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를 그리는 기술
두산그룹 이현순 부회장은 자동차 엔진 분야에서 국내 최고 권위자로 꼽힌다. 그가 한국 최초의 자동차 엔진을 개발한 이야기는 마치 한 편의 드라마 같다. 기술 사회에서 절대 강자는 없다지만 조금 더 앞서나가는 법은 무엇인지, 그리고 현시점에서 바라봐야 할 미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그때 어떻게 그런 결정을 하셨나요?” 일생일대의 큰 결정을 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면 누구든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을지에 대해 수없이 따져볼 것이다. 두산그룹 이현순 부회장과 마주 앉아 가장 먼저 꺼낸 질문은 1984년 현대자동차에 출근하기로 한 결정에 대해서였다. 그때만 해도 한국은 엔진을 비롯한 자동차의 주요 부품을 해외 기술에 의존하고 있었다. 자동차 산업 발전을 위해 기술 독립이 중요하다고 생각한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은 독자적 기술로 엔진을 개발하겠다는 신사업 계획을 수립했고, 이 프로젝트 책임자를 미국 GM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하던 이현순 부회장에게 제안했다. 서울대학교와 뉴욕 주립 대학교를 졸업한 뒤 미국에서 부족할 것 없는 연구 지원을 받던 그는 처음엔 거듭되는 제안을 고사했다고 한다. 하지만 반년간 숙고한 끝에 마음을 바꾸고 한국행을 결심했다. 큰 도전이었다. 사직서를 냈지만 GM에서는 언제든 돌아오라며 그의 연구실을 비워둔 채 아무것도 정리하지 않았다. “내 능력을 시험해보고 싶은 욕심이 있었고, 엔지니어로서 사명감도 있었죠. 한국에서는 모든 기술을 외국에서 가져오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더군요. 답답했어요. 그만큼 어깨도 무거웠습니다.”
당시 그가 내린 결정은 이후 한국 자동차 산업을 완전히 바꿨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대자동차는 연구소 설립 7년 만인 1991년 한국 최초의 독자 엔진인 ‘알파엔진’을 개발했고, 이 엔진은 그해에 제정한 제1회 장영실상을 수상했다. 그뿐 아니라 계속해서 후속 엔진을 개발하며 세계 자동차업계에 한국의 기술 발전을 알렸다. 특히 2002년 개발한 ‘세타엔진’은 해외에 로열티를 받고 수출할 정도로 기술력을 인정받았고, 2008년에 개발한 ‘타우엔진’은 자동차 엔진 분야의 최고 권위 상인 미국의 ‘워즈오토 세계 10대 엔진상’을 3년 연속 수상했다. 그가 연구 개발을 총괄하며 목표를 향해 뚝심 있게 밀고 나간 결과였다.
이제 한국은 어느덧 세계 자동차 시장의 선두에 서 있다. 다른 자동차 선진국과 비교해 100년 정도 늦게 자동차 산업에 뛰어들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놀라운 발전이다. 독자 엔진을 개발하겠다는 것이 누구에게나 허황된 꿈으로 보일 정도로 30여 년 전 한국은 기술력이 낮고 연구 환경도 척박했으나 지금은 자동차 강국으로 꼽힐 만큼 세계적 수준으로 올라섰다. 그럼 이 시점에서 필요한 건 무엇일까? 바로 미래 트렌드를 읽는 눈이다. 이현순 부회장은 엔지니어라면 자신이 개발하고 특허를 낸 기술이 5년 후, 10년 후에도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을지 지속적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말한다. 흐름을 읽고 미래를 예측하는 게 가장 어려운 일이니 많은 이들이 실패를 겪는 것도 이 부분이다.
