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뱅크시의 뉴욕 점령기와 대단한 위작 작가

ARTNOW

뉴욕에서 근래에 일어난 미술 스캔들 중 가장 뜨거운 2가지 사건을 추렸다. 하나는 거리 예술가치곤 과하게 유명한 미술계의 슈퍼스타 뱅크시가 일으킨 사건. 다른 하나는 거장의 위작을 그려 옥션에서 실제 고가에 거래하는 데 성공한 천재 위조 작가에 대한 사건이다.

1 맨해튼에서 발견된 뱅크시의 첫 번째 낙서 2 뱅크시의 네 번째 낙서 중 하나, 벽 가장자리로 낙서를 떼어가려는 흔적이 보인다.

뱅크시의 뉴욕 점령기
영국 작가 뱅크시(Banksy)가 뉴욕에 떴다. 그가 뉴욕에서 한 달간의 레지던시를 선포한 것. ‘안보단 밖이 낫다’라는 제목의 프로젝트를 수행하며 그는 매일매일 작업한 내용을 자신의 블로그(banksyny.com)에 올렸다. “화실 안에서 그린 모든 그림은 야외에서 그린 그림보다 절대 좋을 수 없다”는 폴 세잔의 말을 응용한 그의 프로젝트는 거리 예술가에게 적합한 표현처럼 보인다. SNS에선 그의 포스팅이 올라오기도 전에 매일 어떤 작품이 어디에 어떻게 설치됐는지 빠르게 공유했다. 뉴요커들은 점심시간과 퇴근 시간을 쪼개 성지순례를 떠났다. 뉴욕에 여전히 남아 있는 그의 발자취를 좇았다.
10월 1일, 흑백의 선명한 벽화에 붉은색을 포인트로 사용한 전형적인 뱅크시의 작품이 맨해튼에 처음 등장했다. ‘그라피티는 범죄’라고 쓰인 문구에 스프레이로 엑스 표시를 하고, 그 문구에 손을 뻗고 있는 두 소년을 그린 그림이다. 하지만 이 작품은 얼마 지나지 않아 흰 페인트로 지워졌다. 사람들이 확인할 수 있었던 건 고작 페인트에 가려 희미하게 보이는 그라피티의 어렴풋한 형상뿐(SNS에선 건물주가 흰 페인트를 사용했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뒤늦게 그곳을 찾은 사람들은 흰 페인트 위에 또다시 이렇게 낙서했다. “뱅크시를 보러 왔는데….”
10월 4일, 뱅크시는 오래전부터 뉴욕 곳곳을 장식하고 있던 3개의 낙서 Occupy(점령), Playground Mob(마피아의 놀이터), Dirty Underwear(더러운 속옷) 위에 ‘더 뮤지컬’이란 글자를 더해 마치 그것이 뮤지컬 홍보 그라피티인 양 변신시켰다. 필자가 목격한 작품은 맨해튼 딜런시 거리의 ‘Playground Mob’. 하지만 그곳엔 이미 벽을 떼어가려는 시도가 있었던 듯 가장자리에 사각형의 반듯한 생채기가 나 있었다.

1 뱅크시의 낙서 앞에서 포즈를 취하는 뉴요커
2 뱅크시의 낙서 앞에서 장난을 치는 아이들
3 뱅크시의 흔적은 도시 곳곳에서 발견된다.

