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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과 몸, 우주가 함께 움직일 때

ARTNOW

이강소 화백이 이야기하는 작품 속 기운에 대하여.

이강소: 風來水面時 풍래수면시〉,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서울박스 선공개 전경. ⓒ 박찬우

국립현대미술관에서 11월 1일부터 2025년 3월까지 지난 50여 년간 화업을 집대성한 대규모 전시 〈이강소: 風來水面時 풍래수면시〉를 여는 이강소 화백. 대표적 실험 미술 작가로서 회화와 조각, 설치, 퍼포먼스, 사진, 영상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허구의 체험과 놀라운 환영의 세계로 안내해온 이강소 화백이 이야기하는 작품 속 ‘기운(氣運)’에 대하여.
동아시아의 전통적 회화와 서예에 사용하는 붓은 털의 길이가 서양의 그것보다 훨씬 길다. 서양의 붓은 묘사하는 형식의 회화에 적합하고, 동아시아의 전통적 모필은 신체의 움직임과 흐름에 민감한 도구다. 그래서 털이 긴 모필의 경우 붓을 사용하는 기본 자세는 붓을 잡는 손과 팔, 붓끝과 탁자 위의 그림 바탕, 그리고 땅을 딛고 서 있는 육체와 정신 등 주위 환경 모두가 일체화되어야 한다고 배웠다. 그렇게 붓과 신체, 우주가 함께 움직여야 기운이 소통하기 쉬운 것이다.
동아시아 미술사에서 우주의 본질이자 본원으로 논의되어온 기운은 과학적으로는 아직 증명되지 않았지만, 천년을 훨씬 뛰어넘어 가장 중요한 회화의 이론 중 하나로 이어졌다. 가령 어린아이에게 연필을 주고 무언가 그려보기를 제안한다면, 그 아이가 연필로 그린 선은 어른이 모방할 수 없는 천진함을 띠고 있을 것이다. 어른들은 저마다 성격에 따른 감각의 선을 창출할 것이다. 작가는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의지에 따라, 이제껏 작업해온 경험의 양에 따라 그 선들의 느낌이 달라질 것이다. 그래서 예로부터 작가의 필력은 그들 자신의 기운을 띠어왔다.
나 자신은 작가로서 수많은 실패작을 양산하며 실망을 거듭하고 있다. 그러나 우연인지 필연인지 시골 야산에서 자라는 나무들과 함께 단조롭게 살아온 덕에 조금이나마 작업에 맑은 기운이 함께하기를 기대하며 작업하고 있다. 내가 밝고 맑은 정신 상태를 유지하면서 붓질을 했을 때, 그것을 보는 관람객도 청명한 기운을 공유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강소
에디터 정규영(ky.chung@noblesse.com)
사진 국립현대미술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