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을 잊은 나에게
밤은 더 깊어지고, 모든 날이 다 좋은 가을이 왔다. 온 감각을 곤두세워 이 밤을 만끽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았다. 그래서 지금, 심야 책방으로 간다.

헤르만 헤세는 <잠 못 이루는 밤>이라는 에세이에서 “하루라도 불면의 밤을 가져보지 않은 사람과는 사랑할 수 없을 것 같다”고 고백한다. 그의 표현을 빌리면, 사람들이 낮 동안 영위하는 정서 생활은 그다지 순수하지 않으며 마치 반쯤 졸고 있는 것과 같다. 이처럼 예속과 억압에 갇힌 영혼으로 생활을 영위하다 어느 날 문득 잠 못 이루는 불면의 밤, 즉 ‘영혼의 시간’을 마주하게 되었을 때 사람들은 우연히 삶이 선명해지는 순간을 경험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 시간에 사람들은 자신이 온갖 외적인 것에 흔들리지 않는 단단한 힘을 내면에 지니고 있음을 깨닫기도 하고, 삶의 관계와 법칙을 풀어내기도 하며, 심오한 시선을 얻을 수도 있다. 이처럼 헤르만 헤세는 “깨어 있는 밤의 가치를 내적인 교육이자, 자기 자신을 존중하고 사랑할 수 있는 외경심의 학교”라 했다. 최근 문화 운동처럼 퍼진 ‘심야 책방’은 깨어 있는 밤의 가치를 알게 해주는 좋은 기회로 삼을 만하다. ‘함께 읽는 2018 책의 해’ 정책의 일환으로 시작된 심야 책방은 전국의 크고 작은 서점들이 자유의지로 매달 마지막 주 금요일에 밤늦게까지 책방 문을 열어둔다. 부산에도 이터널 저니, 문우당서점, 책방 카프카의 밤, 메멘토모리, 북그러움 등의 서점이 심야 책방을 열고 있다(매달 전국의 심야 책방 정보는 www.book2018.org에서 확인 가능하다). 각 서점마다 어떻게 함께 밤을 보낼지는 자유롭게 꾸민다. 심야 책방의 매력은 거기에 있다. 책 읽기는 어쩌면 하나의 좋은 구실일 뿐, 한 달에 하루쯤은 의미 있는 불면의 밤을 누리자는 것을 심야 책방의 참의미로 새길 만하지 않을까?

1 피아니스트 송준서와 함께 한 심야책방. 2 작가 손아람과 함께 한 심야책방.
년 전부터 지금까지, 총 10회 심야 책방을 열어온 ‘이터널 저니’는 평소 마주하기 어려운 이들을 책방에 초대해 졸린 영혼을 흔들어 깨운다. 이곳에 온 사람들은 시인 박준과 시를 낭독하고, 피아니스트 송준서와 재즈 피아노 음악을 감상하고, 심리학자 황상민과 자기 내면을 들여다보는 시간을 즐겼다. 이터널 저니의 심야 책방을 기획한 이호진 팀장은 그것의 매력을 ‘책 이상의 것을 얻어갈 수 있는 시간’에 있다고 말한다. “사실 반나절의 시간이 많은 걸 바꾸진 못합니다. 그러나 심야 책방을 다녀가신 분들의 의견을 들어보면, 일상을 깨워주는 유의미한 동기부여가 된다고 해요. 낮 동안 생산적 활동을 해야 한다는 강박을 잠시 벗고, 밤을 새우며 온전히 자기만의 시간을 누릴 수 있다는 것에 매력을 느끼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자기만의 시간을 갖는 것의 필요성과 중요성은 잘 알지만, 어떻게 그 시간을 보내야 할지는 잘 모르시더라고요.” 책방에 모인 이들에게 주제에 따라 질문을 던지고, 팀 구성원들의 생각을 조율하며 의견을 내도록 독려함으로써 자기 내면을 더 잘 알 수 있게 해주는 것. 갈수록 책을 읽지 않는 시대에 책 판매 이상의 것을 해야 하는 책방의 주인은 사람들이 책을 좋아하게 이끌고, 책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자신을 알아가는 시간을 제공하는 조력자가 된다. 책방 ‘북그러움’의 김만국 대표는 “요즘 사람들이 절대 떼어놓기 힘든 휴대폰을 2시간이나마 꺼놓게 하고, 심야 책방을 시작합니다. 금요일 밤은 으레 시간과 돈을 소비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시간과 돈을 ‘버는’ 것으로 만들어주는 것이 심야 책방의 매력 아닐까요? 특정 공간에서 조용히 자기만의 시간을 갖고, 같은 관심사를 가진 이들끼리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는데, 그것이 결국 자신을 새롭게 경험하는 시간으로 돌아오니까요.”
모든 날이 좋아 독서가 되레 힘들다는 계절, 가을. 가을밤의 심야 책방은 손에 잡히지 않는 책을 들게 하고,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게 한다. 그리고 헤르만 헤세가 에세이 말미에 새겨둔 것처럼, ‘잠을 이루지 못하는 모든 이들이 분명 의무를 치르고 대가를 얻는’ 시간을 주기도 한다.
에디터 손지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