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밈이 된 마스터피스

ARTNOW

웃고 웃기고 무릎을 ‘탁’ 치고. 동시대 밈으로 자리 잡은 그림.

오른쪽 프란스 할스, The Lute Player, c. 1623. ©Musée du Louvre, Paris, Department of Paintings
왼쪽 프란스 할스, The Laughing Cavalier, 1624. ©Trustees of the Wallace Collection, London

보자마자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짓는 그림이 있다. 이럴 때 이유는 보통 두 가지다. 그림 자체가 웃기거나, 그림에서 파생된 무언가가 생각나 웃게 되거나. 네덜란드 화가 프란스 할스(Frans Hals, 1582~1666)의 작품이 그렇다. 그가 그린 누군가의 얼굴은 무표정으로 일관하던 비슷한 시기의 초상화와 다르게 생동감 넘치는 웃음이 매력 포인트다. 류트(lute, 르네상스와 바로크 시대 현악기)를 연주하면서도, 거나하게 취한 상황에서도 누군가를 향해 살인 미소를 날린다. 잠깐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절로 좋아질 정도. 심지어 어떤 작품은 ‘짤방(재미있거나 관심을 끄는 사진)’과 ‘쇼츠(60초 이내 짧은 영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얄미운 웃음이 오버랩되기도 한다. 그야말로 시대를 넘나드는 웃음 유발자다. 그런 프란스 할스의 연대기를 살펴볼 수 있는 〈The Credit Suisse Exhibition: Frans Hals〉(~2024년 1월 21일)가 현재 런던 내셔널 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다. 전시 개막과 함께 알게 모르게 일상 곳곳에 스며든 그의 작품이 재조명돼 눈길을 끈다.
프란스 할스는 네덜란드의 황금시대(golden age, 군사·과학·무역·미술이 세계의 중심으로 급부상한 시기)를 상징하는 작가다. 주지하다시피 17세기 유럽 미술은 세습 귀족과 종교인의 부와 권력에 기댔다. 하지만 네덜란드엔 상인이 존재했다. 호방한 그들 덕분에 당시 네덜란드 미술은 시민의 평범한 삶을 캔버스에 녹여낼 수 있었다. 대표적 작가로 중산층이 사랑한 국민 화가 렘브란트 판레인(1606~1669), 델프트의 풍경을 묘사한 피터르 더 호흐(1629~1684),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의 요하네스 페르메이르(1632~1675) 등이 있다. ‘일상으로의 초대’라는 주제 때문이었을까. 이들과 프란스 할스의 작품은 후대에 와서 자유롭게 또 다양하게 가공됐다. 어쩌면 패러디란 표현이 더 정확할지도 모르겠다. 특히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는 분야를 가리지 않고 한결같이 재해석의 즐거움을 선사하고 있다.
프란스 할스의 ‘웃고 있는 기사(The Laughing Cavalier)’(1624) 역시 패러디 혹은 오마주계의 마르지 않는 화수분이다. 처음부터 유명한 건 아니었다. 작가 사후에도 오랜 시간 언급조차 되지 않다가 1865년 경매에 출품되면서 미술 애호가들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이를 기점으로 캔버스 속 주인공은 유럽 곳곳에 출몰하기에 이른다. 19세기 후반에는 피크프린스(Peek Freans)의 비스킷 상자에 나타나더니, 20세기 중반에는 스코틀랜드 맥주 매큐언스(McEwan’s)의 로고로 사용됐다. 브로치와 키링 등 굿즈는 기본 중의 기본. 최근에는 기타리스트 지미 헨드릭스와 웃는 이모지를 결합한 미술에도 등장했다. 이러한 ‘웃고 있는 기사’를 소장하고 있는 월리스 컬렉션의 큐레이터 렐리아 패커는 “마치 살아 숨 쉬는 것 같아요. 관람객이 어디에 서 있든 계속 쳐다보는 모습이 매력적이죠. 더불어 미덕, 사랑, 행운을 이야기하는 그림 속 요소들은 그의 개인적 이상을 드러내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라고 설명한다.

