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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계 신사업 열전

LIFESTYLE

미술 시장의 진입 장벽이 점점 낮아지면서 기존 미술 기업의 움직임이 다각화되고 있다. 여기엔 물론 약간의 아쉬움도 있다.

온라인 예술품 거래소 ‘아마존 아트’의 런칭을 선포하는 제프 베조스 아마존 CEO

세상엔 몇천만 원 하는 핸드백은 거침없이 사도, 몇백만 원짜리 그림 앞에선 망설이는 이들이 있다. 그들은 몇억 원짜리 차는 여러 대 가졌지만, 몇천만 원짜리 회화 작품은 여전히 비싸다고 느낀다. 물론 그 심리를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 가치에 대한 납득 혹은 확신이 부족해 생기는 일이기 때문이다. 비싼 핸드백도, 자동차도 어느 정도 가치가 있는지 알 만한 이들은 쉽게 알아본다.
하지만 미술품은 다르다. 그림은 밖으로 들고 다닐 수 없다. 집에 걸어둬도 알아보는 이가 그리 많지 않다. 큰돈을 써도 효과를 보기 어렵다. 만약 고가의 작품을 집에 들여놓았는데 금세 되팔고 싶다면, 그 또한 쉬운 일이 아니다. 이렇게 미술품 구입을 망설이게 하는 요인은 무수히 많다. 또한 이 높은 진입 장벽을 뚫고 컬렉터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는다 해도 고민이 끝나는 건 아니다. 끊임없는 지식 쌓기를 요구하는 현대미술품 소비의 세계는 가히 ‘첩첩산중’이라 할 만하다. 그래서 그간 판매자와 제작자에 비해 컬렉터의 인구가 적은 불균형은 너무도 당연한 일로 받아들여왔다.
그래서 이런 비극적 상황을 해소하고자 미술품 구입에 대한 자문을 해주는 회사가 뉴욕에 설립되기도 했다. ‘아트 에이전시 파트너스(Art Agency, Partners, AAP)’다. 이곳은 미술계에 이미 포섭된 컬렉터는 물론, 그 가장자리에서 망설이는 예비 컬렉터들을 독려하고 가르치며 조언하는 회사다. 쉽게 말해 미술품 구매에 관한 A부터 Z까지 컬렉터에게 알려주는, 아니 거기에 플러스알파를 더해 돈까지 벌게 해주는 회사다.
한데 설립한 지 이제 고작 2년밖에 되지 않은 이 작은 회사가 최근 다른 회사에 팔렸다. 바로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예술품 경매사 소더비에. 소더비는 지난 1월 AAP를 약 605억 원에 샀다. 그리고 AAP의 향후 수익에 따라 4~5년에 걸쳐 약 423억 원의 거금을 추가로 지급하기로 했다. 2015년 반 토막이 난 소더비의 주가는 AAP를 인수한 날에만 7.2% 급등했다. 소더비가 AAP를 인수하며 예술품 투자 자문으로 사업 영역을 넓히는 걸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신호라 할 수 있다.

아트 에이전시 파트너스의 두 창업자 에이미 카펠라초와 앨런 슈워츠먼

미술 시장의 전반적 부진으로 전통적 경매 회사들은 신사업을 개척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미술계의 구글로 불리는 아트시는 온라인 예술품 거래의 창구 역할을 하고 있다.

