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나는, 빛 좋은 리경
진실과 허구를 구분하지 못하는 우리 눈의 한계와 현상계의 불완전성을 빛과 소리, 공간의 변형 등으로 표현해온 리경이 오늘도 빛 앞에 섰다.
빛을 통해 공감각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을 선보이는 리경
ⓒ 서지연

2 2014년 서울 아트선재센터 내 별관 한옥에서 설치한 ‘more Light_공의 관조도’
3 2012년 코리아나미술관에서 소개한 ‘more Light_I’m Telling a Lie’의 설치 전경
리경의 작업에서 ‘빛’은 늘 중요한 의미로 쓰인다. 그것은 보이는 대로 믿는 인간의 불완전성을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고, 어둠의 존재를 확인시키는 장치이기도 하며, 때론 실제로 몸이 경험하는 것, 사회적 인식을 반영하는 장치로도 쓰인다. 2000년대 초반부터 현재까지 빛에 대해 오랜 사유를 해왔음에도 여전히 그것이 어렵고도 즐겁고 고단하면서도 잘 모르겠다는 그녀를 한낮의 햇살 앞에 세웠다.
작업실이 원래 지하에 있었다고 들었어요. 왜 이렇게 높은 데로 올라오셨어요?
사정이 생겨 갑자기 같은 건물 꼭대기 층으로 올라오게 됐어요. 깜깜한 지하에서 빛이 잘 드는 지상으로 올라오니 좋은 것도 있지만, 공간 자체는 절반으로 좁아져 답답하기도 해요. 전 원래 크고, 넓고, 어두운 걸 좋아하거든요.
어쩌면 이전의 조명 작업을 벗어나고자 햇빛 같은 자연광을 찾아 지상으로 올라왔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어요.
특별히 그렇진 않아요.
그럼 다시 여쭐게요. 꾸준히 빛을 재료로 작업하시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사실 처음부터 빛으로 뭔가를 해야지 한 건 아니었어요. 그냥 하고 싶은 걸 했을 뿐인데, 어느 날 돌아보니 빛이 작업의 중심에 들어와 있었죠. 그냥 좋아하는 걸 15년 이상 쭉 하다 보니 ‘공간을 무대로 라이팅 작업을 하는 사람’ 같은 인식이 생긴 것 같아요.
실제로 ‘공간을 무대로 라이팅 작업을 하는 사람’ 같은 수식어가 이름 앞에 붙는 건 어때요?
작품 활동 초기엔 다른 작가들처럼 저도 트레이드마크 같은 게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긴 했어요. 이동기나 이세현 같은 작가를 보면 ‘아토마우스’나 ‘붉은 산수’가 바로 떠오르잖아요. 처음 작업을 시작할 땐 그게 무척 도움이 되거든요. 한데 제 작품은 여러 여건상 전시를 자주 열 수도 없어 대중적 공감이 부족했어요. 그러니 이제라도 그렇게 불리면 다행이지요.
개인전이든 그룹전이든 전시를 자주 할 수 없었던 건 역시 작품의 제작비 때문이겠죠? 그간 전시 비용을 지원받은 미술관 전시는 많았지만, 갤러리 전시는 확실히 적었던 것 같아요.
그렇죠. 제 작품은 매체의 특성상 한곳에 설치한 걸 다른 데서 다시 보여줄 수 없으니까요. 전시가 끝나면 조명 빼곤 전부 부숴야 하죠. 심지어 설치 작품의 특성상 잘 팔리지도 않고요. 전시를 열면 거기서 뭔가 팔아야 다음 작업을 준비하는데, 그 부분이 잘 해결되지 않아 고민이 많았어요. 게다가 저는 같은 작업을 다시 선보이는 걸 싫어하거든요. 소재와 재료도 그래서 자주 바뀌죠. 그러다 보니 전시도 더 뜸해지는 거고요.(웃음)
초기 작업이 순백의 조명을 날것 그대로 드러냈다면, 최근 몇 년간은 빛 자체가 아니라 빛이 만들어내는 환경과 공간에 집중하고 있어요. 2012년 코리아나미술관에서 열린 개인전 <더 많은 빛(more Light)>도 마찬가지였죠. 평소엔 보이지 않다가 스모그가 뿜어 나오면 비로소 통로들이 보이는 작품을 선보였어요. 당시 한 평론가가 ‘보이지 않는 통로’는 일상의 ‘보이지 않는 막’이라고 했는데, 이에 대해 설명해줄 수 있나요?
