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동시대 예술의 단면
베를린 노이쾰른에 위치한 현대미술 공간 킨들에서 세계적 영국 작가 코닐리아 파커의 전시가 열린다. 런던을 기반으로 활동해온 작가가 베를린에서 선보이는 장소 특정적 작품은 예술이 이 시대를, 또 공간을 어떻게 관통하는지 보여준다.

위 왼쪽 킨들의 아트 카셀하우스 (보일러하우스). Photo by Jens Ziehe, Berlin, 2015.
위 오른쪽 킨들의 카페 바베트 전경. Photo by Jens Ziehe, Berlin, 2018.
아래 Erik Schmidt, The Bottom Line, Digital Video, 10:27, 2018. Courtesy of Carlier Gebauer, Berlin; Galerie Krinzinger, Wien.
베를린 노이쾰른 중심부에 자리한 현대미술 공간 킨들(KINDL - Centre for Contemporary Art)은 도시의 과거와 현재가 만나고 충돌하는 흥미로운 장소다. 1926년 유럽 최대 규모의 맥주 양조장으로 지은 이 적벽돌 건물은 한때 ‘베를린 맥주 문화의 궁전’이라 불렸다. 이후 맥주 산업의 쇠퇴와 함께 긴 시간 비어 있다가 2016년, 산업적 유산을 보존한 채 실험적 현대미술 장으로 새롭게 문을 열었다. 도시화가 빠르게 진행된 베를린의 풍경 속에서도 이 거대한 건물은 이질적 위용으로 존재감을 드러낸다.
킨들은 개관 이후 전 세계 신진 작가의 실험적 작업을 꾸준히 소개해왔다. 예술감독 카트린 베커(Kathrin Becker)가 2020년부터 이끌어온 현재의 킨들은 ‘예술을 통해 세계화된 사회현상을 비판적으로 성찰하는 소통의 장’을 표방한다. 총 1600m²에 이르는 전시 공간 곳곳에서 다양한 주제의 그룹전과 개인 프로젝트가 펼쳐진다. 특히 마시넨하우스(Maschinenhaus)는 3층 구조로 층마다 약 400m² 규모의 전시장이 자리하며, 층고가 20m에 달하는 케셀하우스(Kesselhaus)는 킨들의 시그너처 공간으로 알려져 있다. 2018년 양혜규 작가의 개인전에서는 이 공간만의 수직적 감각과 음향적 깊이를 활용해 전시와 건축이 긴밀히 교차하는 사례를 보여주었다.
9월 14일, 케셀하우스에서는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영국 작가 코닐리아 파커(Cornelia Parker)의 전시 〈Stolen Thunder(A Storm Gathering)〉가 열린다. 이 전시는 베를린 아트 위크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마련했으며, 장소 특정적 설치 작업으로 구성된다. 런던을 기반으로 활동 중인 파커는 2022년 대영제국훈장(OBE)을 수훈한 인물로, 조형예술을 통해 파괴와 재구성의 미학을 오랜 시간 천착해왔다. 1991년 작 ‘Cold Dark Matter: An Exploded View’에서는 폭파된 창고의 파편을 공중에 정지시켜 순간의 해체를 하나의 시적 서사로 제시했고, 1997년 작 ‘Mass/ Anti-Mass’는 불에 탄 교회의 목재 조각을 공중에 배치해 ‘물질의 기억’을 전면에 내세웠다. 틸다 스윈턴과 협업한 퍼포먼스 ‘The Maybe’(1995),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옥상에서 선보인 ‘Transitional Object(PsychoBarn)’ (2016)까지, 파커는 ‘무너진 것들’의 파편 속에서 의미의 잔재를 되살려왔다.
〈Stolen Thunder(A Storm Gathering)〉는 전시 제목부터 역설과 도발을 내포한다. ‘천둥을 훔친다’라는 표현은 원래 남의 명성을 가로챈다는 뜻이지만, 파커의 작품에서는 문자 그대로 폭풍, 그리고 그것이 예고하는 파괴와 전환의 기운이 중첩된다. 케셀하우스의 수직성과 파커의 조형 언어가 만나 어떤 시각적 충격을 만들어낼지 아직 베일에 싸여 있지만, 전시 제목에 붙은 부제 ‘A Storm Gathering’이 작가 특유의 긴장된 시공간을 예고한다.

위 킨들의 외관. Photo by Marco Funke, 2019.
아래 왼쪽 Cornelia Parker, Cloudburst, 2012. Courtesy of the Artist and Frith Street Gallery, London. © Cornelia Parker.
아래 오른쪽 Erik Schmidt, Stone Washed, Oil on Canvas, 250×166cm, 2025. Courtesy of Carlier Gebauer.
같은 시기 킨들에서는 다양한 전시가 함께 열린다. 피비 콜링스-제임스(Phoebe Collings-James)의 개인전 〈The Subtle Rules the Dense〉는 세라믹 조각과 퍼포먼스를 통해 폭력, 욕망, 언어의 흔적을 감각적으로 탐색한다. 2020년에 개설된 영상 공간 M1 비디오 스페이스에서는 지하드 자네르(Cihad Caner)의 ‘Demonst(e)rating the Untamable Monster’를 상영한다. 이 작품을 통해 정체성과 경계성, 형상의 사회적 조건을 해체적으로 조명할 예정이다. 더불어 에리크 슈미트(Erik Schmidt)의 대규모 회고전 〈The Rise and Fall of Erik Schmidt〉는 지난 40년간 작가가 탐색해온 사회규범, 공동체, 남성성 등의 주제를 집요하게 다룬다. 이들 전시는 모두 9월 10일부터 15일까지 열리는 베를린 아트 위크의 일부이기도 하다. 2012년 11개 파트너 기관으로 시작한 이 행사는 해를 거듭할수록 규모가 커져 현재 100개 이상의 미술관, 대안 공간, 갤러리, 아트 페어 등이 참여하는 대규모 문화 축제로 자리 잡았다. 매년 특정 기관이 ‘BAW 정원’을 도맡아 관람객에게 안내하는 역할을 하는데, 작년에는 마르틴 그로피우스 바우가 진행했고, 올해는 함부르거 반호프 현대미술관이 이를 주관한다. 이곳에서는 미니 공연과 토크, 식음료 제공 등 다양한 교류 프로그램이 이어진다. 킨들을 방문한다면 지상층에 있는 카페 바베트(Café Babette)에도 머물다 가길 권한다. 옛 양조장의 설비를 그대로 보존한 독특한 인테리어가 시간의 층위를 느끼게 하고, 전시 관람 후 휴식을 취하기에 더없이 좋은 장소다. 주변에 독립 영화관 롤베르크 키노스(Rollberg Kinos)가 자리해 예술적 여정을 계속 이어갈 수 있다. 더불어 노이쾰른 일대는 매년 ‘48시간 노이쾰른(48 Stunden Neukölln)’ 등의 지역 행사를 통해 젊은 예술가와 관람객이 직접 만나는 실험적 현장으로도 주목받고 있다. 브란덴부르크 문이나 알렉산더플라츠 같은 베를린의 대표적 명소 너머 다양한 베를린의 모습을 들여다보고 싶다면, 노이쾰른은 하나의 좋은 출발점이 된다. 코닐리아 파커의 전시를 기점으로 킨들의 독특한 건축과 다층적 전시, 그리고 이 도시의 현재를 함께 경험해보자.
글 이미솔(아트 칼럼니스트)
에디터 정송(song@noblesse.com)
사진 킨들(KIND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