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가가 생각하며 사는 방
경기창작센터에 갔다. 방과 방 사이의 은유를, 고민의 흔적이 걸린 벽과 고요한 빛을 만지고 왔다.
1942년, 일제시대 소년감화원이던 이곳은 지금 경기창작센터로 사용한다. 지난 10월 16일부터 18일까지 오픈 스튜디오가 열렸다. 젊은 작가에게 관심이 많은 미술 애호가들이 주말 동안 이곳을 찾았다.

경기창작센터 안에 위치한 창작 스튜디오에는 이성주, 오유경, 양정욱, 이준, 오후담, 이기일, 도수진, 최보희, 자우녕 작가 등 30명 남짓의 작가가 머물며 창작 활동을 하고 있다. 건물 앞으로 이종균 작가의 ‘물고기-쓰레기 탐색자’가 놓여 있다.
경기창작센터로 가는 길은 시의 세계로 들어가는 여정 같았다. 이쯤인가 싶으면 더 들어가야 하고, 다시 이쯤인가 싶으면 또 더 들어가야 한다. 멀다면 먼데, 단순히 거리가 멀다는 의미만은 아니다. 이를테면 풍경이 ‘의미’ 같다. 대부도 바닷길을 따라가다 보면 숲길이 이어지고, 도로는 가지런히 구부러지다 몸을 편다. 바람은 소리를 내며 어딘가로 간다. 가을이어서, 그냥 가을이어서, 풍경 속에서 어렵지 않게 무엇인가 읽어낼 수 있을 것 같은데, ‘의미’는 조금씩 앞서 걸으며 잡히지 않는다. 그럴 즈음 그곳에 도착한다. 나는 그 여정이 거실에 걸린 그림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왼쪽으로 시선이 갔다. 커다란 운동장이 있다. 잔디가 비현실적으로 푸르렀다. 물감으로 색을 칠한 것처럼. 그리고 곧 그게 불가능한 일도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여긴 경기창작센터니까. 미술가들이 살면서 작품을 만드는 곳. 운동장은 주차장으로 사용한다. 주차 구역에 차를 넣기 위해 사이드미러를 유심히 볼 필요가 없다. 넓으니까. “얼마든지 놀러 와. 널 반겨”라고 주차장이 말하는 것 같다. 운동장 한가운데에 잠자리 한 마리가 앉아 있었다. 넓은 여백에 꽉 찬 점이었다. 운동장 위, 당당한 건물 하나가 운동장을 내려다본다. 경기창작센터라고 적혀 있다.
경기창작센터 터는 일본이 1942년에 지은 소년감화원이었다. 말썽 부리는 소년들을 수용하고 감화시킨다는 목적으로 만들었다. 일본에 반항하는 소년들을 잡아와 가두기도 했으며, 이들을 전장으로 내몰기도 했다. 그 시대에 살았다면 나도 잡혀왔겠네. 이곳은 해방 이후 경기도로 관할 기관이 이관되었다. 1954년 선감학원이라는 이름의 새 건물을 지었다. 부랑아, 전쟁고아뿐 아니라 가정이 있는 아이들까지 강제로 수용했다. 숱한 인권유린이 자행됐다는 증언이 최근 밝혀지고 있다. 1970년대 말까지 존속했다. 지금은 그저 고요한 교정처럼 보인다.
경기창작센터는 국내 최대 규모의 예술 레지던시다. 50여 명의 작가가 입주해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입주 기간은 1년에서 2년. 주요 건물은 7개다. 창작 스튜디오가 3개다. 운동장을 내려다보던 위풍당당한 건물도 창작 스튜디오다. 작가들은 여기 머물며 작품을 만든다. 방이자 작업실인 셈이다. 크기는 조금씩 다르다. 창이 하나인 방도 있고 둘인 방도 있다.
