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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父子), 부자(富者)] MY FATHER’S LEGAC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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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아들에게 DNA 이외의 무엇을 남긴다. 그건 삶의 가치나 철학부터 세월의 손때가 묻은 물건일 수도 있다. 5명의 아버지가 아들에게 남기는 인생의 메시지를 모았다.

변호사 민준기와 아들 민서준
역사를 바꾼 아버지의 펜

민준기의 아버지 민병철의 양복 안주머니에는 늘 그 펜이 꽂혀 있었다. 중요한 서류에 사인하는 일부터 사소한 메모까지, 아버지가 무언가를 적을 땐 틀림없이 당신의 이니셜을 새긴 그 펜을 손에 쥐었다. 이를테면 습관 같은 것이었다. 저명한 영어 교육자 민병철은 한국인과 미국인의 행동에서 발견한 미묘한 문화적 차이나 뉘앙스, 혹은 시시콜콜한 농담이나 아이들의 유행어까지 수첩에 소상히 메모했다. “잊지 않으려면 반드시 메모하는 습관을 들여라.” 습관처럼 그렇게 말했다. 모든 것을 기억할 수 있다고 믿은 아들은 어린 시절 아버지의 말을 믿지 않았다. 아버지의 말씀이 옳다는 사실을 깨달은 건 한참 뒤의 일이다. 민준기가 로스쿨을 졸업하던 날, 아버지는 그 펜을 선물로 건넸다. 그 펜의 주인이 바뀐 건 한 편의 역사였다.
민준기는 세상에 물질보다 가치 있는 무형의 무언가가 있다고 믿는다. 여섯 살배기 아들 서준에게 물려주고 싶은 건 바로 그런 것이다. 견고한 교육. 책이나 학교교육보다 근본적인 가정교육. 누구보다 존경한 아버지가 일평생 사용한 펜은 그가 아들에게 건네고 싶은 것들의 함축이다. 집필의 힘에 대해 일깨워준 아버지의 가르침이 지금의 변호사 민준기를 만들었듯 아들 서준에게도 온전히 전해지길 바란다. 손에 펜을 쥐는 사람은 점점 줄겠지만, 펜촉이 지닌 힘은 여전할 것이다. 무엇을 손에 쥐고 적든 기록하는 습관이 깃들기를, 그 글이 사람들의 삶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기를, 더불어 좋은 책을 출간할 수 있기를. 거기엔 민병철과 민준기가 삶의 지표로 삼는 열정과 성실 그리고 이타심이 배어 있다. 먼 훗날 아들 민서준이 이렇게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한다. “우리 아버지가 이것을 선물로 주셨다!” 그것도 아주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말이다.

이종격투기 선수 임치빈과 아들 임서원
영광의 시절을 함께한 글러브

뜀박질하는 모습이 닮았다. 글러브를 끼고 샌드백을 치는 눈빛이 예사롭지 않다. 아직 초등학교 6학년생이지만 제법 남자다운 태가 난다. 한국 이종격투기 역사를 새로 쓴 챔피언 임치빈은 아들 임서원을 볼 때마다 피가 뜨거워진다. “고놈, 잘 뛰네”, “남자는 그래야 한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던 아버지가 생각난다. 근래엔 자신의 유년기 사진을 자주 꺼내본다.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서원의 모습이 그때와 꼭 닮았다. 부자는 일주일에 한 번 둘만의 시간을 보낸다. 서울 근교의 산을 오르거나 함께 목욕하며 생각을 나눈다. 서원은 친구들에 비해 키 크는 속도가 더뎌 속상하고 임치빈 선수는 체육관 운영과 후배 양성, 경기 해설이란 바쁜 일정에 시간 분배가 고민이다.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친구 같다.
격투기보단 축구에 관심이 많지만 운동신경은 아빠를 닮았다. 임치빈도 서원이 선수가 되길 바라진 않는다. 다만 운동을 통해 소중한 것을 지킬 수 있는 자신감과 도전정신 같은 걸 배우길 바란다. 임치빈은 운동을 통해 인생의 거의 모든 것을 배웠다. 도전과 인내, 성공과 좌절 같은 진리. 그 지난한 과정이 글러브에 고스란히 담겼다. 눈물과 땀, 세월과 피가 묻은 영광의 세월인 셈이다. K-1 아시아 맥스, K-1 맥스 코리아, M-1 웰터급 챔피언에 오른 ‘대한민국 입식 격투기 혁명가’는 자신의 아들에게 그런 것을 물려주고 싶다. 그래서 서원이 자신보다 더 단단한 어른으로 성장하길 바란다. 그리고 성년이 되는 날 글러브를 앞에 두고 아들과 함께 소주잔을 기울이고 싶다고 말한다.

