빔 델보예는 다다다
막다른 골목에 다다를 때마다 다다(dada)를 떠올리며 ‘파워업’하는 악동 아티스트 빔 델보예의 예술 세계.

세상의 아무리 귀한 것도 언젠가 ‘똥’이 될 수 있다고 말하는 악동 아티스트 빔 델보예.
벨기에 출신 작가 빔 델보예(Wim Delvoye)는 그냥 예술가가 아니다. 대학 재학 시절 다다(dada)를 만나 새 인생을 살게 된 그는 예술이 심신 안정에 도움을 준다는 명제에 뒤통수를 날리는 작품을 선보여왔다는 점에서 오히려 ‘사기꾼’에 가깝다. 그를 미술계 스타로 만든 것은 다름 아닌 ‘똥’이다. 제대로 된 이름은 2000년 벨기에의 안트 베르펜 현대미술관에 전시한 ‘클로아카 오리지널(Cloaca Original)’. 인간의 소화기관 메커니즘을 그대로 재현한 작품이다. 얼핏 정교한 실험 기계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인간처럼 음식을 먹고 그것이 박테리아가 포함된 위와 내장기관을 거쳐 마지막엔 냄새 나는 황갈색의 리얼한 ‘똥’을 배설하게 한다. 더 충격적인 건, 이렇게 만든 똥을 냉동실에 보관했다가 후에 델보예가 선별한 것만 모아 ‘아방가르드 느낌을 더해줄 장식품’이나 ‘현대미술 작품 염가 판매’ 같은 서명을 달아 한 덩어리당 1000달러씩 판매한 것.
‘클로아카 오리지널’만큼 잘 알려진 작품은 ‘문신 시리즈(Tattoo Works)’ 중 ‘예술 농장’이다. 1990년에 벨기에에서 처음 시작했지만, 훗날 중국 베이징 근처에 그가 마련한 ‘예술 농장(Art Farm)’에서 만든 작품이다. 그는 이 농장에서 자란 수십 마리의 돼지 등에 루이 비통이나 할리데이비슨 같은 브랜드 로고, 디즈니 애니메이션 캐릭터, 일본 만화 주인공 같은 대중문화에서 차용한 요소 그리고 종교적 도상에 이르는 심벌을 변형해 문신으로 새겼다. 말하자면 돼지 등이 캔버스가 된 것. 또 2012년 루브르 박물관의 유리 피라미드 안에 높이 11m의 작품 ‘쉬포(Suppo)’를 선보이기도 했는데, 몇몇 관람객이 잘 만든 탑이라고 박수까지 보낸 이 작품의 원재료는 나선형 좌약이다. 이 밖에도 타이어와 트럭, 슈트케이스 등 기능적인 사물을 정교한 고딕 양식으로 재현해 동시대를 배반하는 고딕 시리즈(Gothic Works), 소시지로 대성당의 바닥을 재현한 대리석 바닥(Marble Floors), 동양의 카펫을 피부 삼은 박제 돼지 작업인 태피스더미 시리즈(Tapisdermy Works) 등을 통해 그는 지난 십 수년간 미술계를 여러 번 놀라게 했다.
그는 실제로도 예술가처럼 보이지 않는다. 차라리 천재 엔지니어처럼 보인다. 작품의 아이디어만 완성되면 그걸 가장 싸게 최고의 작품으로 만들어줄 전문가를 찾아 전 세계를 돌아다니기 때문이다. 예술의 권위에 도전하는 동시에 예술을 비즈니스 상품으로 만들어버리는 대범함. 또 고급과 저급, 전통과 혁신, 숭고와 세속, 종교와 과학, 아름다움과 추함, 장식성과 기능성 등 결코 어울릴 것 같지 않는 요소들이 공존의 차원을 넘어 또 다른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키치함. 한 인터뷰에서 이 모든 것을 “현대 일상의 무용함을 표현하려던 것”이라고 표현했지만, 이는 사실 아무리 귀한 것도 언젠가 ‘똥’이 될 수 있다는 세상의 부조리, 예술의 신성함에 날리는 펀치 같은 것이다. 이런 빔 델보예가 2월 27일부터 4월 8일까지 서울 갤러리현대에서 개인전을 연다. 그는 기존의 사고 틀 안에서 작업하지 않는다. 우리가 가진 영예로운 결과물을 역추적해 그 생리를 뒤트는 생각을 한다. 이건 결국 보수화된 예술 세계에 대한 반격이자 ‘21세기의 다다’다. 이번 전시는 대량생산 시스템으로 예술 작품의 대중화를 실현하고 있는 그의 삶과 예술 철학을 정면에서 마주할 수 있는 기회다.

