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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를 향한 클래식

LIFESTYLE

유럽과 미국에서 부지런히 기획해 무대에 올리는 어린이 관객을 위한 프로그램을 보며 문득 궁금해졌다. 한국은 미래의 클래식 관객을 위해 어떤 준비를 하고 있는가?

뉴욕 필하모닉에서 운영하는 어린이 프로그램 ‘Young People’s Concerts’

한국에서 처음 공연한 해외 연주자 중엔 관객의 뜨거운 반응에 놀랐다는 이들이 많다. 그리고 그들이 꼭 덧붙이는 말이 있다. 한국의 클래식 관객은 젊고 열정적이라는 것. 사실 알고 보면 국내 클래식 공연장은 장.중년층이 객석의 대부분을 차지할 때가 많지만, 세계 투어를 하며 유럽의 많은 뮤직홀에서 백발의 관객을 만나는 그들 눈엔 한국의 관객이 ‘상대적으로’ 젊다면 젊은 셈이다. 세계적으로 클래식 관객 고령화에 대한 우려가 나온 것은 최근 일이 아니다. 그만큼 클래식 음악의 앞날 을 염려하는 목소리도 지속적으로 들리고 있다. 시간이 지나도 오래도록 사랑받는 작품을 두고 클래식이라 하건만, 이제는 그 수명을 걱정해야 하는 걸까? 미래를 위해 발 빠른 준비를 시작한 곳은 역시 유럽이다. 서양 음악을 오히려 아시아에서 더 활발히 소비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본고장에서 클래식 음악을 감상하는 젊은이가 줄어들고 있는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유럽 음악계는 일찌감치 관객층을 넓히기 위한 다양한 시도를 해왔다. 클래식 음악이 고리타분한 옛날 음악이란 이미지를 깨고 어린 관객에게 다가가기 위한 콘서트와 교육 프로그램이 대표적 예다.
먼저 눈여겨볼 곳은 클래식 마니아가 즐겨 찾고 관객 충성도가 높은 런던의 위그모어 홀. 114년 전 문을 열어 지금까지 수많은 거장이 무대에 서온 이 홀은 여느 공연장과 공기부터 다르게 느껴질 정도로 관객의 태도가 진중하다. 주요 관객의 연령대는 런던에서 가장 높은 수준. 그런데 이렇게 위엄이 느껴지는 위그모어 홀에서 뜻밖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평일 오전 11시에 돌이 되지 않은 아기를 위한 프로그램 ‘For Crying Out Loud’를 마련해 보호자와 아기가 함께 감상할 수 있는 음악회를 정기적으로 개최하는 것. 또 1세부터 5세까지 유아를 위한 프로그램 ‘Chamber Tots’는 체임버 앙상블과 함께 다양한 악기를 가까이 만나는 기회를 제공한다. 관람 시간은 총 45분에서 1시간 정도. 위그모어 홀은 어린 관객을 위한 배려뿐 아니라 학생 관객에게도 제법 넉넉한 무료 티켓을 제공하고 있다. 모두 세계적 연주자의 공연이다. 유럽에서 손꼽힐 정도로 전통 있는 뮤직홀에서 개최하는 참신한 콘서트와 체계적인 학생 지원 시스템은 놀라울 정도. 그 밖에도 어린이와 학생이 단순한 감상을 넘어 음악에 관심을 갖고 배울 수 있는 탄탄한 교육 프로그램을 갖춘 곳이 많은데, 여기에 세계 최고 거장이 직접 나서 학생을 지도하며 영감을 불어넣어주기도 한다. 지휘자 사이먼 래틀은 베를린 필하모닉에서 운영하는 교육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독일에서 학생 오케스트라를 직접 지휘했고, 올해 초에는 런던 사우스뱅크에서 학생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며 젊은 음악도 양성에 힘을 보탰다. 단순한 일회적 마스터 클래스가 아니라 한 달간 함께 연습한 오케스트라가 마침내 어린이를 위한 페스티벌 ‘Imagine Children’s Festival’에서 한 곡을 연주하는 음악 여정이었다.

