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의 얼굴들
<노블레스>가 ‘New Face’라는 새 칼럼을 통해 세상의 미래를 밝힐 아름다운 얼굴을 소개한다. 각 분야에서 ‘차세대’ 주자로 손꼽히는 이들의 이름 석 자와 남다르게 힘찬 행보를 주목하자.

정상에서 새롭게 출발하는, 바이올리니스트 임지영
올해 스물한 살이 된 바이올리니스트 임지영은 작년 5월 벨기에 보자르 홀에서 열린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의 기악 부문에서 한국인 최초로 우승을 거뒀다. 쇼팽 콩쿠르, 차이콥스키 콩쿠르와 함께 세계 3대 콩쿠르로 꼽히는 이 대회에서 대한민국의 어린 학생이 우승한 건 대단한 쾌거다.
임지영은 한국예술영재교육원을 거쳐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조기 입학한 후 기악과를 졸업했다. 2008년 금호영재콘서트로 데뷔한 그녀의 콩쿠르 도전 횟수는 사실 다섯 번이 채 되지 않는다. 국제적 콩쿠르에서 이처럼 단기간에 우승하는 건 이례적인 일. “1등을 하겠다는 마음보다는 경험치를 쌓는 배움의 과정이라고 생각했어요. 이제 평범한 학생 때보다는 의무감과 책임감을 갖고 좋은 연주자가 되기 위한 고민을 해나가야 할 때라고 생각해요.”
하나같이 기량이 뛰어난 연주자들 사이에서 그녀가 심사위원과 관객을 납득시킬 수 있었던 가장 큰 요인은 곡의 본질을 가장 순수하게 담아내는 표현력이다. “이건 참 어려운 숙제인데, 이성과 감성 모든 면에서 관객에게 공감을 얻고 싶어요. 그래서 곡의 배경, 작곡가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고, 개인적으로도 많은 감정을 느끼려고 노력해요.” 긴 호흡이 요구되는 연주를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대담하게 이끌어가는 동안 그녀의 머릿속엔 ‘음악을 마음껏 느끼고 내려오자’는 생각뿐. 충분한 연습, 곡에 대한 완벽한 해석이 뒷받침된 이후엔 어떤 목적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저 음악에 몸을 맡기려고 한다.
남들보다 먼저 1차 목표를 달성한 덕에 2016년 스케줄도 빼곡하다. 벨기에에서 2월에 열리는 리사이틀을 시작으로 봄과 여름엔 홍콩 아트 페스티벌과 메뉴인 탄생 100주년 기념 연주회, 9월에는 브라질 투어가 예정돼 있다. 최근 현대 작품에 관심이 많아진 그녀는 스트라빈스키, 프로코피예프 등 러시아 작곡가를 공부하고 있다. 그래도 제 옷을 입은 것처럼 편안한 것은 역시 고전. 여러 시대와 장르를 탐구하면서 잘하는 것과 새로운 것을 동시에 시도할 예정이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전문사 과정 진학을 앞두고 있는 그녀에게 세계 무대에 대한 꿈을 물었다. “일단 국내에서 공부하겠지만 해외 공연 일정이 많고 세계 곳곳에 많은 친구가 있기 때문에 코즈모폴리턴적 삶을 살며 영감을 얻고 있어요. 지금은 무엇이 강점인지 알아가는 시기예요. 하고 싶은 것, 배워야 할 것이 무궁무진하다는 생각에 벌써부터 설레네요.” 세계 최고 대회에서 인정받았지만 음악에 대한 고민과 새로운 도전에 대한 의지가 느껴졌다. 이 풋풋한 연주자의 앞날이 더욱 기대되는 순간이다.

