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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호들의 미래 사업

LIFESTYLE

부호들에게 축구 산업은 하나의 취미일지도 모른다. 지금, 아무리 투자해도 큰돈을 만질 수 없는 이 이상한 세계에 모인 몇몇 부호의 면면과 앞으로의 행보를 살폈다.

세계 부호들의 구단 인수설로 바람 잘 날 없는 이탈리아의 축구 명문 AC 밀란의 팬들

스포츠 재벌 글레이저 가문의 무리한 대출로 팀을 옮겨야 했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지난 10월, 중국 시진핑 주석은 취임 후 처음으로 영국을 찾았다. 주요 일정을 마친 그는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와 축구팀 ‘맨체스터 시티 FC’의 구장은 방문했다. 시진핑 주석의 축구장 방문은 국내외에서 화제가 됐다. 지난해 초, 중국을 ‘월드컵 우승국’ 반열에 올리겠다는 목표를 내놓고 국가 차원의 ‘중국 축구 개혁 방안’을 내놓은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축구로 중국의 위상을 높여 국력을 과시하겠다는 그 원대한 생각에 예상대로 중국의 부호들이 발 빠르게 따라붙었다.
그중 특히 눈에 띄는 건 자산 333억 달러(약 38조 원)의 아시아 최고 부호 알리바바의 마윈 회장이었다. 이미 수년 전부터 자국 축구 리그에 투자해온 그는 지난해에 이탈리아 프로 축구 리그 세리에A의 명문 ‘AC 밀란’을 품에 안기 위한 작업에 착수했다. 현재 그는 4억 유로(약 5310억 원)를 들여 AC 밀란의 지분 70%를 인수하고, 나머지 지분 30%는 1년 안에 추가 인수하는 걸 옵션으로 구단을 통째로 사들이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자산 327억 달러(약 37조5000억 원)의 중국 부호, 완다 그룹의 왕젠린 회장도 유럽 축구 리그 투자에 뛰어들었다. 그는 최근 스페인 프로 축구 프리메라리가의 명문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지분 20%를 취득했고, 이어 월드컵 축구 중계권 독점 판매업체 스위스 인프런트의 지분 68%도 사들여 스포츠업계 거물이 됐다. 자산 79억 달러(약 9조 5000억 원)의 중국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 기업 러스왕의 자웨팅 회장도 여기에 동참했다. 그는 얼마 전 향후 3년간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홍콩 지역 방영권을 4억 달러(약 4700억 원)에 확보했다는 소식을 전하며 중국 내 유럽 축구 팬을 열광시켰다.
한데 중국 부호들의 이 같은 유럽 축구 시장 투자는 사실 시진핑 주석의 입김 때문이라고 볼 수만은 없다. 이들의 자본 투자엔 그 나름의 혜택이 따른다. 먼저 축구단은 강력한 마케팅 수단이다. 세계 많은 나라에서 그렇듯 중국에서도 유럽 축구는 유니폼 판매와 스폰서십, TV 중계권 수익이 높다. 특히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의 중계권은 프리미어리그 총수익의 절반을 웃돌 정도로 비싸다. 지난해 1월 영국 스카이스포츠가 프리미어리그와 3년간 총 51억3600만 파운드(약 9조 원)의 중계권 계약을 맺은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그런가 하면 부호가 구단을 직접 운영할 경우 즐거움도 따른다. 선수들과 경기장에서 함께 호흡하며 경영의 묘미를 즐기는 건 물론, 팀이 리그 선두권에 오르면 막강한 영향력도 행사할 수 있다.

