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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의 기특한 외도

LIFESTYLE

지난 3월 25일, 중요무형문화재 제23호 가야금 산조 및 병창 이수자 이윤경과 김애리가 한국화가 정탁영 선생이 작곡한 가야금 산조를 무대에 올렸다. 4월 초에는 1세대 전위 무용가 홍신자의 작품 가 관객과 만났고, 4월 말에는 체임버 오케스트라 카메라타 알시오가 프라이빗 공연을 준비 중이다.

ⓒFondation Louis Vuitton / Martin Argyroglo
루이 비통 재단 미술관에서 열린 미국의 유명 래퍼 카녜이 웨스트의 특별 공연

많은 사람이 서울을 벗어나 산으로 들로 향한 식목일 오후, 서촌 대림미술관은 유독 평소보다 많은 관람객으로 붐볐다. 5월까지 연장한 <린다 매카트니 사진전-생애 가장 따뜻한 날들의 기록> 전시에 맞추어 채식주의자로 동물보호 운동에 앞장선 린다 매카트니의 정신을 기리기 위해 열린 ‘선데이 그린 라운지’ 행사 때문이었다. 행사의 주제는 ‘그린을 심자’. 준비한 프로그램 중 관람객이 가장 열광한 건 착한 음악 페스티벌 ‘그린플러그드 서울 2015’에 참여하는 ‘원 모어 찬스’와 ‘입술을 깨물다’의 공연 무대였다. 디 라운지는 예술과 함께 4월의 봄을 즐기기 위한 관람객으로 가득 찼고, 가수와 관람객은 ‘럭셔리버스’, ‘자유인’, ‘너=봄’ 등을 함께 부르며 열정적인 무대를 만들었다. 공연 입장료는? 린다 매카트니 사진전 티켓이었다.
대림미술관은 지난해부터 현재까지 30차례 이상 공연을 기획했다. 때로는 전시와 연계해, 때로는 크리스마스나 밸런타인데이 같은 특별한 날을 기념해 독일과 일본, 덴마크 등 해외 뮤지션을 포함한 국내 재즈, 팝, 인디 뮤지션을 초대해 하우스 콘서트 형식의 공연을 진행해왔다. 매 공연 큰 호응을 이끌어내는 편인데, 특히 대중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뮤지션이 대림미술관 공연을 통해 인기를 얻는 경우는 미술관과 관람객, 뮤지션 모두에게 일석이조다. ‘선우정아’, ‘김사월×김해원’의 공연이 그런 경우. 그들은 미술관 무대에 선 뒤 우연처럼 2014년, 2015년에 한국대중음악상에서 다수의 상을 수상하며 이슈가 됐다.
전시와 공연이 어우러진 시너지는 최근 들어 이슈화되고 있지만 사실 대림미술관이 미술에 음악을 접목한 건 2004년부터다. “미술관을 보다 흥미롭게 즐길 수 있는 ‘거리’를 만들어주고 싶어 ‘Jazz in the Museum’, ‘재즈 콘서트’, ‘아트 패키지’ 등을 구상했죠. 이 프로그램은 전시의 특성에 따라, 시기에 따라 비정기적으로 진행하다 여러 단계의 실험을 거쳐 2013년 정규 프로그램 ‘D PASS’로 탈바꿈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매주 토요일 공연, 토크, 워크숍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죠.” 홍보 담당자의 말이다.
아라리오뮤지엄도 옛 공간사옥 이전과 함께 제주도에 미술관을 오픈하면서 공연 프로그램을 활발히 기획 중이다. 복합 문화 공간을 지향하는 것. 3월 중순에 세계 3대 색소폰 마스터 중 한 명인 강태환의 색소폰 연주를, 4월 초에 전위 무용가 홍신자의 무대를 마련한 데 이어 4월 19일과 24일에는 서울과 제주도 뮤지엄에서 카메라타 알시오(Camerata RCO)의 공연을 준비했다. 카메라타 알시오가 속한 로열 콘세르트헤보 오케스트라는 네덜란드 왕립 오케스트라로 빈 필, 베를린 필과 함께 세계 3대 오케스트라로 꼽힌다. 이곳의 종신 단원으로 구성한 체임버 오케스트라 카메라타 알시오는 4월 말 예술의전당에서 지휘자 이반 피셔와 함께하는 무대를 위해 내한하는데, 그 기간에 아라리오뮤지엄 서울과 제주에서도 공연하는 것.

대림미술관 ‘D PASS’에서 진행한 몽키비즈니스의 버스킹 공연

ⓒ강태환
지난 3월 아라리오뮤지엄에서는 색소폰 마스터 강태환의 공연이 열렸다.

