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에는 시를 읽겠어요
오랫동안 시를 잊고 살았다면, 봄을 맞아 다시금 시집을 집어보자. 시 읽는 즐거움을 일깨워주는 책 세 권.

언제부터인가 시를 잊고 살았다. 삶의 무게에 짓눌려 감성이 메말라버린 탓이다. 가난한 마음을 풍요롭게 하기 위해 올봄엔 시를 읽기로 다짐하고 서점에 들렀다. 그런데 막상 시집에 손이 가지 않는 건 왜일까. <시를 잊은 그대에게>의 저자 정재찬은 그 이유를 중 . 고등학교의 딱딱한 문학 수업에서 찾는다. 교사가 경전을 대하듯 주석을 덧붙여 시를 읽고, 학생들이 그 주석을 받아 적고 외우는 사이 시에 대한 흥미를 잃게 된다는 것. 이 책은 한양대학교 국어교육과 교수인 저자가 이공계 학생을 대상으로 한 ‘문화 혼융의 시 읽기’ 강좌 내용을 바탕으로 쓴 에세이다. 책에 실린 46편의 시는 모두 교과서에서 한 번쯤 배운 친숙한 작품. 저자는 이를 두고 ‘공감각적 심상’이나 ‘청각의 시각화’ 같은 고리타분한 해석이 아니라 각종 영화와 그림, 가요 등 문화 콘텐츠를 동원한 새로운 시 읽기를 제안한다. 예컨대 별을 소재로 한 옛 시를 소개하는데 알퐁스 도데의 소설 <별>, 김환기 화백의 전면점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영화 <라디오스타> 등을 언급하며 오늘날 독자의 공감을 이끌어낸다. 인문학적 지식을 통해 사고를 확장해나가는 것이야말로 시가 지닌 ‘떨림’과 ‘울림’을 제대로 느끼는 방법이라고 말하는 이 책은 시 읽기의 즐거움을 느끼게 해준다.
한편 <어쩌면 별들이 너의 슬픔을 가져갈지도 몰라>는 김용택 시인이 엄선한 국내외 문인의 시 101편과 독자들이 뽑은 저자의 시 10편을 수록했다. 이 책의 특징은 시를 ‘필사’하며 감상할 수 있는 것. 왼쪽 페이지엔 시의 원문을, 오른쪽 페이지엔 여백을 마련해 독자가 따라 쓰기 좋게 했다. 시 한 편 읽는 데 따라 쓰기까지 해야 하나 싶겠지만, 한 자 한 자 실제로 적다 보면 마음가짐이 달라진다. 그래도 잘 모르겠거든 “누구나 눈물 한 말 한숨 한 짐씩 짊어지고 밤하늘의 별들 사이를 헤매며 산다. 시인이 만들어놓은 세상을 따라가다 보면 시가 헤매는 우리 마음을 잡아줄지도 모른다”라는 ‘작가의 말’을 들춰보자. 그의 말처럼 책 한 권으로 지친 몸과 마음이 치유된다.
마지막으로 장지현 시인의 <다시>는 따스한 봄 같은 시집이다. 봄을 소재로 한 작품이 많아서다. 이 책의 첫 번째 시를 눈여겨보자. “뿌리째 뽑혀 / 쓰러진 나무둥치에 / 새순이 파릇파릇 돋았다. / 그래, / 다시 시작이다.” 봄을 맞아 새로운 출발을 다짐케 하는 데 이만한 시가 또 있을까. 책에 실린 50편의 작품은 모두 이같이 짧고 간결한 형식을 자랑한다. 일반 시와 동시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저자의 개성 덕분이다. 2003년 <문학세계>를 통해 등단한 후, 2006년 ‘오늘의 동시문학’ 신인상을 받은 시인의 시는 어린아이의 화법을 닮았다. 장황하게 설명하지 않고, 간결하게 핵심만 말해 누구나 편하게 즐길 수 있다. 또 시집엔 시인이 직접 그린 25점의 일러스트까지 담아 보는 즐거움을 더했다. 짧은 텍스트와 이미지를 소비하는 데 익숙한 젊은 사람들에게도 부담 없이 권할 수 있는 시집이다.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키팅 선생은 말했다. “의술, 법률, 사업, 기술이 모두 고귀한 일이고 생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것이지만 시, 아름다움, 낭만, 사랑 이런 것이야말로 우리가 살아가는 목적이다.” 그간 무엇이 중요한지 잊고 있었다면, 더 늦기 전에 시집을 펼쳐보자.
에디터 황제웅(hjw1070@noblesse.com)
사진 김흥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