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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 설계하는 건축가

ARTNOW

미술관이나 갤러리를 설계하는 ‘예술’ 분야의 커미션은 건축가에게 꿈의 프로젝트이자, 가장 난해한 프로젝트로 여겨지곤 한다. 미술을 업으로 하는 클라이언트의 예민한 감각을 만족시켜야 할 뿐 아니라 전시 프로세스와 미술품에 대한 이해도 충분히 갖추어야 하고, 건물 자체가 하나의 작품으로 기능하는 상징성도 고려해야 하기 때문. 이렇듯 까다로운 미술계에서 잇따라 러브콜을 받는 건축가는 누구일까? 최근 뮤지엄, 갤러리 건축과 레노베이션의 사례 속에서 발견한 특별한 이름을 소개한다.

프릭 컬렉션 외관. © Nicholas Venezia.

젤도로프 아키텍처의 설립자이자 대표 건축가인 아나벨레 젤도르프. Photo by Ralph Mecke. Courtesy of Selldorf Architects.

Selldorf Architecture
아나벨레 젤도르프(Annabelle Selldorf)가 이끄는 뉴욕 기반의 셀도르프 아키텍처는 현재 미술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건축 회사다. 뉴욕 첼시의 데이비드 즈워너 갤러리, 노이에 갤러리, 하우저 & 워스 그리고 LA의 루벨 뮤지엄까지, 이들의 포트폴리오 중 절반 이상이 아트 프로젝트로 채워져 있다. 최근에는 뉴욕 프릭 컬렉션과 런던 내셔널 갤러리 세인즈버리 윙 레노베이션이라는 두 대형 프로젝트를 공개하며 다시 한번 몸값을 높이고 있다. 뉴욕을 대표하는 사립 미술관 프릭 컬렉션은 80년 만에 대대적 레노베이션을 진행하며 젤도르프 아키텍처를 선택했다. 이들은 100년 전 사용한 인디애나 석회암을 다시 채택해 과거와 현재를 절묘하게 잇는 방식을 선보였다. 건물의 층고를 조정해 새로운 공간을 창출했으며, 도서관 뒤편에는 약 2500㎡ 규모의 신축 건물을 지어 리셉션 홀과 강당을 마련했다. 젤도르프는 한 인터뷰에서 “우리는 대립적이기보다는 차분한 공간을 만듭니다. 공간 안에서 아름답고 이성적으로 인식될 수 있는 논리를 추구하죠. 명료함은 매우 가치 있는 특성입니다”라고 건축 철학을 설명하기도 했다. 실제로 이 건물은 100여 년의 시차를 두루 끌어안으며 자연스럽고 조화롭게 완성되었다. 한편, 미술관 개관 200주년을 맞아 대대적 레노베이션을 진행한 런던 내셔널 갤러리의 세인즈버리 윙도 최근 완성된 모습을 드러냈다. 젤도르프는 관람객의 동선을 방해하던 기존 기둥을 제거하거나 재구성하고, 한 면을 투명한 유리 패널로 교체해 ‘더 환영받고 접근하기 쉬운 공간’을 만들어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절제된 미학과 실용적 설계가 만나 굵직한 미술관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완수한 젤도르프 아키텍처는 지금 미술계가 원하는 건축적 방향성을 명확히 보여주고 있다.
SITE www.selldorf.com

테이트 세인트 아이브스의 세라믹 외장 파빌리온과 갤러리 천창. Photo by Hufton+Crow.

테이트 세인트 아이브스의 갤러리 공간. Photo by Jim Stephenson.

건축가 제이미 포버트. Photo by Olivier Hess.