마침 오픈 스튜디오 기간이라 방 안으로 들어가볼 수 있었다. 오픈 스튜디오 기간에는 누구나 작가의 작업실을 구경할 수 있다. 방으로 들어갈 때마다 보물 상자를 여는 것 같다. 작가들은 방문객을 위해 새로 작품을 만들어 전시해두기도 한다. 오래 머물며 그 작품을 보고 싶은데, 볼 방이 너무 많아 걸음을 서두르게 된다. 작가마다 작업실을 어떻게 꾸미고 사는지 보는 것도 재미있다. 나는 시를 쓰니까 벽에 붙일 게 메모밖에 없다.
경기창작센터에서는 창작 스튜디오가 가장 중요한 건물 같고, 그다음은 섬마루홀이 중요한 건물 같다. 여기서 밥을 먹기 때문이다. 한 끼에 5000원이다. 주중엔 낮 12시부터 1시까지 직원 식당으로 운영하는데, 음식이 남으면 외부인도 사 먹을 수 있다.
경기창작센터는 미술가들이 작품을 만들고 밥만 먹는 곳이 아니다.
그 자체로도 의미가 있지만 요즘은 각 기관이 일반인을 개입시킨다. 작가와 일반인이 만나 함께 무엇인가 하도록 주선하는 것이다. 우선 창의 예술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창의예술캠프, 성인을 대상으로 하는 창의연수, 소외 이웃을 대상으로 하는 상상퐁당 예술나눔이 있다. 강사는 이곳에 거주하는 작가들이다.
창작 스튜디오와 섬마루홀에 이어 소개할 건물이 창의예술교육동인데, 바로 이 동 2층과 3층이 교육실이다. 1층은 전시실이다. 마침 <창의예술교육전>이 열리고 있었다. 예술 수업을 하면서 학생들이 만든 것을 작가가 자신의 작품에 반영한 것이다. 작품마다 자세히 보면 학생의 흔적이 묻어 있다. 김승택, 라정식, 손민아, 양정욱, 양쿠라, 오유경 작가가 참여 중이다. 완성한 작품을 보는 결과의 전시이면서 작품이 어떻게 완성되는지 보는 과정의 전시이기도 하다. 창의예술교육동 뒷건물은 공방동이다. 이 건물도 교육 시설로 활용한다.
마지막으로 소개할 건물은 전시사무동이다. 건물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전시도 하고 사무도 본다. 1층에서 전시가 열리고 있다. 전시명은 ‘S.O.S(Save Our Soul)’다. 입주 작가 고우리, 김희라, 민성홍, 박형근, 송상희, 양정욱, 최두수, Ya-Wen Fu가 참여한다. 소개 자료에 “경기창작센터가 위치한 안산 선감도의 역사적·지리적·생태학적 고민과 동시대적 문제 의식을 표출하는 데 예상되는 여러 충돌을 그 자체로 예술의 실험적 형식으로 전환…”이라고 적혀 있다. 역사·시대·환경에 대해 고민했다는 것 같고, 그것을 미술의 형식으로 풀어냈다는 것 같다.
적힌 설명은 어렵지만 전시한 작품은 명징하고 재미있다. 전시장 1층에는 이곳이 교화원이던 시절의 불우한 역사를 기록한 선감역사관이라는 방이 있는데, 양정욱은 이 방의 입구에 작품을 설치했다. 작품이 방의 안과 밖에 걸쳐 있다. 작품명이 ‘그는 선이 긴 유선전화기를 들고 한참을 설명했다’다. 도대체 뇌 구조가 어떠해야 이런 제목을 지을 수 있을까? 시인 같다. 내가 시인인데. 그 뇌의 비밀을 파헤치기 위해 인터뷰를 했다. 한 장 넘기면 나온다. 그런데 같은 이름의 작품이 창작 스튜디오 2동 건물 지하에도 있다. 아까 운동장을 내려다보고 있던 그 건물이다. 멀리 떨어져 있는 두 작품은 마치 다른 모양의 커다란 전화기 같다. 작품 이름을 왜 ‘그는 선이 긴 유선전화기를 들고 한참을 설명했다’라고 지었는지 알 것 같다.
