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청은 생기지 않는다
오역과 의역이 난무하는 번역물 앞에서 우린 언제까지 번역청이 생기기만을 고대해야 할까? 그것이 결코 이뤄지지 않을 꿈이란 것도 모른 채.

1 올 초 영화 자막 오역 논란의 중심에 있었던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
2 양질의 번역 콘텐츠로 평생 일본어 책으로 공부하고도 노벨상을 수상한 마스카와 도시히데 교수.
3 국내에 수준 높은 국문 자막 시대를 연 미국 시트콤 <프렌즈>.
4 국내에 개봉한 할리우드 영화 자막의 대표적 오역 사례로 꼽히는 <수어사이드 스쿼드>.
“Mother F….”
위기에 빠진 어벤져스의 퓨리 국장이 미처 다 내뱉지 못한 말이다. ‘영알못’이 아니면 누구나 아는 그 단어. 당장 어떤 욕으로 맛깔 나게 번역해야 그 의미가 잘 전달될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리는 장면이다. 하지만 영화 속 자막은 예상을 뒤엎는다. 너무도 정확히 앞 단어의 뜻만 자막으로 보여준다. “어머니.” ‘머더 퍽’을 어떻게 ‘어머니’로 번역할 수 있느냐고? 지난봄 1000만 관객이 든 영화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에선 가능했다. 심지어 이 영화엔 아예 스토리를 잘못 이해하게 하는 오역도 나온다. 주인공 중 한 명인 닥터 스트레인지의 대사 “It’s the end game”을 완전히 다르게 번역한 것. 맥락상 ‘최종 단계’라는 뜻의 ‘end game’을 살려 ‘우린 최종 단계에 와 있다’라고 번역해야 적절했다. 하지만 이것이 ‘가망 없다’로 둔갑했다. 특히 이 부분은 스토리의 흐름을 가르는 중요 장면이기에 한동안 영화 게시판이 시끌시끌했다.
다음은 2014년에 개봉한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져>. 캡틴 아메리카 역의 스티브가 동성 친구 버키와 옛일을 회상한다. 버키가 어머니를 잃은 스티브를 위로하며 ‘우리 집에 와서 사는게 어떠냐’고 제안하곤 “I was gonna ask…”라고 말한다. 맥락상 ‘내가 물으려던 건…’이라고 번역해야 자연스럽다. 하지만 자막은 배신한다. 버키는 스티브에게 “그거 할래?”라고 묻는다. 마초 냄새 풀풀 풍기는 슈퍼히어로 영화가 단숨에 퀴어물로 전락하는 순간이다.
이런 ‘사고’가 끊이지 않자 최근엔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까지 불만 글이 올라온다. 외국 영화를 다수 오역한 특정 번역가를 퇴출하자는 청원에 1만 명의 시민이 동의했다. 이보다 눈에 띄는 글도 있다. 위태위태한 국내 번역 시장을 대체할 국가 차원의 번역청 설립 청원이다. 번역청 설립? 그렇다. 이는 단순히 영화만을 문제 삼는 게 아니다. 드라마와 공연, 문학, 만화 등을 가리지 않고 모든 걸 아우르는 명제다. 일례로 지난해에 노벨 문학상을 받은 소설가 가즈오 이시구로의 <남아 있는 나날(The Remains of the Day)>을 펴낸 한 출판사는 지금도 그 제목을 ‘그날의 흔적’또는 ‘그날의 유물’ 정도로 번역해야 옳지 않았느냐는 논란으로 고통받는다. 한데 이런 문제가 자꾸 확장하는 데엔 대단한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니다. 해외 콘텐츠 ‘덕후’가 늘고 대중의 외국어 실력이 높아진 것이 원인이다. 하지만 그래서 더 궁금하다. 그렇다면 공급자의 입장에서 번역에 더 신경 쓰면 되는 일일 테니 말이다. 그런데 왜 계속 번역 문제가 생기는 걸까?