2000년 벨기에 안트베르펜 현대미술관에 설치한 ‘클로아카 오리지널’. Cloaca Original, Mixed Media, 270×1157×78cm, 2000
1980년대 초 안트베르펜 왕립 예술학교에 입학한 후 내내 부적응 학생이었지만, 필연처럼 다다를 만나 새 삶을 시작한 것으로 안다. 그것의 어떤 점에 끌렸나? 우연히 학교 수업 시간에 다다와 관련한 작품들을 보고 금세 빠져들었다. 학창 시절 내내 공부와는 담을 쌓고 살았는데 다다와의 만남이 어떤 희망을 준 것 같다. 다다의 어느 부분이 좋으냐고 물으면 나는 늘 ‘키니컬(kynical)’*한 태도라고 답한다. ‘시니컬(cynical)’이 아닌 키니컬이다.
지난해에 한국에선 조수를 써서 작품을 만든 미술가 문제가 대두됐다. 한데 내가 알기로 당신은 드로잉을 뺀 작업은 직접 하지도 않는다. 디자인을 완성해 가장 저렴한 가격으로, 높은 완성도를 보일 수 있는 전문가와 공장을 찾는다. 내가 아는 정보가 맞나? 맞다. 난 특정 ‘기술(me´tier)’에 한해 그 분야의 전문 장인에게 프로젝트를 맡긴다. 근데 그게 무슨 문제인가? 무엇도 아닌 ‘작품’을 위한 것인데. 그간 내 프로젝트엔 변호사나 중국의 목공 장인, 과학자 등 다양한 직업인이 거쳐갔다. 나는 좋은 퀄리티의 작품을 만들 수 있다고 판단하면 무조건 그 분야의 최고 장인을 찾는다.
당신을 미술계 슈퍼스타로 만들어준 똥 기계 ‘클로아카 오리지널’에 대해 얘기해보자. 20여 년 전, 당신은 이 작품에서 나온 똥을 실제로 몇몇 사람에게 팔기까지 했다. 이 작품이 사람들 앞에 전개되는 과정을 통해 당신은 무엇을 느꼈고, 현재 이 작품은 대중에게 어떻게 인식되고 있나? 지금은 아이들이나 성인 모두 ‘클로아카 오리지널’을 좋아한다. 또 그들은 작품의 제작 의도까지 정확히 이해한다. 아주 민주적인 모습이다. ‘클로아카 오리지널’은 애초에 계획한 대로 사람들을 웃게 하고, 예술뿐 아니라 인간의 삶, 인간을 둘러싼 모든 생명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한 가지 재미있는 건, 오래전 이 작품을 전시한 나라마다 사람들의 반응이 가지각색이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프랑스에선 작품 자체의 작동 방식보다는 그것에 들어가는 음식의 미식적 측면에 높은 관심을 보였다.

중국 베이징 근교에서 예술 농장을 운영하던 시절의 빔 델보예의 Art Farm China (2003~2010).
‘클로아카 오리지널’은 기존의 서구 문명과 그들의 딱딱한 위계질서 등을 풍자한 작품이다. 하지만 따져보면 당신도 서구 문명에 속한 예술가이며 ‘예술가’라는 타이틀로 작품이 높은 가치를 보장받는 존재다. 현대사회에서 예술가가 무언가를 예술이라 칭한다면, 그것은 마땅히 예술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나? 어떤 필수적인 것은 전혀 필수적이지 않은 게 될 수 있으며, 그것은 예술 작품이 되기도 한다. 또 어떤 사물은 예술 작품이 됨으로써 본연의 유용성을 잃을 수 있다.