사이먼 래틀이 런던 사우스뱅크에서 학생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모습

피아니스트 박종화의 동요 편곡 음반 <누나야(Nunaya)>

미래의 관객과 연주자를 양성하려는 노력은 미국도 상당히 전략적이다. 뉴욕 필하모닉에서 운영하는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 중에는 3~6세 어린이를 대상으로 공연장에서 게임, 스토리텔링과 함께 음악을 들려주는 ‘Very Young People’s Concerts’가 있다. 6세 이상을 위해선 멀티미디어를 활용한 ‘Young People’s Concerts’를 마련해 매년 새로운 레퍼토리로 관심을 끈다. 또 링컨 센터 체임버 뮤직 소사이어티(The Chamber Music Society of Lincoln Center)는 ‘Meet the Music!’이라는 이름으로 아이들과 가족이 함께하는 음악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이 콘서트의 모토는 클래식 음악을 웃기고 재미있게 만나는 것. 고전음악 작곡가의 어린 시절 에피소드를 소개하고 관련 음악을 곁들여 배경 지식과 함께 감상하는 컨셉이다.
젊은 클래식 관객을 양성하려는 해외의 노력에 비하면 한국에서는 공연장이나 음악 단체를 주축으로 한 체계적 교육 프로그램이 부족한 것이 사실. 아이들을 타깃으로 한 공연 외에 클래식 음악을 편견 없이 받아들이게 하는 장기적 계획도 필요하다. 올해 개최한 공연 중에서는 지난 8월 1일 대구시민회관에서 열린 <아이조아 콘서트>가 지금까지 클래식 음악 공연장에 출입할 수 없던 유아에게 문을 열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직접 무대에 서서 연주할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하는 등 아이들에게 ‘인생의 첫 번째 음악회’가 특별한 경험이 될 수 있도록 준비했다. 또 최근 경기필하모닉오케스트라는 청소년을 위한 맞춤 음악회로, ‘리듬, 멜로디, 하모니’라는 주제가 이어지는 체계적 감상 커리큘럼에 따른 공연을 개최하기도 했다. 자발적으로 클래식 음악을 듣지 않는 청소년 관객에게 주제에 맞는 적절한 선곡을 통해 클래식 음악의 매력을 전하며, 일회적 방학맞이 음악회가 아니라 커리큘럼을 갖춘 교육 프로그램이라는 점에서 다음 콘서트도 기대된다.
올가을에도 눈에 띄는 공연이 있다. 9월 20일 서울 LG아트센터 공연을 시작으로 전국 투어를 하는 피아니스트 박종화의 독주회 <동요, 클래식이 되다>가 그것. 어릴 때부터 외국에서 생활한 그는 어린 딸이 듣던 한국 동요 덕분에 어린 시절의 기억이 되살아났고, 한국에서 의미 있는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됐다고 밝혔다. 영화음악감독 김준성, 작곡가 나실인, 이영조가 편곡에 참여해 박종화의 ‘동요 탐구’에 함께했다. 그는 전국 투어를 앞두고 ‘고향의 봄’, ‘꽃밭에서’, ‘섬집 아기’, ‘산토끼’ 등을 클래식 음악으로 편곡한 음반도 발매했다. 이번 공연은 모차르트의 ‘작은 별 주제에 의한 변주곡’, 베토벤의 ‘월광’, 드뷔시의 ‘어린이의 세계’ 등 클래식 소품과 편곡한 동요로 구성했다. 클래식 음악과 동요를 넘나드는 연주는 30대 이후에게는 원곡의 정서를 불러일으키고, 아이들에게는 친근한 멜로디를 통해 클래식 음악을 접하게 한다. 그런데 박종화는 동요 편곡 작업과 이번 공연이 꼭 아이들에게 맞춘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그는 서양 고전음악을 연주하지만 거기에 안주하지 않고 음악가로서 새로운 시도를 하며 정체성 있는 음악을 통해 세대 간 공감을 끌어내려 한다.
고전음악이 젊은 관객과 멀어진 이유를 작곡가에게서 찾는 연주자나 평론가가 많다. 20세기 이후 작곡가들이 시대와 동떨어진 곡을 만들면서 대중의 관심을 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음악회란 연주자와 관객이 한 공간에서 음악을 생산하는 현장의 공기를 함께 느끼며 감동을 나누는 것이니, 청중을 고려하지 않는 음악회란 무의미하다. 클래식 음악계의 미래를 준비하는 일도 마찬가지다. 새로운 청중을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클래식을 과거의 것으로만 바라보지 말고 현시대에 생동하는 음악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 필요한 것은 고전음악에 다양한 방식으로 접근하고, 그 가치를 다음 세대에게 낯설지 않게 전할 수 있는 유연함이다. 시대를 관통할 수 있는 힘을 지닌 음악이 바로 클래식이므로.

에디터 안미영 (myahn@nobless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