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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그너는 즐겁다

LIFESTYLE

이탈리아에 베르디가 있다면 독일엔 바그너가 있다. 바그너는 자신의 오페라에 ‘악극’라는 이름을 부여해 기존 오페라와 차별화했고, 특히 관현악을 중시해 오케스트라가 극을 이끌어가도록 했다. 달라서 어렵고, 그래서 여전히 대중에게 낯선 바그너의 공연 포디움에 선 네덜란드의 거장 지휘자 에도 데 바르트는 그렇기 때문에 기쁘다고 말한다. 첫 경험의 떨림과 놀람의 현장에 자신이 함께할 수 있어서다.

ⓒ Jesse Willems

‘생명감이 깃든 성실한 연주, 허세가 없는 연주’로 추앙 받는 네덜란드의 대표적 지휘자 에도 데 바르트(Edo de Waart)가 3월 17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서울시립교향악단(이하 서울시향)과 <바그너의 반지>로 첫 호흡을 맞춘다. 그는 초반에 오보에 연주자로 시작했지만 1964년 스물세 살의 나이에 네덜란드 방송관현악단무대로 데뷔한 후 뉴욕 필하모닉에서 레너드 번스타인의 부지휘자로 일하던 중 로테르담 필하모니 상임 지휘자로 발탁되며 일각에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1977년에는 미국 메이저 오케스트라인 샌프란시스코 교향악단의 음악감독으로 발탁되었고, 1979년에는 지휘자 사이에서도 까다롭기로 유명한 바이로이트 축제에서 바그너의 ‘로엔그린’을 지휘해 큰 박수를 받으며 세계적 지휘자로 자리매김했다. 오랜 시간 바그너 곡을 지휘해온 덕분에 “전곡에 걸쳐 확신에 차 있으며 단 한 부분도 애매한 구석이 없다”는 평가를 받는 에도 데 바르트는 이번 공연에서 서울시향과 함께 바그너의 ‘니벨룽겐의 반지’를 선보일 예정. 사랑과 죽음, 운명과 배신의 광대한 드라마가 에도 데 바르트의 관현악 버전으로 어떻게 재탄생할지, 그리고 그가 지금껏 관객에게 선보인 연주의 토대를 이룬 지휘 철학은 무엇인지 물었다.

현재 신시내티에 머물고 계시다 들었습니다. 어떤 일로 가 계신지요? 가족과 살고 계신 곳은 어디인가요? 2월 3일과 4일에 신시내티 심포니와 공연이 있습니다. 슈레커의 ‘Prelude to die Gezeichneten’, 슈트라우스의 ‘Oboe Concerto’, 라흐마니노프의 ‘Symphony No.2’를 연주할 예정이죠. 저는 위스콘신 주의 매디슨이란 도시에서 아내와 두 딸, 열여섯 살 올리비아와 열네 살 세바스티안, 그리고 두 마리의 강아지와 함께 살고 있습니다.

3월 17일과 18일 서울시향과 <바그너의 반지: 관현악 모험> 연주가 예정되어 있습니다. 바그너의 ‘니벨룽겐의 반지’를 1시간 분량으로 편곡한 관현악 버전이죠. 이번 연주에서 교향악이 아니라 바그너의 곡을 선택한 이유, 그중에서도 1991년 헨크 데 블리거가 편곡한 이 버전을 선택한 까닭이 궁금합니다. 서울시향 측에서 먼저 부탁을 해왔어요. 참고로 ‘니벨룽겐의 반지’는 ‘링사이클’이라 불리는데, 라인의 황금(The Rhinegold), 발퀴레(The Valkyrie), 지크프리트(Siegfried), 신들의 황혼(Twilight of the Gods) 이렇게 4파트로 나뉘어 있고 총 14시간이 걸리는 긴 곡입니다. 제가 네덜란드의 라디오방송관현악단 음악감독이자 지휘자로 활동할 때 6시즌에 걸쳐 이 곡 전체를 연주한 적이 있어요. 그런데 들인 시간과 열정에 비해 연주할 수 있는 기회가 많이 없어 안타까웠죠. 그러던 차에 라디오방송관현악단의 타악기 연주자이자 작곡가인 헨크 데 블리거와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어요. 링사이클의 첫 부분과 마지막 부분을 비롯한 중요한 음악적 요소가 전체적으로 들어가는 모음곡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의견을 모았고, 그래서 탄생한 것이 이번에 서울시향과 연주할 66분짜리 곡입니다.