Jamie Fobert Architects
영국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제이미 포버트(Jamie Fobert)는 최근 영국 주요 미술관의 증개축 프로젝트를 잇따라 성공시키며 주목받고 있는 인물이다. 케틀스 야드, 내셔널 포트레이트 갤러리 등 그의 작업은 역사적 건축물의 맥락을 존중하면서도 소박하고 세련된 공간으로 탈바꿈시키는 것으로 유명하다. 포버트는 “아이코닉 건축물을 세우는 데 집중하기보다, 사용자의 삶을 개선하고 영감을 주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 진정한 설계 동기”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그의 설계는 제약이 많은 장소와 역사적 맥락, 빛과 재료에 대한 섬세한 반응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영국 테이트 세인트 아이브스 확장 프로젝트는 이런 그의 철학을 잘 보여준다. 바닷가 절벽 아래에 묻힌 듯 설계한 갤러리는 대형 천창을 통해 은은한 자연광을 끌어들이며, 콘월 지역의 지형과 색채를 반영한 타일 외관으로 ‘조용한 건축’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했다. 2023년 재개관한 런던 내셔널 포트레이트 갤러리도 그의 대표작 중 하나다. 기존 건물의 3개 창을 4m 높이의 문으로 전환해 새로운 주 출입구로 만들고, 천장과 문을 복원해 더 많은 공공 공간을 확보했다. 역사적 건축 요소를 보존하면서도 방문객 경험을 극대화하는 데 중점을 두었으며, 주변 트래펄가 광장과의 조화로운 연결성도 강조했다. ‘더 짓지 않고, 더 많은 공간을 활용하는’ 접근 방식으로 완성한 이 프로젝트는 2024년 ‘RIBA 내셔널 어워드’를 수상하며 건축계의 주목을 받았다.
SITE jamiefobertarchitects.com

뉴욕 브루클린에 위치한 복합 예술 공간 아만트. © Nkubota.

대표 건축가 플로리안 이덴뷔르흐와 류징. Photo by Anna Bauer.

SO–IL
SO–IL은 서울 소격동에 위치한 국제갤러리 3관 설계를 통해 한국에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린 건축 스튜디오다. 노출 콘크리트 매스 위에 스테인리스스틸 메시를 덧입힌 외관은 하나의 조각 작품을 연상시키며, ‘미술관’ 혹은 ‘갤러리’ 건축에 대한 대중의 인식을 한층 넓혀준 프로젝트로 회자된다. 뉴욕을 거점으로 활동하는 SO–IL은 이처럼 그들만의 독창적 건축 언어를 기반으로 다양한 예술 공간 프로젝트를 선보이고 있다. 대표적 예로 2021년 브루클린에 완공한 복합 예술 공간 아만트 아트 캠퍼스는 SO–IL 특유의 여백과 재료 실험이 유려하게 구현된 작품이다. 돌출된 벽돌, 매끈한 스틸, 노출 콘크리트 등 서로 다른 물성을 지닌 재료를 조화롭게 활용해 깊이감과 그림자를 만들어내고, 공간의 몰입도를 높였다. 또 건물의 높이를 의도적으로 낮추고 여러 개의 출입구를 두어 지역과 공간의 경계를 자연스럽게 흐리며 커뮤니티로 확장될 수 있도록 설계했다. 홍콩의 K11 아트 & 컬처 센터는 제한된 공간에서도 예술적 정체성을 강렬하게 드러내는 SO–IL의 역량이 빛을 발한 프로젝트다. 상업용 고층 건물의 저층부 2개 층을 레노베이션해 전시 공간으로 탈바꿈시킨 이 프로젝트에서 SO–IL은 높이 9m, 지름 1m의 유리 튜브 475개를 사용해 전면 파사드를 과감히 재구성했다. 이를 통해 기존 건물과 명확히 분리되는 느낌을 주는 동시에, 유리라는 소재 특유의 투명성을 활용해 도시와의 상호작용을 유도하고자 했다. 감각적이면서 절제된 미학, 방문객의 흐름을 고려한 자연스러운 동선 설계 등 SO–IL은 마치 공간에 마법을 거는 듯한 방식으로 예술 애호가의 호기심을 자극하며 발걸음을 붙잡는다.
SITE so-il.org

뉴욕 카스민 갤러리 전시실. Photo by Roland Halbe. Courtesy of Kasmin, New York. © Walton Ford.

