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SLETTER

노블레스 매거진의 뉴스레터를 신청해보세요.
트렌드 뉴스와 이벤트 소식을 가장 빠르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닫기

반듯한 전달자

LIFESTYLE

김용관은 1990년 여름부터 건축 사진을 찍었다. 눈에 보이는 그대로 건축물의 모습을 전하기 위해 지금도 홀로 맴돈다.

‘붉은 뺨으로 겨울을 응시하는 얼굴.’ 2014년 3월,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열린 <이타미 준: 바람의 조형>전을 보고 떠올린 말이다. 건축가 이타미 준이 설계한 직사각형의 제주도 핀크스 석 박물관이 흐린 하늘과 새하얀 눈 사이에 찍힌 사진 앞이었다. 맞다. 설사 건축가의 이름을 몰라도 포털 사이트에 ‘제주도 미술관’을 검색하면 종종 보이는 수·풍·석 박물관 공식 사진은 모두 김용관의 작품이다. 그는 비바람이나 운무에 휩싸인 건축물 모습 그대로를 찍는다. 한 편의 묵직한 풍경 회화 같은 느낌. 그래서일까. 생전 이타미 준과의 작업물이나 건축가 조민석의 남해 사우스케이프 클럽하우스 사진은 아트 포스터로 만들었을 때 늘 인기를 끌었다.
“저는 전달자예요. 건축물의 모습과 정보를 알릴 의무가 있는 건축 사진가로 일해왔으니 충실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 가능하면 눈에 보이는 그대로 찍어요.” 김용관은 사진을 반듯하게 찍는다. 그가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도 그렇다. 진짜만을 원한다. 작가가 음악을 벗 삼아 일하는 사무실에는 소품 하나도 ‘카피’가 없고 모두 ‘오리지널’이다. 눈에 보이는 그대로 찍기 위한 방식도 분명하다. 의뢰를 받으면 먼저 건축물을 보러 간다. 가능하면 사람이 없을 때 찍으려고 안팎을 오가며 한참을 노린다. “주인처럼, 손님처럼 경험하기 위해서예요.” 공간의 분위기를 충분히 느꼈을 때 간단한 카메라 가방만 메고 찍을 곳에 홀로 선다. 조수를 두지 않는 건 아직 ‘내 이름을 맡길 용기’가 없어서다.
“사진이 아날로그 필름에서 디지털 파일로 바뀌었고, 여러 컷을 찍은 뒤 수정하기도 쉬워졌지만 저는 겨우 몇 컷만 공들여 찍어요. 사진 원본에 거의 손대지 않습니다. 제가 본 질감을 살리기 위해 콘트라스트를 조절하는 것 외에는 합성도 하지 않고요.” 언제나 잘 찍고 싶은 목표가 있지만, 무심결에 유행을 따르는 불필요한 영향을 받을까 주의한다. 다른 잡지 사진을 보지 않는 건 쉽게 부러워하고 싶지도 않아서다. “사진을 처음부터 이론으로 배우지 않았어요. 전공한 것도 아니고요. 스스로 해내야겠다는 자의식이 크기 때문일지도 몰라요.”

1 이타미 준이 설계한 제주도 핀크스 석 박물관.
2 건축가 김찬중이 설계한 울릉도 힐링 스테이 코스모스 리조트.
3 건축가 조민석의 남해 사우스케이프 클럽하우스.