방송인 알베르토 몬디와 아들 레오나드로 몬디
인생에 아름다움이 담긴 CD와 책 컬렉션

알베르토 몬디에게 아버지는 음악이라는 미지의 세계를 열어준 훌륭한 친구였다. 아버지와 함께 음악을 듣던 어린 시절을 알베르토는 눈앞에 현현하는 장면처럼 실감 나게 곱씹는다. 장면 속 아버지는 운전대를 잡고, 아들은 옆자리에 앉아 CD 케이스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주로 산으로 버섯을 따러 가는 여정이거나, 식품 사업을 하던 아버지의 출장을 따라나서는 길이었다. 제네시스, 딥 퍼플, 레드 제플린, 제스로 툴…. 1970년대 밴드의 도발적인 사운드는 끈끈한 부자(父子)의 여정에 더없이 탁월한 BGM이었다. 안팎으로 덜컹거리는 트럭의 잡음마저 아름답게 감쌌다.
자유와 사랑. 알베르토 몬디가 생각하는 훌륭한 교육이란 그런 것이다. 그가 아버지에게 물려받았고, 또 아들에게 전하고 싶은 ‘형태를 갖추지 않은 어떤 것’. 음악을 사랑하는 아버지와 다독가인 어머니가 일군 지극히 자연스러운 풍경이 그 자체로 훌륭한 교육이었듯, 아들 레오에게 무언가를 형태에 담아 전한다면 그동안 수집해온 책과 CD 컬렉션이 가장 멋진 선물일 것이다. 닳도록 탐독한 20세기 이탈리아 최고 시집 부터 미하일 불가코프의 소설 <거장과 마르가리타>, 척 팔라닉의 <다이어리>, 숱하게 재생한 팀 버클리의 앨범 , 킹 크림슨의 데뷔 앨범을 포함한 방대한 양의 컬렉션. 학창 시절 “참치 통조림의 라벨까지 정독할 것 같다”는 놀림을 당할 정도로 다독가였고 한때는 ‘잠재력 있는 신인 시인 20인’에 뽑히기도 한 알베르토 몬디는 그렇게 문장과 소리를 통해 인생이 아름답다는 진리를 깨달았다. 이제 갓 20개월 된 어린 아들 레오의 맑은 눈에도 언젠가 인생이 아름답게 비친다면 참 좋겠다. 하지만 그것이 꼭 책과 음악을 통한 것이 아니라도 괜찮다.

