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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올리니스트 양인모의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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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올리니스트 양인모는 그만의 방식으로 음악과 세상을 향해 끊임없이 묻는다.

양인모 현재 독일 크론베르크에 거주하며 활동하는 바이올리니스트 양인모는 2022년 제12회 장 시벨리우스 국제 바이올린 콩쿠르, 2015년 제54회 프레미오 파가니니 국제 바이올린 콩쿠르, 2014년 콘서트 아티스트 길드 콩쿠르에서 우승했다. 파비오 루이시, 네메 예르비, 정명훈, 오스모 벤스케, 제임스 개피건, 마린 올솝 등 세계적 명성의 지휘자와 함께 프랑스 국립관현악단, 루체른 심포니 오케스트라, 취리히 필하모니아, 덴마크 국립 심포니 오케스트라, 리치먼 드 심포니 오케스트라, 카를로 펠리체 극장 오케스트라, 서울시립교향악단 등과 협연했으며 〈24개의 카프리스〉,〈현의 유전학〉 음반을 발표했다.

이제 막 스물아홉이 된 양인모의 이력은 화려하다. 프레미오 파가니니 국제 바이올린 콩쿠르가 배출한 9년 만의 우승자, 장 시벨리우스 국제 바이올린 콩쿠르 우승, 두 장의 강렬한 도이체그라모폰 음반, 그를 거친 전설적 바이올린들, 예후디 메뉴인 재단의 후원…. 그러나 그만큼 인상적인 것을 또 하나 꼽으라면, 생각의 깊이 아닐까. 유려한 연주 뒤에 도사린 철학적 사유. 끊임없이 새로움을 찾아 나서는 열망. ‘우리 시대 음악은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한 거듭된 고민. 젊은 연주자로서 놀라운 무게다. 그가 비발디의 ‘사계’와 바흐의 바이올린협주곡이라는 바로크 시대 대표작으로 9월 25일 롯데콘서트홀 무대를 찾는다. 세계 정상의 악단인 베를린 필하모닉 연주자로 구성된 베를린 바로크 솔리스텐(Berliner Barock Solisten)과 함께. 바로크 음악으로 출발한 인터뷰는 독주에서 협주로, 과거의 재현에서 현대의 소리로, 대도시에서 작은 마을로, 남의 평가보다 자기 확신으로, 음악 인생의 확장점에 선 그의 현재를 따라 흘러갔다. 그는 ‘무엇을’, ‘왜’, ‘어떻게’라는 말을 자주 썼다. 그의 말을 빌리면 마치 “음악가에게 계속해서 질문을 던지는” 바로크 음악처럼, 모든 질문의 답은 그의 내면으로 향하고 있었다.

베를린 바로크 솔리스텐. 1995년 베를린 필하모닉의 저명한 멤버들이 모여 창단한 고음악 앙상블로, 연주하는 작품에 따라 다양한 시대의 악기와 활을 사용한다.

