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루스 가니에의 고결한 불만족
인체를 작업하는 조각가들을 보면 몸의 완벽한 비율과 표면의 아름다움에 집중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는 그것을 ‘작업에 충실하다’고 표현한다. 동시에 ‘형태에 묶였다’고도 말한다. 뉴욕에서 활동하는 조각가 브루스 가니에는 반대다. 그의 작업은 형태를 부수는 과정이다. 매끈하게 본뜬 표면을 거칠게 파괴하고 형태를 의식적으로 왜곡하며 기이한 변형을 추구한다. 그렇게 작업한 작품 앞에서 관람자는 아주 오랫동안 잊고 있던 한 가지를 깨닫게 된다. ‘아름다움이란 자연스러움에 기반한다’는 별로 놀라울 것 없는 사실이다.

“제가 어릴 적 아버지는 화가였어요. 마흔다섯에 그만두셨죠. 좋은 스승도 두 분이나 있고 유명한 예술가 코스도 밟은 훌륭한 화가였지만 아이가 넷에 매일 출근해야 하는 상황이었어요. 늘 주말이나 밤에만 작업하셨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저는 아버지에게 매우 큰 부담감이 있겠구나 생각했어요. 그런데 돌아가시기 전, 당신이 그림을 그만둔건 자식들 때문이 아니라 아침에 출근하러 집을 나서기 전 자신의 그림을 보았을 때, 그 그림이 좋은지 나쁜지 확신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털어놓으셨어요. 아티스트에게 그건 결코 비정상적인 느낌이 아닌데, 아버지는 그러한 의심을 삶 속에 흡수시킬 수 없었던 것 같아요.”
올해 일흔다섯이 된 미국의 조각가 브루스 가니에(Bruce Gagnier)는 그 비정상적인 느낌을 이렇게 표현했다. ‘고결한 불만족(divine discontent).’ 그는 예술가의 꿈을 접은 아버지와 달리, 아티스트라면 누구나 평생 동행할 수밖에 없는 고결한 불만족을 거꾸로 활력소 삼아 작업하는 조각가다. “1963년부터 지금껏 평생을 인간의 신체에 집중해왔습니다. 저는 다양한 방법으로 형태를 변형하면서 제 내면의 삶을 표현하려고 했어요. 그런 노력은 성공적인 경우도 있었지만 저 자신을 분명하게 표현하지 못한 실패한 경우도 있었죠.” 그런데 그 고결한 불만족은 작업의 반복을 통해 다시 채워지고 조금씩 메워진다. “제 작업의 과정이자 목적은 ‘자기 발견을 위한 여정’이에요. 다른 것을 추구하는 건 아주 낯설어요. 매 작품은 저에게 다음 작품에 식견 있는 접근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그럼 어떤 작품이 완성된 작품이냐고요? ‘어떤 작품을 마무리할 때, 그 이후 작업을 더 힘 있게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주는’ 작품이죠. 그리고 작업 중인 형상이 누구인지 확신이 든 후 제게서 분리할 수 있는 그때가 바로 작품이 완성된 단계입니다.” 스코히건 회화조각학교와 컬럼비아 대학을 졸업한 후 1976년 명문 리버럴 아츠 칼리지인 하버퍼드 칼리지에서 첫 개인전을 열고 뉴욕을 중심으로 수많은 개인전과 그룹전을 통해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그는 예일 대학, 파슨스 디자인 스쿨, 뉴욕 스튜디오 스쿨에서 학생을 가르치며 현대미술 안에서 조각의 위상을 한 단계 높였다. 조각가는 “인간이 몸담고 살아가는 공간에서 당면한 문제들을 다루는 사람”이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브루스 가니에와 그가 평생 천착한 인체 조각의 무거움과 자연주의적 삶의 가벼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Elaine, 2015, Red chalk on rag (acid free) paper, 43.3×35.6cm

Moses Striking the Rock, 2011, Bronze, Collection of the Center for Figurative Painting, New York. Photo by Maud Bryt

Solcrif, 1985, Painted ceramic, plaster, copper tube, 19x14x15.5cm

Anixtaw, 1985, Painted ceramic, plaster, copper tube, 28×16.5x16cm
9월 10일부터 토마스파크갤러리에서 ‘마스크’ 시리즈와 드로잉을 소개하는 <Masks> 전시가 열리고 있습니다. 지금 뉴욕에서도 전시 중이라고 들었습니다.