그럼 이런 질문은 어떤가? 데이미언 허스트나 제프 쿤스 그리고 당신의 실제 배설물도 언젠가는 ‘작품’으로 평가될 수 있을까?그렇지 않을 것이다. ‘보존성’의 문제도 있고…. 예술로서의 배설물은 ‘전문가’와 ‘내부자’의 공모를 필요로 한다. 내 배설물은 ‘모나리자’같이 누구나 좋아하는 그런 작품은 될 수 없다.
당신이 존경하는 완벽에 가까운 예술가는 누구인가? 미켈란젤로다. 그는 건축부터 시, 회화, 조각 작품 등을 만들었고 심지어 그 모든 것에 아주 능했다. 나는 그의 작품이라면 껌벅 죽는다.

1 인간의 소화기관 메커니즘을 그대로 재연한 클로아카 오리지널.
2 2010년 태즈메이니아의 빔 델보예 전시에 소개된 사람 몸에 한 문신 작업 팀.
‘클로아카 오리지널’을 통해 미술계에 이름을 알리기 전엔 ‘문신 시리즈’를 선보였다. 애초에 이는 벨기에에서 시작한 것으로 아는데, 왜 훗날 중국으로 장소를 옮겼나? 윤리적으로 무슨 문제라도 있었나? 아니면 단순히 자본주의 경제원칙에 따라 싼 비용으로 작업하기 위해? 벨기에 정부와는 어떤 문제도 없었다. 그 당시 중국에 간 건 단순히 거기서 뭔가를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사실 ‘클로아카 오리지널’ 작업을 시작하고 싶었는데, 중국의 기술력이 너무 낮아 ‘예술 농장’을 차리는 것으로 결론을 냈다.
타이어나 슈트케이스, 삽, 트럭 같은 지극히 일상적이고 기능적인 사물을 지나치게 정교한 고딕 양식으로 만든 근래의 작업에 대해 평론가들은 “사물과 이미지의 질서에 대한 뻔한 기대를 파열시키고, 이 과정을 통해 예술의 신성함과 세상의 부조리에 대해 위트 있게 반격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이보다는 일반 관람객의 반응이 궁금하다. 우리 생활과도 밀접한 실재의 것을 ‘비튼’ 이런 작품을 접한 일반 관람객은 대체로 어떤 반응을 보이나? 내 작품을 본 일반 관람객은 민주적 상징물, 대중적 취향을 따르는 그런 사물을 단순히 민주적이라는 이유로 좋아한다. 작품도 마찬가지다. 작품의 기본이 되는 삽이나 가스통, 타이어 같은 사물은 일상에서 누구나 쉽게 살 수 있는 것이다. 고로 작품 또한 본질적으로 ‘명망’을 가지진 않는다.

이번 갤러리현대 개인전에 소개되는 타브리즈와 콘크리트 믹서.
그럼 다른 얘기로, 그러한 일련의 작품에 담긴 ‘심미성’을 알아본 기업이 당신에게 협업을 제안한 적은 없나? 물론 있다. 나는 내게 뭔가가 주어지는 걸 기대하며 늘 그들의 제안을 받아들인다. 하지만 대부분 실제로 이뤄지진 않았다.
2012년 루브르 박물관의 유리 피라미드 안에 높이 11m에 달하는 작품 ‘쉬포’를 설치하거나, 대리석 바닥에 기존의 사물과 장식의 관계를 소시지와 살라미 슬라이스로 변형해 기하학적 패턴을 만든 ‘대리석 바닥’ 등은 애초에 그것이 지닌 ‘위계’와 ‘미학적 지위’를 무너뜨리기 위한 것이었다. 쉽게 말해 ‘심각함’을 뒤집기 위한 것. 혹시 최근에 당신이 새롭게 눈여겨보는 사물은 없나? 조만간 꼭 ‘뒤집어’보고 싶은 것. 생각 중이다. 뒤집고 싶은 것은 많지만, 지금은 딱히 어떤 하나가 생각나지 않는다. 만약 떠오른다면 바로 시작할 거다.