세상을 바꾸는 방법, ‘닷’ 대표 김주윤
“이 제품이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제품’이란 단어만 빼면, 어느 영웅의 진지한 독백처럼 들린다. 스물여섯 살의 젊은 CEO 김주윤은 지금 자신이 하는 일에 늘 이런 질문을 던진다고 한다. 그가 운영하는 ‘닷(Dot)’은 시각장애인을 위한 스마트 장치를 개발하는 기업으로, 한국의 차세대 스타트업으로 꼽힌다. 2014년 6월부터 사업 준비를 본격화했고, 그해 12월 KBS의 창업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주목받기 시작했다. 2015년 4월에는 미국에서 열린 GSEA(Global Student Entrepreneur Award)에서 ‘혁신상’을 받기도 했다. 짧은 시간 안에 가파르게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은, 그가 늘 던지는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 대체 가능할 것 같다.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제품!
현재 닷의 대표 제품은 30만 원대의 스마트 점자 시계. 블루투스로 스마트폰과 연결하면 시각장애인도 야외에서 메시지와 이메일, 시간을 자동으로 오르락내리락하는 점자판으로 손쉽게 확인할 수 있다. 일반인도 사용해보고 싶을 만큼 미니멀하고 세련된 디자인이 매력적이다. 오는 6월 출시를 목표로 3월부터 양산에 들어갈 계획이다. “시각장애인은 일상에서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어려운 일을 많이 겪어요. 기존의 점자 기기는 몇백만 원씩 하니까 구매할 수 있는 사람도 적습니다. 닷의 스마트 점자 시계는 점자가 저절로 움직이는 능동형 디스플레이 기술로 만들었어요. 그 덕분에 소형화, 경량화, 가격 다운이 가능해졌죠.” 혁신적 기술 덕에 제품이 나오기 전부터 국내외의 반응이 뜨겁다. 특히 시각장애인을 가족으로 둔 사람들의 제품에 대한 문의와 감동적 사연은 닷을 응원하는 든든한 힘이 되고 있다. 2010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역사를 공부한 그는 반짝이는 아이템을 자원 삼아 창업에 매진했다. 우버형 트럭 서비스와 네트워크 서비스로 사업가로서 첫발을 내디뎠지만, 큰 빛을 보진 못했다. 트렌디한 아이템을 좇을 게 아니라, 나와 사회에 정말 가치 있는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할 무렵, 시각장애인이 거대한 점자책을 보는 모습에서 새로운 사업의 아이디어를 얻었다. 한국으로 돌아와 오랜 친구 둘과 ‘닷’의 밑그림을 그렸고, 시장조사를 통해 시각장애인이 처한 열악한 환경의 실체를 알 수 있었다. “일종의 악순환이죠. 시각장애 분야는 다른 장애에 비해 기술이나 인력이 투입되지 않는 실정입니다. 기존 현상에 만족하는 지엽적 마켓이 형성돼 있고, 관련 기술도 몇 개 업체에서 독점하고 있어요. 어떻게 하면 시각장애인이 합리적 가격으로 점자 기기를 사용할 수 있을까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그렇게 탄생한 첫 제품이 스마트 점자 시계다.
김 대표는 스마트 시계를 출발점 삼아 태블릿 등 시각장애인을 위한 각종 스마트 디바이스를 개발하는 데 몰두하고 있다. 닷에서 내놓을 제품을 통해 우리가 잘 모르던 시각장애인의 삶은 큰 변화를 겪게 될 것이다. 그것이 우리 시대의 기업이 추구해야 할 진정한 비전 아닐까.

‘조선어 연금술사’, 시인 황유원
황유원 시인은 2015년 12월 첫 시집 <세상의 모든 최대화>를 출간했다. 그는 이 작품으로 한국문학계에서 전통을 자랑하는 제34회 ‘김수영문학상’을 받았다. 최근 공모제로 시상 제도가 바뀌긴 했지만, 그 ‘이름값’이 어디 갈까. 1982년 울산에서 태어나 고등학교 3학년 때부터 시를 쓰기 시작했다는 그는 2013년 문학동네신인상으로 화려하게 데뷔했다. 굵직한 상을 잇달아 받았으니 신인으로서는 상복도 많은 셈이다. 첫 시집에 관한 소개를 부탁하자, “(시에) 제 지난 인생이 많이 녹아 있어요. 저를 속이고 싶지 않았거든요”라고 담담하게 말한다. 이어 그는 16년 동안 써온 시를 세상에 내놓은 감개무량함과 동시에 워낙 오래 잡고 있던 시라 ‘꼴도 보기 싫다’는 양가의 감정도 든다며 웃음을 보였다. 단발머리, 적당한 길이의 수염, 뿔테 안경 등 언뜻 일본 영화배우 아무개를 떠올리게 하는 외모는 ‘시인답다’는 두루뭉술한 표현과도 썩 잘 어울린다.
황유원의 첫 시집 <세상의 모든 최대화>는 ‘시집’치고는 꽤 두껍다. 2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이다. 젊은 시인의 호흡이 점점 길어지는 추세라지만, 그중에서도 단연 앞선다. 4부로 이뤄진 시집은 그가 그간 떠난 여행의 기억을 깊숙이 품고 있다. 그의 시집을 가득 채운 빽빽한 말과 문장, 쉼표, 여백, 그 리듬에 선배 시인과 문학평론가들은 상찬을 쏟아냈다. 음악가이자 시인인 성기완은 ‘조선어 연금술사 통관 보고서’라는 제목의 작품 해설에서 그를 랭보와 쇼팽에 비유했다. 그도 자신의 시를 향한 이런 칭찬이 마음에 쏙 드는 눈치였다. 그는 시를 “언어를 세심하고 예민하게 굴리는 일”이라고 정의했다. 현재 황유원은 동국대학교 대학원에서 인도 철학과 산스크리트어를 공부하고 있다. 대학에서도 시가 아니라 종교학과 철학의 세계에 몰두했다. “저는 꼭 문학을 공부해야 문학을 할 수 있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친구 따라 힌두교 수업을 청강하게 됐는데, 그 엄청난 상상력에 감탄했어요. 우주적 무협지랄까요.(웃음) 철학을 공부하면서는 사물과 세상, 제게 닥친 어떤 상황을 객관화해서 보는 훈련을 많이 했어요. 고문헌을 통해 구조가 완전히 다른 언어를 습득하는 것도 시를 쓰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이런 공부와 인식이 제 시에 적극적으로 반영되는 것 같습니다.”
황유원은 벌써 다음 시집의 제목까지 생각해놨다고 한다. 그의 시 ‘레코드 속 밀림’은 이런 문장으로 시작한다. “예술은 두 종류, 차가워지거나 뜨거워지거나.” 그가 ‘조선어 연금술사’로서 차갑고 뜨거운 예술 사이를 오가며 쏟아낼 언어의 황홀경을 감상해보자.
에디터 김재석 (jskim@noblesse.com) 임해경 (hklim@nobless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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