사실 이는 오래전부터 번역에 별로 신경 쓰지 않은 우리 특유의 풍토 때문이다. ‘번역학’이라는 학문이 존재하지만, 여타 학문에 비해 위상도 낮다. 그 때문에 번역을 하려는 이도 적다. 번역을 인정하는 분위기도 아니다. 그러다 보니 번역은 꼭 필요한 곳에서만 이뤄진다. 번역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이가 없으니 당연히 그건 부차적 요소가 됐다. 외국 책을 번역해 펴내는 한 소규모 출판사 대표는 “그렇지 않아도 적자인 출판사에서 ‘줄일 수 있는 비용’ 중 하나가 번역료”라고 말한다.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 번역청 설립을 제안한 역사학자 박상익은 지금의 번역 문제를 대학에서 찾는다. 그는 “해외에서 공부하고 돌아온 교수들이 한국 대학의 교수로서 한국 학생들에게 무언가를 가르치려면 최소한 한국어로 쓰인 교재를 활용해야 하는데, 영어 교재에 해외 사례를 들어가며 그 나라식으로 학생을 가르치는 것, 더불어 교수들이 그렇게 책임감을 가질 수 없도록 만들어놓은 학교가 문제”라고 말한다.
영화 번역가라고 할 말이 없는 건 아니다. 익명의 한 영화 번역가는 “영화제에 출품한 영화를 몇 편 번역한 적이 있는데 겨우 사흘만 주어졌고, 그것도 영상 없이 대본만 보고 작업하라는 식이었다”고 말한다. 이는 사실 영화 배급사들이 번역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한 문제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그간 오역 논란이 있었던 외화 수십 편을 내놓은 배급사들의 반응은 한결같다. “달리 답할 말이 없습니다.”
에디터의 경우 예전엔 번역이 ‘외국어를 모르는 이에게 한국말로 잘 바꿔 알려주는 것’이라 여겼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번역은 단지 언어를 변환하는 게 아니다. 언어로 대표되는 문화적 차이를 짚어 다른 나라 사람에게 정확한 맥락과 의미를 전달하는 일이다. 요새 번역학에선 이렇게 문화적 차이를 번역해내는 걸 ‘문화 번역(cultural translation)’이라 한다. 그리고 이는 날로 더 중요해지고 있다.
영화나 드라마 번역은 문화 번역이 얼마나 폭넓게 이뤄지고 있는지 보여준다. 2000년대 초반 ‘미드’가 본격적으로 수입됐을 때를 떠올려보자. 당시 주된 역할을 한 건 자발적으로 그것을 번역하고 자막을 만든 팬들. 그들은 그 시절 언어만 번역하지 않았다. 자막에 부가 설명까지 붙여 그걸 완벽히 이해할 수 있게 도왔다. 시트콤 <프렌즈>가 대표적. 하지만 지금 우리 사회에선 그런 문화 번역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나? 아니, 오히려 문화 번역이 가장 두드러져야 하는 영화나 드라마 등의 번역에서 그냥 언어를 옮긴 것에 불과한 것도 많다. 번역의 중요성을 인지하지 못하니 되도록 싼값에 하려 하고, 오역이 생겨도 그냥 유야무야 넘긴다. 이런 상황이라면 ‘어머니’를 뛰어넘는 ‘아버지’라는 오역이 나오는 일도 시간문제 아닐까?
2016년 오스미 요시노리 도쿄 공업대학교 명예교수가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았다. 이로써 일본은 3년 연속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해냈다. 일본이 노벨상 수상자를 지속적으로 배출할 수 있는 배경엔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모든 이유의 바탕이 되는 하나를 꼽으라면 번역이 아닐까 싶다. 일본엔 공부하는 이가 읽지 않으면 안 되는 모든 학문 분야의 기초 고전과 주요 도서가 모두 일본어로 번역돼 있다. 외국어를 모르는 이도 읽고 이해할 수 있는 번역 인프라를 갖춘 셈이다. 2008년 노벨 물리학상 공동 수상자인 마스카와 도시히데 교토 산업대학교 교수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는 평생 일본어 책으로 공부한 탓에 영어를 거의 못했다. 그래서 스웨덴 한림원에서 “난 영어를 못합니다”라고 밝힌 후 일어로 연설을 했다. 잘 번역된 콘텐츠는 마치 공기 같아서 풍부한 양질의 번역 콘텐츠를 보유한 일본 학자들은 늘 좋은 공기를 마시며 연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은? 좋은 책을 번역해 펴내는 출판사는 하루가 멀다 하고 문을 닫는다. 남은 출판사들은 ‘팔릴 만한’ 책만 펴낸다. 공익사업을 수행해야 하는 정부는 뭘 하느냐고? 한국연구재단에서 운영하는 명저번역지원사업 정도가 유일한데, 그마저 2011년 24억 원에서 2017년엔 10억여 원으로 예산이 줄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누굴 탓할 수 있을까? 정말 번역청이 생기길 기도라도 해야 할까?
에디터 이영균(youngkyoon@nobless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