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디오게임과 예술, 서로 영감을 주고받다
관람객과 유저의 눈을 사로잡는 이미지라는 공동의 목표를 추구하는 비디오게임과 예술의 공생 관계.

1 마크 에센의 대표 시리즈 중 ‘니드호그’의 두 번째 작품.
게임의 영향을 받은 예술
비디오게임 형식을 차용해 작품을 만드는 현대미술가들이 늘어나는 추세다. 게임을 소재로 삼거나, 게임 형식을 매체로 활용하거나, 혹은 게임 디자인도 하는 아티스트들의 게임과 예술을 넘나드는 작품을 살펴본다.
#1 펑멍보Feng Mengbo
중국계 화가이자 멀티미디어 아티스트 펑멍보는 자신을 게임 디자이너라고 말한다. 디지털 테크놀로지를 이용해 마치 설치미술 같은 대규모 게임을 만드는 펑멍보는 초기엔 전통 방식으로 게임을 표현했다. 마오쩌둥이 이끈 중국 군대 캠페인 ‘롱 마치(Long March)’를 나타낸 유화 시리즈 ‘Game Over: Long March’(1993)는 비디오게임 요소를 작품에 차용해 가상의 군인 캐릭터가 떠나는 모험을 마치 게임 스냅샷처럼 보이도록 그린 작품이다. 그 이미지는 닌텐도의 유명한 게임 ‘슈퍼 마리오’를 연상시킨다. 2008년 그는 직접 게임을 만들었는데, 바로 과거 작품 속 캐릭터를 실제 움직이는 캐릭터로 탈바꿈한 인터랙티브 게임 ‘Long March: Restart’다. 약 2440×610cm의 거대한 스크린으로 탄생한 이 작품은 압도적 규모의 설치미술이자 게임으로, 현재 뉴욕 현대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다.
#2 토마스 빌레멘 Thomas Willemen
1994년에 태어난 젊은 작가 토마스 빌레멘은 밀레니얼 세대답게 샌드박스 건설 게임 ‘마인크래프트’를 작품에 차용했다. 올해 5월 기준으로 판매량 1억7600만 장에 달하는 ‘마인크래프트’는 역대 비디오게임 판매량 1위를 차지할 정도로 세계적 인지도를 자랑한다. 또 큐브를 이용해 새로운 세계를 자유자재로 창조할 수 있어 예술적으로도 인정 받은 게임이다. 토마스 빌레멘은 자신이 ‘마인크래프트’를 플레이한 여정을 작품 ‘How to Make a Primitive Hut in Minecraft’(2019)에 담았다. 2018년 여름, 그는 사전 지식이나 장비 하나 없이 홀연히 게임 속 어둡고 외딴 숲으로 떠나, 야생의 자연을 여행하다가 ‘마법의 숲’에 정착한다. 컴퓨터 코드로 만든 자연이지만, 작가는 그 아름다움을 만끽하며 야생에서의 삶을 시작한다. 작품을 감상하다 보면 게임을 플레이하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3 마크 에센 Mark Essen
마크 에센은 게임을 매체로 활용한다. 그는 게임 디자이너로 커리어를 시작했지만, 2009년 뉴 뮤지엄의 트리엔날레 ‘The Generational Triennial: Younger than Jesus’가 로파이(lo-fi) 게임을 만들던 게임 디자이너 마크 에센을 아티스트 반열에 올려놓았다. 33세 이하 예술가만 초청하는 트리엔날레에서도 가장 나이가 어릴 만큼 일찍이 주목받은 그의 대표작은 다소 투박하지만 개성 넘치는 그래픽이 담긴 게임 ‘니드호그(Nidhogg)’ 시리즈와 ‘플라이렌치(Flywrench)’다. 다른 멀티미디어 아티스트나 게임 디자이너와 달리 무료 소프트웨어인 게임메이커와 마이크로소프트 페인트로 같은 단순한 소프트웨어를 사용해 작품을 만든다. 게임 분야에서는 메스호프(Messhof)라는 이름으로 더 유명한 마크 에센은 최근 GIF로 만든 게임 ‘스크래치 레이스(Scratch Race)’를 선보였다.

