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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과 사물을 구별하는 단서

ARTNOW

무엇이 작품을 작품으로서 빛나게 하는가? 사물이 된 작품 혹은 작품이 된 사물, 사물이나 작품이 되는 미묘한 경계를 오가는 작업을 통해 그 해답의 단서를 찾아보자.

마르셸 뒤샹, Fresh Widow, 나무, 철, 가죽, 퍼스펙트, 78.9×53.2×9.9cm, 1920년 제작, 1964년 복제 / ⓒ Succession Marcel Duchamp/ADAGP, Paris and DACS, London 2015

마이클 크래이그-마틴, 무제-laptop turquoise, 알루미늄에 아크릴물감, 122×122cm, 2014 / Courtesy of the artist and Gagosian Gallery

조르주 페렉의 <사물들>
2016년에 가만히 앉아 사물에 대해 생각하기란 쉽지 않다. 이제 사물이 아닌 것처럼 보이는 것은 이 세계에 없기 때문이다. 모두가 사물처럼 보일 때 사물 자체에 대한 생각은 휘발된다. 집 안팎의 거의 모든 이미지는 실시간 상품(사물)처럼 거래된다. 유튜브 영상은 물론이거니와 무작위로 누군가의 CCTV 영상을 보는 것 또한 어렵지 않다. 사물이 이미지만큼이나 빠르게 이동하면서 사물과 이미지가 혼용되고 있다. 서울의 인구밀도보다 높고 빠르게 택배 박스가 움직이고 쌓이고 버려진다. 그러니까 조르주 페렉의 소설 <사물들>에 등장하는 한 문장은 지금 여기와 어울리지 않는다. 인간의 눈에 사물이 제대로 들어오기 시작한 1965년 파리의 어떤 장면 말이다. “모든 것이 새로워졌다. 변해버린 감수성, 취향, 지위가 이전까지 신경 쓰지 않던 것들에 관심을 기울이게 했다.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옷을 입는지 살펴보고 가구, 장식품, 넥타이 진열대를 눈여겨보았다.” 이런 문장을 쓰려면 최소한 잠시라도 사물을 눈여겨봐야 한다. 그 시절의 사물은 호사스러운 외양을 두르고 잠재적 소비자를 매혹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물질과 행복이 일대일 관계를 맺는 듯 보인 과거와 달리 오늘날 사물은 그게 쉽지 않다. 사물은 크기 면에서 축소된 상태를 지향하거나, 형태 면에서 내부를 드러내지 않는 매끈한 외피를 추구한다. 그리고 정지될 틈 없이 빠르게 전송된다. 우리의 손에 들린 스마트폰처럼.

 

제프 쿤스, One Ball Total Equilibrium Tank(Spalding Dr. J 241 Series), 유리, 철, 염화나트륨 시약, 증류수, 농구공, 164.5×78.1×33.7cm, 1985 / ⓒ Jeff Koons

대롱대롱 매달린 화살표
지금 전시장의 미술가들은 사물의 질서를 어떻게 깨뜨리거나 다시 세우고 있을까? 단순하고 건조해 보이는 외관 속에 무엇이 있거나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동안 우리는 작가의 방법론으로 완성한 작품을 통해 사물을 새로운 상태로 대면해왔다. 쓸모 있기도, 없기도 한 사물이 넘쳐나는 현실에서 몇몇 작가는 사물이 쓰레기와 상품 사이의 이분법에 함몰되지 않도록 막다른 길을 찾아 나선다. 이때 사물의 외양은 군더더기 없이 점점 형태를 쳐 내려간다. 뼈대를 그대로 드러낸 덩어리는 장식도, 의미도, 상징도 없이 ‘사물’ 자체의 존재감을 내보이며 전시장에 서 있다. 김민애가 2008년에 제작한 작품 ‘모래성’을 2015년 가을 시청각에 설치했을 때, 작가는 교통표지판인 이 파란색과 흰색이 합체된 물체가 위치할 ‘자리’에 대해 다시 한 번 고심했다. 제목은 ‘이제는 가장 쓰임새가 있을 만한 곳-알루미늄 반사판-‘모래성’의 일부’가 되었다. 이 사물-작업은 파란 알루미늄 재질에 하얀 화살표를 그린 디자인으로 실제 거리에서 통용되는 표지판과 다를 바 없다. 하지만 작가는 이 표지판을 운전하는 사람이 실제 느끼는 사이즈로 확대해 제작했다. 그러곤 특정 방향을 가리키는 기호인 화살표가 전시장의 무의미한 장소를 가리키는 곳에 위치하도록 배치했다. 2008년 모래 더미에 있던 표지판은 (재배치를 통해) 2015년에는 허공에 대롱대롱 매달린 사물이 되었다.

