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를 감각하는 예술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시대에 예술을 바라보고 받아들이는 방식 또한 달라지고 있다. 그 변화의 선두에서
퓨처데이즈는 기술을 하나의 창작 재료로 삼아 이전에 존재하지 않던 예술의 형태를 펼쳐낸다.

퓨처데이즈는 예술감독 김인현과 시각예술가 신준식이 함께 이끄는 융합 예술 그룹으로, 디지털 환경을 기반으로 예술과 기술의 경계를 초월한 새로운 형식을 탐구하고 있다. 2015년 VR 페인팅을 기반으로 한 전시를 시작으로 여러 장르의 예술가와 기술 전문가들이 협력해 프로젝트를 선보여왔다. 이들의 작업은 가상현실과 실제 공간이 공존하는 새로운 경험을 창출하며 관람객이 작품 속으로 직접 들어가 상호작용하고 그 일부가 되는 몰입형 예술 경험을 제공한다. 이를 통해 메타버스의 예술적 실재성을 현실로 구현하고자 하며 예술과 과학, 기술의 융합을 통해 지속적으로 독창적 체험을 제안하고 있다. 이들의 새로운 이야기가 11월 12일부터 피비갤러리에서 열리는 전시 〈A Place Called You〉에서 펼쳐진다.


‘퓨처데이즈(Futuredays)’라는 이름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 있나요?
김인현 퓨처데이즈라는 이름은 예술의 미래를 지금, 현재진행형으로 실험한다는 선언에 가까워요. 기술이 언제나 다음 시대를 예고한다면 예술은 그 변화를 감각적으로 해석하는 역할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신준식 그래서 저희는 인공지능(AI), 확장현실(XR) 등 실감 기술을 하나의 표현 수단으로 삼습니다. 새롭게 만들어지는 감각이 작품 속에서 어떻게 작용할 수 있는지 직접 실험하며 미래로 나아가는 최전선에서 변화하는 세상을 예술로 담아내고자 합니다.
두 분이 함께 퓨처데이즈를 만들게 된 과정이 궁금합니다.
김인현 저와 신준식 작가는 뉴욕의 융복합 프로덕션 팀 ‘Giants are Small’에 각각 합류해 처음 인연을 맺었어요. 그곳에서 예술과 기술 그리고 무대라는 서로 다른 언어가 완전히 다른 차원에서 만나야 한다는 공감대를 형성하게 되었죠. 그 대화는 곧 현실화되어 블루스퀘어에서 열린 가상현실(VR) 라이브 콘서트로 이어졌습니다.
신준식 그 콘서트에서 김인현 감독은 전체 기획을 맡았고, 저는 한국 최초의 VR 라이브 페인팅 퍼포먼스를 선보였어요. 그때 저희는 단순히 기술을 도구로 활용한 것이 아니라 새로운 예술 언어가 탄생하는 순간을 경험했습니다. 이후 회화, 음악, 무용, 영상, IT 등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과 함께 예술과 기술을 융합하는 새로운 아티스트 그룹을 결성하게 되었어요.
도전하는 프로젝트마다 새로운 기술과 형식을 시도해왔죠. 최근 퓨처데이즈의 방향성은 어떻게 확장되었나요?
신준식 저희가 추구하는 방향성은 2019년 플랫폼엘에서 열린 전시 〈퓨처데이즈: 순간을 경험하다〉에서 명확히 드러났다고 생각해요. 그 후의 작업은 기술의 발전과 함께 점점 고도화되었고, 아티스트가 상상하고 구현하고자 한 세계에 점점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지난 10년간 퓨처데이즈의 창작은 VR에서 시작해 증강현실(AR)과 혼합현실(MR)을 거쳐 XR과 공간 컴퓨팅(Spatial Computing)으로, 최근에는 공간 서사형 오페라(Hybrid Spatial Storytelling Opera)로 이어졌습니다. 이는 단순히 기술이 확장된 것이 아니라, 시간과 공간을 서사의 핵심 요소로 삼고 관람객이 작품의 주체가 되는 구조로 진화해온 과정이었습니다.