2, 3 일본 우키요에에서 영감을 받은 게임 ‘오카미’와 우키요에 대표 작가 가쓰시카 호쿠사이의 ‘To- kaido- Kanaya no Fuji’.
예술의 영향을 받은 게임
뛰어난 예술가의 마스터피스는 장르를 불문하고 영감의 원천이 된다. 비디오게임도 그 영향 아래 있는 장르 중 하나다. 피터르 몬드리안, 구스타프 클림트, 일본 우키요에 등 명화나 예술 작품에 뿌리를 둔 게임을 소개한다.
#1 오카미Okami
일본 전통 목판화 우키요에(Ukiyo-e)는 일본의 여러 비디오게임에 영향을 끼쳤다. 가미야 히데키(Hideki Kamiya)가 디자인한 액션 어드벤처 비디오게임 ‘오카미’의 초기 컨셉과 게임 속 배경은 우키요에의 대표 아티스트 가쓰시카 호쿠사이(Hokusai Katsushika)의 영향을 받았다. 일본의 역사, 신화, 설화 등을 배경으로 한 ‘오카미’가 추구한 그래픽 컨셉은 우키요에 이미지와 딱 들어맞았다. 우키요에에서 볼 수 있는 파도나 꽃나무 표현을 게임 커버, 캐릭터 소개, 배경에 그대로 사용했으며, 플레이어가 마치 붓으로 그림을 그리는 듯한 행위를 통해 게임 속에서 다리를 수리하거나 적을 무찌를 수도 있다. 이런 시각 효과는 2006년 북미와 일본에서 출시할 당시 많은 비평가에게 호평을 받았고, 2007년 영국 아카데미 비디오게임상 (British Academy Games Awards)의 ‘예술적 성취도 부문’을 수상하기도 했다.

4, 5 몬드리안의 ‘Composition II in Red, Blue and Yellow’와 그의 작품이 연상되는 게임 ‘토머스 워즈 얼론’.
#2 트랜지스터 Transistor
2004년, 슈퍼자이언트 게임스(Supergiant Games)가 출시한 비디오게임 ‘트랜지스터’는 동화를 연상시키는 독특한 색감과 그래픽으로 유명하다. 이들의 게임은 주로 뛰어난 아트워크로 이름을 떨쳤는데, 그중 오스트리아 예술가 구스타프 클림트(Gustav Klimt)의 영향으로 탄생한 ‘트랜지스터’의 그래픽이 단연 돋보인다. 카투니스트 카를린 힐(Carlyn Hill)이 “너무 아름다워서 당신의 뇌가 터져버릴 정도”라고 표현했을 만큼 뛰어나다. 게임의 전체 배경과 게임에 등장하는 건물 내부 디자인은 클림트의 시그니처인 정교한 아르누보 패턴과 화려한 색채를 닮았다. 특히 게임 곳곳에 등장하는 ‘트랜지스터’의 주인공 레드와 적대 세력 카메라타의 초상 포스터는 클림트의 ‘Judith and the Head of Holofernes’(1901)와 흡사하다.
#3 토머스 워즈 얼론Thomas was Alone
게임 디자이너라고 모두 영화 같은 그래픽을 선호하는 건 아니다. 단순한 표현을 좋아하는 디자이너가 미니멀한 방식을 추구하는 이유는 다른 주변 요소를 제한해 게임의 특정 요소를 강조하기 위해서다. 마이크 비델(Mike Bithell)의 데뷔작 ‘토머스 워즈 얼론’은 게임 스크린샷만 봐서는 게임의 정체성을 파악하기 힘들다. 검은색 같은 짙은 배경에 단지 몇 가지 색상의 작은 네모만이 움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술 애호가라면 이 게임을 보는 순간 머릿속에 피터르 몬드리안(Pieter Mondriaan)이 떠오를 것이다. 특히 그의 ‘Composition II in Red, Blue and Yellow’(1929) 등에 사용된 컬러가 게임에도 그대로 등장한다. 게임 제목이자 주인공인 토머스는 몬드리안의 작품에서 이제 막 뛰어나온 듯한 빨간색 사각형이며, 다른 캐릭터도 모두 단색 도형이다. 몬드리안의 작품이 단 몇 가지 컬러로 관람객을 사로잡듯, ‘토머스 워즈 얼론’의 그래픽도 화려하지는 않지만 심플한 멋으로 유저를 감동시킨다.
에디터 이효정(hyojeong@noblesse.com) 글 백아영(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