전시장 바닥엔 규칙적인 크기의 종이들(대략 A4 용지 크기)이 규칙적으로 붙어 있다. 민성홍 작가의 작품 ‘54 Minutes 35 Seconds in 188m2’인데, 바닥을 다 덮어버려서 걸어 다니기가 영 불편하다. 이 작품을 천천히 보고 있으면 “여러 충돌을 그 자체로 예술의 실험적 형식으로 전환시켰다”는 어려운 설명이 이해가 된다. 걷다가 그만 신발로 종이를 찢어버렸다. 아이고, 이걸 어째, 당황해 서 있는데, 경기창작센터 담당자가 “그러라고 전시한 작품이에요”라고 말했다. 순간 미술이란 것이 이 시대에 조금 더 존경받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상력이 말살된 시대니까. 종이를 조심스럽게 밟으며 건물 안으로 더 깊이 들어가면 카페가 나온다.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아르바이트생이 귀엽네” 혼잣말을 하면서.
창의예술교육동과 전시사무동에서 내년 1월 31일까지 전시가 열린다. 이 두 곳만이 아니라 경기창작센터는 곳곳이 전시장이다. 예를 들어 귀여운 아르바이트생이 커피를 내려주는 카페에는 도수진 작가의 설치 작품 ‘The Last One Turns off the Light’가 걸려 있다. 전구의 윤곽을 커다랗게 형상화한 작품이다. 빛을 제거했다. 그 빛은 카페 어딘가로 옮겨졌다. 찾아보고 싶지 않아?
오픈 스튜디오 기간이 아니면 이곳은 한적하다. 드넓은 운동장엔 차가 드문드문 주차돼 있을 뿐이고, 건물 외벽은, 아, 이걸 벽화라고 해야 할까, 그림이 그려져 있다. 종종 낯선 선도 보인다. 그림도, 선도 촌스러워서 재미있다. <아트나우>가 발행될 11월 말 즈음엔 오픈 스튜디오 기간이 끝나 작가의 작업실에 자유롭게 들어갈 순 없지만 그저 건물과 건물 사이를, 건물의 복도와 숨은 공간을 걸어 다니는 것만으로도 흥미롭다.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나랑 경기창작센터 갈래?”라고 말하고 싶다. 그러면 예쁜 사람이 묻겠지. “거기가 뭐 하는 곳인데?” 그럼 나는 박식한 사람처럼 이런저런 이야기를 늘어놓을 거고, 그녀는 내가 잘난 척한다며 싫어할 거다. 하지만 결국 그녀도 나처럼, 경기창작센터의 작은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운동장과 창작 스튜디오 건물을 보며 기뻐할 게 분명하다. 그저 경치가 좋아서? 건물들이 신기해서? 그건 아주 작은 이유밖에 안 된다. 당신도, 나도, 애인도 예술가의 빛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누구나 이 빛을 품고 있다. 이곳에 오면 그 빛이 조금 몸 밖으로 새어 나온다. 그래서 이곳을 소개한다.

이우성 이우성은 시인이다. 2009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고 2012년 시집 <나는 미남이 사는 나라에서 왔어>를 출간했다. 오랫동안 남성 잡지 피처 에디터로 일한 그는 스스로 미남이라고 부른다. 미적인 것을 동경하기 때문이라고. 그래서 미술에 대한 글을 쓰는 것이 너무 당연한 일이다.
독일에서 활동하다 2013년부터 한국에서 작업 중인 도수진 작가. 제14회 송은미술대상 우수상을 받았다.
창작 스튜디오 3동에서 도수진 작가를 만났다. 도수진의 작업실엔 3개의 작품이 있었다. 하는 것과 하지 않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었다.
이 작품은 뭐예요? 글자 같은데, 녹아서 읽을 수가 없네요.