그 곡을 가지고 여러 오케스트라의 객원 지휘자로 무대에 서고, 앨범도 내고, 또 독일 투어도 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평은 어땠나요? 매우 반응이 좋았고 연주도 성공적이었어요. 또 자주 접하지 못하는 바그너의 전체 링사이클을 평생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은데, 이 곡을 통해 많은 사람에게 바그너의 음악을 알릴 수 있어 뿌듯하기도 합니다. 이번 한국 공연도 서울시향 단원과 관객 모두에게 좋은 경험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 Jesse Willems

서양 음악사는 바그너 전후로 나뉠 만큼 바그너는 음악의 혁명가로 불립니다. 특히 바그너의 오페라는 극적인 깊이로 유명한데, 이번 연주에선 어떤 해석으로 ‘니벨룽겐의 반지’를 들려줄 예정인가요? 바그너가 이 곡을 통해 우리에게 보여주는 웅장한 음악적 요소를 하나하나 보면 복잡할 수 있지만 아주 정교하게 계획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14시간의 곡을 1시간으로 줄인 만큼 무엇보다 스토리텔링이 중요하죠. 오페라에서는 성악가들이 부르는 노래의 가사를 통해 스토리를 들려주지만 이 오케스트라 버전에선 음악적 모티브와 주제를 통해 우리에게 이야기하고 있어요.

오보에를 전공한 지휘자로서 바그너의 오페라를 관현악 버전으로 편곡한 곡을 지휘하는 것에 대한 의미가 남다를 것 같은데 어떠세요? 아주 오래전에 오보에를 전공한 것이 이 곡을 해석하고 지휘하는 부분에 많은 영향을 끼치진 않겠지만, 오케스트라의 목관악기와 금관악기 사이에서 음색을 표현하는 것과 더욱 정확한 음정을 연주하는 것에는 분명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요. 그렇지만 그보다 개인적 인생 경험과 음악적 경험, 그리고 그 경험을 통해 느끼고 배운 것이 제가 음악을 표현하는 것에 더 많은 영향을 주는 것 같습니다.

흔히 “바그너는 어렵다”고 합니다. 솔직히 바그너의 곡이 베르디나 푸치니의 오페라처럼 대중적이라고 보기는 어렵죠. 한국의 청중이 이번 공연을 위해 미리 준비해야 할 것은 없을까요? 바그너의 오리지널 버전 링사이클에 관련된 자료를 미리 찾아 읽어보면 무대 위에 펼쳐지는 음악적 요소를 더욱 잘 이해하고 콘서트를 완벽히 즐길수 있어요. 만약 사전에 자료를 찾아볼 시간이 없다면 콘서트 시작 10분 전에 와서 프로그램 노트라도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바그너의 음악에 한번 빠진 팬은 평생 바그너의 광신자로 살아갈 만큼 바그너의 음악을 절실히 사랑하고 서포트하는 걸 알 수 있어요. 한국에서 바그너의 음악과 그의 입지가 어떤지 잘 모르지만 바그너의 곡을 어렵게 생각하는 청중이 있다면 이번 기회에 바그너의 음악을 더욱 가까이서 이해하고 그의 음악을 사랑하게 되었으면 좋겠네요.

오보에 주자로 활동하던 중 지휘자로 전향하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그리고 지휘 공부를 시작하면서 어떤 지휘자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한 것이 있나요? 막연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좋은 지휘자가 되고 싶었어요. 암스테르담에서 살 때 아버지와 함께 자주 연주회에 갔어요. 저는 컨서버토리에서 오보에 연주자로 활동했는데, 오케스트라 시간에 지휘자 선생님이 자신의 제자를 자주 데려와 지휘 경험을 쌓을 수 있게 해주는 걸 보고 저도 선생님에게 레슨을 받고 싶다고 했어요. 그러다 3개월 후 갑자기 선생님이 베토벤의 ‘영웅 교향곡’을 지휘하라고 하셔서 너무 놀라 정신없는 상태로 지휘를 했는데, 그때 경험은 아마 평생 잊을 수 없을 거예요.

