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렉시트와 미술계
영국이 브렉시트 여부를 결정하는 투표를 실시하겠다고 발표하자 영국의 예술가들은 작품과 소셜 네트워크 등을 통해 브렉시트를 강력히 반대한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영국은 결국 브렉시트를 택했지만 아직 영국 미술계의 미래를 섣불리 예측하긴 이르다.

브렉시트 반대 시위를 벌이는 영국 시민 ⓒ Ms Jane Campbell / Shutterstock.com
2016년 6월 23일 영국의 미래를 결정짓는 국민투표가 있었다. 유럽연합에 잔류할 것인지 아니면 떠날 것인지를 묻는 이 투표는 마지막까지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접전으로 세계의 관심을 받았다. 결국 모두의 예상을 뒤엎는 브렉시트(Brexit)로 결정됐고, 영국 미술계도 술렁였다.
언뜻 예술과 무관해 보이는 정치적 국민투표는 찬반 유세전부터 밀접한 관련을 보였다. 브렉시트에 찬성하는 캠프에서 앤서니 곰리(Antony Gormley)의 대표작 ‘북쪽의 천사(Angel of the North)’에 프로젝터로 슬로건인 ‘탈퇴로 주도권을 되찾자(Vote Leave, Take Control)’를 투사해 홍보에 활용한 것이 대표적인 예. 앤서니 곰리는 이에 격분해 자신의 작품을 브렉시트 찬성 홍보용으로 사용하지 못하도록 즉각 법적 조치를 취했는데, 유럽연합 아트 펀드에서 지원을 받아 제작한 그의 작품을 브렉시트 찬성 캠프에서 활용한 점이 아이러니하다.
브렉시트 국민투표 전 트레이시 에민(Tracey Emin), 제러미 델러(Jeremy Deller)를 비롯한 282명의 예술가는 유럽연합 잔류 캠프를 지지하는 의견을 냈다. 데이미언 허스트(Damien Hirst)도 그의 소셜 네트워크에 나비를 이용한 ‘IN’이란 메시지를 게재해 영국이 유럽연합에 남기를 원한다고 밝혔다.

1 영국의 EU 잔류를 호소하는 볼프강 틸만스의 포스터
2 미아 프로스트너와 로잘리 슈바이커의 EU 잔류 지지 메시지를 담은 포스터
런던을 주 무대로 활동해온 카트린 뵘(Kathrin Bohm)은 좀 더 적극적으로 유럽연합 잔류 캠페인을 펼쳤다. 웹사이트(http://eu-uk.info)를 통해 마이클 크레이그-마틴(Michael Craig-Martin), 미아 프로스트너(Mia Frostner), 로잘리 슈바이커(Rosalie Schweiker), DJ 심프슨(Simpson) 등과 함께 유럽연합 잔류 지지 메시지를 담은 포스터, 티셔츠 등을 제작해 배포하기 시작한 것. 최초의 외국인 터너상 수상자 볼프강 틸만스(Wolfgang Tillmans)는 ‘누구도 혼자인 사람은 없습니다. 어떤 나라도 혼자서 존재할 수 없습니다’와 같은 힘 있는 메시지를 담은 포스터를 통해 유럽연합 잔류를 호소했다. 하지만 이런 끈질긴 노력에도 불구하고 2016년 6월 24일 영국은 유럽연합을 떠나기로 결정했다.
브렉시트가 발표되자 영국 미술계의 반응은 양분됐다. 현대미술관 테이트 모던(Tate Modern)은 “영국 예술은 역사 이래 언제나 유럽과 그 가치를 공유하며 영향력을 주고받아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의견을 공식 발표해 사회의 변화에 빠르게 순응하는 모습을 보였다. 빅토리아 앤 앨버트(V&A) 뮤지엄은 테이트 모던과는 정반대의 모습을 보였다. 지난 9월 V&A 뮤지엄 디렉터 마틴 로스(Martin Roth)는 힘 있는 어조로 “브렉시트 국민투표는 독약이었으며 브렉시트는 우리 부모 세대가 이루어놓은 모든 것을 무너뜨리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브렉시트가 가져올 영향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유럽연합 아트 펀드가 지속될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와 함께 유럽연합에 내던 분담금이 영국 미술계로 돌아오면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낙관적인 전망을 내놓는 목소리도 있다.
브렉시트에 대한 영국 예술계의 양분된 반응에도 불구하고 아직 뚜렷한 변화는 감지되지 않고 있다. 영국 미술계와 런던이라는 예술 도시가 어떻게 달라질지, 영국 예술가와 예술계에 어떠한 영감으로 작용할지 속단하긴 이른 상태. 다만 가장 많은 젊은이가 유럽연합 잔류에 투표한 곳이자 영국 현대미술을 잉태하고 선도하는 런던 해크니(Hackney) 지역의 행보를 주시해 볼 필요는 있다.
에디터 최윤정(amych@noblesse.com)
글 양혜숙(기호 리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