뉴욕 허드슨에 있는 존 데이비스 갤러리 가든에서 실물 크기의 브론즈 작품 전시회에 이어 같은 장소에서 1981년부터 1985년 사이 세라믹 작품 전시회를 시작했어요. 뉴욕에서 기차로 2시간 거리인 허드슨은 뉴욕에서 활동하는 예술가와 작가가 많이 거주하는 지역이라 마치 제2의 문화 예술 중심지 같은 곳입니다.
요즘 작가들은 큰 스튜디오에서 각 분야의 전문가를 두고 대규모 작업을 하기도 합니다. 특히 조각가는 어시스턴트를 많이 고용하죠. 그런데 선생님은 모든 작업을 직접 하신다고 들었습니다.
정해진 결과를 두고 미리 디자인한 작업이라면 기능공에게 작업을 맡길 수 있겠죠. 그러나 그런 방식은 20세기 위대한 예술 작품을 탄생시킨 윤리적 실존 원칙과 강한 대비를 이뤄요. 무엇보다 제 작품은 컨셉이나 완성된 플랜 아래 작업을 시작하지 않아요. 단지 ‘사람 형상’ 정도의 모티브만 있을 뿐이죠.
선생님의 라이프스타일에는 스토리가 존재합니다. 100년 넘은 집에서 불편한 구조를 바꾸지 않고 살아가는 모습이며, 과장되지 않은 것, 시간의 흔적을 보여주는 제품을 선호하는 것 등이 그렇죠. 그런 라이프 스타일이 작업의 결과물에도 영향을 미치나요?
네. 우리 집은 작품에 주안점을 두고 꾸몄어요. 어수선함이나 지극히 물질적인 바깥세계, 불필요한 방해 요소를 차단했습니다. 하지만 수도승의 생활을 떠올리면 곤란해요. 다음 작업을 위한 일상의 즐거움도 가득하니까.
스코히건 회화조각학교에서 예술가의 꿈을 키웠다고 들었습니다. 그 학교는 댄 코슨(Dan Corson), 리 본테쿠(Lee Bontecou), 앨릭스 카츠(Alex Katz), 로버트 인디애나(Robert Indiana), 엘런 갤러거(Ellen Gallagher), 바이런 킴(Byron Kim) 등 오랜 세월 동안 좋은 작가를 배출해온 학교입니다. 1960년대 초반, 선생님이 학교에 입학했을 때의 분위기는 어땠나요?
스코히건의 분위기는 매력적이었어요. 세계적 추상표현주의 작가 니컬러스 카론(Nicolas Carone)의 수업은 매우 중요한 경험이었죠. 그의 수업엔 늘 많은 학생이 몰려 자리 맡기가 힘들었죠. 저는 의외로 교실 밖에서 큰 도움을 받았어요. 하루는 카론이 조르조 모란디(Giorgio Morandi)의 작품을 보라고 권하는 거예요. “누구요?” 하니 “도서관에 가서 찾아보란 말일세”라고 말씀하시더군요.
며칠 뒤 다시 “그래, 어떻게 생각하나?” 하길래 “뭐에 대해서요?”라고 되물었죠. “그야 모란디지”라고 하시는데 제가 거기에 대고 “그 볼품없는 붓놀림의 작가 말이에요?”라고 말했어요. 이 일화는 제 인생에서 교육의 중요성을 일깨운 기념비적 사건이에요. 또 모란디는 예술가의 길을 걷는 제게 가장 중요한 시금석이 되었죠.
윌리엄스 칼리지부터 컬럼비아 대학까지 쉬지 않고 10년간 대학 교육을 받았습니다. 그 10년은 선생님에게 어떤 시간이었나요?