오픈 스튜디오의 야심작이에요. ‘뉴 워크(New Work)’라는 글자죠. 이 방에 작품이 3개 설치돼 있는데 전부 같은 맥락이에요. 뉴 워크는 ‘신작’이라는 뜻도 있고, ‘새로운 형태의 작업’을 뜻하기도 해요. ‘엿’으로 글자 형태를 만들었어요.
엿이구나.
네. 글자 모양을 유지하려고 겉에 약품을 뿌렸는데도 너무 빨리 녹았어요. 녹은 모습 그대로도 상관없는 작품이에요.
자세히 보니까 쇠로 만든 구조물에 엿이 붙어 있는 형태네요. 엿으로 글자를 만들어 붙이는 게 쉬운 일은 아닐 것 같은데, 이런 작업을 하는 전문가가 따로 있어요?
엿 공장을 운영하는 사장님이 도와줬어요. 형태를 잡고 만들어야 하는 거라 여러 사람이 달려들어 작업했어요. 커다란 엿 덩어리를 들고 쭉쭉 늘여야 하거든요.
오늘 제가 오는 거 알고 계셨을 텐데 이 작품을 준비하신 걸 보면 저보고 엿 먹으라는 거네요? 약간은 그렇죠. 저도 다음 시집 낼 때 첫 번째 시를 ‘엿’ 혹은 ‘뉴 워크’라는 제목으로 써야겠어요. 꼭 드릴게요. 물론 이 작품과 창문, 벽에 설치한 작품 모두 창작이라는 행위 자체에 대한 고민이 담겨 있는 거죠?
네. 과정에 대해 이야기한 거예요. 작품이라는 건 시간이 필요하죠. 오랜 시간 고민해야 할 때도 있고, 스스로를 의심하는 과정을 거쳐야 하는 경우도 있죠. 저는 독일에서 활동하다 2013년에 한국에 왔어요. 돌아와서 힘든 것 중 하나는 뭔가를 계속 생산해내야 한다는 거예요. 미술 시장이 빠르게 돌아가는 편이지만 한국의 속도는 더 빠른 것 같아요. 2~3년에 한 번씩 개인전을 해서 본인을 알려야 한다는 암묵적인 룰이 있어요.
그렇죠. 내가 여기 이렇게 있노라.
개인전이라는 건 자신의 작품이 쌓여서 기회가 됐을 때 보여주는 거잖아요. 그런데 작품이 차지하는 비중은 점점 작아지고 전시만 남는 느낌을 받았어요. 이 방에 있는 3개의 작품 맥락이 같다고 말씀드린 건 ‘과정’에 관해 이야기하기 때문이에요. 반드시 성과를 내야만 하는가, 의문을 제기하는 거죠.
그래서 저 창은 TV 조정 화면이 됐군요.
네. ‘방송 조정 화면’을 표현한 것인데, 이 패턴을 통해 화면을 테스트하는 ‘시간’을 갖잖아요. 뉴 워크와 같은 맥락으로 보시면 될 것 같아요.
이쪽 벽에 검은색 테이프를 붙여서 만든 작품은 뭐예요? 언뜻 보기엔 건축물을 형상화한 것 같은데.
그건 ‘아시바(足場, 비계)’라고 하는 건데, 건축물을 지을 때 높은 곳에서 일할 수 있도록 설치하는 임시 가설물이에요. 아시바는 토대나 바탕이라는 뜻이죠. 현장 인부들이 쓰는 용어예요. 제가 하고 싶은 말은 토대가 되는 것이 있어야 새로운 어떤 것이 나올 수 있다는 거예요.
‘뉴 워크’는 녹아서 사라지고, 방송 조정 화면과 아시바는 벽에서 떼어내면 사라지잖아요. 작품이 사라진다는 게 매혹적이면서 아까워요.
어쩔 수 없이 사라지도록 두는 게 컨셉인 작품도 있어요.
