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의 맛
오스트리아 빈은 늙지 않는다. 되레 여러 겹의 시간을 품고 등고선 같은 무늬로 젊은 날을 산다.

빈에 왜 갈까?
쇼핑을 하려면 파리에 가고, 가구를 보려면 밀라노에 가고, 잘나가는 미술가가 궁금하면 런던에 가면 될 텐데, 빈에는 왜 갈까? 인천에서 프랑크푸르트까지 12시간, 프랑크푸르트에서 빈까지 다시 1시간 30분. 빈 국제공항에 도착한 뒤에도 이 생각은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자정 무렵, 짐을 찾아 호텔로 향했다. 유럽의 흔한 회색빛 건물이 다시 30분간 차창 밖으로 길게 이어졌다. 호텔에서 나온 검은색 벤츠는 인적 드문 시간이라도 속도를 올리는 법이 없었다. 너른 도로에서도 작은 차를 ‘부앙’ 하고 추월하지 않았다. 혼다도, 재규어도, BMW도, 기아도 이곳에선 다 똑같이 달렸다. 누구 하나 잘나지 않았다.
시계가 아침 7시를 가리키는데 커튼을 젖히니 해가 중천이다. 아마 새벽 4시부터 이랬을 거다. 어쩌면 밤 10시까지 이럴 테지. 유럽의 여름은 해가 길다. 그런데 이렇게 해가 길면 오후 시간은 얼마나 풍요로워질까? 녹지가 많은 이 나라에서 도시인은 정원과 공원을 거닐고, 시골에선 밭과 숲 사이에 난 오솔길을 걸으며 가족과 시간을 보낸다. 마침 이곳에 오기 전 읽은 오스트리아에 관한 기사 하나가 떠올랐다. 제목은 ‘금요일 오후 2시면 퇴근하는 이상한 나라’. 이곳 사람들은 주당 평균 37시간밖에 일하지 않는다. 낮이 길지만 책상보다 공원에서 더 오랜 시간을 보낸다. 낮이 길지만 회사 동료보다 가족과 더 오래 대화한다. 이 ‘이상한’ 나라에서 첫 여정은 이렇게 시작됐다.
2000년 가까운 역사를 이어온 빈 도심은 어떨 땐 거대한 중세 세트처럼 보이기도 했다. 구글 지도에 뜨는 레스토랑 중 아무 곳이나 골라잡아 들어가도 그걸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문을 연 지 200년쯤 된 레스토랑이라고 ‘원조’나 ‘오리지널’ 같은 못난 말로 포장하진 않는다. 팔멘하우스(Palmenhaus)도 그랬다. 200년 전 조성한 호프부르크 왕궁 온실을 레스토랑으로 개조한 이곳에서 자랑하고 싶은 건 요리보다 식물인지 모른다. 15m는 되어 보이는 높은 천장에서 직간접적으로 들어오는 빛, 그 빛! 200년 전부터 쏟아져 내린 빛을 먹고 자란 녹색 나무와 덩굴식물은 마치 사람이 눈치채지 못할 만큼 움직이며 사는 생물 같았다. 샴페인 한 모금을 마시고 그것들을 올려다보는데, 에덴동산에 들어온 듯한 기분이 들었다.

빈. 영어로는 비엔나. 체코에선 비덴. 헝가리에선 베치. 유럽의 중부. 도나우강 상류 오른쪽에 자리한 도시.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강’ 외에도 이곳엔 청아한 피조물이 넘쳐난다.
습도가 낮아 30℃가 넘는 한낮에도 덥다고 느끼지 않았다. 심지어 호텔에선 새벽에 추위에 떨기도 한다. 그래서일까, 한낮의 거리엔 얇은 슬립부터 다운재킷까지 다양한 옷차림이 보인다. 오스트리아에선 실제로 호텔이나 식당 같은 공공시설을 제외하면 에어컨을 구경하기 힘들다. 하지만 서울보다 조금 작은 크기에 녹지가 반, 인구가 5분의 1 수준이라니 어느 정도는 수긍이 간다. 어딜 가도 사람에 치이지 않는다. 어디에서도 사람에게 상처받지 않는다. 도나우강 근처에 위치한 오래된 유원지 프라터(Prater)에 가면 이게 무슨 말인지 잘 알 수 있다.