김인현 2022년에는 메타버스 오페라 시리즈를 통해 AI 기반 생성형 배우 시스템을 도입했어요. AI는 더 이상 기능적 도구가 아니라 감정과 서사를 함께 만들어가는 공동 창작자로 참여합니다. 퓨처데이즈의 창작은 기술과 인간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감정을 구성하는 공존의 세계관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VR이나 AI처럼 물리적으로 손에 잡히지 않는 기술을 창작 재료로 사용하고 있는데, 퓨처데이즈에게 ‘재료’란 어떤 의미일까요?
김인현 저희에게 기술은 특별한 도구라기보다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의 언어입니다. 단순히 효과를 내기 위한 장치가 아니라 동시대 예술가가 다루는 또 하나의 ‘악기’이자 ‘붓’이라고 생각해요. 역사적으로 예술은 늘 기술의 발전과 함께 진화해왔습니다. 악기가 개발되면서 모차르트의 실내악이 베토벤의 대편성 오케스트라로 확장된 것처럼 지금의 AI와 XR 역시 현재를 살아가는 예술가들이 사용할 수 있는 재료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기술을 예술의 재료로 사용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 있다면요?
신준식 저희는 기술을 ‘보여주는 것’보다 ‘느끼게 하는 것’에 집중합니다. 기술은 효과가 아니라 언어여야 해요. 관람객이 기술 자체를 의식하기보다 작품 속 경험에 자연스럽게 몰입할 수 있는지를 기준으로 설계합니다. 그 과정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언제나 공감, 관계, 감정 같은 요소예요.
이번에 피비갤러리에서 열리는 전시 〈A Place Called You〉는 퓨처데이즈가 오랫동안 연구해온 메타버스 오페라의 연장선이라고요.
신준식 네. 이번 전시에서는 오페라 형식의 몰입형 AI 인스톨레이션 작품을 선보입니다. 갤러리에 들어오면 관람객은 VR 헤드셋 ’메타퀘스트’를 착용하고 안개가 깔린 가상의 광장을 걷게 됩니다. 그때 AI 배우의 목소리에 따라 이야기 속으로 불려 들어가게 되죠. 이 음성은 관람객의 시선과 제스처, 반응에 따라 미세하게 변화하고 이러한 감정 데이터가 서사를 다시 쓰는 방식으로 작동합니다.
김인현 전시 공간에서 음악은 감정의 나침반이 되는 구조입니다. 멜로디, 음색의 변화가 공간의 분위기를 이끌고, 관람객은 그 소리를 따라 이동하며 자신의 기억과 감정을 재구성하게 되죠. VR 기반의 공간 사운드, 실시간 3D 렌더링 환경, 제스처와 시선 인식, AI 보이스 생성 시스템이 결합해 현실과 가상이 맞닿은 경계 위에 감정이 머무는 장소를 만들어냅니다. 〈A Place Called You〉는 퓨처데이즈가 지난 수년간 이어온 메타버스 오페라 연구의 결정체이자 기술이 감정과 서사를 매개하는 예술의 새로운 차원을 보여주는 작품이 될 것입니다.
왜 ‘오페라’라는 형식을 선택하셨나요?
김인현 오페라는 음악, 공간, 움직임, 서사가 한 무대에서 동시에 작동하는 총체적 예술 형식입니다. 퓨처데이즈는 이 개념을 무대에서 재현하는 대신 기술과 결합해 더 넓은 차원으로 실험하고 싶었어요. AI와 XR 그리고 실시간 공간 사운드 시스템은 기존 오페라의 종합성을 한층 확장시키죠. 음악과 공간은 관람객의 감정에 따라 반응하고 기술은 인간의 내면을 드러내는 또 하나의 감각이 됩니다. 무용, 음악, 미술, 서사, 기술이 한 경험 안에서 교차하고 서로를 증폭시키는 예술. 퓨처데이즈가 이 형식을 오페라라 부르는 이유입니다.

