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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STYLE

시각을 달리하면 어렵게만 느껴지던 현대음악을 보다 즐겁게 감상할 수 있다. 아니, 감상을 넘어 동시대 예술가의 철학과 메시지를 발견하는 희열을 느낄 수 있을지도!

유럽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진은숙 작곡가. 전 세계 유수의 음악 페스티벌과 콘서트에서 그녀의 곡을 연주하고 있다.

곡이 끝나고 마지막 음이 사라지자 지휘봉을 내린 마에스트로는 가만히 객석 한편을 향해 돌아서서 한 사람이 무대 위로 올라오길 기다렸다. 쏟아지는 박수 속에 가슴 벅찬 표정으로 눈물을 흘리며 걸어 나온 이는 진은숙 작곡가. 지난 8월 19일 롯데콘서트홀 개관 공연에서 정명훈과 서울시향이 세계 최초로 연주한 곡은 그녀가 작곡한 ‘별들의 아이들의 노래’였다. 이 곡은 천문학과 물리학에 관심이 많은 그녀가 ‘인간은 우주먼지에서 왔다’는 생각을 바탕으로 쓴 곡이다. 약 40분간 관객 그 누구도 들어보지 못한 생경한 음악이 흘렀지만 장엄한 선율과 신비로운 합창이 어우러지고 초연 현장의 감동이 더해져 많은 이들에게 현대음악의 매력을 전달한 시간이었다.
사실 클래식 음악을 꽤 오랫동안 감상해온 사람들조차 20세기 이후의 현대음악은 어렵게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다. 귀에 익은 멜로디보다 실험적이고 추상적인 표현이 두드러진다는 점에서 낯설게 느끼고, 그런 이유로 ‘정신없고 불편한 음악’으로 치부하기도 한다. 특히 조성이 없는 무조음악을 사용한 쇤베르크 이후의 곡은 아예 감상해볼 마음조차 먹지 않는 관객이 대다수다. 그렇다면 어떤 점을 주목해야 현대음악을 좀 더 즐겁고 편안하게 감상할 수 있을까? 송주호 음악평론가는 “음색과 제스처에 집중하면 현대음악의 세계가 열릴 것”이라고 말한다. 현대음악은 고전음악에서 나타나는 선율과 리듬, 화음 외에 다른 요소를 중점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특징이다. 그중에서도 여러 가지 타악기로 만들어내는 다양한 ‘음색’과 소리의 흐름인 ‘제스처’를 인식한다면 보다 흥미롭게 감상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현대음악에 매료된 사람들이 흔히 난해하다고 알려진 곡에서 새로운 음악적 가치를 발견해 희열을 느끼는 것을 보면, 낯선 것이 곧 불편한 것이란 생각이야말로 현대음악에 대한 가장 큰 오해가 아닐까 싶다.
현대음악 애호가 중에는 유독 새로운 것을 접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 많다. 파리 국립음악원 교수이자 현대음악 전문 연주자인 바이올리니스트 강혜선은 “새로운 것을 잘 받아들이는 어린아이들이 오히려 선입견 없이 현대음악을 감상하는 것을 본다”고 했고, 송주호 평론가는 “한 번 본 영화를 다시 보는 것을 지루하게 여기고 신작 감상을 선호하는 사람을 현대음악을 즐기는 사람과 비교할 수 있다. 과거와 다른 새로운 가치를 추구하는 음악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무엇보다도 현대음악의 가치는 현재 우리와 같은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 만든 음악이라는 데 있다. 현대음악을 알리는 데 앞장서는 것으로 유명한 바이올리니스트 안네 조피 무터를 비롯한 많은 음악가도 “현대음악을 하는 것은 이 시대에 활동하는 음악가의 의무”라며 그 당위성을 강조하곤 한다.
음악계를 살펴보면 실제로 다양한 시도와 노력으로 끊임없이 현대음악을 공연하고 있다. 루체른 페스티벌이 2004년부터 루체른 페스티벌 아카데미를 운영하며 현대음악을 중심으로 한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처럼 클래식 음악의 본거지인 유럽에서는 많은 음악제와 콩쿠르에서 현대음악을 프로그램에 함께 넣어 새로운 음악을 선보인다. 상임 작곡가와 상주 작곡가 제도도 활발한데, 루체른 페스티벌 아카데미 오케스트라는 2014년 진은숙을 상주 작곡가로 위촉해 그녀의 작품 ‘사이렌의 침묵’을 사이먼 래틀의 지휘로 세계 초연하기도 했다. 한국에서도 여러 단체가 활동하고 있다. 올해 10주년을 맞은 서울시향의 현대음악 시리즈 ‘아르스노바’는 진은숙이 이끌고 서울시향 단원이 중심이 되어 관현악 작품으로 연주회를 구성하거나 독특한 편성을 하는 것이 두드러지는 점. 통영국제음악제의 홍보대사로 연주하는 ‘TIMF 앙상블’은 현재 각광받고 있는 작곡가들의 곡으로 현대음악을 알리고 있다. 또 2001년 창단한 ‘현대음악앙상블 소리’는 지금까지 창단 멤버가 대부분 그대로 활동하며 음악사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 작곡가의 곡부터 오늘날의 거장이나 한국 작곡가의 작품까지 다양한 현대음악을 들려준다.

