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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엔나의 밤

LIFESTYLE

매년 겨울, 비엔나의 밤은 무도회로 물든다. 도시 곳곳에서 열리는 400여 개 무도회 중 가장 우아한 이벤트로 꼽히는 ‘비엔나 필하모닉 볼’ 현장에 다녀왔다.

클래식과 왈츠의 나라, 오스트리아. 그 정수를 경험할 수 있는 무도회는 겨울 이벤트의 꽃이다. 특히 수도 비엔나에서는 ‘볼(ball) 시즌’에 400개 이상 무도회와 5000시간이 넘는 춤의 향연이 펼쳐진다. 가장 권위 있고 화려한 ‘오페라 볼’, 비엔나의 정취를 담은 격식 있는 무도회 ‘커피 하우스 오너스 볼’, 성소수자를 위한 ‘레인보 볼’, 과학의 우수성과 다양성을 기리는 ‘사이언스 볼’ 등 종류도 다채롭다. 단순히 춤추는 이벤트를 넘어 음악과 예술, 사교가 결합된 무도회는 오스트리아 문화의 상징과도 같다.
무도회 시즌은 매년 11월 11일에 시작해 이듬해 1~2월 절정을 이루고, 사순절 직전인 3월 초 종료된다. 수많은 무도회 중 1월 마지막 목요일, 무지크페라인 황금홀에서 열리는 비엔나 필하모닉 볼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비엔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주최하는 행사. 음악과 무도, 전통과 격식이 어우러진 세계적 권위의 무도회로, 오스트리아 황실의 전통을 현대적으로 계승한 하이엔드 이벤트로 꼽힌다. 그만큼 드레스 코드도 엄격해 여성은 발을 덮는 이브닝드레스를, 남성은 테일코트와 화이트 타이를 갖춰 입어야 입장이 가능하다. 비엔나에는 의상 구입 및 대여가 가능한 고급 드레스 숍이 많은데, 4대째 드레스를 제작해온 플로스만(Flossmann)도 그중 하나다. 무도회 참석을 위한 첫 단계는 이곳에서 드레스를 고르는 일이었다. 공간을 가득 채운 색색의 드레스를 살펴보고 있으니 스태프가 다가와 선호하는 컬러와 스타일을 묻고 피부 톤이나 체형에 어울릴 법한 드레스 3~4벌을 추천했다. 의상을 입어보고 최종 선택하면 핏을 꼼꼼히 체크한 후 무도회 날짜에 맞춰 몸에 잘 맞게 수선된 드레스를 원하는 장소로 배송해준다. 또 하나 준비해야 할 것은 ‘춤’이다. 무도회에는 왈츠 초보자를 도와주는 전문 댄서 ‘택시 댄서(Taxi Dancer)’가 상주하지만, 기본 스텝을 알고 참가하면 더욱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다. 1919년 설립된 엘마이어 댄싱 스쿨(Elmayer Dancing School)은 비엔나를 대표하는 춤 교육기관으로, 2000년부터 비엔나 필하모닉 볼의 개막 행렬과 왈츠 안무를 책임지고 있는 토마스 셰퍼 엘마이어(Thomas Scha fer-Elmayer) 교수가 이끌고 있다. 이곳에서 4분의 3박자에 맞춰 앞뒤, 좌우로 움직이는 기본 스텝과 응용 방법, 무도회 참가자들이 모두 함께 추는 전통 춤 ‘콰드리유(Quadrille)’ 등을 배웠다.

무도회의 시작을 알리는 비엔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공연.

호텔 임페리얼, 어 럭셔리 호텔에서 진행된 칵테일 리셉션 현장.

밤새 열리는 무도회의 피로를 달래준 초콜릿 트레이.

좁은 도로를 사이에 두고 무지크페라인과 마주 보는 호텔 임페리얼, 어 럭셔리 컬렉션 호텔에서는 매년 비엔나 필하모닉 볼을 위한 칵테일 리셉션과 공식 저녁 만찬을 열고 있다. 150년 이상 역사를 이어온 이 호텔은 각국의 수장을 비롯해 세계적 유명 인사들이 방문하는 곳으로, 샹들리에와 건물을 마감한 천연 대리석, 고가구와 카펫, 실크 벽지 등이 우아한 박물관을 방불케 한다. “비엔나 필하모닉 볼 시즌에는 호텔 전체에 생기가 돕니다. 우리는 만찬 준비는 물론 티켓 구입이나 의상 대여∙수선, 메이크업 등 무도회 참가를 위해 손님이 필요로 하는 다양한 일을 돕고 있죠.” 웨스 앤더슨 감독의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의 주인공인 호텔 지배인 구스타브 캐릭터의 모티브가 된 31년 경력의 컨시어지 미하엘 모저(Michael Moser)가 말했다. 무도회 당일 저녁 6시 30분, 칵테일 리셉션이 시작되자 이브닝드레스와 턱시도를 한껏 차려입은 사람들이 하나둘 호텔 로비와 살롱에 모여들었다. 샴페인잔을 들고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나누다 7시부터는 연회장에 마련된 테이블로 자리를 옮겨 4코스 메뉴, 와인과 함께 저녁 만찬을 즐겼다.
무도회는 밤 10시부터 시작되어 새벽 5시까지 춤의 향연이 이어진다. 오프닝은 비엔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연주와 무도회에 처음 참가하는 젊은 여성을 의미하는 ‘데뷔탕트(Debutantes)’의 왈츠 공연.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강’ 선율에 맞춰 흰 드레스를 입은 데뷔탕트가 검정 턱시도 차림의 파트너와 반시계 방향으로 회전하며 왈츠를 추는 장면이 한 폭의 그림처럼 펼쳐졌다. 이후 엘마이어 교수가 “Alles Walzer!(모두 왈츠를!)” 하고 외치자 모든 사람이 플로어에 나가 춤을 추며 본격적으로 무도회를 즐겼다. 자정과 새벽 2시에는 무도회의 하이라이트 프로그램인 콰드리유가 진행됐는데, 참가자 전원이 줄 맞춰 서서 엘마이어 교수의 가이드에 따라 전통 춤을 추는 흥겨운 시간이 이어졌다. 인파로 가득한 무도회장을 즐기는 방법은 춤을 추는 것 외에도 다양하다. 테라스석에서 플로어를 내려다보며 다른 이들이 춤추는 모습을 감상하거나 볼룸 사이를 거닐며 분위기를 만끽하고, 테이블에 앉아 샴페인이나 음료를 즐긴다. 지하에는 디스코 클럽도 마련되어 있어 이브닝드레스를 입은 채 어둠 속에서 디제잉에 맞춰 춤추는 색다른 경험이 가능하다.
무도회의 밤은 뜨거웠다. 밖은 영하의 날씨지만, 황금홀 내부는 열기로 가득했다. 밤새 춤추고, 웃고, 이야기를 나누며 무도회를 만끽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이 도시만의 ‘우아한 활기’에 대해 생각했다. 비엔나 필하모닉 볼을 통해 과거와 현재, 클래식과 모던, 춤과 음악이 어우러진 비엔나의 진짜 매력을 확인할 수 있었다.

플로스만에서 드레스를 시착 중인 무도회 참가자들.

엘마이어 댄싱 스쿨에서 왈츠 기본 스텝을 배우는 모습.

무지크페라인 황금홀 2층 발코니석에서 무도회를 즐기는 사람들.

드레스와 테일코트를 입고 춤추는 사람들.

무도회 시작 전 만찬이 열린 호텔 임페리얼 연회장 전경.

 

에디터 김수진(jin@noblesse.com)
사진 폴 바우어(Paul Bau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