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이 돈이 될 때
다시금 미술품 가격을 두고 떠들썩한 논란이 벌어졌다. 천정부지로 치솟는 미술품 가격은 컬렉터와 경매사, 미술 기관, 미디어, 아트 딜러와 갤러리, 그리고 세계경제 상황 등이 복잡하게 얽혀 만든 또 다른 ‘작품’이다. 전 세계 소득 수준 상위 1%인 ‘슈퍼리치’들이 한정된 미술품을 두고 벌이는 뜨거운 경쟁의 현장을 전한다.
지난 5월 15일 뉴욕 크리스티 경매 ‘Looking Forward to the Past’에서 경매 사상 최고가로 낙찰된 피카소의 ‘알제의 여인들’ 경매 현장
지난 5월 15일,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피카소의 작품 ‘알제의 여인들’(1955년)이 1억7940만 달러(약 1968억5562만 원)에 판매됐다. 판매 수수료 12%가 포함된 이 가격은 경매 역사상 가장 높은 작품가로 기록됐다. 종전의 왕관은 2013년 11월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1억 4200만 달러에 낙찰된 프랜시스 베이컨의 ‘루치안 프로이트의 세 가지 연구’(1969년) 차지였다. 이날 경매에는 알베르토 자코메티의 청동 조각 ‘손가락으로 지시하는 남자’가 경매에 등장한 그의 작품 중 가장 높은 가격인 1억2624만 달러에 판매됐다. 조각 부문 세계 최고 경매가다. 앞서 언급한 작가보다 연배가 낮은 동시대 미술가 피터 도이그도 자신의 경매 기록을 경신했다. 한국 방송 매체의 저녁 뉴스도 뉴욕에서 벌어진 이 소식을 전하기 바빴다. 곧 여기저기서 불만 섞인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도대체 현대미술이 뭐길래 한 작품에 2000억 원에 가까운 돈을 낸단 말인가?
알베르토 자코메티, ‘손가락으로 지시하는 남자’, Courtesy of Christie’s Images Ltd. 2015
©2015 Alberto Giacometti Estate/Licensed by VAGA and ARS, New York
“왜 몇몇 미술 작품은 그렇게 비싼 것일까?”
현대미술 경매가는 늘 세상의 이목을 집중시킨다. 그 높은 관심은 예술에 관한 존재론적 고민보다는 가십거리의 성격을 띤다. 유명 연예인의 급작스러운 결혼 발표 소식만큼, 이성적 사고 논리로는 그 어마어마한 작품가의 산출 배경을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일 것이다. 지상 최대의 아트 페어 아트 바젤이 열리는 스위스에 있는 바이엘러 재단이 엮은 <무엇이 미술인가?>라는 작지만 알찬 개론서는 미술에 관한 일반적 궁금증 27가지를 담고 있다. 그 책의 한 챕터에 속한 질문이 지금 여기에서 우리가 모두 궁금해하는 내용이다. “왜 몇몇 미술 작품은 그렇게 비싼 것일까?” 답변으로 제시한 작품의 판매가를 결정하는 몇 가지 요인은 다음과 같다. 얼마나 유명한 작가의 작품인가, 주요 전시나 출판물에 특별히 언급된 적이 있는가, 작가가 전성기에 제작한 작품인가, 작품의 이전 소유자나 그와 얽힌 이야기는 무엇인가, 얼마나 희귀한가, 진품인가, 가짜인가, 아트마켓에 어느 정도의 빈도로 등장했는가, 보존 상태는 좋은가, 아트 마켓의 트렌드에 부합하는가?
여기에 피카소의 경매 작품을 대입해보자. 우선 ‘피카소’라는 엄청난 브랜드가 있다(그는 현대미술 역사상 가장 훌륭한 작가이자 영원한 스타다. 작품을 제작한 1955년에도 이미 거장의 반열에 올라 있었다). 이 작품은 프랑스 낭만주의 화가 외젠 들라크루아의 동명 작품을 재해석해 그린 15개 연작 중 ‘마지막’ 작품이다(‘명작을 재해석한 명작’이라는 이중의 수사는 현대미술을 설명하는 단골 멘트다. 무엇보다 ‘처음’과 ‘마지막’이라는 단어는 늘 인간의 욕망을 자극한다). 피카소는 서구 남성 화가라면 한 번쯤 고민해봤을 ‘할렘의 여인들’이라는 소재를 자신의 서명과도 같은 강렬한 색채와 거침없는 선, 입체파 특유의 기하학적 형태 분할로 캔버스에 담았다(한마디로 누가 봐도 피카소의 작품이다). 게다가 이 작품은 크리스티 이브닝 경매를 홍보하는 메인 이미지로 몇달 전부터 노출됐다. 어떻게든 작품을 사겠다는 확고한 의지와 돈, 그리고 막대한 금액을 선뜻 내겠다는 용기를 장전했다면 얼굴을 알 수 없는 다른 사냥꾼과 경쟁해 승리를 만끽할 만한 ‘먹잇감’이 틀림없었다. 물론 낙찰될 때까지 서로 눈치를 보며 치열하게 경쟁하는 경매장 특유의 과열된 분위기도 신기록 달성에 한몫했을 것이다.
