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SLETTER

노블레스 매거진의 뉴스레터를 신청해보세요.
트렌드 뉴스와 이벤트 소식을 가장 빠르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닫기

미술관 백스테이지

미분류

하나의 전시는 거미줄처럼 촘촘하게 얽힌 공동 작업의 결과물이다. 전시가 개막하기까지 필요한 수많은 과정과 비하인드 스토리, 그 치열한 전략에 대하여.

<동아시아 페미니즘: 판타시아> 전시 전경
Photo by 김상태
사진 제공. 서울시립미술관

전시 속 숨은 영역
전시 기획 과정은 돌발 상황의 연속이다. 정해진 매뉴얼이나 정답이 없는 준비 과정 이면에는 수많은 계산과 고민이 혼재하며, 이 과정에서 다양한 시도를 통해 최선의 결과물을 만들어낸다. 미술관을 예로 들어보자. 공공 미술관의 경우 전시 개막 2~3년 전 중·장기 계획을 토대로 작가와 작품을 선정한다. 콘텐츠가 정해지면 전시 성격과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할 타이틀과 그래픽 디자인, 공간 디자인 등 구체적인 사안을 결정한다. 기관에 따라 고유의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해 내부 디자이너와 작업하기도 하고, 특정 그래픽 디자이너나 건축가 등 전문가와 협업하는 경우도 있다. 도록, 홍보 책자, 포스터, 초청장 등 그래픽 디자인을 활용하는 인쇄 매체는 전시의 첫인상을 좌우하는 단서인 만큼 전시의 메인 아이덴티티를 변형해 사용하거나 새로운 폰트를 개발하고 전시와 외부를 연결하기 위한 스토리를 만들어간다. 인쇄 매체를 준비하면서 공간 기획을 함께 진행한다. 오래된 유물이나 거장의 국보급 명화의 경우는 철저한 보안 관리와 정확한 온도·습도 조절이 가능한 수장고의 보유 여부 등 구체적 조건에 따라 전시 여부가 결정된다. 이를 위해 미술관이나 박물관은 평소 시설 보고서를 통해 모든 제반 사항을 업데이트하면서 신뢰를 쌓는다.
과거에 전시 기획자가 직접 도면을 그리고 작품 설치 위치와 동선 등을 제안했다면 최근에는 전문가가 구체적으로 물리적 공간을 탐색하고 분업과 협업을 진행한다. 이때 전시 기획자는 전시의 큰 그림을 그리고 공간의 하이라이트와 섹션별 스토리, 장치를 촘촘하게 구성하는 역할을 한다. 밝은 조명이 필요한 회화 작품과 소리가 큰 영상 작품을 한곳에 두지 않고 작품의 위치와 스크린의 화면 크기를 계산해 동선에 방해가 되지 않게 하며, 사운드가 필요한 경우 헤드폰을 사용할지 오픈 사운드로 진행할지 정하는 등 작가의 시각언어를 가장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을 선택한다. 전시장에는 드러나지 않지만 반드시 지켜야 할 절대적 기준과 지침도 존재한다. 노약자의 동선을 배려해 전시장 출입구를 만들고, 휠체어를 비롯한 보조 의료 기구가 쉽게 다닐 수 있도록 미끄러운 재질이나 경사가 심한 바닥은 피한다. 또한 벽면 도색 작업 후에는 방염 작업 등 화재 시 불이 쉽게 번지지 않도록 안전 처리 작업을 진행한다.
작품을 해외에서 수급하는 경우에는 다이내믹한 상황에 대한 대비가 필요하다. <동아시아 페미니즘: 판타시아>전이 열린 지난해 9월, 중국 톈진 항 폭발 사고로 중국 작가 인슈전의 작품 2점의 운송에 문제가 생겼다. 중국 현지의 수출입 통관 업무가 일시적으로 중단되면서 작품 운송이 지연됐고, 인천항에 도착하기 하루 전 태풍을 만나 다시 중국으로 회항했다가 전시 개막 당일 새벽에 미술관에 도착하는 극적인 상황을 연출했다. 결국 다양한 항로를 계산하고 세관과 접촉하는 등 30여 명의 미술관 스태프가 협력해 무사히 전시장에 놓일 수 있었다.
그런가 하면 정치적·외교적 특정 사건이나 사회문제를 다루는 전시는 시기와 작품 선정, 해제 작성에 이르기까지 더욱 신중을 기한다. 지난해 여름에 열린 <광복 70주년 기념 북한 프로젝트>전이나 <제12회 한중일 대한민국 동양서예대전>처럼 외교적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경우엔 일부 보수 단체나 시민의 시위로 이어질 수 있으며 역사적 사건에 관한 작가의 입장과 해석에 대한 논의가 자기 검열과 외부 검열 이슈로 번질 우려도 있다. 이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각 분야, 다양한 국가의 전문 학자를 초빙해 보다 객관적이고 신뢰할 만한 정보를 게재하고 역사를 바로 알리는 교육 프로그램이나 특별 도슨트를 준비한다. 표현의 자유와 검열 사이의 아슬아슬한 줄타기는 현재 가장 빈번하게 대두되는 논의 중 하나로 앞으로도 전시 기획 과정에서 중요하게 다룰 전망이다.