발레무용가 김용걸과 아들 김현재
추억이 담긴 지구본과 다이어리

김용걸은 아들 현재가 태어나던 무렵 지구본을 하나 구입했다. 안쪽에 자리한 전구가 커다란 지구본을 환히 비추는 둥근 조명이었다. “세상은 넓다.” 무뚝뚝한 경상도 남자 김용걸은 그 뻔한 진리를 지구본을 통해 아들에게 이야기하고 싶었다. 여기엔 나름의 사연이 있다. 스물일곱, 김용걸이 마주한 생애 가장 가파른 인생 굴곡에 관한 이야기다. 한국 최고의 발레리노였던 김용걸이 파리행 비행기표를 끊은 건 스물일곱 살 때였다. 그 전까지 늘 무대의 중심에 있었고, 가장 뜨거운 조명 아래 춤춘 김용걸이었다. 파리는 차가웠다. 각국의 걸출한 최고들이 모인 도시에서 그는 단지 발레 좀 하는 ‘동양인’이었을 뿐. 명성과 자존심을 내려놓고 인턴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 혹독한 그 시절을 견디며 자주 되뇌었다. “세상은 참 넓구나.”
다이어리가 닳도록 무언가를 적기 시작한 것도 그때다. 지금은 낡고 해진 루이 비통 다이어리엔 그 지난한 나날의 기록이 소상히 담겨 있다. 그날의 일기부터 불현듯 떠오른 추상적인 생각, 유치하기 짝이 없는 시, 어린아이 낙서 같은 그림까지…. 생각을 배설하는 유일한 창구에는 특정한 형식이나 틀을 두지 않았다. 아들에게 유산으로 물려주기엔 창피한 내용이 수두룩한 이 다이어리가 아들 현재에게 아버지를 이해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교과서가 될 것이라 믿는 건 김용걸의 민낯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둘은 시간이 날 때마다 아이패드로 장기를 두거나 카드놀이를 즐기고 함께 미술관에 가서 작품 감상을 나누는 좋은 친구이지만, 오직 남자끼리 나눌 수 있는 끈끈한 어떤 것을 공유하고자 할 때 부산 남자 김용걸은 굳이 언어를 낭비하지 않는다. 지금은 지구본과 이 다이어리로 충분하다.

아티스트 허명욱과 아들 허태웅
손때 묻은 미니카와 빈티지 가방

5대째 한의사라는 가업을 이어온 집안에서 허명욱은 그야말로 별난 아들이었다. 아들이 한의사가 되어 가업을 잇길 바라는 아버지의 마음을 외면한 채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그 길로 상경했다. 사진가, 미술가, 공예가, 수집가…. 드물게 다재다능하고 그 무엇도 허투루 하지 않는 아티스트 허명욱의 성장 배경에는 그러한 연원이 있다. “네 선택이 옳았다.” 지금은 돌아가신 아버지가 암 투병 중 허명욱의 손을 꼭 잡으며 한 말이다. 평생 일탈이라곤 모르고 살아온 그의 가냘픈 눈에 제멋대로 사는 아들의 삶이 멋져 보인 걸까?
한의사와 아티스트. 전혀 다른 길을 걸었지만 허명욱이 작업을 대하는 진지한 태도와 성실함만은 아버지를 닮았다. 물질적 지원은 거절했지만, 아버지가 소리 없이 전한 무형의 가치는 아티스트 허명욱을 더욱 견고히 하는 디딤돌이었다. 허명욱이 아들에게 물려주고 싶은 유산 역시 그것에 가깝다. 그가 향유한 문화와 감성 그리고 취향에 관한 무엇. 어린 시절부터 새 신을 신는 게 어색해 일부러 흙탕물에 더럽혀 신고, 새 청바지를 거친 바위에 문질러 셀프 워싱을 한 태생적 빈티지 마니아의 삶에 그가 전하고 싶은 바가 고스란히 녹아 있다. 시간을 견디고 세월을 입은 빈티지 가방과 오랜 세월 수집한 미니카는 그러한 삶의 단편이다. 쓰면 쓸수록 가치를 더해간다는 믿음의 산물. 서로 몸을 부대끼며 부서지고 때론 색이 얽히고설킨 채 보관된 무수한 미니카, 수십 년 전 어린이 허명욱이 놀이터에서 가지고 놀다 흙을 채 떨지 못한 것부터 최근 벼룩시장에서 사 모은 것까지 아주 다양하다. 무엇이든 자연스럽게 그저 흐르는 대로 두어야 하고, 유산이라 해서 진열장에 고이 간직하는 건 원치 않는다. 언젠가 아들이 아버지의 손때 묻은 물건을 제 것처럼 만지며 문득 이런 생각을 떠올린다면 그저 행복할 것 같다. 내 아버지는 참 멋지게 인생을 즐기며 살다 간 분이라고.

 

에디터 조재국(jeju@noblesse.com), 전희란(프리랜서)
사진 이재안   헤어 김지혜   메이크업 장해인   스타일링 최혜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