그렇다면 미세 먼지 문제가 심각하고, 미래형 친환경차 보급이 이슈로 떠오른 현시점에서 그가 바라보는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친환경차를 대중화하기 전 아직 선결 과제가 많으므로 수년 내에 큰 비중을 차지하긴 어려울 것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전기차의 경우 가장 큰 문제는 충전 인프라를 확충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높은 가격이다. 충전소 설치에도 막대한 비용이 드니 ‘좋은 환경’을 위해 국가적 차원에서 대규모 투자가 필요하다는 것도 고민거리. 그럼에도 그는 자동차 산업의 미래는 결국 전기차와 수소차 두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라고 예측한다. “전기차가 수소차보다 앞서겠지만 나중에는 수소차가 유리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한국은 특히 정유 공장, 제철소 등에서 부생수소가 많이 나오는데 그걸 분리해서 수소차의 연료로 사용할 수 있어요. 물론 수소차 역시 충전소를 세우는 것이 중요한 과제죠.”
30년 가까이 현대자동차에서 근무한 이현순 부회장은 5년 전, 두산그룹으로 자리를 옮겼다. 두산그룹 계열사들은 배 엔진을 비롯해 각종 엔진을 생산하고 있다. 그가 취임한 이후 새로운 전차 엔진을 생산했으며, 산업용 소형 엔진은 내년부터 독일로 수출한다. 그는 두산에서 또 다른 도전을 준비하고 있다. “지금까지 하드웨어를 많이 개발해왔는데 앞으로는 그 효과를 더욱 극대화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를 가미한 신기술을 개발하고 싶습니다. 예를 들면 인공지능이나 빅 데이터를 활용한 산업 기술, 인더스트리 4.0 같은 첨단 생산 시스템이나 서비스 기술을 시도해보려고 합니다.” 현재 국내의 대표적 CTO로 꼽히는 그는 경영자지만 스스로 “뼛속까지 엔지니어이자 현장 마니아”라고 표현한다. “남들을 따라잡기 위해 쫓아가야 하는 상황에서는 우리만의 기술이 필요했기 때문에 원천 기술을 갖기 위한 노력이 중요했어요. 그런데 이제 한국은 더 이상 추격자가 아니죠. 세계의 기술을 리드해야 할 위치에 있으니 엔지니어도 더 창의적으로 생각하며 남들이 하지 않는 것에 도전해야 합니다. 예전엔 기술 개발만 잘하면 됐지만 요즘 같은 융·복합 시대에는 그만큼 엔지니어의 역할도 복잡해졌죠.”
이현순 부회장은 한 개인의 아이디어가 수많은 사람의 삶을 풍요롭게 할 수 있다는 걸 알고, 기술이 가져올 미래의 변화를 믿기 때문에 자신보다 훌륭한 엔지니어를 키우는 것을 가장 중요한 역할로 삼아왔다. 그리고 많은 이공계 종사자들의 멘토답게 그 임무에 성공했다고 자부한다. 그는 1세대 엔지니어로서 젊은이들에게 이런 말을 하곤 한다. 판사는 평생 수십 명의 생사를, 의사는 수천 명의 생사를, 엔지니어는 수억 명의 삶을 좌우한다고. 2011년 그는 뉴욕 주립 대학교 졸업식에서 졸업생 6000여 명을 앞에 두고 축사를 했다. 처음 그 학교 캠퍼스를 밟은 38년 전을 떠올리며 그는 단상 위에서 단 한 가지를 강조했다. 바로 도전하라는 것. “인생은 도전이고 도전하지 않으면 성공은 없죠. 당시 뉴욕 주립 대학교 기계 계열에 한국인이라곤 저 한 명뿐이었다는 기억을 떠올리며 연설했습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극복할 수 있다는 자신감 하나로 버텼다고 말이죠. 요즘 학생들에게 강의할 기회가 있을 때도 항상 목표를 높게 잡으라고 말합니다. 목표를 설정하는 것은 개인의 자유지만 그 결과는 차이가 크죠. 목표를 높게 잡은 사람은 스스로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언젠가 최소한 그 근처까지 가니까요.” 순수하리만치 몰입하고 도전한 한 엔지니어의 열정이 과거에는 상상하지 못한 일을 가능하게 했다. 자신의 능력을 지레짐작하지 말고 큰 꿈을 가지고 도전하라는 말이, 어른이 쉽게 하는 조언으로 들리지 않는 이유는 그가 누구보다도 그 사실을 몸소 증명해온 사람이기 때문이다.
에디터 안미영 (myahn@noblesse.com)
사진 안지섭 장소 협조 포시즌스 호텔 서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