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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근 메들리

LIFESTYLE

다큐멘터리 감독 박경근은 독특한 영화를 만든다. 분명 다큐멘터리 형식을 빌려왔지만 실험 영화 성격이 강하다. 그러니까 그의 영화는 ‘본능’으로 봐야 한다.

 

박경근은 다큐멘터리 감독이자 비디오 아티스트다. 캘리포니아 주립 대학(UCLA)에서 영상과 디자인을 전공했고, 칼아츠(California Institute of the Arts)에서 영상과 다큐멘터리를 전공해 예술 석사(MFA)도 받았다. 그는 외교관인 아버지 덕분에 어려서부터 세계 여러 나라를 떠돌며 글로벌하게 성장했다. 그러다 그의 나이 33세 때 만든 첫 장편 다큐멘터리 <청계천 메들리>(2010년)를 2011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했고 이후 2011년 베를린 국제영화제, 바르샤바 국제영화제, 로스앤젤레스 영화제, 토론토 핫 독스 영화제 등 세계 유수의 영화제에 초청돼 극찬을 받았다. 한편 그가 지난해 겨울 만든 두 번째 장편 다큐멘터리 <철의 꿈>은 2014년 베를린 국제영화제 포럼 부문과 뉴욕 모마(MoMA)에서 열리는 다큐멘터리 포트나이트에 초대됐다. 하나의 작품이 세계 3대 영화제 중 하나인 베를린 국제영화제와 세계 미술계에서 절대적 권위를 자랑하는 모마에 의해 동시에 선택된 건 거의 유례없는 일이다.

그의 이름을 세상에 알린 <청계천 메들리>는 일단 제목부터 독특하다. 청계천의 인공 복원을 반대하는 생태 다큐멘터리거나 개발에 밀려난 도시 빈민 얘기려니 했는데,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영화엔 철공소와 주물 공장 등이 쉼 없이 나오고, 차가운 기계가 만들어내는 듣기 싫은 소음이 가득하다. 그는 영화 초반부터 그의 꿈에 반복되어 나타난 쇠의 표면, 제련할 때 나는 소름 돋는 소리를 청계천 공장에서 재현한다. 그리고 일제강점기 고물상을 했다는 할아버지를 영화에 넣어 그 악몽의 정체를 감각적인 영상으로 드러낸다. 하지만 이런 감각적인 영상은 이따금 매우 관념적으로 보인다. “영화 자체를 감독으로서 만든 게 아니라 제 개인적인 색을 담아 만들어서 그런 것 같아요. 감독이라면 카메라부터 시작해 다른 세세한 요소를 모두 신경 써야 하잖아요. 근데 전 모든 걸 혼자 했기 때문에 기존 시스템과 거의 다르게 했죠.”

사실 <청계천 메들리>는 우연한 기회에 만들었다. 미국 유학 당시 만난 친구들과 방학을 맞아 서울에 놀러 왔는데, 당시 본 청계천의 모습에 매혹돼 아예 카메라를 들고 눌러앉은 것이다. 유년기 대부분을 외국에서 보낸 탓에 그의 눈에 비친 청계천은 신비로움 그 자체였다. 그는 자신을 매혹한 청계천을 제대로 카메라에 담기 위해 바로 옆 동네인 입정동에 사무실도 마련했다. “사실 신비감보다 무서움이 먼저 다가왔어요. 서울에 1960년대를 연상시키는 풍경이 있다는 게 정말 놀라웠죠. 하지만 제가 뭔가 찍겠다고 카메라를 들고 그곳에 찾아가면 사람들은 저를 피했어요. 질문 하나 하려 해도 어디로 숨곤 했죠. 하긴 어느 날 갑자기 이방인이 찾아와 카메라를 들고 설쳐대니 그럴 수밖에요. 그런데 그때 생각한 게 하나 있어요. 바로 ‘불안’이었죠.”