많은 거장 지휘자가 남다른 데뷔 무대를 치렀습니다. 선생님 또한 첫 데뷔 무대가 특별했을 것 같습니다. 스물세 살에 뉴욕 드미트리 미트로폴로스 지휘 콩쿠르에서 수상하면서 본격적인 지휘 활동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콩쿠르에서 레너드 번스타인을 만났고, 그가 저를 지목한 덕분에 뉴욕 필하모닉에서 부지휘자로 활동할 수 있었죠. 같은 해에 네덜란드의 로테르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에 객원 지휘자로 일주일 연주 여행을 갔는데, 거기서 연주를 마치자마자 바로 계약서를 쓰자고 했어요. 여러 모로 그해는 정말 잊을 수 없는 시간입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레너드 번스타인의 부지휘자로 본격적인 지휘 커리어를 시작했습니다. 그에게 배운 것 중 가장 인상 깊은 건 무엇인가요? 제가 뉴욕 필하모닉의 부지휘자로 있을 때 번스타인이 빈에서 아주 큰 무대로 데뷔해서 자주 보진 못했지만 짧게나마 제가 겪어본 번스타인은 항상 에너지 넘치고 음악적 표현력이 엄청난 분이었습니다. 세상에서 제일 착한 사람일 수도 있지만 동시에 세상에서 가장 혹독한 사람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죠. 모든 면에서 본인의 색깔과 스타일이 정확한 데다, 옳고 그름이 명확한 분이어서 더 그렇게 느낀 것 같습니다.

연주자로서 그리고 지휘자로서 음악을 대하는 것은 매우 다른 작업일 겁니다. 지휘자로서 초반에 그런 훈련을 어떻게 했는지 궁금합니다. 50년 동안 지휘자로 활동하면서 굴곡이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지금 사랑하는 일을 하고 있고 연주하고 싶은 음악을 만들어가고 있으며, 또 저와 함께 하고 싶어 하는 연주자가 있다는 사실만으로 큰 행운과 복이 따랐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지휘를 시작한 당시엔 어려움이 많았죠. 매우 열정적이었지만 많은 면에서 능숙하지 못했거든요. 힘든 배움의 과정을 거쳐야 했습니다.

젊은 나이에 지휘를 시작하셔서 더욱 그랬을 것 같아요. 음악밖에 모르는 스물세 살의 어린 지휘자가 포디움에 서서 자신보다 나이 많고 경험이 풍부한 오케스트라 단원을 이끌어나가는 건 정말이지 쉽지 않았어요. 오케스트라 단원들도 처음엔 전혀 친절하지 않았죠. 예를 들면, 저는 수줍음이 많고 낯을 가리는 성격이라 말을 많이 하지 않은 건데 단원들은 그런 저를 보고 건방지다 생각한 일 등 사소한 오해가 많았어요.

서울시립교향악단의 연주 모습

수십 년간 지휘를 해오면서 목표와 꿈도 조금씩 바뀌었을 것 같아요. 그것이 어떤 식으로 성장하고 변해왔는지 궁금합니다. 오케스트라와 지휘자는 서로가 없으면 존재할 수 없는 관계입니다. 어릴 때는 제가 욕심이 많았어요. 음악도 잘하고 싶고 유명해지고 싶은 생각도 있었죠.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명성보다는 음악에 대한 관심과 욕심이 더 커지더라고요. ‘좋은 음악가’나 ‘훌륭한 지휘자’가 되기보다는 ‘오케스트라에 필요한 존재’, ‘도움을 줄 수 있는 존재’가 되고 싶은 쪽으로 바뀌었죠. 그리고 시간이 더 흘러 지금은 오직 ‘음악’이에요.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통해 진실되고 열정이 가득 담긴, 또 콘서트를 관람하러 오는 관객을 위한 좋은 음악을 만드는 지휘자가 되고 싶어요. 사실 지휘자는 자기 자신을 내세우고 뽐낼 수 있는 최고의 직업입니다. 그렇지만 저는 ‘지휘자가 인상 깊다’는 말보단 ‘그 오케스트라의 음악이 너무 좋다’는 평을 듣는 연주를 하고 싶어요.

지휘자마다 각각 리더십 스타일이 다른 걸 볼 수 있습니다. 선생님은 무엇에 중점을 두는 편인가요? 정확하고 명확한 음악적 표현과 리드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연주자에 대한 ‘인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사실 평소 그렇게 인내심 많은 남자가 아니에요. 그렇지만 음악을 만들 때면 제가 다른 사람이 되는 것을 체험합니다. 음악이라는 존재가 본연의 저를 잊게 하죠.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느낌이랄까요. 저는 악보에 나와 있는 대로, 작곡가가 의도한 대로 제가 연주하는 음악에 최대한 진실하려고 노력하고, 그 지점에서 연주자들을 인내하며 기다립니다.