바로크 전문 앙상블과 바로크 시대의 기념비적 작품 연주를 앞두고 있습니다. 바로크 음악을 좋아하고 지금껏 여러 시도를 해왔지만, 프로그램 전체를 바로크 음악으로 구성한 연주는 이번이 처음이에요. 비발디의 ‘사계’ 중 한 계절이나 바흐의 무반주 작품 중 몇 곡을 발췌해 연주한 적은 있지만요. 보통 바이올리니스트는 차이콥스키나 브람스 같은 낭만주의 곡을 주로 협연하거든요. 비발디는 바이올린협주곡만 무려 200곡 이상 남겼지만, 지금은 ‘사계’ 외에는 잘 연주하지 않아요. 이번 연주 덕분에 저도 비발디와 바흐를 더욱 깊이 들여다보게 됐어요. 솔리스트가 바로크 협주곡을 할 기회가 적다는 걸 깨닫기도 했고요.
바로크 실내악은 솔로 바이올린이 지휘 역할을 겸합니다. 특히 비발디의 ‘사계’는 솔리스트에 따라 색깔이 크게 변하는데요. 저는 비발디 음악의 활기찬 면을 표현하고 싶어요. 바로크 작곡가 중 비발디 음악이 가장 생동감 있고 흥미진진하거든요. 당시 예술의 중심지인 베니스의 분위기일 수도 있고요. ‘사계’는 비발디가 계절마다 실험한 효과가 다른데, 예를 들어 느린 악장인 2악장을 비교하면 ‘봄’에서는 잠든 양치기와 시냇물 소리, 강아지 짖는 소리가 함께 서정적 선율로 표현되고, ‘여름’에선 중간중간 폭풍우 소리가 나면서 연주자 간 소통이 중요해지고, ‘가을’에선 기괴한 화성들이 떠다니고…. 계절의 특징이 뚜렷해요. 또 비발디는 자신이 바이올리니스트인 만큼 바이올린이 돋보일 효과를 시도하는 걸 좋아했어요. ‘사계’의 유명한 도입부를 예로 들면, 합주 부분이 끝나면 바이올린 독주가 시작되도록 둘을 확실히 구분해놓았어요. 독주 바이올린을 부각하려고요. 마찬가지 이유로 형식을 압축하고, 전조도 하고, 악절마다 바이올린의 역할을 부여했어요. 그걸 협주라는 형식에 녹여낸 게 대단해요. 바흐가 그의 협주곡을 직접 필사하며 “비발디는 내가 음악적으로 생각하는 법을 바꾸었다”라는 말을 남겼을 정도죠.
함께 선보일 바흐의 바이올린협주곡 E장조는 어떤가요? 바흐는 1720년경 바이올린협주곡 E장조를 작곡한 뒤, 훗날 하프시코드용으로도 편곡(1738)했어요. 편곡 악보를 보면 원곡을 신중하게 수정한 부분이 많아요. 하프시코드의 특성을 살리기 위해서라기보다, 음악 자체를 효과적으로 설득하기 위함이었죠. 이번에 저는 이 하프시코드 편곡본에 뿌리를 두고 접근하려 해요. 이 편곡이 당시 원 버전을 어떻게 연주했을지에 대한 힌트를 준다고 생각하거든요. 예를 들어 1악장 발전부에서 바이올린이 같은 패턴을 20마디 반복하는데, 하프시코드 버전에선 그 패턴이 계속해서 바뀌어요. 당시 바이올리니스트가 이 부분을 즉흥으로 연주한 게 아닐까? 이처럼 작품을 좀 더 관대하게 해석할 수도 있겠다는 확신이 들어요.
바로크 음악만의 매력은 무엇일까요? 연주자의 입장에서 바로크 음악은 생각하고, 결정을 하게 해요. 바로크 음악은 기록이 많이 남아 있지 않아 여러 담론이 이루어집니다. 당시 연주법이나 미의 기준을 정확히 알지 못하니 후대 사람들이 정해야 하죠. 1980년대 이후 원전 연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당대의 악기와 방식으로 연주해야 한다는 움직임이 있어서인지 아직까지 바로크 스타일에 대한 강박이 어느 정도 있는 것 같아요. 이제는 원전 재연을 넘어 ‘무얼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지금의 도구로 어떻게 당시의 곡을 해석할 수 있을까? 제가 만약 바흐였다면, 300년 후 한국이란 나라에서 자신의 음악이 연주될 거란 생각은 하지 못했을 거 같아요. 만약 생각했다 하더라도, 그가 의도한 대로 음악을 듣기보다는 현대 사람들이 어떤 다른 해석과 소리로 연주하는지 보는 게 더 재미있을 것 같거든요. 앞으로도 바로크 음악은 음악가에게 계속해서 질문을 던지고, 더 좋은 음악가가 될 수 있게 하는 역할을 할 거라고 생각해요.

래퍼 릴러말즈의 음반 〈바이올리니스트2〉 . 한국예술영재교육원 1기로 함께 수학한 양인모와 릴러말즈는 이 음반에 수록된 ‘Intermezzo for 2 Violins’라는 곡을 협연했다.

지난 3월 8일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린 루체른 페스티벌 스트링스와의 협연 무대.