오른쪽 ‘The Laughing Cavalier’와 기타리스트 지미 헨드릭스가 만난 탐 조지프의 그림. 그의 자신이 책 〈I Know What I See〉 표지로 사용했다. ©Tam Joseph
왼쪽 y tho(Why though?), ’근데 왜?’라는 밈으로 사용된 페르난도 보테로의 ‘Pope Leo X’(1964).

프란스 할스 작품의 특징은 ‘알라 프리마(alla prima, 미리 스케치하지 않고, 한두 번의 붓놀림으로 완성하는 기법)’다. 빠르게 그림을 완성하는 이 기법은 19세기 인상파 화가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자연의 순간적 표정을 포착하기 위해선 속도가 생명이었으니까. 독일의 인상주의 화가 막스 리베르만(1847~1935)은 말했다. “프란스 할스를 보면 붓을 들고 싶은 기분이 들지만, 렘브란트를 보면 포기하고 싶어집니다.” 추측건대 렘브란트보다 프란스 할스의 화풍이 변화하는 시대상과 어울린다는 의견이었을 테다. 실제로 인상주의는 시민혁명과 산업혁명을 거친 사람들에게 가까이 다가간 사조가 아니던가. 그만큼 친숙하다는 의미다. 더욱이 400년이 지난 2023년에도 프란스 할스의 초상화가 여전히 사랑받는 건 그림 속 미소가 무미건조한 오늘날에 단비가 되기를 바라서일지도 모르겠다. 미덕, 사랑, 행운이라는 작가의 이상처럼.
우리는 이런 문화 예술의 유행을 ‘밈(meme, 모방 형태로 급속도로 퍼져 사회 문화 일부로 자리 잡은 트렌드)’이라 부른다. 밈은 영국 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가 저서 〈이기적 유전자〉(1976)에서 주창한 용어다. SNS에서 급속도로 퍼진 용어라 밈이 곧 인터넷 생태계라고 여기지만, 본디 핵심은 DNA가 복제와 진화를 거듭하듯 문화도 모방을 통해 새로운 문화를 창조해나간다는 것이다. 신고전주의와 낭만주의에 통달한 작가들이 인상주의를 태동시킨 걸 떠올리면 이해하기 쉽다. 그러나 ‘문화 예술 밈’과 ‘인터넷 밈’은 다소 차이가 있다. 1차원적 예로 디에고 벨라스케스와 레오나르도 다빈치 등을 모방해 자신만의 스타일을 구축한 페르난도 보테로와 한때 인터넷을 뜨겁게 달궜음에도 지금은 기억나지 않는 짤방이 있다. 보테로의 그림을 볼 때 찾아오는 건 웃음과 고전 명화의 가치다. 반면, 인터넷 짤방은 대개 유희의 단계를 벗어나지 못한다. 즉 연속적이냐, 일시적이냐의 차이. 이는 미술이 걸어온 길과 비슷하다. 현대미술은 미술사에 익숙한 사람들이 만든 밈의 결정체다. 그리고 그 목적과 수단을 보여줬기에 예술로 인정받는다. 만약 프란스 할스의 작품과 여기서 파생한 밈이 역사성·시대성·예술성을 갖추지 못했다면, 시대를 넘나드는 화제의 대상이 될 수 있었을까? 〈이기적 유전자〉에서 리처드 도킨스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번식이라는 과정에서 불멸을 찾을 수는 없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세계 문화에 무언가 기여할 수 있다면, 예컨대 좋은 아이디어를 내거나, 음악을 작곡하거나 하면 (…) 그것들은 우리의 유전자가 공통의 유전자 풀 속에 용해되어버린 후에도 온전히 살아남을 수 있을지 모른다.”

 

에디터 박이현(hyonism@nobless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