세상에서 가장 겁없이 돈을 쓰는 부호 중 한 사람인 만수르

유럽 축구 시장에서 슬슬 돈을 풀기 시작한 알리바바의 마윈 회장

일례로 “부가 무엇인지 보여주겠다”는 어록으로 유명한 아랍에미리트연합의 부총리 만수르도 2009년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의 맨체스터 시티 FC를 인수해 지난 7년간 총 7억2000만 파운드(약 1조2900억 원)가량을 투자했다. 그 덕에 만년 하위권에 머물던 맨체스터 시티 FC는 2011~2012년, 2013~2014년 시즌 리그 우승을 차지했고, 팀의 가치 또한 하늘 높이 치솟았다. 적재적소에 ‘제대로 된’ 투자로 승리를 거둬온 만수르는 현재 세계 스포츠계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한편, 그보다 앞서 2003년엔 러시아의 석유 재벌 로만 아브라모비치가 프리미어리그 중위권에 있던 ‘첼시 FC’를 인수했다. 그는 10년간 총 15억 달러(약 1조 8000억 원)를 들여 첼시 FC를 재건했는데, 팀은 거대 자본을 등에 업고 실력이 수직 상승해 2004~2005년, 2005~2006년, 2009년~2010년, 2014년~2015년 시즌 우승까지 거머쥐는 기염을 토했다. 로만은 러시아의 신흥 부호로 일찍이 유명했지만, 첼시 FC의 구단주가 된 후 아예 러시아 재계의 스타가 됐다.
하지만 이처럼 돈과 열정의 잔치인 유럽 프로 축구 시장에도 분명 그림자는 있다. 이곳에 투자하는 모든 이가 ‘투자 비용 대비’ 혜택을 보는 게 아니란 얘기다. ‘에어아시아’를 소유한 말레이시아의 부호 토니 페르난데스만 봐도 그렇다. 그는 2011년 회사 홍보를 위해 프리미어리그의 ‘퀸즈 파크 레인저스 FC’를 인수했지만 잇따른 부진으로 2013년 팀이 2부 리그로 강등해 큰 손실을 봤다. 또 프리미어리그의 ‘카디프 시티 FC’는 말레이시아 부호 빈센트 탄의 독단적 팀 운영으로 팀워크가 깨져 어렵게 1부 리그까지 올라갔다가 다시 2부 리그로 떨어지는 수모를 겪었다. 심지어 명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도 흑역사가 있다. 이 팀의 경영권을 가진 미국의 스포츠 재벌 글레이저 가문은 오래전 팀을 매입할 당시 은행에 진 빚을 갚지 못해 초특급 선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를 다른 팀에 이적시켰는데, 당시 팬들이 품은 불만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덧붙여 첼시 FC의 로만 아브라모비치도 사실 재정적 성과만 놓고 보면 좋은 투자자는 못 된다. 그는 그간 첼시 FC를 통해 번 돈을 고스란히 선수 영입에 투자했다. 올 초 발표한 첼시 FC의 기업 가치는 9억 달러(약 1조400억 원), 그가 지금 당장 팀을 내놓아도 투자금을 100% 회수하긴 힘들다. 사실 각 리그 상위권 구단일수록 투자 규모가 크기 때문에 이익을 내는 게 더 힘들다.

만수르의 투자로 2011년~2012년 시즌 프리미어리그 우승을 차지한 맨체스터 시티 FC

그럼 이쯤에서 궁금해진다. 왜 부호들은 큰돈을 들여 유럽 축구 시장에 투자하는 걸까? 그 답은 간단하다. 부호들에게 축구는 하나의 ‘즐거운 취미’이기 때문이다. 사실 구단주로서 느낄 수 있는 쾌감은 이를 뛰어넘는 무엇인지도 모른다. 좋은 선수를 사들여 경기에서 이기고 우승을 차지하는 과정. 어쩌면 그것은 그들에게 군대를 지휘해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과 같은 쾌감을 줄 수도 있다. 물론 축구 자체의 산업적·사업적 가치도 크다. 야구에도 거대 자본이 투입되지만, 그 범위는 사실 미국과 인근 국가들을 벗어나지 못한다. 한데 축구는 다르다. 세계를 품에 안는다. 축구화 한번 구경해보지 못한 가난한 나라에서조차 축구를 즐긴다. 그리고 심지어 축구산업의 가치는 지금도 날로 커지고 있다. 지난해에 <포브스>가 산정한 세계 최고 축구팀 ‘레알 마드리드’의 가치는 21억1000만 파운드(약 3조8000억 원)나 됐다. 고작 200여 명 안팎의 스태프로 구성된 축구팀의 가치가 수천에서 수만 명의 직원이 근무하는 기업 가치와 비슷하거나 그걸 뛰어넘는다는 의미다. 그 때문에 앞으로 더 크고 다양한 사업으로 키울 수도 있다. 한편 축구팀 소유는 명예와도 연관이 있다. 한 예로 태국 최대 면세점 기업 킹파워 그룹의 비차이 스리바다나프라바 회장은 2010년 프리미어리그의 ‘레스터 시티 FC’를 3900만 파운드(약 630억 원)라는 싼값에 인수했다. 한데 레스터 시티 FC는 올해 창단 132년 만에 처음으로 프리미어리그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비차이 회장은 수년간 끈기 있게 팀을 리빌딩했고, 그 대가로 현재 일생 최대의 기쁨을 맛보며 유럽은 물론 자국 태국에서도 대통령급의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 중이다.
축구가 한 사람의 인생에 필요하지 않은 사치라 해도 지금껏 우린 축구를 보며 울고 웃고 열광해왔다. 그리고 실제로 스포츠 시장에 오랫동안 투자해온 부호들은 스포츠 외에 지역사회 공헌을 위해서도 큰돈을 쓴다. 시의회와 손잡고 새 건물을 짓고, 유소년 육성에도 통 큰 투자를 한다. 단순히 리그에서 승리하고, 패하는 것만 따져 부호들의 투자에 대한 생각을 읽긴 어렵다. 점점 유럽 축구계에도 과감한 투자가 좋은 결과로 이어지며 ‘돈으로 우승컵을 살 수 없다’는 인식이 깨지고 있지만, 그들은 바로 내일 혹은 10년, 30년 후의 미래를 내다보며 뭔가를 꾸리고 있는 건지 모른다. 그리고 만약 이 가정이 사실이라면 우리가 할 일은 좀 더 명확해진다. 그저 그것을 보며 온전히 즐기는 것이다.

에디터 | 이영균 (youngkyoon@nobless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