자, 그래서 개인전은 한국 와서 하셨어요, 안 하셨어요?
안 했어요. 환경이 바뀌면 작품이 많이 바뀌어요. 지금도 계속 바뀌고 있어서, 개인전을 꼭 해야 하나 싶어요.
불안하지 않으세요?
불안하죠. 지속적으로 전시를 해야 이 분야에서 잊히지 않으니까. 하지만 내년에도 별다른 활동 계획이 없어요. 새롭게 뭔가 보여줘야 한다는 강박 때문에 미루고 있는 것들이 있는데, 저는 그걸 하려고요.
양정욱 작가는 하고 싶은 이야기를 가장 효율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작품에 움직임과 소리 등을 끌어들인다.
창작 스튜디오 2동에서 양정욱을 만났다. 양정욱은 동시대 작가 중 특징적인, 드문 작품을 만든다. 그는 나무를 움직이게 한다. 살아서 걷게 한다.
조소과 출신이라 나무 작업을 잘하는 거죠?
조소과 출신인데 그림만 그렸어요. 회화과는 점수가 높아서 입학할 수 없고, 갈 수 있는 데가 조소과였어요. 3수를 해서 절박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죠. 학교를 졸업하고 여러 작업을 하다 2012년부터 본격적으로 지금의 작업을 하고 있어요.
본격적이라는 말이 좀 의미 깊게 들리는데요.
졸업 전시 후에 전시가 많이 잡혔어요. 유명한 갤러리에서도 불러줬고요. 그렇게 전시를 몰아쳐서 하고 나니 제 모습이 제가 생각해오던 작가의 모습이 아니었어요. 작가는 뭔가 만드는 사람이 아니거든요. 생각하는 작업을 하는 게 작가고, 그 생각을 보여주기 위해 작업하는 건데, 저는 그냥 만들고만 있더라고요. 그래서 그만두고 디자인 회사에 1년 가까이 다녔어요. 그런데 어느 날 프로젝트 스페이스 사루비아다방 이관훈 큐레이터한테 연락이 왔어요. 제가 학교 다닐 때부터 거기 공모에 작품을 냈는데 계속 떨어졌어요. 그런데 이관훈 큐레이터가 전화해서 올해는 왜 작품을 안 내느냐고 하시더라고요. 그동안 제가 공모에 참여한 걸 알고 계셨죠. 전시 일정은 이미 잡혀 있고, 한 달 보름밖에 안 남았는데 할 수 있겠느냐고 하셔서, 얼떨결에 할 수 있다고 했어요. 그때부터 지금과 같은 작업을 시작했어요. 전에 하던 작업과 다른 건 ‘글’을 바탕으로 ‘모습’이 나왔다는 거죠.
글! 글을 바탕으로 모습이 나왔다는 말, 뭔가 멋져요. 그런데 무슨 말이에요?
2012년 이전엔 ‘모습’이 나와 있거나, 작은 느낌만 가지고 ‘모습’을 만들고 제목을 붙이는 식으로 작업했다면 지금은 단편소설이나 시 형식으로 글을 쓰고, 그 속에서 구조나 모습을 꺼내와요.
그 ‘모습’을 나무로 형상화하는 거군요. 그런 과정을 거쳤기 때문에 작품 이름을 ‘그는 선이 긴 유선전화기를 들고 한참을 설명했다’라고 지을 수 있는 거구나.
무엇에 대해 이야기할지 정한 다음 글을 쓰기 시작해요. 제목, 내용, 상황, 캐릭터, 분위기를 설정해나가는 거죠. 그러고 나서 글에 맞는 색감, 크기, 모양, 두께 등을 떠올려요. 규칙적일지, 불규칙적일지도 떠올리고요. 예를 들어 ‘조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라고 하면 조는 사람에 대한 상황을 글로 먼저 정리해놓고 그 안에서 구조를 추출해 제작에 들어가는 거죠.
