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로 시대를 읽는다는 것
2년 동안 준비해온 삼청동 PKM갤러리를 드디어 공개했다. <윤형근>전과 함께 새로운 원년을 다진다는 박경미 대표를 새 보금자리에서 만났다.
삼청동에 자리한 PKM갤러리 외관
PKM갤러리의 메인 전시실
© Kyungsub Shin
정원과 이어지는 1층의 ‘카페PKM’
삼청동에 따스한 봄 햇살이 내려앉은 날, 이제 막 개관한 PKM갤러리의 새 공간에 들어섰다. 입구부터 새하얀 공간이 사람을 묘하게 끌어들이는 느낌이다. 높이가 5.5m나 된다는 전시실의 천장을 올려다보자마자 떠오른 생각은 ‘이 공간에서 앞으로 수많은 대작을 만나게 되겠구나’ 하는 것. 아니나 다를까. PKM갤러리 이전 재개관 특별전으로 마련한 것은 단색화의 거장 <윤형근>전이다. 묵향이 느껴지는 듯한 대작들이 새 공간에 처음으로 걸렸다. 그러고 보면 윤형근 화백 특유의 웅대한 정서가 넓고 고요한 전시실 공간의 느낌과도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국내외 미술 시장의 흐름을 정확하게 읽고 비전을 실현해온 박경미 대표는 한국 미술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중 한 명으로 꼽힌다. 국제갤러리에서 11년간 디렉터로 활동하다 2001년 화동에 처음 자신의 갤러리를 오픈한 그녀는 2006년 PKM갤러리 베이징을, 2008년 청담동에 PKM트리니티갤러리를 열었다. 그리고 최근에는 임시 갤러리에서 프로젝트 전시를 하며 삼청동 갤러리 오픈을 준비해왔다. 위치를 선정하고 지하 2층, 지상 2층의 건물을 지어 올리기까지 2년이 걸렸다. 그녀는 이제 삼청동 갤러리 한 곳에 모든 에너지를 집중하려 한다. 가장 이상적인 위치를 찾아 터를 잡고 건물을 지어 올리기까지 기다림의 시간이 길었던 만큼 이곳에서 대형 기획 전시를 줄지어 선보일 계획이다. <윤형근>전 오프닝을 앞두고 박경미 대표를 만나 PKM갤러리의 향후 행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번 재개관을 오랫동안 준비해오셨죠. PKM갤러리가 이제 삼청동에서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새 보금자리의 위치는 어떻게 선택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삼청동은 예전에도 문화적 분위기로 가득한 동네였는데,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이 생기면서 더욱 확고하게 문화 구역으로 자리 잡은 걸 느꼈어요. 그래서 이 지역에 터를 잡아야겠다고 결심하고 장소를 찾던 중 우연히 이곳을 보게 됐죠. 아래쪽에 축대가 있고 위에는 가정집과 정원이 있었는데, 축대를 파내는 공사만 할 수 있다면 갤러리 공간을 만들고 위쪽 정원도 되살릴 수 있을 것 같더군요. 그렇게 터를 정한 게 2013년이었어요. 허가가 나는 데 1년이 걸렸고, 공사도 1년 가까이 진행했죠. 결국 처음 생각한 그림대로 갤러리를 지을 수 있었습니다.
카페 공간과 정원 그리고 갤러리에서 내려다보는 전망이 아주 좋습니다. 갤러리의 구조를 보면 대표님이 이곳을 단순히 전시 공간으로만 생각하진 않았다는 게 느껴집니다. 건물을 지으면서 어떤 공간을 추구하셨나요? 테라스가 있는 카페와 옥상이 자랑거리 중 하나예요. 전시 오프닝을 비롯해 행사를 열어야 하는 경우가 많은데, 장소를 옮기지 않고 한 건물에서 다 진행할 수 있게 됐죠. 수익을 내는 수단으로 카페를 운영할 생각은 없었고, 갤러리 비즈니스의 한 부분으로 여겼어요. 요즘은 갤러리에서 전시만 보고 가는게 아니라 다양한 문화 요소를 즐기는 추세니까요. 전시 감상을 위해 방문하더라도 카페에 들러 차를 마시고 음악을 들으며 여유롭게 쉬었다 가는 등 복합적 역할을 하는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재개관 기념 전시 <윤형근>전은 2007년 작가가 작고한 이후 국내외에서 개최하는 첫 번째 개인전이죠. 재개관이 여러모로 중요한 의미가 있는 만큼 첫 번째 전시 작가 선정도 숙고하셨을 것 같은데, 어떻게 결정하신 건가요? 윤형근 작가는 한국 근·현대미술사에서 아주 중요한 분이니 미술사적으로, 그리고 국내외 미술 시장에서 그분을 바로 세워드려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임시 갤러리에서 전시하는 동안에도 윤형근 작가의 작품을 가지고 해외 주요 아트페어에 계속 참여했는데, 그때마다 해외 컬렉터의 반응이 뜨거웠어요. 이제는 유럽과 미국의 갤러리와 협업을 통해 조직적으로 프로모션을 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된 것 같아요. 국내에서도 단색화 작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상황이니 지금이 윤형근 작가를 올바로 조명할 때라고 판단하고 재개관전을 결정했죠. 이번 전시에서는 1970년대 초반부터 1990년까지 대작을 소개합니다.