1 청계천 메들리_와글와글, Digital C-print, 50×50cm, 2010
2 청계천 메들리_가벼운 침묵, Digital C-print, 50×50cm, 2010
3 철의 꿈, Chamber of Birth and Death, Inkjet print, size variable, 2013

불안이란 감정은 사실 그에게도 익숙한 것이다. 어려서부터 한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여러 나라를 떠돈 그는 어느 한곳에 동화되지 못하고 늘 불안해했다. 그래서 <청계천 메들리>에 그의 반복된 불안의 기억을 교묘히 엮어 넣었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사회적인 것이 되듯, 그는 영상을 통해 아주 주관적이지만 객관적인 이야기를 한다. 청계천에서 이야기가 시작되지만 실제 그 이야기는 청계천을 벗어나 더 넓은 곳을 맴돈다. 영화는 청계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보다, 그가 생각하고 있는 예술적 형태의 ‘철’의 이미지를 좇는 데 주력한다.

<청계천 메들리>엔 철공소 사람들이 모여 개불을 먹는 장면이 있다. 개불의 내장을 긁어내고 이를 게걸스럽게 먹는다. 남성의 성기를 닮은 개불 모양을 보고 저급한 농담도 한다. 이미지만으로도 성적이고 강렬하며 역겹다. 하지만 그는 그걸 관조적으로 그저 바라보기만 한다. “기계의 움직임을 보면 원재료를 가공해 완제품을 뱉어내잖아요. 뭔가를 먹고 뱉어내는 게 개불과 닮아서 그 장면을 넣은 거예요. 조금 이질적이긴 한데, 어딘가 철과 어울리는 묘한 느낌이 있죠. 그걸 보고 미국에선 페미니스트들이 ‘남성 성기 영화’라고 하더라고요. 뭐 어쩌겠어요? 전 그저 가만히 웃고 있었죠.”

그런가 하면 <청계천 메들리>에 이어 3년 만에 만든 <철의 꿈>은 철의 관점에서 한국 산업화를 보여주는 다큐멘터리 영화다. 그는 울산에서 우연히 본 ‘반구대 암각화’에 새긴 고래 그림과 선박의 모양이 비슷하다는 걸 발견해 이 영화를 기획했다. 영화는 거대한 산업 인프라를 구축한 포스코와 현대중공업으로 대변되던 한국 산업화의 정점을 느릿느릿 좇는다. 하지만 이는 영화 전면에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이야기일 뿐인지도 모른다. <철의 꿈>은 감독의 부모를 위한 영화로 읽히기도 한다. “솔직히 말하면 우리 부모 세대의 의식이 궁금해 만든 영화이기도 해요. 지금의 20~30대 성인은 부모와 소통이 잘 안 되잖아요. 그래서 전 부모 세대가 오래전 한국의 산업화를 위해 일한 제철소에 갔어요. 그들이 어떻게 일해왔는지 알아야 그들을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한 거죠.”

그의 다큐멘터리 영화가 일반 다큐멘터리 영화와 다른 점이 있다면 기승전결이 없다는 것이다. 뭔가 기대하고 봤는데 ‘이게 뭐야?’ 하면서 맥이 빠질 수 있다. 하지만 그의 영화는 원래 그렇게 보는 건지도 모른다. 그의 작품을 감상하며 어떤 의미를 찾고자 노력하는 건 정신 건강에 해롭다. 작품에 고정된 의미가 있다고 확신하는 순간, 관객은 스스로 만든 함정에 걸려들어 무의미함 속에서 허우적거리게 될 것이다. “좋은 다큐멘터리란 일일이 설명해주는 게 아닌 것 같아요. 보는 사람이 다양한 해석을 내놓을 수 있는 다큐멘터리가 진짜 좋은 다큐멘터리죠. 만약 감독이 어떤 메시지를 던지고 그걸 관객에게 주입하려 애쓴다면 그건 프로파간다와 다름없죠.”

박경근이 작품에서 보여준 여러 이야기를 짧은 리뷰로 다 풀어낼 순 없을 것이다. 그와 두어 시간 더 앉아 인터뷰한다 해도 마찬가지다. 그의 작품에서 보여준 이야기와 이미지는 그걸 보는 관객에 따라 경이로운 대상이 될 수도 있고,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감독만의 세계일 수도 있다. 하지만 단언컨대 그의 영화 속에 숨은 의미 같은 건 없다. 다만 그가 담아낸 영상과 함께, 그가 조곤조곤 읽는 시적인 내레이션을 따라가기만 하면 쉬워진다. 특정 이데올로기나 관념에 머물지 않고 끊임없이 떠돌아다니는 시선. 이후 박경근의 시선이 기대된다.

에디터 이영균 (youngkyoon@noblesse.com)
사진 안지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