10월 13일, 뱅크시는 홈페이지에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 “난 어제 내 사인이 담긴 판화들을 팔려고 어딘가에 가판을 설치했다. 작품의 가격은 하나당 60달러.” 뱅크시는 노인 한 명을 고용해 가판에 앉히고 그에게 자신의 판화를 팔게 했다. 하지만 판화 작품은 그리 많이 팔리지 않았다. 오후 6시 가판을 접을 때까지 팔린 판화는 고작 8점, 총 420달러의 이익을 거뒀을 뿐이다. 뱅크시가 홈페이지에 올린 당시의 영상을 보면 행인들은 판화에 눈길도 주지 않은 채 무심히 노인을 지나쳐간다. 통상 뱅크시의 작품 1점은 몇만 달러부터 시작한다는데, 그 절호의 기회를 놓친 셈이다.
10월 17일, <뉴욕포스트>는 뉴욕 경찰이 뱅크시를 수배 중이며, 그를 곧 예술 파괴 행위로 기소할 거라고 첫 페이지에 전했다. 그리고 공공 자산에 그린 그의 모든 작품을 제거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뱅크시는 그 신문을 그대로 홈페이지에 올리고 다음과 같이 적었다. “신문은 결코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
10월 31일, 레지던시 마지막 날. 이날 뱅크시는 퀸스의 한 창고 측면에 풍선들이 “BANKSY!”라고 말하고 있는 거대한 그라피티 사진을 올렸다. 뱅크시의 마지막 작품이다. 하지만 이마저 불미스러운 사건에 휘말렸는데, 사내 2명이 이 풍선 그라피티를 훔치려다 저지하는 뱅크시의 팬들과 몸싸움을 벌였고, 결국 경찰에 체포된 것.
사실 모든 사람이 뱅크시의 팬은 아니다. 전 뉴욕 시장 마이클 블룸버그(Michael Bloomberg)는 공개적으로 그라피티는 예술이 아니라고 천명했고, 뱅크시가 도저히 마음에 안 드는 몇몇 뉴요커는 뱅크시의 작품 대부분을 심하게 파손했으니 말이다. 사실 뱅크시처럼 긍정적 피드백을 많이 받는 거리 예술가는 드문 경우다. 그럼에도 수많은 작가가 제2의 뱅크시를 꿈꾸며 새벽에 스프레이를 들고 벽을 찾아 배회한다.

가짜 천재 화가와 사기꾼 딜러의 결말
한 비범한 화가가 퀸스의 창고에서 단돈 몇천 달러를 받고 제작한 위작이 수백만 달러에 거래된 사실이 밝혀져 뉴욕 미술계가 발칵 뒤집혔다. 롱아일랜드에서 온 아트 딜러 글래피라 로살레스(Glafira Rosales)가 이 일을 주도해 체포됐고, 조사와 재판이 이뤄졌다. 결국 로살레스는 지난 15년 동안 최소 63점의 가짜 미술 작품을 지역 화랑에 팔아 3000만 달러가 넘는 돈을 챙긴 혐의를 인정했다. 2013년 9월 로살레스는 세금 포탈, 돈세탁, 사기로 실형을 선고받았고, 8000만 달러의 배상금을 내야 한다. 당연히 그의 집과 컬렉션도 압수했다. 피해자는 10여 명으로 좁혀졌는데 그중 상당수가 아시안이며 한국인도 포함돼 있다고.
사기 친 화상은 벌을 받겠지만, 그 모조품을 제작한 화가는 처벌을 면했다. 아니, 오히려 위조 화가의 재능에 대중의 관심이 쏠렸다. 작가의 이름은 최근에야 밝혀졌다. 중국인 페이천 첸(Pei-Shen Qian). 15년 동안이나 전문가들도 깜빡 속은 위작을 제작한 그는 맨해튼 아트 스쿨에서 트레이닝을 받았다. 1990년대 초 길거리에서 작품을 팔다 로살레스에게 발탁돼 위작 전문가로 재탄생했다고. 잭슨 폴록부터 빌럼 데 쿠닝, 바넷 뉴먼, 마크 로스코에 이르기까지 추상표현주의 작가들의 작품을 완벽에 가깝게 ‘혼자’ 모작해온 작가의 재능이 아까울 수밖에 없다.
<뉴욕타임스>의 미술평론가 캔 존슨(Ken Johnson)은 2013년 12월 30일자 뉴스에 2006년 중국 상하이의 한 갤러리에 걸린 첸의 작품을 대거 소개하며 작품의 저열함을 우회적으로 말했다. “어떤 특정한 시각이 결여”돼 있고, 후기 인상주의와 중국 전통 회화, 20세기 초반의 입체주의 등이 뒤죽박죽 뒤섞여 있다는 것. 뉴먼이나 로스코 같은 숭고한 정신성이 중요한 회화와 데 쿠닝이나 폴록처럼 작가의 역동적 필력이 필수인 그림을 원작과 매우 유사하게 그려낸 작가의 모사품 아닌 ‘창작품’이 실망스럽기 그지없다는 얘기다. 실력이 형편없는 작가가 완벽한 추상화 작품을 그려냈으니, 한동안 추상표현주의 작품의 자리는 어쩔 수 없이 위태롭게 됐다.

에디터 이영균 (youngkyoon@noblesse.com)
글·사진 이나윤(미술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