뮤지엄 관계자는 “카메라타 알시오는 명성에 비해 매우 소탈하고 캐주얼한 연주자들이에요. 처음 그들을 만난 건 2년 전 서울 공연을 마치고 네덜란드 대사관에서 열린 작은 콘서트에서였습니다. 미술관 공연을 기획하던 중 그들이 떠올랐어요. 소극장이야말로 체임버 오케스트라 공연에 최적의 장소라는 생각이 들어 아라리오뮤지엄에 대한 소개 자료를 보냈는데 큰 관심을 보였죠. 내한 공연이 미리 잡혀 있던 것도 저희에겐 좋은 타이밍이었고요”라며 공연에 대한 자부심을 비쳤다. 4월 19일 열리는 서울 공연은 전 석 프라이빗 공연으로 진행한다. 대신 소규모 체임버 오케스트라에 관심이 있는 관객을 위해 준비한 24일 제주 공연은 일반인도 신청할 수 있다. 그런데 안타까운 소식 한 가지. 이미 너무 많은 신청자가 몰려 일찌감치 신청이 마감되었다고.
3월 문화의 날을 맞아 국립현대미술관도 덕수궁관에서 故 정탁영 작가 전시(3월 25일~6월 28일)를 기념하며 가야금 연주자 이윤경과 김애리가 정탁영 작가가 작곡한 가야금 산조를 미술관 무대에 올렸다. 이 전시는 수묵추상에서 독자적 화법을 창출한 정탁영 작가의 1960~2000년대 작품 세계를 조명한 회고전이다. 산조 연주를 듣고 그의 작품을 감상하면 2006년 심장병으로 수술을 받은 후 더 이상 대규모 작업을 하지못하게 되어 작곡과 한시, 드로잉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던 작가의 심정이 절절이 와 닿는다. 전문 뮤지션뿐 아니라 아마추어 뮤지션의 공연을 기획하기도 하는데, 서울시립미술관 북서울미술관에서는 팬플루트 바람소리 앙상블의 공연을 펼쳐 미술관을 찾은 남녀노소에게 좋은 반응을 끌어내기도 했다.
미술관이 전시에서 공연으로 확장한 기획을 선보이는 건 미술이 단순한 시각적 체험만으로 완성되는 장르는 아니기 때문. 대림미술관 홍보 관계자는 “미술관에 온 관람객의 총체적 시선과 경험이 바탕을 이룰 때 제대로 된 예술 감상이 가능합니다. 그 때문에 전시와 공연을 별개로 볼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대림미술관은 공연마다 200석 전 석이 매진됩니다. 야외 프로그램의 경우에는 관람객 수가 더 큰 폭으로 증가하지요. 그런 의미에서 전시 관람객 수에 적지 않은 영향을 주는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전시 프로모션을 위해 공연을 기획하진 않아요. 주말, 지인들과 큰마음 먹고 미술관을 찾아주신 분들에게 보다 유익한 시간을 만들어드리고, 그들의 기억에 또 다른 즐거움을 남길 수 있도록 기획했기 때문입니다.” 한 미술 관계자도 말을 보탠다. “오늘날의 미술관은 예전처럼 작품을 보존하고 양질의 전시를 통해 작품을 관람하게 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습니다. 자신의 혁신과 발전을 위한 시간이나 리프레시를 위한 여가 시간, 혹은 중요한 만남을 위한 시간 등 다양한 시간을 채울 수 있는 공간으로 변모하고 있습니다. 이런 목적에 부응하기 위해 미술관은 복합 문화를 지향하고 레스토랑, 카페, 숍, 도서관, 영화관 등 다양한 부대시설을 마련하고 있는 추세죠. 공연은 이런 오늘날의 미술관 역할을 확장하는 데 일조하고 있는 요소 중 하나고요.”
지난 3월 7일부터 나흘간, 지난해 가을 파리 근교에 문을 연 루이 비통 재단 미술관에서는 파리 패션 위크 기간에 맞추어 미국의 유명 래퍼이자 프로듀서 카녜이 웨스트 특별 공연 ‘Nos Quartier Ont des Talents’(직역하면 ‘우리 동네에는 재능 있는 이들이 있습니다’라는 의미)가 열렸다. 7일 베르나르 아르노 회장이 공연을 즐기는 모습을 프랑스 언론에서 보도하기도 했다. 베르나르 아르노 회장은 루이 비통 재단 미술관을 지으며 그 중심부에 대강당을 배치했다. 오늘날 창작 예술 분야에서 활동하는 모든 작가와 음악가의 의도적 만남을 염두에 둔 것. 음악가에겐 경연의 공간, 작가에겐 감정 전달의 공간이면서 관람객에게는 창작의 정신이 전달되는, 완전체로서의 미술관을 꿈꾼 것이다.
과거, 전시를 보러 미술관으로 향하는 사람은 ‘컬렉터’라는 부류로 한정되어 있었다. 반면 지금의 미술관 관람객 대부분을 이루는 20~40대는 컬렉팅에 앞서 고급문화 콘텐츠를 쉽고 편리하게 즐기고 싶어 하는 부류라 할 수 있다. 문화 소비의 니즈가 점점 높아져가는 그들에게 자신이 지금 보고 있는 것이 미술이냐 공연이냐, 어떤 것이 더 권위 있고 명성이 높은가는 생각만큼 중요하지 않다. 그들에게 진짜 중요한 건 시대적·사회적·문화적 가치를 지닌 고급문화 콘텐츠를 이렇듯 다채로운 방향으로 즐길 수 있다는 사실이다. 점점 고급화되는 예술을 만끽하고 그것이 우리의 삶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일상이 비로소 예술이 되는 것. 그것이 바로 지금도 부지런히 문화 예술 플랫폼을 구축하고 좋은 콘텐츠를 선보이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그들이 꿈꾸는 것이다.

에디터 김이신 (christmas@nobless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