프라터엔 1896년에 만든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동력식 관람차가 있다. 쉽게 설명하면 영화 <비포 선라이즈>에서 셀린과 제시가 처음 키스한 그 빨간 관람차. 이것에 오르면 15분가량 빈 시내를 찬찬히 내려다볼 수 있다. 또 그걸 감상하는 동안 어떤 방해도 받지 않는다. 아마 셀린과 제시도 그렇게 키스했을 거다. 관람차엔 탄생 90주년을 기념해 만든 특별 식당차도 있다. 예약하면 그걸 타고 식사할 수 있는데, 한 바퀴당 한 코스의 음식이 나와 중간에 다 먹더라도 기다려야 한다. 일본 작가 헨미 요는 이곳에서 식사가 나오는 관람차를 경험한 후 “초속 75cm로 움직이는 완만한 원형 궤도의 진행이 왠지 모르게 사람을 반성하게 한다”고 그 고요함에 대해 말했다.
더불어 프라터가 있는 거리는 19세기 유대인 중류층이 많이 살던 곳이기도 하다. 요한 슈트라우스 2세가 그 유명한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강’을 작곡한 집이 근방이고, 노벨 문학상을 받은 엘리아스 카네티, 극작가 아르투어 슈니츨러 등이 이 거리에 살았다. 말이 나온 김에 좀 더 하면 빈의 문화적 자부심은 프라터 일대를 포함한 도시 곳곳에 넘쳐난다. 모차르트, 요한 슈트라우스 2세, 하이든, 슈베르트의 고향이자 베토벤과 브람스의 주 활동 무대. 클림트와 실레, 비트겐슈타인과 슈뢰딩거, 프로이트, 오토 바그너 등이 태어난 곳이기 때문이다. 또 흔히 독일인으로 아는 히틀러도 이곳 출신이다. 1906년 상업 미술가를 꿈꾸던 히틀러는 실레와 함께 빈 미술 아카데미의 입학시험을 친다. 결과는 불합격. 만약 히틀러가 실레와 함께 시험에 합격했다면 나치 독일은, 또 제2차 세계대전은 일어나지 않았을까?

도시 절반이 녹지라 어디서든 새소리가 들린다. 카페에서도, 침대 위에서도, 이름 모를 성당 앞에서도. 이곳의 새는 울지 않는다. 노래한다. 이건 그냥 알게 되는 사실이다.

서울에서라면 500명쯤 들어갔을 야외 풀에 단 5명의 아이들이 놀고 있다. 그 곁을 지키는 건 크고 잘생긴 개들. 서울이든 빈이든 가장 빛나는 건 아이와 동물이다.
빈에 가면 한 번씩 들른다는 레오폴트 뮤지엄과 빈 뮤지엄, 빈 미술사박물관을 전부 돌아본 날도 있다. 레오폴트 미술관은 ‘세계 최대 에곤 실레 컬렉션’이라는 이름으로 그와 친분이 있는 작가를 한데 모아 소개했고, 빈 뮤지엄에선 이곳의 대표적 건축가 오토 바그너의 전시를, 빈 미술사박물관에선 클림트의 벽화를 임시 다리까지 만들어 코앞에서 보여주었다. 클림트와 실레, 오토 바그너의 전시를 한 번에 볼 수 있었던 이유? 올해가 이들이 스페인 독감으로 사망한 100주기이기 때문이다. 한데 빈은 이들을 다 잃고 지난 100년간 어떻게 흘러왔을까? 이들이 죽은 후에도 어떤 뜨거운 것을 후대에 남길 수 있었을까? 다행인 건 빈에 있는 며칠 동안, 여행자의 눈에도 뚜렷하지만 결코 요란하지 않은 어떤 정신이 보였다는 거다. 이곳에선 청소부도 오페라에 정통하다. 과학자지만 영화 수업을 하는 이도 흔하다. 국립오페라극장엔 3~4유로짜리 입석도 많아 학생도 쉽게 공연을 접할 수 있다. 보통 1년 정기권을 사는 빈 시민이 객석의 80% 이상을 채워 여행객의 몫은 많지 않다. 시내에선 모차르트 복장으로 표를 파는 호객꾼도 쉽게 만날 수 있다. 서울의 ‘삐끼’가 술집으로 손님을 인도한다면, 이곳의 ‘삐끼’는 음악회와 공연장으로 관광객을 이끈다.