베를린 바로크 솔리스텐도 지금의 악기로 당시의 음악을 연주하죠. 이번 연주가 기대되는 것도 그들이 ‘작품이 작곡된 당시의 음악적 관점’을 ‘현재의 악기’에 적용하기 때문이에요. 지금의 악기는 당시보다 크기도 커지고 현이 스틸로 바뀌며 소리도 더 커졌는데, 그들은 이런 도구의 변화를 어떻게 활용할까 고민해서 역사적 맥락과 잘 조화시켜요. 저도 그런 관점에서 바로크 곡을 연주하고 있어서 더 기대됩니다.
그동안 리사이틀과 오케스트라 협연을 중심으로 활동하다 올해는 루체른 페스티벌 스트링스, 이번 베를린 바로크 솔리스텐 공연처럼 현악 중심의 실내악 공연을 늘려나가고 있습니다. 두 악단 모두 지휘자가 없는 대신 솔리스트가 많은 결정을 내리고 리드해요. 그러면서 배우는 게 많아요. 연주자와 소통하는 부분은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거든요. 말하자면 리허설을 이끄는 법, 그러니까 예의를 갖추되 하고 싶은 말을 직접적으로 전달하는 기술 같은 거요. 작년 가을 파리 실내관현악단(Orchestre de Chambre de Paris)과 아카데미를 했어요. 처음으로 지휘자 없이 모차르트 협주곡을 연주했는데 굉장히 힘들더군요. 지휘자가 해주던 일을 직접 하려니 서툴렀죠. 그래도 많은 걸 배웠고, 내 해석을 강요하는 게 아니라 ‘설득’하는 과정이 즐거웠어요. 이 경험을 통해 제 해석을 좀 더 실험해볼 수 있겠구나 싶었어요. 올해 초 루체른 페스티벌 스트링스와 연주할 때는 바이올린뿐 아니라 다른 악기 역시 구체적인 시도와 요청을 하게 되었죠. 지평선이 넓어지는 것 같아요.
또 다른 지평선도 넓혀가고 있습니다. 래퍼 릴러말즈와 협업하거나, 직접 로파이(low-fi) 음악을 작곡하거나, 12세기 성악곡을 바이올린과 듀오로 편곡하거나…. 늘 새로운 것을 창조해나가는 동기가 궁금해요. 창작자들의 작품을 해석하고 재창조하면서 어쩔 수 없이 느끼는 욕구 같아요. 연주자는 주로 이미 존재하는 작품을 해석하고 전달하는 일을 하잖아요. ‘만약 내가 작곡가였다면 어떻게 이 주제나 재료를 다룰까’ 하는 궁금증이 일곤 해요. 비발디의 ‘사계’를 예로 들면, 그의 ‘사계’는 300년 전의 것이에요. 그런데 지금은 기후 문제가 심각하잖아요. 점점 짧아지는 봄가을, 그런 가운데 현대의 ‘사계’란 뭘까 생각해보는 거죠. 결국 작곡가에게 아이디어를 배워요. 내가 이 음악을 통해 무엇을 느끼는지보다, 이 곡이 나를 어떻게 사고하게 하는지가 더 흥미로워요. 또 저는 동시대에 들리는 여러 소리에 관심이 있어요. 클래식이라는 틀이 아니라 그냥 ‘소리’를 가지고 나만의 어떤 것을 구성할 수 있을까?
유럽 공연계도 클래식 음악의 경계를 실험적인 현대음악, 힙합 등으로 넓히고 있습니다. 이러한 과도기에 아티스트가 갖춰야 할 태도를 꼽는다면요? 어떤 태도를 갖춰야 한다기보다, 다양하고 과감한 아티스트가 많이 나왔으면 좋겠어요. 지금 우리에게 어필하는 소리와 음악에 관심을 가진 아티스트요. 예를 들어 바이올리니스트 파트리샤 코파친스카야(Patricia Kopatchinskaja)처럼 취향을 떠나 우리가 얘기할 수밖에 없는 캐릭터들요. 그녀의 베토벤이 옳고 그른지 따지기 전에, 지금 그런 급진적 연주를 하는 것 자체가 우리 시대를 반영했다고 생각해요. 그런 연주자가 많이 나온다면 우리도 음악을 듣는 방식에 대해 새롭게 고민하게 되겠죠.