백남준 10주기 추모전 <백남준∞플럭서스> 전시 전경
Photo by 김상태
사진 제공. 서울시립미술관

<에스프리 디올-디올 정신>전 준비 과정

장르적 특징에 따른 연출
전시는 장르나 주제에 따라 저마다 특별한 연출 방식과 장치 활용법이 있다. 최근 2~3년간 영화·패션·건축 등 다양한 장르에서 경계를 허무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는데, 특히 브랜드의 아카이브 전시는 세련되고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극대화하기 위해 공간에 사용하는 재료와 조명, 테마 설정에 남다른 주의를 기울인다. 지난해 6월 20일부터 8월 25일까지 열린 <에스프리 디올-디올 정신>전은 한국의 시각예술 작가와 협업을 통해 디올의 새로운 가치를 발견하고 예술과 패션 브랜드를 한 공간에 녹여냈다. 일반 전시와 달리 오트 쿠튀르 드레스와 오브제, 예술 작품을 함께 선보이는 자리로, 각 분야 전문가의 역량이 필요했다. 전시 수석 큐레이터로 프랑스의 패션학교 IFM의 교수이자 패션 큐레이터인 플로렌스 뮐러(Florence Muller)를 영입하고 뉴욕의 리먼 머핀 갤러리, 서울의 313아트프로젝트가 협업하면서 시너지를 낼 수 있었다.
8월 15일까지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린 여름방학 특별전 <드림웍스 애니메이션 특별전: 스케치에서 스크린으로>와 3월 13일 막을 내린 <스탠리 큐브릭>전은 영화의 특징과 아카이브를 함께 보여준 전시. 이처럼 감독의 연대기뿐 아니라 영화의 특징과 아카이브를 함께 소개하는 전시는 과거에 해외 기관에서 선보인 전시가 강력한 레퍼런스로 작용한다. 재편집 과정에서 층고와 면적에 따라 좌대를 디자인하고 동선의 편의와 방음, 작품 설치를 위한 파티션을 세운다. 각 작품이 제 위치를 찾으면 전시장 환경에 따라 조명의 컬러와 모양, 조도와 종류를 결정한다. 주제가 무겁거나 집중이 필요한 전시, 사운드나 영상 작품이 있는 경우엔 차분한 조명을 사용하고, 회화나 사진은 작품 본연의 색과 분위기를 잘 드러내기 위한 방법을 동원한다.
7월 말까지 열린 <백남준∞플럭서스>전은 작가의 타계 10주기를 맞아 기획한 특별전으로 유족의 도움을 받아 이전에 공개한 적 없는 자료와 작품을 선보였다. 개인전은 작가의 생애와 작품 세계를 깊이 있게 보여주는 동시에 유족과 전속 갤러리, 작품 대여자 등과의 긴밀한 협업이 필요하다. 또한 출판물에 실리는 작품 정보와 해제, 이미지 저작권을 꼼꼼히 확인해야 한다. 이는 작품 이력과 진품 여부를 증명하기 위해 중요하게 다뤄야 하는 부분이다. 최근 불거진 진품 논란은 미술계의 관행적 절차와 전문가에 대한 불신이 만들어낸 사건으로 향후 유사한 일의 재발을 막기 위해 정확하고 투명한 절차와 기록이 필요하다.

<스탠리 큐브릭>전 전시 전경
사진 제공. 서울시립미술관

<소란스러운, 뜨거운, 넘치는>전 준비 과정

전시 구성의 새로운 가능성
최근에는 사진, 건축 등 특정 분야를 위한 전문 큐레이터뿐 아니라 시각예술 작가가 전문 기술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전시 현장에 참여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지난해에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소란스러운, 뜨거운, 넘치는>전에는 작가 최정화가 전시 공간 디자이너로 참여했다. 그는 역사적 사건과 현상을 시각언어로 다룬 이 전시에서 현시대에 남아 있는 역사의 흔적을 각 시기의 분위기와 어우러지도록 자신의 언어로 표현했다. 영국을 대표하는 작가 그레이슨 페리는 2012년 대영박물관에서, 레바논 출신 작가 왈리드 라드는 2013년 루브르 박물관의 이슬람 미술 전시관에서 박물관과 협업해 소장품을 재구성하는 등 새로운 시각의 전시를 선보였다. 이런 시도는 소장품을 일종의 ‘죽어 있는 오브제’로 머무르게 한 디스플레이적 발상에서 벗어나 새로운 해석의 가능성을 제시했다는 평을 이끌어냈다. 또 소셜 네트워크가 강력한 전시 홍보 수단으로 떠오르면서 전시 기획 단계부터 이를 고려하는 경향이 짙어졌다. 포토 존을 마련하거나 특정 작품에 한해 이벤트를 진행하는 등 SNS를 활용한 마케팅 활동이 점점 다양해지고 있다. 이처럼 전시에는 겉으로 드러내지 않지만 최종 결과물을 만들기 위해 수많은 인력과 시뮬레이션이 동원된다. 그 시도가 다양할수록 양질의 전시를 완성할 수 있을 것이다.

에디터 임해경 (hklim@noblesse.com)
홍이지(서울시립미술관 큐레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