리를 듣는다. 며칠 뒤면 아내와 내가, 우리가 사랑했던 이 집을 떠난다. 왜 하필 나는 이 시기에 <우리가 사랑했던 정원에서>를 읽었을까?
<떠도는 그림자들>로 2002년 공쿠르상을 수상한 파스칼 키냐르. ‘음악을 영혼으로, 문학을 육신으로 지닌’ 키냐르는 19세기 가톨릭 사제이며 최초로 새소리를 기보한 음악가인 시미언 피즈 체니의 이야기를 <우리가 사랑했던 정원에서>에 담아냈다. 이 책은 출간되자마자 ‘책과 음악상’을 수상했고 키냐르는 수상 소감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 책은 음악에 대한 찬가입니다. 죽은 이에 대한 애도와 그리움의 음악, 위로가 되는 음악, 새들의 노랫소리에 담긴 생생한 자연의 소리 같은 그런 음악 말입니다.”
“주방의 돌계단 옆에서, 함석 홈통 아래서,/ 똑똑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를 내며 울고 있는/ 양동이는 나의 시편입니다!/ 겨울에, 사제관 복도로 난 현관문을 잠시/ 열면, 옷걸이에 걸린 케이프들과 모자들이/ 소용돌이치며 넘실거리는 아르페지오,/ 그것 역시 Te Deum(찬미가)입니다!”(20쪽) 키냐르는 시미언 피즈 체니의 삶을 선율처럼 풀어낸다. 시미언이 “정원의/ 풀숲과 조약돌이 깔린 작은 오솔길에/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를 기보”(19쪽)했듯이 키냐르는 늙은 시미언의 삶을, “나뭇잎 아래 숨는 새들의 모든 노랫소리”만큼 흔해서 누구도 아름다운 음악이라 여기지 않았던 그의 생을 기보하고 있다.
나는 소설과 시와 희곡 중간 어딘가에 있을 이 책을 읽는 내내 지난 4년간 이 집에서 미처 느끼지 못한 감정이 떠올랐다. 마치 텃밭 흙을 고르다 발견한, 우리보다 먼저 살았을 세입자의 흔적. 이를테면 단추, 음료수병 같은 것처럼 덤덤했던 마음에 서글픈 감정이 발굴됐다. 그래서 더욱 시미언이 들었을 소리가, 아내와 내가 사는 이 낡은 집에서 들려오는 소리 같았는지 모르겠다.
이 집을 떠날 계획을 세우면서, 아마 동네가 생길 무렵부터 있었을 ‘은혜슈퍼’에 다녀오는 길이었으리라. 우리는 이사를 가면 사라질 풍경을 오래도록 이야기했다. 마당을 산책하는 고양이 두 마리와 골목을 오가는 배달 오토바이 소리, 저녁 밥상에 무엇이 오르는지 알 것 같은 옆집의 밥 짓는 냄새까지. 이 풍경을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아내가 사랑했던 이 정원에서,/ 그리고 남아 있는 노래 안에서/ 나는 행복해./ 그녀의 정원에서 내가 정말로 행복해지는/ 이유는 심지어 이렇게 말할 수 있어/ 아내가 사랑했던 정원에 있으면 나 자신이/ 그녀 안에 들어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라고.”(30쪽)
아무래도 책장에 꽂힌 <우리가 사랑했던 정원에서>를 마주할 때마다 아내가, 내가 신혼을 보낸 이 집과 그 집까지 이어지던 골목길, 그 길을 걸으며 마주친 풍경, 그 집 거실에 앉아 들은 소리가 떠오를 것 같다. 그리고 아내와 내가 이 집에서 서로 마주쳤던 사랑을 나는 시 한 편 한 편에 기보하며 우리가 사랑했던 이 집을, 몇 년 안에 아예 사라질 이 풍경과 소리와 냄새를 떠올리리라.
시인 백상웅

 

에디터 김미한(purple@nobless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