제가 관심을 보이는 건, 보이는 대로 믿는 게 얼마나 불완전한가에 대한 질문이에요. 코리아나미술관에서의 작업도 그렇고, 몇 해 전 서울시립미술관 전시도 마찬가지였죠. 서울시립미술관 전시 당시엔 관람객이 잘 아는 익숙한 공간을 임의로 2m 정도 높이로 낮추는 공간 작업을 했어요. 사실 그 높이면 건장한 성인 남성도 웬만해선 머리가 천장에 닿지 않죠. 한데 전시를 보러 온 관람객 대부분이 익숙하지 않은 높이 때문에 머리를 숙이면서 공간에 들어오더라고요. 인간의 뇌가 내리는 결정 중 시각에 의해 좌우되는 게 약 70%래요. 사실 그게 높다면 높고, 낮다면 낮을 수 있는 확률인데, 우린 실제로 눈에 보이는 것에만 관심을 갖잖아요. 보이지 않는 것엔 관심도 없죠. 제 작업은 그만큼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게 상당히 큰 부분일 수 있다고 얘기하는 거예요.
그런데 정말로 ‘보이지 않는 것’은 뭐라고 생각하세요? 그 실체요. 문득(보이지 않는) 그게 무엇일까 궁금해졌어요.
글쎄요. 사실 그건 지금도 잘 모르겠어요. 그래서 지금까지도 관심이 많이 가는 거고요.(웃음)

4 2010년 학고재에서 선보인 ‘당연한 전제, 불온한 확신’
5 2014년 도쿄 긴자 에르메스 르 포럼의 개인전
2005년 갤러리세줄에서 첫 개인전을 연 이래 10여 년이 훌쩍 지났습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예술관의 변화를 겪기도 했는지요.
무슨 큰 변화라기보다는, 이전에 비해 조금 자연스러워진 건 느껴요. 가장 최근에 연 대규모 전시인 2014년 도쿄 긴자 메종 에르메스 르 포럼 개인전
빛을 보는 사람 중에 유독 예민한 분이 많더라고요.
정말요? 전 제가 생각하지 않은, 계산하지 않은 것이 작업에 끼어드는 걸 참지 못했어요. 오죽하면 별명이 ‘일미리(1mm)’였을까요.(웃음)
그런데 이전 긴자 메종 에르메스 전시에선 태양빛을 그대로 전시에 이용하신 것 아닌가요?
그랬죠. (직접 컨트롤할 수 없다는 이유로) 제가 가장 싫어하는, 하지만 제 최종 목표이기도 한 햇빛을 재료로시 전했죠. 당시 전시장이 아침에 뜨는 햇살부터 오후에 지는 빛까지 채광이 잘되는 곳이었는데, 바닥 한가득 자개를 깔아 하루 동안 자개가 품는 빛에 사운드를 더해 조금 독특한 풍경을 만들었어요. 시간에 따라 방향과 톤이 바뀌는 사운드와 어우러져 보이지 않는 태양의 존재가 간접적으로 드러나 아주 보기 좋았죠.
당시 전시가 도쿄 긴자 메종 에르메스 르 포럼의 12년 역사상 최다 관람객을 동원했다는 얘길 들었어요.
사실 햇빛을 이용한 전시는 4~5년 후쯤 기획해볼 생각이었는데, 전시 공간 자체가 너무 훌륭해서 그에 맞는 전시를 선보이고 싶어 노력을 많이 했어요.