그럼 반대로 영원히 뒤집어버리고 싶지 않은, 당신이 여전히 신성시하는 ‘일상의 유용한’ 것엔 무엇이 있나? 인생에 성스러운 것은 많이 존재하지만, 이것 역시 지금은 적당한 예가 떠오르지 않는다. 그런데 ‘표현의 자유’라면 충분히 성스러운 것 같다. ‘예술’도 마찬가지다.

기능적 사물을 정교한 고딕 양식으로 만든 시멘트 트럭.
수년 전, 한 인터뷰에서 당신은 작품의 설명을 요구하는 관람객에게 “작가에게 너무 많은 서비스를 바란다”며 ‘구글 검색’을 추천했다. 지금도 같은 생각인가? 이걸 묻는 이유는 이미지만으로 전시를 소비하는, 요 근래 젊은 관람객들의 성향 때문이다. 어쩌면 당신의 첫 한국 전시 또한 큰 논의 없이 그렇게 소비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구글이 사람들을 박식하게 만든다고 본다. 물론 그들 중 일부는 더 게을러져 바보가 되기도 하지만. 그런데 하나는 분명하다. 요즘 사람들은 구글을 통해 분명 이전보다 쉽게 내 작품에 접근하고 있다. 또 그런 이유로 (결코 가볍게 답할 수 없는 것을)작가인 내게 더 쉽고 가볍게 질문한다. 하지만 그건 정말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를테면 “이 재료는 뭔가요?” 같은 질문 말이다. 이런 질문은 관람객이 작품을 그다지 깊이 있게 대하지 않고 있다는 뉘앙스를 준다. 또 작가가 자신의 전시 오프닝에서 관람객에게 일종의 ‘서비스’를 하고 있다는 인상도 풍긴다. 하지만 누군가 내게 진중하게 작품에 대해 물어오면, 똑 부러지게 그것에 대해 답할 생각은 있다.
혹시 좋아하는 문학작품이나 음악이 있나? 당신의 작업에 영감을 주는. 지난 20여 년 동안 마르셀 프루스트의 광팬으로 살았다. 아직도 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중 ‘갇힌 여인(The Captive)’을 읽진 못했지만. 그런가 하면 내게 음악은 ‘안락의자’ 같은 거다. 나를 편안하게 해주지만 거기서 영감을 받은 적은 없다. 영감은 오히려 매일 읽는 신문을 통해 얻는다.
이번 개인전에서 소개하는 작품을 묶는 ‘테마’는 무엇인가? 또 당신의 작품 세계는 ‘21세기 다다’로 요약되기도 하는데, 전시장을 찾을 관람객에게 그와 관련한 한마디를 해준다면? 굳이 전시의 테마를 짓는다면 ‘솜씨’ 혹은 ‘장인의 기교(craftsmanship)’다. 하지만 이번에 소개하는 작품들은 그렇게 ‘다다’스럽진 않을 듯하다. 한데 질문과 별개인 얘길 하나 해두면, 다다는 단순히 그 이름으로 전시된 작품을 뜻하진 않는다. 그것은 ‘태도’이자 어떤 ‘요법’ 같은 거다. 또 누군가를 ‘치유’하기도 하며, ‘행동’할 수 있게 돕는다. 말하자면 일종의 ‘정신 상태’인 셈이다. 눈 높은 관람객은 이따금 작품을 통해 놀림 받길 원하고 그것에 익숙해져 있다. 내 작품이 그렇다.
에디터 이영균(youngkyoon@noblesse.com)
사진 제공 빔 델보예 스튜디오, 갤러리현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