 

니나 카넬, 긴 1000분의 3초, 매스틱검, 통나무, 가변 크기, 2015

말라붙은 껌
사물에 덧입힌 치장을 걷어내고 남은 기본 골조를 다시 보는 일은 그것이 우리의 예상을 깰 때 비로소 흥미롭다. 뻔한 것이 나온다면 임금님이 옷을 입었거나 입지 않았거나 별 상관 없다. 그런데 겉을 벗겨낸 사물의 기본 골조마저 흔들리고 변화무쌍하다면 어떤 상태가 될까? 스웨덴 출신 작가 니나 카넬(Nina Canell)의 작품에서 사물은 사물 자체의 희소성을 드러내기 위해 ‘상태’를 전면적으로 내보인다. 백색의 뿌연 수증기는 서양 여자 귀신이 절도 있게 펼쳐놓은 사물의 무덤 같은 분위기를 풍긴다. 미니멀한 조각과 설치 작업으로 잘 알려진 작가는 2015년 여름 아르코미술관에서 <새틴 이온(Satin Ions)>이라는 개인전을 열었다. 이 전시장 안에서 모든 작품은 고체가 아니라 기체나 액체인 상태로 재료의 현재를 다룬다. 색도, 형태도 한눈에 들어오는 것은 없고, 사물의 변화하는 ‘변수’ 자체를 재료로 삼는다. 초음파 발생기를 물속에 넣어 발생하는 기포로 시멘트를 점점 굳게 하거나, 껌을 바닥에 놓아 시간이 흐를수록 말라붙게 한 작품은 모두 투명한 ‘속’을 보여준다. 무색무취의 사물을 재료로 사용해 엉성한 과학자처럼 무언가 남들이 알 수 없는 의도로, 미세하고 조밀하게 상태를 조정하는 작가는 그렇게 물질 감각의 ‘내부’를 들여다본다. 실로 사물을 잘라 절단면을 보여주는 작업부터 한국의 공사 현장에서 구한 케이블, 벽에 자석을 붙이고 그 위에 나뭇가지처럼 뻗어 나오게 나열한 뾰족한 못 등. 이 ‘작품’은 외피는 단순하지만 내부의 속성이 복잡한 ‘사물’이다. 작가는 사물이 깨질 듯, 흘러내릴 듯 변화하는 배열 상태를 유지시킴으로써 작품이 사물 또는 조각의 확실성에 대한 질문이 되도록 한다.

 

2015년 페리지갤러리에서 열린 김도균의 개인전 < P > 전경. 시중에서 흔히 구할 수 있는 각종 포장 용기를 근접 촬영한 작품을 선보였다.

