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은 죽지 않는다
미술계에서 베를린의 위상이 높아지며 이 도시를 걱정하는 시선이 늘고 있다. 세계적 수준에 걸맞게 물가가 치솟고 결국 사람들이 떠날 거라고. 한데 정말 그럴까?

올해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황금사자상을 받은 안네 임호프의 ‘파우스트’. ‘월 포메이션’으로 황금사자상을 받은 프란츠 에르하르트 발터.
세계 미술계의 주요 행사인 카셀 도쿠멘타와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 쾰른 아트 페어, 베를린 아트 페어 등을 개최하며 전 세계 예술의 흐름을 주도하는 독일. 그 안에서도 수도 베를린은 과거 동독의 문화 예술과 서독의 문화 예술이 어우러진 출발점이자 다양한 인종과 문화가 모이는 광장 역할을 하고 있다. 유럽 도시 중 많은 예술가에게 사랑받는 도시이며 갤러리 밀도가 가장 높은 도시이기도 하다. 반면 그 유명세만큼 베를린의 물가도 계속 오르고 있어 젊은 예술가들에겐 적지 않은 부담이 되기도 한다. 전 베를린 시장 클라우스 보베라이트는 “베를린은 가난하지만 섹시하다”고 말했지만, 사실 베를린은 더 이상 가난하지 않다. 이미 지난해에 2.7%의 성장률로 독일 각 주의 2016년 경제성장률 중 최고치를 기록했기 때문이다.
1989년 11월 9일 베를린 장벽 붕괴 이후 독일 수도로 리모델링된 베를린은 세계 각지에서 몰려든 예술가들의 메카가 됐다. 독일 정부의 포용적 예술 정책으로 시 당국이 저렴한 집값과 박물관, 미술관 등의 문화 인프라를 내세워 미술가를 적극 수용, 그들의 창작 기반을 활성화하는 정책을 펼쳤기 때문이다. 저렴한 물가와 싼 임대료에 매력을 느낀 세계의 가난한 예술가들은 베를린으로 몰려들었다. 이때부터 베를린은 훌륭한 기획자와 컬렉터, 대가들이 모이는 도시가 되었다.
하지만 1990년대 중반에 베를린도 세계에 유행처럼 번진 젠트리피케이션을 피하진 못했다. 예술가들에 의해 도시가 매력적으로 변하자 많은 예술 공간이 도시 개발에 밀려났고, 그 영향으로 물가가 상승, 거주지 임대료 또한 치솟았으며 결국 젊고 가난한 예술가들은 베를린에서 설 자리를 잃어갔다. 일부 성공한 상업적 예술가들은 이미 런던과 뉴욕으로 삶의 터전을 옮기기도 했고 말이다.
하지만 뉴욕과 베를린을 오가며 영화 연출과 설치미술 작업을 하는 비올라 이젠버그(Viola Isenberg)의 생각은 다르다. “젠트리피케이션으로 (베를린의) 임대료와 물가가 많이 올랐다고 해도 이곳은 여전히 배고픈 예술가들의 천국”이라고, “뉴욕에 비해 아직도 많이 저렴한 극장과 퍼포먼스 공간, 콘서트장, 갤러리와 예술 공간, 거주 공간이 존재한다”고 말한다. 이미 성공한 상업 예술가가 아니면 비싼 임대료를 내며 작품 활동을 해야 하는 뉴욕과 런던에 비해 아직 베를린의 물가는 예술가들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덧붙인다. 쉬운 예로 베를린에서와 같은 문화적 혜택을 뉴욕이나 런던, 파리, 취리히 등의 도시에서 누리려면 2~3배 이상의 돈을 지불해야 한다.

1 지난 5월 실험적 작가들을 지원하는 퀸스틀레르하우스 베타니엔에서 열린 태국 작가 오라완 아룬락(Orawan Arunrak)의 개인전 출품작 ‘Exit-Entrance’.
2 독일 현대미술과 미디어 아트 분야에서 중추적 역할을 하고 있는 ZKM.
