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SLETTER

노블레스 매거진의 뉴스레터를 신청해보세요.
트렌드 뉴스와 이벤트 소식을 가장 빠르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닫기

바야흐로 스크린셀러의 시대

LIFESTYLE

책과 영화 중 무엇을 골라도 좋다. 다만 스크린 속 세계가 당신의 마음을 사로잡았다면, 늦게라도 원작 소설을 펼쳐봐야 할 이유는 그걸로 충분하다.

 

올 하반기, 소설과 영화의 관계가 어느 때보다 뜨겁다. 최근 개봉했거나 개봉을 앞둔 영화들의 원작이 줄지어 서점가를 점령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른바 ‘스크린셀러’라 불리는 영화 원작 열풍의 선두주자는 단연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지난해 출간 당시에는 국내에서 큰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지만, 올 6월 동명 영화가 개봉하자 뒤늦게 서점가를 휩쓸며 8주 연속 종합 베스트셀러 1위를 지켜내는 저력을 보여주었다. 기자 출신 스웨덴 작가 요나스 요나손의 늦깎이 데 뷔 소설로, 이제 막 100세가 된 노인 알란이 양로원에서 탈출하는 현재의 에피소드와 파란만장한 그의 인생을 리듬감 있게 교차시킨다. 33대 미국 대통령 해리 S. 트루먼부터 윈스턴 처칠, 마우쩌둥, 스탈린 등(영화에는 빠졌지만 원작에서는 북한의 김일성과 김정일 부자까지 등장한다) 각국 명사들이 알란의 과거에 카메오처럼 등장해 실제와 허구를 분간하기 힘든 열연을 펼치기도 한다. 마치 “옛날에 내가 말이야…”로 시작하는 경로당 할아버지의 블록버스터급 허풍 같지만, 능청스러운 유머와 풍자를 통해 읽는 이들 각자의 인생을 돌아보게 하는 영민한 작품이다.
지난 9월 개봉한 한국 영화 <두근두근 내 인생> 역시 2011년 발간된 김애란의 동명 장편소설에서 출발했다. 열일곱 나이에 덜컥 아이를 가진 어린 부모와 조로증을 앓는 늙은 자식의 이야기. 누가 봐도 완벽한 신파의 조건이지만, 작정하고 눈물바다를 만들겠다는 의도 같은 건 책 속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그보다는 삶의 찬란한 순간을 포착해내고, 인생에 대해 진중한 화두를 던지는 데 집중한다. 소설가 성석제가 “비극에서 낙천의 보석을 골라내는 타고난 재능, 희극에서 통찰에 이르는 길을 순식간에 만들어내는 정묘한 내비게이터의 면모를 보았다”고 극찬한 이 작품은 영화 개봉과 함께 최근 베스트셀러 목록에 재진입했다. 영화화하는 과정에서 캐릭터의 비중이 다소 달라지긴 했지만, 원작자 김애란은 “소설 속 인물들에게 몸이 생겨 기쁘다”며 특히 캐스팅과 영화적 온도에 대한 만족감을 드러냈다.
한편, 미국 스타 작가 존 그린의 <잘못은 우리 별에 있어>는 8월 개봉작 <안녕, 헤이즐>의 원작 소설이다. 한국에서는 작가의 인지도가 그리 높지 않지만 실제 <뉴욕타임스>와 <월스트리트 저널> 등에서 베스트셀러 1위를 기록한 화제작으로, 불치병에 걸린 10대 소년 소녀의 소통과 사랑을 담아냈다. 소재가 소재인지라 오해받기 쉬운데, 생각만큼 이야기가 처절하지는 않다. 이들은 자신의 병을 지나치게 비관하거나 무의미한 객기를 부리는 대신 삶과 죽음의 의미, 남겨질 사람들에 대해 고민한다. 그리고 열심히, 최선을 다해 그 답을 찾아간다. “사람들은 나를 기억해줄까?”라든지 “우리는 이 세계에 어떤 흔적을 남길 수 있을까” 같은 다소 낯간지러운 물음이 성인 독자에게도 힘을 얻는 건 그래서다. 이 소설은 원작에서 확신을 얻었다는 <트와일라잇> 시리즈의 제작자 윅 고드프리에 의해 영화화됐다. 여주인공 헤이즐 역을 맡은 셰일린 우들리는 책을 읽자마자 영화에 출연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올 하반기부터 이어진 스크린셀러 열풍은 스크린이 문학 시장을 잠식하는 것이 아니라 새롭게 부활시키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좋은 예다.”

에디터 류현경
사진 김흥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