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호들의 공유 경제
공유 경제도 갈수록 플랫폼이 진화하고 있다. 허튼 소비를 죄악시하는 부호들에게도 협력적 소비는 매력적인 아이디어다.

서드홈을 통해 빌릴 수 있는 맨해튼 미드타운 소재의 펜트하우스
해 질 무렵 맨해튼, 거리는 옐로캡과 행인들의 소음으로 부산스럽다. 그런 뉴욕 거리의 일상을 비웃듯 하늘 높이 솟은 고급 아파트의 펜트하우스엔 잘 차려입은 상류층 인사들이 모여 한가로이 와인을 홀짝이며 다음 여행지를 찾아보고 있다. 한데 뭔가 조금 이상하다. 이런 부호들 또한 숙박 공유 사이트를 정신없이 헤매고 있는 것.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최근 개인 전용기와 럭셔리 호텔 펜트하우스를 애용하는 부호들에게 새로운 즐길 거리가 생겼다. 바로 서드홈(3rd Home, www.thirdhome.com)이다. 뉴욕과 파리, 아스펜, 발리 같은 세계적 도시나 휴양지에 50만 달러(약 5억5000만 원) 이상의 세컨드 홈을 소유한 이들이 이용할 수 있는 이 숙박 공유 서비스는 쉽게 말해 부호들의 공유 경제 플랫폼이다. 서드홈은 2010년 미국발 금융 위기를 겪은 후 부호들이 전처럼 집을 많이 사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 28세의 웨이드 실리(Wade Shealy)의 아이디어에서 탄생했다. 물론 그의 예상은 적중했다. 의외로 빠르게 회원이 늘었다. 놀고 있는 부동산을 통해 수익을 올릴 수 있다는 점이 부호들에게 적지 않게 어필했다. 부호들의 별장은 대부분 관리가 잘되기 때문에 이용자도 큰 거부감을 갖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서드홈은 현재 매년 60%씩 성장세를 이어가며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1980년대를 풍미한 영국의 팝 밴드 리빙인어박스(Living in a Box) 출신 마커스 비어(Marcus Vere)는 최근 아내와 세 자녀를 이끌고 센트럴 파크가 내려다보이는 뉴욕 트럼프 타워에서 휴가를 보냈다. 물론 그도 서드홈 멤버로, 다른 회원에게 런던에서 북서쪽으로 200km 떨어진 동화 속 마을 코츠월즈(Cotsworlds)에 위치한 방 5개짜리 별장을 빌려줬다. 그는 뉴욕으로 가족 여행을 떠나기 전엔 카리브 해의 바베이도스(Barbados)에 있는 농장으로 여행을 다녀왔고, 조만간 카리브 해의 터크스 케이코스(Turks & Caicos)제도로 여행을 떠날 계획이다. 물론 모두 서드홈을 통해서다.

1 맨해튼의 스카이라인을 조망할 수 있는 서드홈의 펜트하우스 2 세일로를 통해 빌릴 수 있는 전장 50m의 메가요트 아스톤 도어
‘타인의 집을 온라인으로 예약한다’는 편리성에서 비롯한 숙박 공유 시장 규모는 연간 12조 원. 숙박 공유의 대명사가 된 에어비앤비(Airbnb) 외에도 일정 기간 특정 지역의 숙소를 맞바꾸기 위한 이들을 연결해주는 홈익스체인지(Home Exchange), 여행자에게 자신의 집을 민박 개념으로 제공해 포인트를 쌓고 향후 자신의 휴가에 활용할 수 있는 러브홈스와프(Love Home Swap) 등이 인기를 끌고 있다. 홈익스체인지와 러브홈스와프도 각각 사이트 내에 ‘럭셔리’ 카테고리를 두고 있긴 하지만 서드홈과 익스클루시브 익스체인지(Exclusive Exchange, www.exclusiveexchanges.com), IVHE(www.ivhe.com) 등의 하이엔드 럭셔리 마켓과는 그 서비스가 다르다.
