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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가 된 스니커즈

LIFESTYLE

그냥 아이템이 아니다. 어엿한 문화로 자리매김한 스니커즈 이야기.

위쪽 그레이 컬러에 비둘기가 그려져 ‘피죤 덩크’라 불린다. ©ihkim13
아래쪽 ‘사탄 슈즈’와 나란히 자리한 ‘지저스 슈즈'(오른쪽)는 나이키 에어맥스97 바닥에 요르단 강에서 가져온 성수를 넣었다. ©구본숙

나름 패션 피플이라 자부하건만, 스니커즈 마니아의 열정은 따라가기 힘들다. 물론 멋진 스니커즈를 좋아하긴 한다. 하지만 날짜를 챙겨 나이키 드로에 응모하거나 오픈런에 동참할 정도는 아니다. 스니커즈를 진열장에 고이 모셔두는 컬렉팅 역시 체질에 맞지 않는다. 뭐든 용도에 맞게 쓰일 때 가장 아름답다는 소비 철학에 위배되니까. 몸에 걸치는 여러 아이템 중에서도 스니커즈가 유난하다. 대체 왜?
그냥 아이템이 아니기 때문이다. <스니커즈 언박스드 서울>(~9월 10일) 전시에 다녀오고 알았다. 런던 디자인 뮤지엄의 월드 투어 전시로, 오늘날 스니커즈가 어떻게 문화의 중추 역할을 하게 되었는지 조명한다. 전시장에는 각종 희귀한 스니커즈는 물론 사진과 영상, 카탈로그, 드로잉까지 700~800여 점의 오브제가 빼곡히 자리한다.
스니커즈는 본래 운동선수를 위해 고안된 신발의 한 종류에 불과했다. 아디다스의 모태인 다슬러 형제의 신발 공장도 엘리트 운동선수용 러닝 스파이크와 축구화를 생산하는 데서 시작했다. 그런 스니커즈를 스타일 아이콘으로 끌어올린 건 청년들이었다. 예컨대 1970년대 길거리 농구 성지 러커 파크에서 열리는 토너먼트가 인기를 끌며 코트 위 영웅과 똑같은 스니커즈를 신는 관중이 늘었다. 1980년대 비보이와 비걸은 격렬한 동작을 위해 튼튼한 아웃솔과 유연한 어퍼를 적용한 스니커즈가 필요했는데, 그렇게 선택받은 모델이 푸마 클라이드다.
1990년대 들어 개인의 정체성을 표현하려는 열망이 커졌고, 이는 컬래버레이션과 한정판 출시 등 오늘날 스니커즈 문화로 발전했다. 풍부한 사례가 이를 방증한다. 지난 2005년 사람들이 구매를 위해 매장 앞에 진을 치고 경찰이 출동하는 등 폭동을 일으킨 나이키 전설의 모델 ‘피죤 덩크’, 2년 전 밑창에 사람 피를 넣어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사탄 슈즈’ 등등. 모두 <스니커즈 언박스드 서울>의 핵심인 ‘스타일(The Style)’ 섹션에서 볼 수 있다.
전시는 스타일 이면의 숨은 노력도 살핀다. ‘퍼포먼스(Performance)’ 섹션에서는 혁신 소재와 기술 연구의 영역을 살폈는데, 1990년대 ‘끈 없는’ 레이스에서 약진한 리복의 인스타펌프 퓨리나 미드솔에 스프링을 추가한 나이키 샥스의 사례를 보면 기능과 스타일은 결국 한 몸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편, ‘지속 가능성(sustainability)’은 시대 요구에 맞춰 업사이클링, 리메이크 등 스니커즈 산업에서의 환경적 노력을 담은 섹션이다. 커피 찌꺼기를 재활용한 스니커즈를 내놓는 신규 브랜드 렌스, 도쿄 시부야의 수선 복원 전문 매장 르쿠튀르의 커스텀 스니커즈 등 마지막까지 볼거리가 풍성하다.
<스니커즈 언박스드 서울>이 열리는 곳은 성수동도 홍대도 아닌 광화문 세종문화회관이다. 진중한 공간에서 대중적 스니커즈가 오브제로 전시된다는 사실만으로도 파격으로 느껴진다. 하지만 전시를 보니 의도를 알겠다. 서로 다른 이야기를 품은 스니커즈가 교집합을 이루며 하나의 문화로 커가는 양상은 미술 전시 못지않게 깊이 있고, 실은 더욱 흥미진진하다. 무엇보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다. 스니커즈 한 켤레 없는 사람, 누가 있나?

버질 아블로가 나이키의 상징적 스니커즈를 재해석한 ‘더 텐’ 시리즈도 ‘스타일’ 섹션에서 확인할 수 있다. ©ihkim13

 

에디터 황제웅(jewoong@nobless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