대표 건축가 마르쿠스 도한치. © Peter Lueders.

필립스 뉴욕 본사 건물. Photo by Roland Halbe.

studio MDA
studioMDA는 전시 공간 설계에서 독보적 포트폴리오를 자랑하는 건축사무소다. 뉴욕만 해도 메리언 굿맨, 알렉산더 그레이, 니노 마이어, 리슨 갤러리를 포함해 10여 개의 갤러리를 설계했으며 세라 모리스 개인전, 베니스 비엔날레, 주요 아트 페어의 전시 디자인에도 꾸준히 참여하고 있다. 그중 가장 주목받은 작업으로 뉴욕 파크 애비뉴 대로변 코너에 위치한 필립스 옥션 하우스 본사를 빼놓을 수 없다. 저층부에는 투명 유리를, 상층부에는 불투명 유리 입면을 적용해 개방감을 주는 동시에 공간을 효과적으로 분리하며 브랜드의 현대적 이미지를 시각적으로 드러냈다. 뉴욕 첼시에 자리한 카스민 갤러리도 studioMDA의 대표작으로 회자된다. 톱니 모양의 채광창을 통해 북쪽 하늘에서 확산광을 유입시키는 정교한 구조, 기둥 없는 플로어플랜, 조각 정원과 연결되는 자연스러운 동선까지, 갤러리 건축이 독립적 조형 언어를 가질 수 있음을 분명히 보여주는 사례로 꼽힌다. “우리 목표는 항상 예술과 사람의 관계를 증진하는 공간을 설계하는 것이다. 관람자가 예술과 그것을 본 공간을 함께 기억한다면 우리는 성공한 것이다. 독일어로는 이를 ‘라움게퓔(Raumgefühl)’, 즉 공간 감각이라고 한다.” 창립자이자 책임 건축가인 마르쿠스 도한치(Markus Dochantschi)의 말이다. 이들의 작품을 이제 서울에서도 만날 수 있다. studioMDA의 첫 아시아 프로젝트인 에스더쉬퍼 서울이 바로 그것. 공간은 회화와 조각 전시에 모두 적합한 최첨단 조명 시스템을 갖추고, 전시 벽면 수를 극대화하는 한편, 입구를 재구성해 거리에서도 강한 존재감을 드러낸다. 정제된 미감, 유연한 구성으로 ‘예술을 담는 그릇’으로서 기능을 극대화한 공간을 통해 전 세계 미술계가 studioMDA에 끊임없이 러브콜을 보내는 이유를 확인할 수 있다.
SITE studiomda.com

하우저 & 워스 파리 전시 공간. Photo by Nicolas Brasseur. Courtesy of H&W.

하우저 & 워스 파리 외부 파사드. Photo by Nicolas Brasseur. Courtesy of H&W.

CEO이자 설립자인 크리스토프 코모이와 대표 건축가 루이스 라플라스. © Karel Balas.