그러고 보면 PKM갤러리가 작고한 작가를 조명하는 것은 처음이 아닌가 싶어요. 맞아요. 작가가 작고한 뒤에는 활동이 멈추는 경우가 많아요. 아직 미술 시장의 인프라가 튼튼하지 않아 유족이나 화상이 미술 시장에서 작품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기 힘든 면이 있죠. 그래서 이번에 우리가 작고 작가를 새롭게 바라볼 수 있도록 모범을 보이자는 생각도 했습니다. 2013년 말부터 우리 갤러리에서 윤형근 작가의 유작을 관리한 것이 계기가 됐죠. 이번 전시에 맞춰 작가의 40여 년 작업 세계를 망라하는 순영문판 화집을 출간했습니다. 또 카탈로그 레조네 준비 작업도 시작했어요. 현재 작가의 작품을 연대별, 사이즈별로 분리하는 데이터베이스 작업을 하며 유작 재촬영을 마친 상태고, 1~2년 정도 뒤에 나올 예정이에요.
PKM갤러리는 해외 주요 아트 페어에 빠짐없이 참여하면서 명성 있는 갤러리와 꾸준히 교류해왔죠. 현재 소속 작가 중 세계적 작가도 많고, 국내 작가를 해외에 소개하는 면에서도 늘 한발 앞서나가는 느낌입니다. 윤형근 작가 외에 최근 해외 아트 페어에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 작가는 누구인가요? 이불 작가가 여전히 아트 페어에서 주목받고 있고, 예전에는 어렵게 받아들이던 작가의 작품도 최근 재평가되고 있어요. 특히 코디 최 작가의 경우가 그렇습니다. 해외의 반응이 뜨거워요. 5월에는 쿤스트할레 뒤셀도르프에서, 2016년 에는 한불 수교 130주년을 맞아 마르세유에서 전시할 예정이에요. 15년 전에만 해도 컬렉터들이 어렵게 느꼈을 법 작가의 작품이 요즘 해외 미술계에서 재조명되고 있다는 사실에 보람을 많이 느껴요. 지금까지 해온 것처럼 앞으로도 일관된 자세로 가능성 있는 작가를 찾아 열심히 소개할 계획입니다.
어떤 작가가 발굴해 소개할 만한 작가, 혹은 해외 무대에 적극적으로 알릴 만한 작가라고 생각하세요? 작가를 보는 대표님만의 관점이 궁금합니다. 작품이 단편적으로 읽히지 않고 여러 각도에서 조명할 만한 레이어가 있는 작가가 좋은 작가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작가의 작품으로 그 시대를 읽을 수 있는지 염두에 두죠. 꼭 사회적 발언을 한다거나 그것을 작품에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더라도 작가가 시대에 얼마나 예민하게 반응하는지가 중요해요. 살아 있는 작가라면 현재의 삶을 이야기하고 있는지, 작고한 작가라면 그들이 살아온 시대를 이야기하는지 말이죠.
그런 동시대성이 있는 작가를 소개해왔기에 PKM갤러리가 한국 미술계에서 뚜렷한 정체성을 형성할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티스트의 가능성을 판단하고 그것을 고수하는 일이 쉽지만은 않았을 것 같은데요. 갤러리의 가장 중요한 콘텐츠는 작가죠. 지금 당장 반응을 얻지 못해도 동시대성이 있는 작가라면 비전을 갖고 길게 보는 편입니다. 우리나라보다 미술 문화가 앞선 국가의 경우를 봐도 그런 방향으로 가는 것이 당연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어요. 돌아보면 우리나라도 지난 10년 사이 아주 많이 달라졌고 흐름이 그렇게 바뀌고 있어요. 물론 앞일을 확신할 수는 없지만 기본적으로 작가에 대한 믿음을 갖고 지원하면서, 동시에 컬렉터의 입장도 100% 이해하려고 노력합니다.
2001년 PKM갤러리 개관 이후 지난 14년간 일관되게 추구해온 목표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함께 일하는 작가들을 제대로 보여주고 평가받게 해야 한다는 거예요. 무엇보다 저는 화상이니까 작가의 작품을 구입한 컬렉터가 시간이 흘러서도 자신의 안목에 만족을 느끼도록 하는 게 목표죠. 제가 걸어온 길이 처음부터 잘 알고 있었다거나 뚜렷한 신념을 가지고 시작한 건 아닌데 지나고 보니 그게 맞는 길이더군요. 삼청동 갤러리에서도 지금까지 걸어온 방향으로 열심히 나아가려고 합니다.
무엇보다도 삼청동 PKM갤러리에서 전시를 관람하고 전망 좋은 카페에서 쉬어갈 수 있다는 점이 많은 이들에게 기쁜 소식일 것 같습니다. <윤형근>전 이후에는 어떤 전시를 만날 수 있을까요? 두 번째 전시로 6월에 <존 발데사리(John Baldessari)>전을 기획했고, 7~8월에는 미술뿐 아니라 다른 분야에서 작업하는 아티스트들과 함께 실험적 전시를 준비 중이에요. 그리고 9월에는 이불 작가의 전시가 있는데, 2010년 PKM트리니티갤러리에서 개최한 뒤 국내 개인전은 5년 만입니다. 그 후에는 유럽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토비 지글러(Toby Ziegler)와 카르스텐 횔러(Carsten Hller)의 전시가 이어질 예정이에요.
매달 방문해도 다른 전시를 만날 수 있을 정도로 촘촘한 일정이네요. 마음에 드는 공간을 마련한 만큼 계속 좋은 전시 프로그램을 선보여야죠. 다시 시작하는 원년이니까 좀 바쁘게 움직여보려고 해요.

윤형근, Ultramarine Umber, 1976
윤형근, Umber-Blue, 1975-1976
에디터 안미영 (myahn@noblesse.com)
사진 강태욱(인물) 사진 제공 PKM갤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