사실 미술사를 공부하기 시작한 건 윌리엄스 칼리지에서 몇 년간 자연과학을 공부한 뒤였어요. 스코히건 회화조각학교와 컬럼비아 대학에서 공부하면서 비로소 드로잉과 조각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도 기억나는 수업은 14번가와 식스 애버뉴에 위치한 니컬러스 카론 스튜디오에서 받은 수업이에요. 하루 저녁에 1.5달러였는데 카론이 직접 수업하면 가격은 5달러로 올라갔어요. 그는 드로잉에 관한 한 가히 독보적인 스승이었어요. 한스 호프만 스쿨 출신으로 그의 유산을 상당부분 이어받은 작가인데, 강렬하고 구체적인 데다 혹독하기까지 했죠.
조각은 누구에게 배웠나요?
컬럼비아 대학에서 피터 아고스티니(Peter Agostini, 1913~1993년, 미국 조각가로 레오나르도 다빈치 아트 스쿨에서 수학. 메트로폴리탄 뮤지엄, 휘트니 뮤지엄, 모마, 구겐하임 뮤지엄 등에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를 만나면서 조각 공부를 시작했어요. 보통 저녁에 조형 수업이 있었는데 그가 보여준 조형 기술시범은 정말 대단했어요. 피터가 우리에게 주문한 건 늘 하나였어요. ‘미칠 것(off the Edge).’ 우리가 작업하는 동안 본인은 신문을 읽었죠. 피터의 조수가 되면서 새벽 2시부터 6시까지 일했는데, 제 작업은 대개 틀 만들기였지만 그의 작업이 워낙 독창적이고 신선해서 그 과정을 지켜본 게 아직까지도 많이 남아 있습니다.
1950년대의 추상표현주의와 1960년대 팝아트의 미술 사조를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한 세대입니다. 혹시 그 흐름의 영향을 받기도 했나요?
유일하게 제가 관심 있는 추상표현주의 작가는 데 쿠닝이에요. 그림이 매우 깊이 있을 뿐 아니라 그림을 대하는 태도도 진지하죠. 그의 경험주의적 방법론에 큰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겠네요. 하지만 당시 미국을 중심으로 일어난 미술 사조보다는 모란디나 자코메티, 발튀스와 같은 유럽 작가에게 더 흥미를 느꼈어요. 그렇다고 그들과 친밀한 연관성이 있다는 건 아니에요. 많은 아티스트를 따르고 그들의 작품을 감상하긴 했지만 제 관심은 다른 곳에 있었을 뿐, 예술계에서 일어나는 큰 움직임의 일부가 된 적은 없습니다. 어느 그룹에 속할 필요를 느낀 적도 없고요.
1995년부터 2001년까지 이탈리아 움브리아에서 활동했습니다. 뉴욕을 떠나니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되던가요?
1년 중 움브리아에 머문 기간은 학교에서 강의한 6~8주 남짓한 시간밖에 되지 않아요. 9월 말에는 항상 뉴욕에 돌아왔죠. 그래도 이탈리아와 그곳의 예술은 제게 큰 영향을 미쳤어요. 어떤 스타일을 추구하기보다는 곧바로 형태에 접근하게 됐다고 할까요. 모더니즘에서 벗어나게 해준 점도 큰 효과라고 할 수 있겠네요.
많은 사람이 선생님의 조각에서 자코메티가 떠오른다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자코메티의 라이프스타일과 작품에 대한 그의 헌신을 높이 사긴 하지만 20세기의 훌륭한 조형 분야 아티스트로 자코메티 외에도 로소, 마티스, 로댕 등이 있습니다. 예술가는 사실 모두 과거의 예술가와 대화를 해요. 저도 마찬가지죠. 꼭 자코메티가 아니더라도 제 작품을 통해 보이는 많은 아티스트가 있습니다. 전 오히려 어쩌면 제 작품이 시종일관 자코메티와는 반대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요.
어떤 측면에서 그렇게 생각하시나요?
