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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머의 귀환

FASHION

잊혔던 시간 속에서 다시 피어난 블루머, 그 안에 담긴 자유와 낭만.

CHOLE

ZIMMERMANN

SIMONE ROCHA

CARVEN

TOTEME

YUHAN WANG

19세기 말 여성 복식 혁명의 상징인 퍼프소매 보디스와 사이클링 블루머를 착용한 여성들의 모습. @victoriandarlings

1850년대 ‘블루머’를 입은 여성의 모습. 여성의 몸을 옥죄던 빅토리아풍 드레스의 대안으로 등장했다. @vicsocny

“이게 또 유행이야?” 엄마 옷장에서 막 꺼낸 듯한 아이템이 다시 유행하는 일은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유행은 돌고 돌아, 한때 촌스럽게 여겨지던 스타일도 시대를 달리해 다시금 조명받곤 한다. 오래된 것이 새롭게 돌아오는 데 20년이 걸린다는 말이 있지만, 지금은 그보다 훨씬 빠르게 순환하고 사라진다. 짧은 시간 안에 열광의 중심에 섰다가 금세 외면받는 흐름 속에서, 과잉 소비에 지친 디자이너들은 오히려 과거로 시선을 돌린다. 지금 입어도 신선하고 매력적인 요소를 찾아 꺼낸 뒤 자신만의 시각으로 재해석하는 것이다. 블루머는 바로 그러한 흐름 속에서 재등장했다.
블루머의 기원은 185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여성 인권 운동가이자 변호사였던 엘리자베스 스미스 밀러는 여성의 재산권과 참정권 보장을 주장하며 일상 속 복식 개혁을 시도했다. 당시 여성복은 코르셋과 크리놀린으로 복부를 과도하게 압박했고, 이는 건강을 위협할 정도였다. 밀러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통이 넓은 튀르키예식 바지에서 착안한 새로운 의복을 고안했다. 무릎 위 또는 아래까지 내려오는 헐렁한 바지 아랫단에 고무줄을 넣은 이 형태는 오늘날 몸뻬 를 연상시킨다. 스커트 길이를 무릎까지 줄이고 그 안에 바지를 겹쳐 입는 실루엣은 활동성과 실용성을 동시에 만족시켰고, 이는 후에 어밀리아 젱크스 블루머가 창간한 여성 잡지 <릴리(The Lily)>를 통해 소개되며 ‘블루머’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보수적이던 당시 사회는 이 옷차림을 급진적이라 여겼고, 블루머는 한동안 논란의 중심에 놓였다. 그러나 1890년대 접어들어 실용성이 주목받으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야전병원에 근무하는 여성들의 유니폼으로 채택되거나 자전거, 승마, 테니스 등을 즐기는 여성들이 늘면서 자연스럽게 보급되었다. 특히 자전거 열풍은 블루머가 대중화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고, 이는 단순한 복식의 진화를 넘어 여성 해방의 상징이 되었다.

PATOU

NEHERA

ALAA

MIU MIU

ROKH

KIKO KOSTADINOV

@leandramcohen

@camillecharriere

그리고 2025 S/S 시즌, 여러 패션 하우스가 블루머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며 그 복귀에 힘을 실었다. 끌로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케메나 카말리는 레이스와 시어한 소재를 활용한 블루머로 고전미와 모던함을 동시에 표현했고, 종아리에 리본을 묶거나 허벅지 위에서 볼륨을 준 실루엣으로 구조적 아름다움을 강조했다. 알라이아와 짐머만은 초기 스타일을 계승한 긴 길이의 블루머를, 미우미우와 파투, 카르벵은 한층 짧고 경쾌한 버전으로 변주해 각자 방식으로 선보였다. 소재 역시 확장되었다. 실크와 코튼을 기본으로 메시, 부클레, 레더 등 현대적 질감을 접목한 감각적 실험이 이어졌다. 긴 길이부터 팬티에 가까운 짧은 길이까지 디자인 스펙트럼은 한층 넓어졌고, 스타일링 방식 또한 유연해졌다. ‘속옷의 겉옷화’라는 키워드 속에서 블루머는 이제 당당한 스타일 아이덴티티로 자리 잡았다. 스트리트 신에서도 그 흐름은 생생히 포착된다. 리앤드라 메딘 코언, 카밀 샤리에르 등 패션 아이콘 역시 블루머를 일상에 자연스럽게 녹여내며 자신만의 감각으로 트렌드를 재해석한다. 셔링 디테일을 더한 블루머에 심플한 탱크톱 또는 니트를 매치해 담백한 무드를 연출하거나, 포멀한 블랙 드레스 안에 목가적 디자인의 블루머를 겹쳐 입어 재치 있는 대조를 시도한다. 오늘날의 블루머는 시대의 경계를 허물며 개성을 표현하는 하나의 언어로 진화하고 있다. 한때 속옷이자 운동복이던 이 아이템은 지금 우리에게 자유와 낭만을 입는 법을 다시 묻는다.

 

에디터 김소정(sjkim@noblesse.com)
사진 ©Launchmetrics/spotligh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