지난 5월 4일부터 8월 25일까지 강릉 솔올미술관에서 열린 〈아그네스 마틴: 완벽의 순간들〉 전시 전경. 순수 추상 작업을 통해 절제된 방식으로 아름다움과 완벽성을 추구했다.

혹시 미술 쪽으로 관심 있는 작가나 분야가 있다면요? 연주 여행을 다니다 시간이 날 때면 현대미술관을 가요. 어머니가 현대미술에 관심이 많고 그쪽 공부를 하고 계셔서 그 영향도 많이 받았고요. 오랫동안 좋아해온 작가는 사이 트웜블리(Cy Twombly)와 아그네스 마틴(Agnes Martin)이에요. 현대미술이 재미있는 건 예술과 일상의 경계가 허물어져서예요. 사람들이 참여해야 완성되는 작품도 많고요. 어떻게 보면 현대미술을 감상할 때의 느낌, 그러니까 내가 작품의 일부가 된 것 같은 느낌이 음악의 다음 단계일 수도 있겠다 싶어요. 다만 소리라는 추상적 매개체로 구상하기가 너무 어려울 뿐이죠.
일상에서 받은 영감을 음악적으로 풀어내는 화법이 인상적이에요. 음악가는 세상을 음악으로 바라보는 데 익숙해요.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되면 그걸 음악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지 항상 내 분야로 치환하죠. 어떻게 보면 질병이에요. 있는 그대로 즐기지 못하고 음악으로 가져와서 승화시키는 거요.
보스턴, 베를린을 거쳐 현재 독일의 작은 마을 크론베르크에서 공부하고 있습니다. 베를린과 크론베르크에 각각 집이 있는데, 올해는 많은 시간을 크론베르크에서 보냈어요. 프랑크푸르트 근교의 작은 마을로 15분이면 온 동네를 둘러볼 수 있죠. 그 작은 곳에 아카데미와 연주홀이 있어 좋은 음악가가 많이 찾아요. 마을이 작아 연주 끝나고 가는 식당도 정해져 있고. 연주자 간 거리감도 없고요. 생활적으로도 좋아요. 전 혼자 있는 걸 좋아하는 편이거든요. 그곳에선 연습도 잘되고, 불필요한 생각도 사라져요. 유럽은 삶의 템포가 느리잖아요. 처음 베를린으로 이사 갔을 때 안단테 정도였다면, 크론베르크에선 라르고 정도로 느려졌어요. 그곳에선 자동차보다 자연의 소리가 더 많이 들려요. 매일 들르는 상점 사람들과 친해지기도 했고. 도시의 템포로는 느낄 수 없는 것들이죠. 새벽에도 편히 연습할 수 있고요.
음악가로서 궁극적 목표가 있다면요? 사실 ‘어떤 음악가가 되고 싶다’는 고민은 하지 않는 것 같아요. 연주가 많다 보니 하루하루 눈앞에 있는 걸 하는 것만으로도 너무 바쁘거든요. 내년에만 15개 협주곡을 연주하는데, 1~2주 간격으로 새 협주곡을 연주하는 셈이에요. 익혀야 할 동시대 레퍼토리도 늘어나고, 연주자로서 스케줄을 소화하는 것만으로도 힘든 일이란 걸 깨닫고 있어요. 아, 크론베르크 아카데미에서 유명한 연주자를 많이 만났는데, 다들 소리 자체만으로 그들의 음악을 따를 수밖에 없게 하더라고요. 소리에 빨려든달까. ‘사랑과 확신으로 음악을 대하다 보면 언젠가 저런 단계에 도달하나 보다’ 하는 생각이 들면서 위안이 됐어요. 가장 중요한 건 내가 나를 믿고 음악을 하는 것이에요. 확신을 갖고. 지금까지 어딘가에 있는 줄 알고 찾던 답이 제 안에 있는 것 같아요. 적어도 지금 단계에서는 제 안을 들여다볼수록 그 답이 더 명확해지는 것 같아요.

 

전윤혜(음악 평론가)
에디터 정규영(ky.chung@noblesse.com)
사진 인아츠프로덕션, 크레디아, 롯데문화재단, 솔올미술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