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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즈가 말하는 뮤즈

FASHION

예쁘다는 말은 외적인 면 외에도 취향, 말투, 성격 등 여러 가지를 포함한다. 인터뷰를 마치고 오는 길에 칼럼 제목을‘그녀는 예뻤다’라고 써야 하나 고민했다. 12년 동안 샤넬의 뮤즈로 활동한 안나 무글라리스.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열리는 <문화 샤넬전: 장소의 정신> 행사장에서 만난 그녀는 말 그대로 예뻤다.

1 전시장에서 진열한 로베르 구상의 부들 잎과 밀 이삭 다발. 파리 가브리엘 샤넬의 아파트에서 공수한 것으로 1960년경 황동과 화이트 메탈로 제작했다.  2 1960년 S/S 시즌 가브리엘 샤넬이 선보인 오트 쿠튀르 컬렉션의 밀 모티브를 금실로 수놓은 아이보리 레이스 드레스(왼쪽), 샤넬의 칼 라거펠트가 1996년 S/S 오트 쿠튀르 컬렉션에서 공개한 밀 이삭 자수가 들어간 블랙 오간자 드레스와 신축성 있는 새틴 저지 보디 슈트(중간), 2010년 S/S 시즌 레디투웨어 컬렉션으로 소개한 금빛 밀 이삭 자수가 들어간 캔버스 재킷과 베스트

<문화 샤넬전: 장소의 정신>, 지난 <노블레스> 8월호를 보았다면 낯설지 않을 것이다. 샤넬 하우스의 역사와 그 안에서 펼쳐진 창조의 과정을 조명하는 전시로 2007년 모스크바에서 시작해 상하이, 베이징, 광저우, 도쿄, 파리를 거쳐 여섯 번째로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이하 DDP)에서 8월 30일부터 10월 5일까지 개최하는데 지난 8월 29일 전시 오픈을 축하하는 이벤트가 열렸다. 아시아 각지에서 몰려든 취재진의 열기로 뜨거웠던 그 곳, 현장에서 만난 반가운 얼굴이 있으니 안나 무글라리스(Anna Mouglalis)다. 하우스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칼 라거펠트가 선택한, 샤넬과 칼의 뮤즈로 활동하는 그녀는 샤넬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 <샤넬과 스트라빈스키>에서 샤넬 역으로 분할 만큼 디자이너 샤넬과 외모는 물론 독립적 애티튜드까지 닮았다는 평을 듣고 있다. 레드 트위드 드레스와 재킷 차림으로 어두운 전시장을 환하게 밝힌 그녀와 대화를 나눴다.
안녕하세요. 서울에서 만나게 되어 무척 반가워요. 샤넬의 뮤즈로 행사에 참석했는데 전시장을 둘러본 소감이 어떠신지요? 이 자리에 초대되어 기쁘고 영광스럽습니다. 앞서 다른 도시에서 진행한 전시회에도 갔는데, 이번 서울 전시는 이전과는 다른 방식이 눈길을 끌었어요. 장소에 초점을 두고 그곳에서 벌어진 일에 관심을 기울였죠. 오바진, 물랭, 파리, 도빌, 베니스, 뉴욕 등과 관련된 오브제를 돌아보며 샤넬의 생각을 따라가는 방식이 흥미로워요. 한국엔 이번에 처음 방문했는데 전시가 열리는 이곳 DDP의 미래적이고 건축적인 모습도 인상적입니다.