설명을 들어도 여전히 신기합니다. 움직이는 나무조각 작품이 소설이나 시에서 비롯된다니! 혹시 설계도를 미리 그려요? 작품이 다 크잖아요. 설계 없이 만드는 게 불가능할 것 같아요.
즉흥적으로 구조를 추가하고, 기반이 되는 이야기에 맞는지 검열하면서 계속 수정하니까, 작업 초반에 설계를 해놓을 순 없어요. 설계도는 제 머릿속에만 있어요. 작품에 어떤 움직임을 부여할지 계속 생각해요.
작가님 작품을 여러 개 봤는데, 전부 어떤 형식으로든 움직이고 있어요.
균형에 대한 느낌은 모두에게 다르잖아요. 오늘의 생각과 내일의 생각이 다르고, 사람마다 다르죠. 그런 가변성 때문에 저는 정지돼 있는 작품은 못 만들겠더라고요. 작가가 품은 ‘균형’에 대한 생각과 완벽히 동일한 느낌을 주지는 못하더라도, 움직임을 통해, 수시로 변하는 또는 다른 사람의 생각을 중간 어디쯤에서 만나게 하려는 거죠. ‘모든 정의는 한곳에 머물러 있지 않고 계속 움직인다’라는 개념이 제가 움직이는 작품을 만드는 이유 중 하나예요. 다른 이유는, 동시대를 읽어야 하기 때문이죠. 아무리 좋은 이야기를 하더라도 동시대의 고민, 현상 등을 작품을 통해 드러내지 않으면 결국 혼잣말이 되니까요. 저는 움직임을 통해 그런 제 의식을 담아내려는 거예요.
천재에 대한 제 나름의 기준이 있어요. 입장이 명확할 것, 낯선 입장일 것.
경기창작센터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데, 학생들한테 책을 많이 보라고 해요. 남의 책 말고, ‘자기 안에 있는 책’을 말이죠. 현재의 선택이라는 건 과거의 경험에 의한 거예요. 그렇게 자기 자신이 완성되어가잖아요. 그렇게 만들어진 자기 고유의 책을 보라는 거예요. 그러려면 자기 책을 찾아야 해요. 그 책을 읽으면 자기 자신의 입장이 확고해져요. 작가는 자기만 읽을 수 있는 책을 작품으로 보여주는 거라고 믿어요. 그리고 저는 유연해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유연한 사람들이 좋은 느낌을 갖게 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시대의 흐름을 잘 읽어내고, 나만이 아니라 작품을 보는 사람들이 어떤 느낌을 받을지 함께 생각하려고 해요. 모든 것이 변하니까, 움직이니까.
창의예술교육동에 전시돼 있는 ‘Made in Mind’라는 작품은 학생들과 한 수업의 결과물이라고 들었어요. 커다란 머릿속에 학생들의 생각이 걸려 있는 작품이더라고요. 이 작품 역시 추상적입니다. ‘글’에서 ‘모습’을 발견하다 보면 필연적으로 추상적일 수밖에 없겠죠. 하지만 추상적인 건 그저 추상적인 거잖아요. 무슨 말인지 알죠?
네, 알아요. 그런데 ‘사과’를 생각해보세요. 우리가 떠올리는 이미지가 모두 다르다고요. 이미지는 오히려 모호한 거예요. 작가가 나무에 매달린 사과를 봐요. 그것을 작품으로 만들어요. 제3세계의 누군가가 작품을 보고, 작가가 본 사과를 떠올리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약속된 기호를 지워야 해요. ‘왠지 모르겠는데 어떤 사과가 떠올라’라고 느끼게 해주어야죠. 만든 사람, 보는 사람이 공통의 맥락을 가지려면 추상화하는 게 맞는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추상적인 게 어쩌면 구체적인 걸 수도 있다는 얘기예요.
에디터 김이신 (christmas@noblesse.com)
글 이우성(시인) 사진 김정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