크리스티 경매 이틀 뒤, <뉴욕타임스>는 치솟는 미술품 가격이 전 세계적 부의 불평등 현상과 직접 연결된다는 기사를 발표했다. 얼마를 내더라도 작품을 사들여 거실에 걸 수 있는 억만장자가 전 세계에 그만큼 늘어났기 때문이라는 것.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나 증시 폭락을 경험한 부자들은 ‘미술품’이 자신의 부를 세련되게 과시하는 좋은 수단이자, 현금이나 금처럼 안전한 투자처라고 판단하고 있다. 몇 년 사이 아트 마켓의 강자로 급부상한 중동, 중국, 러시아의 신흥 재벌이 왜 동시대 미술을 향해 유별난 애정 공세를 펼치는지 생각해보자. 몇몇 매체에서는 피카소의 작품을 전화로 구매한 사람이 카타르 왕실 인사인 전 총리 하마드 빈 자심 빈 자베르 알타니라고 보도했지만, 크리스티는 이를 공식 부인했다. 매년 미술 잡지 <아트리뷰>가 전 세계 미술인을 대상으로 선정하는 ‘아트 파워 100’에 2013년 카타르 국립미술관 관장인 알마야사 공주가 1위로 이름을 올린 것은 이런 현상을 거울처럼 비춘다.
피터 도이그, ‘술에 취한’
미술을 움직이는 힘의 작용
그렇다고 미술품 가격이 재벌의 경쟁에만 의존하는 것은 아니다. 미술계는 잘 만든 시계처럼 크고 작은 톱니바퀴에 따라 촘촘하게 움직인다. 작가와 작품, 작품을 소유한 컬렉터, 작품의 매매를 중재하는 딜러, 미술관 관장이나 평론가, 크리스티나 소더비 같은 경매사 등이 미술품의 운명을 쥐락펴락하는 주인공. 그들은 각자의 요구와 욕망에 따라 힘을 겨루거나 적극적으로 협조하면서 작품 가격의 적정선을 유지한다. 이른바 몸값이 오른 작가의 작품은 ‘웨이팅 리스트’에 따라 철저히 통제되고, 한번 비싸게 팔리면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그 밑으로 거래하지 않는다. 해당 작품이 경매나 전시에 언제 등 장할지도 기약할 수 없다. 경매사는 좋은 작품을 얻기 위해 각종 부가 서비스와 최소 가격 보장을 약속하며 컬렉터를 유혹하기 바쁘다. 미술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아는 사람들은 이번 크리스티 경매에서 약 290억 원에 팔린 피터 도이그의 술‘ 에 취한’(1990년)이 새 경매가를 기록할 것이라고 일찌감치 예견했다. 그 전후 사정을 요약하면 이렇다. 2014년 11월부터 바이엘러 재단 미술관에서 그의 개인전이 열렸다. 해를 넘겨 2월에는 미술관이 6년 넘게 준비한 고갱의 전시도 함께 열렸다. 근대미술의 개척자 고갱과 동시대 미술 스타 도이그의 랑데부였다. 미술관과 평단은 도이그를 고갱은 물론 보나르, 마티스와 같은 거장의 반열에 오른 위대한 작가로 치켜세우기 바빴다. 고갱의 전시가 개막하기 이틀 전, 바젤의 컬렉터 루에디 스테헬린이 소유한 폴 고갱의 ‘언제 결혼하니?’(1892년)가 카타르 왕가에 약 3억달러(약 3272억 원)에 팔렸다는 기사가 신문 지면을 장식했다. 바이엘러 전시의 홍보 이미지로 사용한 작품이었다. 이런 상황의 배후에는 2008년부터 바이엘러 재단 미술관의 감독을 역임한 샘 켈러가 있었다. 그는 2000년부터 아트 바젤 디렉터로 활동하며 페어의 전성시대를 이끈 입지전적 인물로 평가된다. 미술품 가격을 둘러싼 힘의 역학과 셈에 누구보다 밝다는 말이다. 참고로 바이엘러 재단은 비영리 기관이다.
에디터 김재석 (jskim@noblesse.com)
사진 제공 크리스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