이번 전시에선 오페라 〈카르멘〉의 등장인물 미카엘라를 중심에 세웁니다. 원작에선 조연에 머무른 이 인물을 주체로 선택한 이유는요?
김인현 이번 작품에서 저는 조르주 비제의 오페라 〈카르멘〉 속 미카엘라라는 인물을 다시 불러냈습니다. 원작에선 미카엘라를 누군가의 연인이자 희생의 상징처럼 그렸지만, 저에게 그녀는 가장 인간적인 불안과 순수함 그리고 끝까지 지켜내려는 신념을 가진 존재였습니다. 그녀의 시점에서 바라본 세상은 결국 우리 모두가 현대를 살아가며 겪는 내면의 여정과 맞닿아 있어요. 삶의 무게를 견디며 걸어가는 용기, 그것이 제가 미카엘라를 통해 말하고 싶은 인간의 숭고함입니다. 이번 전시에서 미카엘라는 더 이상 타인의 서사 속 조연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을 바라보며 단절과 상실, 회복의 감정을 스스로 탐색하는 주체로 등장합니다. 그녀의 목소리는 AI 보이스 퍼포머를 통해 구현되지만, 단순한 기술적 합성이 아니라 또 하나의 자아처럼 작동합니다. 관람객의 감정과 공명하며 현실과 가상의 경계를 흐리는 순간 미카엘라는 우리 자신의 모습을 비추는 거울이 됩니다.
그렇다면 최근 퓨처데이즈가 주목하고 있는 새로운 기술적 접근이나 개념은 무엇인가요?
김인현 최근에는 ‘AX(Active Experience)’라는 개념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관람객의 경험이 재생되는 것이 아니라 AI와 실시간 상호작용을 통해 매 순간 생성되는 방식입니다. 이를 위해 대규모 언어 모델(LLM), 감정 인식 알고리즘, 실시간 공간 사운드 시스템의 결합을 실험하고 있어요. 관람객의 감정 변화가 서사에 직접 영향을 미치도록 설계하는 거죠. AI는 결국 인간의 데이터와 감정, 언어, 행동 패턴을 기반으로 학습합니다. 그래서 저희는 AI를 도구로 보지 않고 인간의 확장된 감각, 혹은 우리 안의 또 다른 거울로 봅니다. 많은 예술가가 알고리즘이나 AI 배우의 개입에 거부감을 느끼지만, 저희는 인간과 AI가 서로 이해하고 공감하는 예술이 가능하다고 믿어요. AI를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AI와 함께 감정을 만들어가는 예술이 퓨처데이즈가 지향하는 방향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퓨처데이즈가 앞으로 탐색해보고 싶은 방향이 있다면요?
신준식 저희가 지난 10년간 탐구해온 것은 기술의 미래가 아니라 감각의 미래였어요. 앞으로는 그 감각의 언어를 더 넓은 세계로 확장하고자 합니다. 융합 예술일수록 협업이 필수입니다. AI 연구자, 공간 디자이너, 프로그래머, 큐레이터 등 서로 다른 전문성과 예술성이 한 무대에서 만날 때 비로소 새로운 형태의 예술이 탄생한다고 생각해요. 앞으로는 서울을 기반으로 LA, 뉴욕, 파리, 베를린 등 글로벌 무대에서 활동을 확장할 계획입니다. 2026년에는 LA의 실험적 예술 단체와 함께 AI와 인간 배우가 실시간으로 상호작용하는 국제 공동 제작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어요. 이는 해외 진출이 아니라 다양한 문화권의 예술가들과 함께 AI와 인간이 공감으로 연결되는 예술을 연구하는 글로벌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과정입니다. 기술이 계속 진화하는 지금, 우리는 그 변화의 흐름 속에서 미래의 예술을 탐험해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