<문화 샤넬전>이 열리는 DDP의 전시장 전경

전시장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작품이나 공간이 있다면 무엇이었는지요? 뭔가 하나를 꼽는 것은 어려운 일이네요. 하지만 개인적으로 ‘유년기의 인상’ 파트에서 소개한 밀 이삭 작품이 재미있었어요. 특히 1960년대 S/S 오트 쿠튀르 컬렉션으로 밀 모티브를 금실로 수놓은 아이보리 컬러 레이스 드레스는 정말 마음에 들어요. 이 밖에도 전시 마지막 파트의 ‘샤넬의 정신’에서 만난 피카소의 드로잉, 전시관 바로 옆 오디오 룸에서 관람한 영상 자료가 기억에 남습니다.
1시간가량 전시를 둘러보면 단지 패션 브랜드로서의 샤넬이 아니라 보다 범위가 큰 문화로서의 샤넬이 보입니다. 이런 샤넬의 뮤즈로서 평소 어떤 일을 하고, 미래를 위해 어떤 노력을 하는지 궁금합니다. 12년 동안 샤넬을 대표해서 오늘처럼 인터뷰도 하고 영상과 이미지 작업에 참여했어요. 패션쇼에도 참석하고요. 돌이켜보면 그 과정 하나하나가 새로웠고, 그래서 언제나 새로운 마음으로 할 수 있었죠. 사실 샤넬 하우스를 이끄는 칼 라거펠트와 함께 일하는 건 놀라운 일이었어요. 그가 제게 아름답다고 말한 이후 모든 사람이 제게 아름답다고 말했어요. 전 전형적인 미인보다는 짙은 눈썹이며 다크한 헤어며 인상이 강하잖아요. 대부분의 사진가가 제 사진을 찍을 때 예쁘게 보이도록 신경 쓴 반면, 그는 강한 제 이미지를 포착해 있는 모습 그대로 보여주길 원했으니까요. 또 영화와 쇼 등의 일정으로 개인적 시간이 많지 않지만 여유가 생기면 여행과 독서를 즐깁니다. 최근에는 스쿠터에 푹 빠졌어요.
스쿠터를 탄다고요? 물론 프랑스에서는 일상적인 광경이죠. 그렇듯 자유로운 취향이 우리가 흔히 프렌치 시크라 말하는 것이고, 프랑스의 대표 브랜드 샤넬의 매력이자 많은 여성이 갈망하는 모습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래서 문득 당신에게도 뮤즈가 있는지 알고 싶습니다. 물론입니다. 가브리엘 샤넬을 비롯해 러시아의 여류 시인 마리나 츠베타예바(Marina Tsvetaeva), 프랑스 작가 시몬 드 보부아르(Simone de Beauvoir), 미국의 흑인 운동가 앤절라 데이비스(Angela Davis) 등이 제 뮤즈입니다. 자신이 하고 싶고 또 해야 할 일을 정확히 알고 시대를 개척한 분들이죠. 개인적으로 작가와 화가 등 예술가를 좋아하는데, 예술이란 사람에게 꼭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이상의 실현을 위한 절대적 조건이라고 생각해요. 명품 그리고 샤넬과 닮은 점이기도 하죠.
비범한 삶을 사신 분들이죠. 그런데 제 눈에는 지금 당신의 생활도 당신의 뮤즈들처럼 특별해 보이고, 당신처럼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합니다. 현실의 당신 그리고 당신의 뮤즈들처럼 남다른 방향으로 삶을 이끌어갈 방법이 있을까요? 모두의 삶은 특별합니다. 유명하거나 그렇지 않거나 모두 귀하고 저마다 가치를 지니고 있죠. 저 역시 대중에게 알려졌다고 해서 현실에서의 외로움과 고독감 그리고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없는 것은 아니에요. 다만 모든 상황에 담대하게 맞서려고 노력하죠. 일상의 사람들은 자신의 가치, 그 특별함을 종종 잊는 것 같아요. 하지만 뮤즈, 가상의 인물을 두고 자신이 꿈꾸는 가치관과 모습을 상상하며 그렇게 살아가기 위해 애쓴다면 분명 이전과는 다른 삶이 찾아올 것이라고 믿습니다.
혹시 당신이 뮤즈 샤넬을 바라보며 그리는 꿈과 이미지도 있나요? 있다면 어떤 모습입니까? 샤넬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흰 바탕에 검은 점 하나가 톡 찍힌 모습이 떠오릅니다. 그래픽적으로 보일 만큼 정확하면서도 사색할 수 있는 여유가 깃든 우아한 분위기 말이죠. 누군가가 저를 떠올릴 때 그런 카리스마 있는 모습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샤넬은 참 많은 말을 남겼는데,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말이 “유행은 지나도 스타일은 영원하다”는 것이에요. 저도 그렇게 기억되고 싶습니다.
허스키한 목소리, 속삭이듯 말하는 프랑스어에 귀가 익숙해질 즈음 그녀는 또 다른 스케줄을 위해 서둘렀다. 전시 오픈을 위한 1박2일, 그 여정이 얼마나 숨 가쁘겠는가. 한데 그렇듯 바쁜 생활에서도 자신만의 아이덴티티, 독립심과 우아한 분위기를 꼿꼿이 지켜내고 있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유명인이지만 이번 여정에 함께한 보디가드도, 매니저도 없었다. 스스로 그 모든 역할을 해냈고,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도 친절하게 먼저 인사를 건넸다. 지레짐작한 셀레브러티의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그리고 그런 모습이 칼 라거펠트가 왜 그녀를 선택했고, 오랜 시간 샤넬의 뮤즈 자리를 지킬 수 있었는지 수긍하게 했다. 현대 여성은 샤넬의 제품을 입고 드는 것이 좋은 취향을 보여주는 스타일이라고 생각하지만 안나 무글라리스는 “내가 곧 스타일이다”라고 한 샤넬의 말 그대로 자신만의 스타일을 정확히 보여주고 있었으니까.

에디터 서재희 (jay@noblesse.com)
사진 김춘호(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