“세상이 변하면서 그에 따라 함께 진보하고 있는 음악가들의 참신한 발상과 실험적 시도를 엿보고, 현시대를 관통하는 메시지를 읽어내는 것은 다름 아닌 현대음악 공연에서 가능한 일이다.”

명실상부한 세계 최정상의 현대음악 단체로 꼽히는 앙상블 앵테르콩탕포랭의 멤버들. 10월 말 처음으로 내한 공연을 개최한다.

수많은 동시대 음악을 연주, 초연하며 진보적인 길을 걷고 있는 피아니스트 피에르 로랑 에마르

이제 공연 달력을 한번 살펴보자. 무엇보다 하반기 음악계에서 눈에 띄는 점은 우리를 현대음악의 세계로 이끌 훌륭한 음악가들이 내한한다는 사실. 단연 화제가 되고 있는 것은 세계 최정상의 현대음악 단체로 꼽히는 앙상블 앵테르콩탕포랭이 음악감독 마티아스 핀처와 함께 처음으로 내한한다는 소식이다. 앙상블 앵테르콩탕포랭은 20세기 음악사에 큰 영향을 미친 음악가이자 올해 초 타계한 거장 피에르 불레즈가 1976년 창단한 뒤 직접 단원들을 선발해 이끈 단체다. 바이올리니스트 강혜선이 1994년 솔리스트로 입단해 활동하고 있는데, 그녀는 내한에 앞서 <노블레스>와의 인터뷰에서 “이번에 한국에서 연주할 마티아스 핀처의 ‘Mar’eh’는 아름답고 명상적이면서 누구나 어렵지 않게 감상할 수 있는 곡”이라고 소개했다. 그녀가 직접 핀처에게 제안해 앙상블을 위한 곡으로 새롭게 편곡했다고 한다. 앙상블 앵테르콩탕포랭은 10월 26일 롯데콘서트홀, 10월 28일 통영국제음악당에서 공연하며 ‘Mar’eh’ 외에도 피에르 불레즈, 죄르지 리게티, 진은숙의 곡을 연주한다. 특히 좀처럼 들을 기회가 없는 윤이상의 ‘협주적 음형’을 통영 무대에서 들려줄 예정. 내년 윤이상 탄생 100주년의 서막을 여는 프로그램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현대음악 연주회는 11월 24일 LG아트센터에서 공연하는 피에르 로랑 에마르의 피아노 리사이틀이다. 2012년 첫 내한 당시 고도의 테크닉을 필요로 하는 죄르지 리게티의 ‘에튀드’를 명쾌한 해석으로 연주해 깊은 인상을 남긴 그는 이번 내한 공연에서도 우리 시대의 영향력 있는 작곡가 죄르지 쿠르타크와 올리비에 메시앙의 곡을 중심으로 프로그램을 구성했다. 강혜선은 “21세기를 살면서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우리가 동시대 음악을 지속적으로 하는 것은 너무도 중요한 일이다. 지금 우리가 하고 있듯 앞으로는 젊은 음악가들이 해나가야 한다”며 음악가로서의 사명감을 언급했다. 그녀의 말을 관객 입장에서 다시 생각해보면, 이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예술가의 창작물을 향유하는 것이야말로 현대음악 감상자로서 누릴 수 있는 특권이란 것을 알 수 있다. 세상이 변하면서 그에 따라 함께 진보하고 있는 참신한 발상과 실험적 시도를 엿보고, 현시대를 관통하는 메시지를 읽어내는 것은 다름 아닌 현대음악 공연에서 가능한 일. 그러고 보면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의 작품도 당시에는 현대음악이 아니었던가. 우리가 지금 감상하는 동시대 작곡가의 음악이 곧 미래의 고전이 될 수도 있는 일이다.

에디터 | 안미영 (myahn@nobless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