해태 홈런볼 초코 용기
사물 자체가 아니라 사물의 상태를 보여줌으로써 대상에 집중하게 하는 것은 김도균의 사진 작업 ‘P’ 시리즈도 그렇다. 대상을 의인화하거나 그것에 이야기를 부여할 그 어떤 단서도 주지 않는 이미지-사진 작업은 흰 물감 덩어리를 보는 것처럼 회화적이다. 간결한 미감이 찬 금속성을 드러내는 한편, 아무것도 보여주거나 볼 수 없는 흰색 암막 커튼을 친 것 같다. 그 이미지는 가만히 계속 들여다봐야 면의 깊이와 구도, 면의 접점이 만들어내는 음영을 가늠할 수 있다. 이제 이미지는 사물을 증명하는 패턴의 수집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우리는 제목을 통해 이것이 사물에 직접적으로 달라붙었던 이미지, 즉 포장재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해태 홈런볼 초코’이거나 ‘캐논 EOS’이거나 설렁탕 등의 음식물을 담은 용기의 패키지(포장재) 일부. 그래서 김도균의 사진은 진공상태에 들어선 물신을 보여주는 듯하다. 물질이 없는 상태를 뜻하는 진공에서야말로 물질의 감각이 어떠했는가 뒤돌아보게 되듯 말이다. ‘JPG 이미지’로 남은 페리지갤러리의 전시 전경 사진은 투명한 보호 필름을 붙인 애플 맥 에어의 키보드 자판을 확대해놓은 것 같다. 이 자판과도 같은 이미지를 이우환의 작품과 비교해보는 것은 어떨까? 이우환이 화폭에 찍은 점이 추상의 외피와 내피를 모두 가지고 있다면, 김도균의 사진은 일견 추상적인 듯하지만 제품의 포장지라는 구체적 물질성을 드러낸다. 김도균의 미니멀리즘은 역설적이게도 이미지로는 드러나지 않는 내부에 ‘저장’된 형태로 녹아들어 사물의 아카이브를 이룬다.

 

스테델레이크 미술관에 전시된 몬드리안을 비롯한 신조형주의 작가들의 작품 / Photo by Gert-Jan van Rooij

도널드 저드, 무제, 알루미늄에 채색, 150×750×165cm, 1991 / ⓒ Judd Foundation, licensed by VAGA, New York

램프와 싱크대
도널드 저드(Donald Judd)는 작품이 사물 그 ‘자체’가 되게 한 대표적 작가다. 그는 똑같이 사물을 다루는 일처럼 보일지라도 미술과 디자인은 다르다고 말했다. 1993년에 발표한 ‘좋은 램프를 찾는 건 어려워(It’s hard to find a good lamp)’라는 글에서 저드는 자신이 만든 가구처럼 보이는 작품과 작품처럼 보이는 가구에 대해 기능적이어야 하는 가구와 예술의 의도는 다르다고 못 박으며 “나는 그것(이 문장에서는 싱크대 제작)과 미술을 혼동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나 도널드 저드의 간명한 문장과 달리 작품과 사물, 디자인과 미술은 무수히 많은 경험담과 이론 사이에서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여러 난제를 품고 있다. 그리고 작가들은 이 난제를 일부러 조직해냄으로써 방법론과 과정을 다원화하며, 문제의 해결과 도출이라는 수직적 사고의 행태를 더욱 복잡하게 만든다. 그런 때일수록 작품의 외양은 어떤 이야기나 정서를 표현하지 않으며 사물 그 자체가 된다.

 

김영나, 테이블 A, 금속, 분채도장, 2013, 국제표준화기구(ISO)가 규정한 에이(A) 시리즈의 종이 판형에 맞춰 테이블을 제작했다.