제 실물 사이즈 조형은 주변 공간에 반하는 볼륨감을 떠올리게 하죠. 반면 자코메티의 조형물은 볼륨이 잠식되면서 시간과 공간을 표현하는 느낌이 있어요. 이건 20세기 조각이 이룬 위대한 업적 중 하나이기도 해요. 이번 서울 전시에서 선보일 1983년 작품 ‘마스크’ 시리즈를 떠올리시면 되는데 그 작업 이후 작품상에 변화가 많았어요. 그 이후 자코메티와 끊임없이 견주어 논의되는 것 같네요. 그 덕분에 오히려 자코메티에게 흡수되지 않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번 전시에 선보이는 ‘마스크’ 시리즈는 도예가가 흙덩어리를 안쪽에서 만져 전체 양감을 부풀려나가는 모습을 보고 거기서 영감을 받은 작품입니다. 1980년대 중반의 작품이라고 들었습니다.
도예가가 화병을 빚을 때 팔을 그 안으로 넣어 형태를 만들죠? 그 모습을 보면서 저도 제가 만들고 있는 대상 안으로 들어가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안에서 밖으로 볼륨을 확장해가는 식으로 큰 부피감을 표현하는 데 중점을 두었어요.
선생님의 인체 조각은 움푹 파인 볼, 뭉개진 눈꺼풀, 마른 몸 등 인물의 어두운 실존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본인이 생각하는 ‘아름다움’이란 그런 것인가요?
지금 언급한 대부분은 부정적인 부분을 의도적으로 부각하고자 한 결과물이에요. 들어간 부분을 더 깊게 파서 빛과 공기가 형체 안에 들어갈 수 있게 하는 거죠. 이런 유형은 이탈리아 피렌체 바르젤로 미술관에 있는 도나텔로의 다비드상에서 가장 잘 확인할 수 있어요. 사실 ‘아름다움’은 예술가에게 가장 바람직한 결과지만 제 경우는 기존에 정해진 아름다움의 기준을 충족시키는 것보다 작품을 통해 제 내면을 드러내고자 하는 욕구가 한발 앞서요. 그 갈등의 과정을 겪으면서 작품에 변화가 생기죠, 그래서 제 작품은 아름다워지고자 하는 욕망과 현실 사이에 놓여 있는 상황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조각의 가장 큰 매력 중 하나는 인체를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이라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평생 인체 작업에 열중하는 것도 그 때문인가요?
최고의 형태가 최고의 조각을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최고의 형태가 되기 위해선, 다시 말해 보는 사람의 마음에 호소하는 힘을 갖기 위해선 형태가 내용을 온전히 담아내야 합니다. 무언가를 구현해야 한다는 거죠.
예술의 본질적 목적은 뭘까요?
이름을 정하고 아이덴티티를 부여하기에 앞서 고유의 독창적 경험을 만들어내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올해 창간 25주년을 맞은 <노블레스>는 하이엔드 라이프스타일을 표방합니다. 당신에게 하이엔드 라이프스타일은 뭔가요?
‘우리 주위의 것과 함께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니고 다니는 소지품, 입고 있는 옷, 들고 있는 가방, 우리가 듣는 소리가 영혼을 포함해 전 인간을 환기시킬 수 있는 가치를 지녀야 하죠. 그러기 위해서는 지식과 통찰력, 취향, 욕구의 특정 단면들이 왜곡되어 나타나지 않게 통제하는 지성이 필요합니다. 다른 사람에게도 전달해 인간의 영혼을 고양시키고 최상위로 이끌어줄 수 있는 그런 것 말이죠.
브루스 가니에 <Masks>전
평생을 인체에 천착해온 뉴욕의 조각가 브루스 가니에의 전시가 종로구 창성동 토마스파크갤러리에서 10월 10일까지 열린다. 상처 나고 주름지고 두들겨 맞은 듯한 거친 형태는 우리의 자화상을 연상시킨다. 이번에 선보이는 ‘마스크’ 시리즈에서 관람객은 형태의 파괴를 통해 얻는 진정한 자유를 경험하고, 자연적인 것이 아름답다는 기본 명제를 깨닫게 될 것이다. 문의 723-2973
에디터 김이신 (christmas@noblesse.com)
사진 제공 브루스 가니에 스튜디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