한국의 젊은 클래식 연주자들이 세계 곳곳에서 활약하고 있습니다. 피아니스트 조성진은 쇼팽 콩쿠르에서 우승한 후 일약 스타덤에 올랐죠. 젊은 한국 음악가들의 실력은 어느 정도라고 생각하나요? 한국 음악가들은 노력파인 것 같아요. 여러 오케스트라를 이끌며 한국 단원들을 봐왔는데, 항상 준비를 잘해왔고 누구보다 열심히 합니다. 차세대 연주자 이야기는 아니지만,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 씨와도 몇 번 연주를 같이 했는데 정말 즐거운 경험이었어요. 한국 음악가들은 욕심과 야망이 많은 편인데, 그만큼 열심히 노력하는 반면 유머도 많아 함께 일할 때 항상 즐겁습니다. 그런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에너지는 저에게 더욱 좋은 영감으로 작용해요. 그래서 이번 서울시향과의 연주도 기대가 큽니다.

이번 공연에서 우즈베키스탄의 스타 피아니스트 베조드 압두라이모프가 프로코피예프 곡을 협연합니다. 스타 연주자가 매년 전 세계적으로 배출되고 있는 상황에서 젊은 그들이 갖춰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축구를 잘하려면 시야에서 공을 놓치지 말아야 하죠. 음악도 그래요. 공을 좇는 축구 선수처럼 매 순간 음악에 집중해야 합니다. 초심을 잃지 않고 원하는 목표에 집중하다 보면 길은 열립니다. 젊은 스타 연주자들은 간혹 명성을 얻는 것에 집중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게 아니라 좋은 음악가가 되는 것에 더 신경 써야 합니다. 좋은 음악가가 되면 명성은 저절로 따라오니까요. 열심히 노력하고, 틈틈이 자신에게 응원과 칭찬을 해주는 것도 잊지 말라고 당부하고 싶습니다.

인생에 없어선 안 됐을 사람을 꼽으라면 누가 있을까? 독일의 지휘자 카를로스 클라이버(Carlos Kleiber), 오스트리아 출신 첼리스트이자 지휘자 니콜라우스 아르농쿠르(Nikolaus Harnoncourt), 이탈리아의 지휘자 클라우디오 아바도(Claudio Abbado)입니다. 인생에서 많은 사람을 만났지만 이 지휘자들은 저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죠. 이외에도 아내와 딸들, 또 다른 가족과 친구 그리고 문득 지나가다가, 아니면 TV를 켰을 때 누군가가 내뱉은 말에서 영감을 얻고 많은 생각을 한 적도 있습니다. 꼭 유명한 지휘자나 작곡가뿐 아니라 우리는 늘 주위 사람에게 영향을 주고받으며 살아가는 것 같아요.

50년 가까이 음악가로 살아왔습니다. 선생님이 생각하는 ‘음악의 역할’ 또는 ‘클래식의 역할’은 무엇인가요? 음악을 표현하고 연주하는 것은 선택받은 자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수많은 악보에 쓰여 있는 것은 음악가가 생명을 불어넣기 전엔 아무 뜻 없는 그냥 종이에 쓰인 표기에 불과하죠. 음악은 인류가 할 수 있는 예술 중 가장 위대한 장르라고 생각해요. 미술이나 문학 등 여러 예술 장르가 있지만 그것과는 다르게 음악 하는 사람은 좀 더 확고한 신념과 책임을 가지고 연주해야 합니다. 관객이 콘서트 참석 전과 후의 삶이 달라진 것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말이죠. 콘서트가 매번 깊은 감동과 인생의 터닝 포인트를 가져다줄 순 없겠지만 우리가 연주하는 그 음악이 그만큼 파워풀하고 영향력이 있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2017년에는 음악 외에 어떤 것을 해보고 싶은가요? 더욱 좋은 남편과 아빠, 친구가 되고 싶어요. 지휘를 하면서 여러 나라를 바삐 돌아다니기 때문에 좋은 남편, 아빠, 친구가 되는 것은 너무 어렵거든요.

다시 태어나도 지휘자가 되고 싶나요? 당연하죠. 그때는 지금보다 나은 지휘자로 태어나길 소원합니다.

 

에디터 김이신(christmas@noblesse.com)
사진 제공 서울시립교향악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