Laplace
파리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라플라스 건축은 세계적 갤러리 하우저 & 워스의 수많은 지점을 설계한 주역이다. 영국 서머싯의 농가를 개조해 큰 화제를 모은 하우저 & 워스 서머싯 갤러리를 시작으로, 휴양지 속 예술 공간이자 자연 속 갤러리의 이상적 모습을 제시한 하우저 & 워스 메노르카, 최근 파리의 오래된 건물을 개조한 하우저 & 워스 파리에 이르기까지, 하우저 & 워스가 지향하는 공간의 명확한 밑그림을 그리며 그들의 든든한 동반자 역할을 하고 있다. 이들이 만든 공간의 공통점은 역사적 건축물에 최소한으로 개입해 현대미술이 숨 쉴 수 있는 절제된 무대를 완성해냈다는 것. 19세기 파리의 타운하우스를 레노베이션한 하우저 & 워스 파리에서는 내부의 대리석 벽난로, 천장 몰딩, 목조 계단의 원형을 최대한 보존했으며, 하우저 & 워스 메노르카 역시 석조 구조와 천장의 목조 트러스를 그대로 남긴 채 건물과 주변 풍경이 유기적으로 어우러지게 했다. 설립자 루이스 라플라스는 “이미 존재하는 공간이라면 그 본연의 모습으로 남아야 하고, 가짜처럼 변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조각가 에두아르도 칠리다의 공간을 레노베이션한 칠리다 레쿠 뮤지엄 역시 주목할 만한 작품이다. 프랑스 바스크 지방의 농가 건축을 되살린 이 작업은 현대적이거나 과시적인 요소 없이, 공간 본연의 모습을 최대한 살려 조각가 칠리다의 철학과 미학에 부합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처럼 라플라스 건축은 그 장소가 오랜 시간 쌓아온 깊이를 존중하며, 예술을 조용히 받쳐주는 공간을 만드는 데 집중한다. 이것이 바로 이들이 ‘현대미술의 새집’을 짓는 방식이다.
SITE www.luislaplace.com

딜러 스코피디오 + 렌프로의 파트너 건축가들. Photo by Geordie Wood.

최근 런던 퀸 엘리자베스 올림픽 파크 내에 개관한 V&A 이스트 스토어하우스. © Hufton+Crow.

Diller Scofidio + Renfro
딜러 스코피디오 + 렌프로(DS+R)는 1981년 뉴욕에 설립한 건축사무소로 도시와 문화, 사람을 잇는 공공 건축 프로젝트로 명성을 쌓아왔다. 뉴욕의 도시 재생 프로젝트 더 하이라인을 비롯해 최첨단 건축의 새로운 기준이 된 더 셰드까지, 이들의 작업은 늘 도시의 풍경과 일상을 새롭게 바꿔왔다. 현대미술관 프로젝트에서도 DS+R의 영향력은 크다. 2015년 문을 연 LA의 더 브로드는 ‘베일(veil)’과 ‘보관소(vault)’ 개념을 결합한 조각적 외관으로 단숨에 LA의 랜드마크가 됐다. 최근 진행 중인 확장 프로젝트도 DS+R이 맡았는데, 기존 건물의 ‘보관소’ 개념을 외부로 드러내며 개방성을 한층 강조한 디자인으로 주목받고 있다. 뉴욕 현대미술관(MoMA)의 대규모 레노베이션 역시 DS+R의 주요 성과 중 하나다. 부족한 전시 공간을 확충하는 한편, 거리와 시각적으로 연결되는 로비, 라운지, 야외 테라스를 설계해 MoMA의 공공성을 강화했다. DS+R은 “문화와 공동체가 함께 번영할 수 있는 개방 공간을 창조하는 것”을 중요한 설계 원칙으로 삼아왔으며, MoMA 레노베이션에서도 그 철학이 구현되었다. 최근 화제가 된 프로젝트로는 런던 V&A 수장고인 V&A 이스트 스토어하우스를 꼽을 수 있다. 대부분 공개하지 않는 수장고를 일반인에게 개방해 소장품 보존과 연구 과정을 투명하게 드러낸 것이 핵심이다. 방문객은 ‘Order an Object’ 같은 서비스를 통해 유물을 직접 관람할 수 있고, 보존실과 서고를 거닐며 작품과 ‘맞닿는’ 경험을 할 수 있다. 이 프로젝트도 예술품과 관람자의 물리적 거리를 좁히며, 열린 문화 공간으로서 정체성을 불어넣은 수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SITE dsrny.com

 

박지혜(프리랜서)
에디터 김수진(jin@nobless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