1990년 7월, 건축 전문지 <건축과 공간>에서 사무원으로 일을 시작할 때, 편집부 권유로 사진팀에 내려가 카메라 조작법을 배웠다. 며칠 만에 대전 두리예식장을 처음 찍었고, 바로 다음 달 표지를 찍었다. 스물다섯에 독립하고 2004년부터 8년간 <공간> 포토 디렉터를 맡았다. 그가 사진을 천직으로 받아들인 지난날은 운도 좋고 유연했지만, 만들어온 원칙은 꼿꼿하다. 그는 20년 전 특별한 사진 계약서를 만들었다. 이른바 갑과 을이 동등한 5 대 5 법칙을 적용한 내용이다. 기업 건축주 대상으로는 삼성미술관 리움에 처음 썼다. 개관 사진 촬영 건이었는데 저작권은 사진가 김용관에게 있고, 촬영을 의뢰한 건축주는 사진 배포를 위한 사용권과 소유권을 나누며, 매체에 홍보용 사진 제공 시 지면에 반드시 작가 이름을 표기한다는 것이 골자다. “리움 측이 선뜻 수락했어요. 계약 담당자 말로는 삼성에서도 처음이라고 하더군요. 건축계를 떠나 상징적인 일이죠. 이 생각을 하게 된 건 1999년 서울 로댕갤러리 사진으로 미국건축협회(AIA)에서 건축사진상을 받고 나서예요.” 한국인으로는 최초다. 당시 협회는 건축가가 수상하면 해당 건축물을 찍은 사진가에게도 상을 주었는데, 로댕갤러리를 설계한 미국 설계 그룹 KPF가 수상(Excellence in Design)하면서 그도 받았다. “좋은 사진 덕에 인정받았다며 건축가가 직접 연락한 것도 기뻤지만, 사진을 언론사에 제공할 때마다 승인 사인을 해달라고 제게 메일이 오더군요.” 충격적이었다. “어쩌면 당연한 건데, 한국에선 지금도 드문 일로 여겨요. 최선을 다해, 자식같이 만들어내는 만큼 이름을 걸고 책임져야죠. 누구라도 나서줘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사진의 최종 선정도 직접 한다. 누구든 이 원칙에 동의하지 않으면 그와 일할 수 없다. 광고사진도 마찬가지다. “그 후로 다른 작가들도 같은 계약서를 쓴다고 생각하면 기분이 좋아요.”
김용관이 나선 일은 하나 더 있다. 2009년 건축 전문 출판사 ‘아키라이프’를 창업한 뒤 덴마크의 세계적 건축가 BIG(Bjarke Ingels Group) 등 해외 건축가의 모노그래프 외에도 표지 사진 없는 건축 전문지 <다큐멘텀>을 사재로 제작한 것. 서른한 살 무렵 첫아이를 낳고 삶의 무게가 달라졌을 때 작정한 일이다. “나는 ‘오더 메이드’로만 일하는데 계속할 수 있을까, 내가 잡지를 만들면 사진도 함부로 잘라 쓰지 않을 테고 더 오래 일할 수 있겠지 생각한 거지, 뭔가 ‘인생을 걸었다’ 이런 건 아니에요.” 작가는 가볍게 말하지만 <다큐멘텀>은 ‘기록하는 집’이란 이름 그대로 건물 기획 단계부터 완성까지 긴 시간을 사진과 인터뷰를 통해 소재 하나까지 면밀히 얘기한다. 책은 작업 형태나 국적과 관계없이 좋은 건축가를 찾아 같이 발전하겠노라고, 짧은 서문으로 목적을 갈음했다. “오래 활동했지만 많이 드러나지 않아서인지, 요즘 젊은 건축가들은 제게 연락하기를 어려워한다네요. 원칙만 지키면 일의 규모는 상관없어요. 첫 작업 의뢰, 언제든 환영합니다.” 잡지 속 순수한 기사의 가치를 알리고 싶어 20년 만에 명함도 만들고 안 하던 인터뷰도 응해봤다. 그러나 2013년부터 2015년, 창간 준비 0호부터 5호까지 나온 <다큐멘텀>은 대형 서점 위주의 꾸준한 판매에도 총 6권을 끝으로 발행을 멈췄다. 성장하는 우리 건축계를 기록하는 기쁨이 컸건만, 이득을 따지지 않고 만드니 제작비가 모자랐다. 절치부심했다. 사무실을 좁은 곳으로 옮기고, 더 열심히 일했다. 그리고 건축가 양진석과 김찬중, 가구 회사 디사모빌리 등 건축계의 응원을 받아 올 6월, 3년 8개월 만에 6호를 냈다. “다시 낼 수 있을지 확신이 없어 200여 명의 정기구독을 신청한 독자에게 일일이 환불문의 전화를 돌렸는데, 대부분 괜찮다고 하셔서 감동했어요. 공들여 만든 걸 알아주는 것 같았죠.”
이쯤에서 개인전을 치를 법도 한데, 김용관은 작가로서 전시에 참여한 적이 없다. “첫 셔터를 누르고 올해가 꼭 30년 차지만, 전시 생각을 해본 적은 없어요. 만약하게 된다면 건물의 피부나 결 같은 물성을 다루고 싶네요.” 근본에 충실한 삶, 그것이 김용관의 최종 작업이다.

 

에디터 김미한(purple@noblesse.com)
사진 안지섭(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