빈에 왔으니 카페도 들락날락해본다. 그러다 공통점 하나를 발견하기도 한다. 테이블이 대부분 대리석, 의자는 등받이의 매끄러운 곡선이 돋보이는 토넷(thonet) 형태며 소파가 섞여 있다는 것. 그 사이로 검은 양복을 입은 종업원이 오간다. 빈에서 이름난 카페의 웨이터는 대개 중년 남성이다. 서비스와 웨이터가 제대로 된 직업인 나라. 오픈 당시 “장식은 죄악이다”란 말을 남긴 건축가 아돌프 로스가 디자인해 유명한 카페 뮤지엄(Cafe Museum)도 마찬가지였다. 덧붙여 빈의 카페에선 누구도 커피만 마시지 않는다. 책을 본다. 사색한다. 휴대폰은 없다. 100년, 아니 150년 전에도 그랬다. 예술가들은 카페에서 글을 쓰거나 악상을 떠올리고 예술을 논했다. 빈엔 그 시절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카페가 150여 개나 있다. 오랜 세월 전통을 이어온 빈의 카페 문화는 2011년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됐다.
너무 화려하고 좋은 것만 보느라 정신이 혼미해진 날도 있다. 그런 날엔 호텔에서 석양이 조금씩 눕는 모습을 보며 눈을 식혔다. 그러다 바람처럼 밖으로 흘러나오기도 했다. 골목을 걸어 도나우강으로 갔다. 그곳에서 지지 않는 해를 안주 삼아 술을 마시는 여자들을 봤다. 좀 더 어두워진 밤엔 벨베데레 궁전 앞마당에도 갔다. 그곳에선 땀에 젖어 조깅하는 남자들을 봤다. 그들은 웃통을 벗고 있었다. 수백 수천 년의 역사와 전통 아래 달빛을 받아 빛나는 그들 육신 앞에서, 여행자의 정신은 되레 더 혼미해졌다.
쇼핑을 하려면 파리에 가고, 가구를 보려면 밀라노에 가고, 잘나가는 미술가가 궁금하면 런던에 가라고 했지만, 나름 빈에 대해 아는 게 생겼다. 음악을 좋아하는 이가 이곳을 모차르트의 도시라 말하는 이유를 알았고, 미술을 좋아하는 이가 클림트의 도시라 여기는 이유를 알았으며, 심리학도가 프로이트의 도시라 부르는 이유를 알았다. 일요일 아침, 빈 궁정 성당 입석에서 빈 소년합창단을 보기 위해 2시간 동안 할아버지 손을 잡고 흐트러짐 없이 서 있는 꼬마의 의연함을 알았으며, 파스타 한 접시를 먹더라도 빳빳한 테이블보가 펼쳐진 식당을 찾는 이곳 사람들의 국민성을 알았다. 그런가 하면, 이 아름답고 격식을 차리는 나라에서 가장 돈을 많이 버는 회사가 뚱딴지같이 ‘레드불’이란 사실을 알았고, 오방색 재킷을 입은 검은 머리 관광객들이 미술관 안에서 셀카봉을 휘둘러도 젠틀하게 맞서는 이곳 사람들의 여유를 알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지난밤, 벨베데레 궁전 앞마당에서 ‘네 젊음으론 뭘 했니?’라고 묻는 듯한 땀이 흥건한 청년들을 알았다. 이런 빈에, 왜 가지 말아야 할까?
에디터 이영균(youngkyoon@noblesse.com)
취재 협조 빈 관광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