AAP는 컬렉터를 대상으로 작품 구매 대금 마련을 위한 금융 설계를 해주는가 하면, 작품을 팔고 시장에서 적절히 빠져나올 수 있는 출구 전략까지 짜준다. 또한 상속과 증여, 절세 전략까지 넘나들며 지금도 계속 서비스 범위를 넓혀가는 중이다. AAP를 공동 창업한 앨런 슈워츠먼(Allan Schwartzman)과 에이미 카펠라초(Amy Cappellazo)는 미술계에선 이미 유명 인물이다. 슈워츠먼은 오래전부터 컬렉터가 미술관급 컬렉션을 갖출 수 있게 도움을 주며 명성을 얻었고, 카펠라초는 소더비의 경쟁사 크리스티의 간부였다.
사실 전 세계 예술품 거래 시장의 규모는 해가 갈수록 커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론 그렇지 않다. 특히 세계 경매사의 양대 산맥 중 하나인 소더비만 놓고 보면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유명 작품의 공급 감소 여파도 크지만, 컬렉터에게 최저 거래가를 보장하며 거래 수수료를 계속 내린 탓도 크다. 한 예로 2014년 소더비의 매출은 67억 달러(약 7조4500억 원)로 사상 최고였지만, 이익 규모는 전년 대비 9% 줄어든 1억1780만 달러(약 1310억 원)에 불과했다. 거래 액수는 늘었지만 이익률은 1.75%에 그친 수치다. 몸통이 커진 사업체는 당연히 대안을 찾아야 했다. 그래서 이들이 막 시작한 예술품 투자 설계 서비스는, 앞으로 펼쳐질 예술품 미래 사업의 시발점으로 풀이된다.
현대미술 시장에 발을 담근 대기업이 이렇듯 출구를 찾느라 애쓰는 노력은 가상하다. 하지만 전통적 경매 회사의 위기는 사실 수년 전부터 예고된 바다. 최근 반향을 일으키고 있는 온라인 경매의 활성화는 이 위기를 가속화했다. 미술 시장의 판도가 바뀌고 있는 것이다. 소더비나 크리스티 등 전통 오프라인 경매업체의 매출은 점점 줄고, 온라인 경매 회사는 믿을 만한 투자자를 등에 업고 승승장구했다.
물론 소더비와 크리스티도 그리 늦지 않게 온라인 경매 사업을 시작했다. 소더비는 2000년 이베이와 함께 온라인 경매를 이벤트성 행사로 진행했지만, 2014년부터는 아예 이베이와 공식 협업을 선언하며 온라인 경매에 큰 힘을 실었다. 2006년부터 자체 온라인 경매 시스템을 운영해온 크리스티의 경우 2014년 기준 1억4800만 달러(약 1647억7000만 원)의 온라인 경매 매출을 기록했다. 전체 매출(9조3517억2000만 원)에 비하면 아직 낮은 수준이지만, 전년 대비 71%나 증가하는 등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해에 크리스티에서 첫 거래를 한 신규 고객 중 20%가 디지털 경매를 통해 유입됐다는 점은 이 시장의 전망을 낙관할 만하다.
하지만 이들의 성과는 신진 온라인 경매 회사들의 약진에 비하면 힘에 부쳐 보인다. 미술품 거래 플랫폼을 경매 회사나 갤러리를 벗어나 온라인으로 삼은 대표 업체들이 있어서다. 이미 잘 알려진 아트시(Artsy)와 패들에이트(Paddle8), 옥셔나타(Autionata), 샤프론아트(Saffronart)가 가장 눈에 띄는데, 현재 눈 밝은 미술계 투자자들은 미래 소비자 개척을 위한 판로로 온라인 경매사의 전망을 보고 있다. 한 예로 패들에이트는 든든한 투자자를 기반으로 LA 카운티 미술관과 가고시안 갤러리를 비롯해 200개가 넘는 세계 최고 미술기관과 파트너십을 맺었고, 2012년 설립한 옥셔나타는 여느 경쟁 업체와 달리 온라인 웹과 모바일 앱을 통해 자체 제작한 경매 방송도 제공해 호응을 얻는다. 이 밖에도 미국 온라인 유통업체 아마존은 최근 미국 내 갤러리 150여 개와 협약을 맺고 ‘아마존 아트’ 서비스를 시작했다. 아마존의 다른 모든 상품처럼 장바구니에 넣어 구매하면 며칠 만에 안전하게 배송된다. ‘아마존스러운’ 방식으로 새롭고 편리한 미술품 유통 방식을 찾으려는 시도다.
이렇듯 동시대 미술 시장의 진입 장벽은 낮아졌고 또 친절해졌다. 전통적 경매 회사는 이제 부동산과 금융 서비스, 온라인 계통 등으로 사업을 확장해나가고 있고, ‘유통 공룡’ 아마존은 아트 서비스를 통해 예술품 거래의 보편화를 시도하고 있다. 그 때문에 앞으로 경매 비즈니스는 작은 투자은행식으로 바뀔 가능성이 크다. 다만 이런 일련의 움직임은 공들여 작품을 발굴하고, 귀한 정보를 찾아 발로 뛰는 시대가 끝나가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진품을 직접 보고 그 오라를 느껴야 하는 영역에 예술품이 끝까지 존재하길 바라지만, 이런 기대도 혹시 고루한 사고방식으로 치부되진 않을지 조금은 걱정이다.

에디터 | 이영균 (youngkyoon@noblesse.com)
사진 | 이나연(미술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