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은 내 운명
인생을 살다 보면 운명이라는 단어를 쓰고 싶은 순간이 있다. 박은영 아나운서에게는 KBS

실크 블라우스와 독특한 패턴의 스커트는 Orla Kiely
‘운명’은 사람 사이에서만 통용되는 단어가 아니다. 음악, 그림 같은 예술 작품도 내 인생을 바꾼다면 ‘어제’와 ‘그날’을 나누는 기준이 될 수 있다. KBS 박은영 아나운서에게는 2011년 1월에 만난
그녀는 2014년 4월까지
“확실히 작품을 보는 시야가 넓어진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 회화를 좋아하는데 추상화는 좀 이해하기 힘들었어요. 사람들이 마크 로스코, 바넷 뉴먼의 그림을 보고 감동의 눈물을 흘리는데 전 사실 공감이 잘 되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대학원에 다니던 중 뉴욕 현대미술관에서 바넷 뉴먼의 ‘인간, 영웅적이고 숭고한’을 감상할 기회가 있었는데 미술관 벽면을 가득 메운 작품 앞에 서니 그 장엄함에 압도돼 아무 말도 안 나왔어요. 미술을 공부하면서 가장 달라진 점은 작품 이면에 담긴 이야기나 작가의 작품 세계에 몰두하게 된 거예요. 대학 시절 유럽 여행 중에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을 봤을 땐 단순히 ‘아름답다’고만 느꼈지만 지금은 그 속에 담긴 작가의 의도와 표현 기법이 눈에 들어와요.”
미술 애호가로서 더 많은 것을 알고 느끼는 것은 분명 행복한 일이지만 2년 동안 방송 활동과 학업을 병행하는 것이 말처럼 쉽진 않았다. “미술을 좀 더 자세히 알고 싶다는 열망에 시작했지만 생각보다 어려웠어요. 매 학기 과목마다 소논문을 작성해야 하고, 서양 미술 전공이다 보니 읽어야 할 원서도 방대하죠. 포기하고 싶은 순간도 있었지만 꾸준히 하다 보니 이제 세 과목만 남았네요. 졸업 논문 통과라는 또 하나의 관문이 있지만 더 많은 것을 알아갈 수 있어서 뿌듯합니다.”
그나마 요즘은 방학이라 조금은 여유 있게 그동안 보지 못한 전시를 찾아다니는 중이라고. 얼마 전 한국 근·현대미술 수업을 들은 후 김수자 작가에게 관심이 생겨 국립현대미술관의 <마음의 기하학> 전시를 봤고, 삼성미술관 리움의 <올라푸르 엘리아손: 세상의 모든 가능성> 전시를 통해서는 오랜만에 힐링하는 시간을 만끽했다.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에서 3월 26일까지 열리는 <르누아르의 여인> 전시 전경. 박은영 아나운서는 여인의 아름다움을 화사한 색채로 표현한 르누아르 작품을 감상하며 일상 속 행복을 만끽했다.
이쯤에서, 좋아하는 작가가 누구냐고 묻자 그녀는 한 명만 손꼽기에는 너무 많다며 곤혹스러워했다. “좋아하는 음식을 하나만 택하라는 것처럼 너무 어려운 질문이에요. 한국 작가 중엔 유영국과 서도호 작가를, 외국 작가는 피카소와 르누아르를 좋아해요. 당시 피카소가 창안한 큐비즘은 지금 봐도 정말 기발해요. 르누아르의 그림은 보기만 해도 행복해져서 좋아하고요. 르누아르의 ‘책 읽는 소녀’와 ‘두 소녀, 모자 장식하기’ 같은 그림은 일상 속 행복에 대해 생각하게 하죠.”
박은영 아나운서는〈tv 미술관〉이후 <위기탈출 넘버원>, <비타민> 등을 거쳐 현재〈kbs 6시 뉴스타임〉에서 친근하면서 신뢰감 있는 모습도 보여주고 있다. 어느덧 아나운서 10년 차인 그녀에게 예술은 인생의 든든한 쉼터가 됐다. “고요한 미술관에 서서 작품과 오롯이 대화하고 교감하는 순간이 너무 행복해요. 작품마다 전하는 메시지가 다르고, 하나의 작품에 작가의 영혼이 함축돼 있다고 생각하면 그 사실만으로 감동스럽거든요. 진심으로 많은 사람이 미술 전시에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운동도 되고 아이들의 창의력 발전에 도움이 되는 등 장점이 정말 많거든요.”
이렇듯 예술을 벗 삼아 10년간 한결같이 최선을 다한 결과, 박은영 아나운서는 2016년 이화여자대학교에서 올해의 언론인상을 수상했다. 앞으로의 계획을 묻자 그녀는 “그동안 예능을 통해 전한 유쾌함을 바탕으로 신뢰감을 주는 언론인으로 거듭나고 싶어요. 그리고 미술을 사랑하는 애호가로서〈tv 미술관〉같은 미술 프로그램으로 대중이 미술을 친근하게 여길 수 있도록 기여하고 싶습니다. 미술 공부를 하기 전에 지인에게 왜 비싼 그림을 구입하느냐고 물은 적이 있어요. 그러자 그분은 ‘사랑하는 사람을 가까이 보고 싶은 것처럼 그림도 보면 기분이 좋아진다’고 하시더라고요. 이젠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알 것 같아요. 작가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미술 작품을 통해 위안을 얻고 행복해질 수 있거든요. 더 많은 사람이 예술을 통해 행복을 느꼈으면 해요”라고 대답했다.
인터뷰 내내 ‘미술 예찬론’을 펼치는 그녀의 열띤 어조에서 그 말이 진심임을 느낄 수 있었다. 그녀의 바람대로 예술이 그녀의 삶을 행복하게 하고, 그녀가 대중에게 예술로 행복을 전할 수 있기를 바란다.
에디터 최윤정(amych@noblesse.com)
사진 김제원(인물) 취재 협조 르누아르전시본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