서드홈 같은 럭셔리 숙박 공유 서비스는 멤버십 운영 방식도 천양지차다. 서드홈의 경우 일회성 가입비로 2500달러(약 277만 원)를 받고 거래 건당 매주 395달러(약 43만 원)에서 995달러(약 110만 원)를 받는 반면, IVHE는 매년 일정 회원비를 따로 받고 거래 건당 총 주택 렌트비의 7%를 받는다. 해당 업체에 따르면 새로운 멤버가 되기 위해선 보유 저택의 상태와 시세 감정 그리고 오너의 신원 검증 등 여러 인증 절차를 거치는데, 그 과정에서 승인이 거부되는 사례도 종종 있다고. 어찌 됐든 서드홈 멤버들이 보유한 세컨드 홈의 평균 가격은 240만 달러(약 28억 원) 정도로 전해진다. 이곳의 회원에겐 세계 73개국 4000여 개의 주택에 대한 숙박 선택권이 주어지며 그 장소는 보르도의 와이너리부터 남아프리카의 사파리까지 다양하다. 심지어 사랑하는 여인을 위해 왕권을 포기한 세기의 로맨티스트 에드워드 8세와 심프슨 부인이 살았던 바하마의 레지던스까지 포함되어 있다.
서드홈의 서비스에 대해 이 정도까지 들으니, 문득 부호들의 자택에서 행여 생길 수 있는 사생활 침해에 대한 이야기도 궁금해진다. 서드홈을 이용하는 회원들 또한 다른 ‘금수저’들의 라이프스타일에 호기심을 느끼기 마련이니 말이다. 한데 신기하게도 아직까지 부호들의 자택에 대한 사생활 관련 사건은 한 건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한다. 그 이유는 서로 조심스럽게 매너 있는 숙박을 하기 때문이라고. 그럼 이번엔 서드홈의 장점 중 하나로 알려진 숙박비 절감에 대해 알아보자. 앞서 언급한 마커스의 설명에 따르면, 가족 여행의 경우 비슷한 가격이면 럭셔리 호텔의 펜트하우스보다 서드홈이 더 넓고 쾌적한 공간을 얻을 수 있다. 여기에 집주인의 생생한 현지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것은 덤. 연평균 1억~2억 원이나 되는 경비 절감 또한 빼놓을 수 없는 메리트다. 일례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프랑스 루아르 계곡에 18세기 고성을 소유한 한 금융가 부부는 지난 8월 베트남으로 5인 가족 여행을 떠나 프라이빗 셰프와 메이드, 운전기사, 컨시어지가 포함된 개인 비치 프런트 빌라를 자신의 고성과 맞바꿔 즐겼는데, 일주일간 단돈 495달러(약 55만 원)밖에 들지 않았다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3 이탈리아 코모 호수 옆에 위치한 고급 주택들. 이 또한 서드홈을 통해 빌릴 수 있다. 4 미국 스키 리조트 중 가장 크고 아름답기로 유명한 콜로라도 베일 스키 리조트
그런가 하면 럭셔리 숙박 공유 서비스의 인기에 힘입어 최근엔 고급 요트를 공유하는 서비스도 생겨났다. 바로 요트계의 에어비앤비로 불리는 요트 공유 서비스 세일로(Sailo, www.sailo.com)다. 이들은 오너들의 다양한 요트 리스팅부터 모델 검색, 일정 예약, 승무원 섭외까지 원스톱 서비스를 제공해 인기를 끌고 있다. 스피드보트부터 길이 150m에 이르는 메가 요트까지 세일로는 현재 4000척이 넘는 요트 리스트를 제공하고 있으며, 서비스 지역 또한 뉴욕과 플로리다, 마이애미뿐 아니라 카리브 해 버진아일랜드, 크로아티아, 그리스, 쿠바 아바나, 태국까지 광범위하다. 이들은 2017년까지 2만 척의 요트 리스팅과 더 많은 지역을 커버하는 옵션을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이 서비스의 회원들은 놀리는 배를 임대함으로써 부가 수익을 올릴 수 있고, 소비자는 합리적인 가격에 원하는 요트를 렌트하고 뛰어난 선장과 승무원도 선택할 수 있으니 서로 윈윈인 셈. 세일로에서 서비스를 받는 이들에게 요트는 더 이상 투자가 아닌 라이프스타일 초이스가 된다. 금융 위기 이후 부자들이 지갑을 여는 방법은 갈수록 영민해지고 있다. 하지만 모든 산업이 그러하듯 공유 경제도 진화하고 있다. 공유 경제 플랫폼은 현재 부호들의 라이프스타일을 그 어느 때보다 스마트하게 만들고 있다.
에디터 이영균(youngkyoon@noblesse.com)
글 최준혁(트래누보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