이은우, 보도블록, 아크릴물감, 래커 페인트, 각각 1.5×30×30cm(8개), 2013

테이블
그래픽 디자이너로서의 경험을 입체적으로 뚫고 나와 작품 또는 사물을 만드는 김영나는 일상에서 느낀 작은 호기심에 형태를 부여하는 방법을 찾으며 작품의 구조를 만든다. 기능과 목적을 가진 형태에 최소한의 표현을 효율적으로 극대화해 보여주기도 하는 그녀의 작품은 미니멀해 보이지만 컬러 면에서 장식적이고, 간소해 보이지만 때로 아기자기한 외양을 파생하기도 한다. 종이의 표준 규격인 A4 형태에 집중한 작가는 2013년에 ‘테이블 A’라는 모종의 게임 같은 사물을 만들어냈다. A4, A3, A2, A1 사이즈만 한 평면에 그 비율에 맞는 다리를 만들어 책상의 기능을 부여한 테이블-사물-작품이다. 김영나는 팬톤사에서 만든 하나의 색상을 각 책상의 주된 색으로 삼는다. 그리고 그래픽 디자이너인 그녀 스스로 종이가 아닌 사물에 입힌 색상 샘플을 만들어낸 것이다. ‘테이블 A’에 A4 용지가 쌓여 있는 장면은 생각나지만, 사람이 앉아서 책상을 사용하는 모습은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책상은 책상인데, 사용하지 않고 보는 것으로 충족되는 책상. 이렇게 새로운 ‘사용법’을 만드는 것은 작가에게 중요한 문제다. 2013년 11월 말 커먼센터에서 이은우와 함께한 2인전 <적합한 종류>에서 두 작가는 ‘각기 주어진 조건과 공간 속에서 사물을 활용하는 법’을 작업의 전제 조건으로 삼았다. 이은우는 전시장에서 사용 가능한 물품을 만들고, 김영나는 전시장 로고를 디자인하기도 했다.

 

2012년 아뜰리에 에르메스에서 열린 홍승혜의 개인전 <광장사각> 전경 / 사진 제공. 아뜰리에 에르메스

광장과 나침반
홍승혜는 사물이 지시하는 질서를 자신이 점유한 공간 전체의 게임으로 만들어낸다. 그녀의 작품은 공간에 서 있는 개인/집단이 지닌 사고의 규율과 한계를 가뿐하게 갖고 논다. 추상화한 기호와 점·선·면을 압축적으로 사용하는 힘의 운용을 보여준다. 2012년 아뜰리에 에르메스에서 열린 개인전 <광장사각 (廣場四角)>에서는 화장실 표지판과 흡연 구역, 실제 식물, 그리고 화살표로 동서남북을 가리키는 나침반 등을 설치했다. 사각형을 광장의 기본 틀로 구축하고, 그의 작업 근간인 ‘유기적 기하학(Organic Geometry)’ 시리즈를 현실 공간 안에 ‘광장’이라는 위장막으로 배치했다. 실제로 기능하는 사물(표지판과 나침반 등)과 사고의 조율(전시의 동선)을 사각형의 틀로 교차시키며 일종의 위계를 세웠다. 작가는 자신의 미적 형식을 실험하기 위해 세계에 떠도는 사물을 사고방식의 스테레오타입을 다시 짜는 도형으로 재사용했다.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는 사물이 재료가 되거나 작품의 최종적 이미지 자체로 승인되면서, 사물은 다르게 불릴 수 있는 또 다른 이름을 획득한다.

 

윤지원, 무제-문서 시청, 싱글 채널 비디오, 7분 25초, 2015

구글 이미지 검색
사물에 온전히 집중할 수 없다는 말로 시작한 이 글은 사물 자체가 아닌 ‘상태’라는 단어에 의지하며 몇 가지 사례를 거쳐 여기까지 왔다. 마지막으로 작가들이 자주 사용하는 작품 제목 ‘무제’를 제목으로 삼은 윤지원의 작품을 언급한다. 윤지원은 2015년 ‘무제’라는 제목의 영상 연작 3점을 통해 오늘날 구글(Google) 인터넷 화면에서 잡히는 이미지의 도서관을 차근차근 훑어왔다. ‘무제’ 영상은 인터넷에서 검색한 이미지와 자막, 크레딧 화면에 길게 나열된 이미지 출처 기록만을 통해 오늘날 이미지가 저장, 사용, 순환되는 양상을 보여준다. 손쉬운 검색으로 재정렬된 이미지는 잠시 영사된 화면 안에 고정돼 있지만, 이내 다시 깜박거리는 커서의 움직임과 함께 다음 이미지로 바뀐다. 화면엔 사물의 정면 이미지가 차트를 넘긴 듯 등장한다. ‘무제’의 이미지에 담긴 미니멀한 태도는 반복과 복제를 폭넓은 형태로 반복하면서도 오직 ‘무제’라는 제목을 고집하는 데에 있다.

에디터 김재석 (jskim@noblesse.com)
현시원(독립 큐레이터, 시청각 운영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