더불어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독일 출신 작가들이 주목받는 시기이기도 하다. 영국 출신 아티스트들이 한때 조명받고, 1990년대 말과 2000년 초반에 북유럽 출신 작가들이 이목을 모은 것처럼 현재 베를린을 비롯한 독일 출신 작가들이 국제 미술계를 주도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참고로 독일 미술은 지난 5월 개막한 제57회 베니스 비엔날레 독일 국가관에서 안네 임호프(Anne Imhof)가 선보인 작품 ‘파우스트’와 프란츠 에르하르트 발터(Franz Erhard Walther)의 ‘월 포메이션’으로 2개뿐인 황금사자상을 모두 휩쓸며 세계 미술계에서 주목받기도 했다. 특히 안네 임호프의 ‘파우스트’는 비엔날레 내내 ‘베니스의 가장 빛나는 신작’으로 불렸다. 나치 시대에 지은 천장 높은 공간을 건축적으로 절묘하게 변용하면서 시대의 위기적 징후를 몸짓과 춤, 노래 등으로 드러내는 다양한 방식의 행위예술을 선보여 관람객의 시선을 압도했다. 개인 황금사자상을 받은 노장 프란츠 에르하르트 발터도 몸을 움직여 천을 꿰매거나 이어 붙이는 감성적 바느질 작업으로 개념미술과 행위예술이 녹아든 시각예술의 새로운 영역을 일궈냈다는 평을 받았다. 이는 독일 미술이 이미 세계 미술의 중심에 서 있으며, 시장 또한 글로벌 기준으로 활성화되고 있다는 것을 단적으로 말해준다.
지금 독일 미술은 과거 나치 시대 예술 억압의 어두운 역사를 성찰하며 표현주의와 바우하우스, 신표현주의 같은 특유의 미술사조를 사회적 맥락에서 끊임없이 복기하고 재검토하고 있다. 정치적·사회적 맥락의 토론을 중시하는 미술 교육의 탄탄한 전통과 1990년 동·서독 통일 이래 개방적으로 세계의 시각 문화를 수용한 지자체의 미술 정책이 있었기에 현재 뉴욕, 런던과 더불어 세계 미술 시장을 대표하는 도시로 발돋움할 수 있었다.
물론 다양한 예술가들의 노력도 한몫했다. 현재 베를린 인구는 대략 350만 명인데, 그중 20%에 달하는 70만 명 이상이 문화 예술 분야에 종사하고 있다. 즉 시민 5명 중 한 명이 창의적 분야에서 일하고 있는 셈이다. 또한 기관의 덕도 적지 않다. 마가린을 생산하던 버려진 공장에서 1990년대 초 젊은 현대미술을 연구하고 소개하는 공간으로 탈바꿈한 쿤스트베르케(Kunst-Werke Institute for Contemporary Art)를 비롯해 동서양의 현대미술 교류를 추진하고 지원하는 비영리 미술기관 쿤스트페라인64(Kunstverein64), 베를린 중심가의 알렉산더 플라츠 근방에 자리 잡고 젊고 실험적인 작가를 지원하는 퀸스틀레르하우스 베타니엔(Kunstlerhaus Bethanien), 세계 최고의 미디어 아트 센터 ZKM 등 크리에이티브를 담당하는 기관도 오늘날 베를린, 나아가 독일의 미술을 단단하게 하는 곳이다.
가난한 예술가와 외국인 방랑자가 넘쳐나지만 도시 전체가 하나의 예술 작품인 베를린. 그림을 전혀 모르는 이조차 매력적 작품을 선보이는 갤러리에 매료돼 작품을 집 안으로 모시고 싶게 하는 도시. 특히 갤러리 밀집 지역인 미테와 샤를로텐부르크를 시작으로 베를린 동쪽의 쾨니히, 포츠다머 거리에선 미술 시장이 어렵다는 지금도 다양하고 참신한 실험적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또 베를린의 이런 특징 덕에 예술가들이 계속 유입되다 보니, 그 안에서 형성되는 네트워크가 세계 미술계의 흐름에 큰 영향을 끼치기도 한다. 예술가들에게 여전히 매력적인 도시 베를린의 내일이 기대된다.
에디터 이영균(youngkyoon@noblesse.com)
글 김은아(아트 컨설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