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 옆 갤러리
차디찬 한겨울이지만 대구 미술계에는 여전히 훈풍이 불 전망이다. 정중동(靜中動) 속에 80여 개의 갤러리를 비롯해 시립미술관과 문화회관까지 다양한 곳에서 전시를 열어 관람객을 이끈다. 특히 대구미술관에서 개관 4년 만에 처음으로 선보이는 소장전과 함께 많은 갤러리에서 새해를 준비하고 있다.
대구미술관 어미홀에 놓인 최정화의 작품, ‘색색아트라운지’

토니 크래그의‘Point of View’
4년을 기다린 첫 만남, 대구미술관 <아트 라운지: 소장품전>
마치 즐거운 우리 집 라운지처럼 만들어놓은, 그래서 ‘아트 라운지: 소장품전’이라 이름 지은 대구미술관의 첫 번째 소장전을 소개한다. 어미홀에서 2월 1일까지 열리는 이 전시를 위해 총 300여 점의 소장품 중 15점의 설치 작품을 엄선했다. 미술관의 주요 역할 중 하나가 아카이브 보존이라는 점에 비추어볼 때 소장품전은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미술관이 지향하는 바를 드러내고, 그동안의 활동상을 뽐내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미술관은 1년에 한두 번은 소장 작품을 전시해 자신의 아카이브를 자랑한다. 대구미술관은 2011년 개관한 이래 4년 만에 처음 소장품전을 선보였다. ‘이제는 내놓을 수 있다’는 자신감의 표출일 것이다. 우리가 으레 생각하는 전시장이 아니라, 그야말로 라운지와 같이 넓은 로비에 작품을 가져다 놓았다. 이곳에 들어서면 쿠사마 야요이의 거대한 ‘호박’과 토니 크래그의 ‘포인트 오브 뷰’(2011년)가 먼저 눈을 사로잡는다. 세계적 거장의 작품을 공간을 장식하듯 전시한 것은 ‘미술관을 누구도 어려워하지 않고 재미있게 즐길 수 있도록’ 하려는 대구미술관의 기획 방향 때문이다. 그래서 전시장에선 아이들이 자유롭게 이 각도 저 각도로 옮기며 작품을 보곤 한다. 한편에는 지난 10월 문화역서울 284에서 <총천연색> 전시로 호평을 받은 최정화 작가가 만든 소파 ‘색색아트라운지’(2013년)가 있다. 색동옷을 곱게 차려입은 듯한 이 소파는 지난해 대구미술관 전시 후 작가가 기증한 것. 몇 분이고 앉아 있어도 그 누구도 제지하지 않는 이 소파는 전시를 한눈에 담기에 가장 좋은 스폿으로 자신 있게 추천한다. 최정화 작가가 싸구려 플라스틱 소쿠리를 이리저리 이어 붙이고 LED 조명을 담아 작품으로 재탄생시킨 ‘연금술’ 역시 이 전시에서 만날 수 있다. 어디 그뿐인가. 앤디 워홀의 그 유명한 ‘캠벨 수프’(1988년)와 故 백남준의 ‘티브이 하트’(1987년), 귀엽게 양 갈래 머리를 한 여자아이의 두상 속에 소녀가 상상하는 세계를 담은 Mr.의 ‘스트로베리 보이스’(2007년)도 관람객을 맞이한다. 한 가지 재미있는 점은 전시장을 둘러보다 보면 어디서인가 까닭 모를 트로트가 들려온다는 것. 어미홀 옆에서 진행하는 <아시아 현대사진전: 왕칭송·정연두> 전시 중 정연두 작가의 ‘보라매 댄스홀’(2001년)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다. 음악도 있고 편히 앉을 곳도 있으니 즐겁게, 그리고 편안하게 작품을 즐기기 바란다.
TV를 새집처럼 재탄생시킨 백남준의 ‘티브이 하트’

대구미술관 소장품전에서 아이들에게 가장 인기가 좋은 작품, 쿠사마 야요이의 ‘그레이트 자이언트 펌프킨’
우리 갤러리로 오세요
대구는 한국전쟁 이후 1970년대 한국 근대미술의 태동을 이끈 작가와 화랑 1세대에 이어, 지금은 그들의 후예가 미술계를 이끌고 있다. 대구 미술계가 큰 부침 없이, 트렌드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만의 정체성을 그대로 지켜올 수 있었던 것은 오랜 역사에 기인한다. 컬렉터의 성장세도 꾸준하다. 그런 만큼 올 연말에 이어 새해에도 대구 지역 갤러리의 활발한 움직임이 감지된다. 먼저 갤러리분도에서는 오스트리아 출신 미디어 아티스트 리하르트 요우훔(Richard Jouchum)의 한국 두 번째 개인전(12월 8일~31일)이 열린다. 그는 첫 번째 한국 전시도 이곳에서 열었을 만큼 인연이 깊다. 2010년 개최한 전시 <어! 이거 장난 아닌데?>에서는 성난 개를 흉내 낸 여러 사람의 모습을 비디오로 촬영해 전시한 ‘앵그리 도그’가 주목을 받았다. 주로 종교와 역사 그리고 신화가 현대에 어떤 모습으로 작용하는지 상황극으로 연출해 비디오에 담아내는 그의 최근작을 볼 수 있다. 여성의 몸을 심미적으로만 바라보는 전통적 미술관에 반기를 든 독일 출신 작가 키키 스미스는 리안갤러리(11월 19일~12월 20일)로 향한다. 억압받는 수동적 존재로 치부해온 여성의 신체, 상처 입거나 파편화된 몸 혹은 배설물 등을 노출함으로써 저항적 페미니즘을 표현한 그녀의 작품 90여 점을 전시한다. 서정적이고 섬세한 장면을 화면에 담아 동양적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추안슝의 비디오와 애니메이션 작품은 우손갤러리(12월 5일~2015년 1월 24일)에서 만날 수 있다. 고대와 현대의 중국 문화 사이에 일어나는 상호작용과 서사를 충실히 표현하는 그는 이번 전시에서 수묵화를 애니메이션처럼 만든 영상 작품도 소개한다. 추운 날씨에도 얼어붙지 않을 대구 미술계의 2015년을 응원한다.
2010년 갤러리분도에서 열린 미디어 아티스트 리하르트 요우훔의 전시
에디터 신숙미(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