직접 보진 못했지만, 전시 소개 글을 보면 이전에 비해 장치적인 면에서 여러 가지를 생략한 것 같더라고요. 일단 좋아하는 그 시꺼먼 공간도 벗어나셨고요.
요즘 들어 부쩍 자주 드는 생각인데, 점점 작업에 여백이 생기는 건 학부 때 배운 한국화의 영향도 있는 것 같아요. 제 생각에 서양화는 공간을 어떻게 채우느냐가 관건이지만, 한국화는 어떻게 비우느냐가 중요하거든요. 그러다 보니 저도 모르게 작업 막바지엔 꼭 뭔가 뺄 생각을 하고 있더라고요.
6 2012년 코리아나미술관 개인전
초기부터 지금까지 특정 공간 자체를 빛의 유무로 변화시키며 무엇을 드러내기도 하고 감추기도 하는 작업을 이어왔어요. 혹시 전시 자체를 아예 야외로 끌고 나갈 생각은 없나요?
계획만 세우다 매번 못했어요. 실은 실내 전시에 비해 5~6배 정도의 작품 제작비가 드는 것도 문제였죠. 그 밖에 유럽의 비어 있는 성당 같은 데서도 꼭 전시를 해보고 싶어요. 영적인 공간에서의 전시. 오래전에 전기가 끊긴 그런 곳이라면 제 작품이 잘 어울릴 것도 같고요.
전에 한 인터뷰에서 영상 작업에도 관심이 있다고 하셨어요. 이후 뭔가를 좀 해보셨나요?
2년 전쯤일 거예요. 그땐 정말 해보려 했는데 결국 포기했죠.(웃음) 실은 남자친구가 영상 일을 하고 있어서 영상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을 때였어요. 그런 찰나 영상으로 만들면 정말 반응이 좋을 것 같은 작품 아이디어를 떠올렸죠. 당시 한 6개월 정도 그걸 어떻게 만들까 많은 고민을 했어요. 그런데 어느 날 쇼크를 받았죠. 제가 생각한 그 작업을 마리나 아브라모비치가 십 수년 전에 실제로 발표했더라고요. 그래서 그냥 뒤도 안 돌아보고 그만뒀어요. 자존심이 엄청 상했죠.(웃음)
빛 외에 작품 재료로 관심이 가는 게 있다면요?
요샌 유리요. 계속 유리가 머릿속에 아른거려요. 평소 작업을 할 때 컨셉을 정한 후 재료를 선택하는데, 지금은 그 반대예요. 아직은 뭔지 모르지만, 유리로 뭔가 해보려고 계속 살피고 있죠. 그래서 몇 해 전 유리공예로 유명한 이탈리아 무라노로 유리 장인을 만나러 간 적도 있어요. 거기 계신 몇 안 되는 장인 할아버지랑 어렵게 얘기도 나죠눴. 실은 곧 무라노에서 그분과 작업에 대한 얘길 하려고 약속도 잡아둔 상태예요.
올 한 해 어떤 전시를 계획하고 있나요?
3월 30일부터 6월 30일까지 서울의 아트스페이스 벤에서 기존의 제 작업을 소품식으로 전시하는 개인전을 열고, 4월엔 일본 도쿄에서 그룹전이 하나 잡혀 있어요. 그게 끝나면 8월엔 서울 청담동 송은아트스페이스에서 개인전을 열 거고요.
리경
우리 미술계에서 드물게 빛을 이용해 작업하는 작가. 그녀의 작품은 빛을 통해 그간의 확신이 실은 허상이었음을 느끼게 한다. 매번 실현 여부가 불투명할 정도로 어려운 작업을 이어가고 있지만, 공간과 미술 재료에 대한 남다른 아이디어와 감성으로 자신만의 영역을 개척하고 있다.
에디터 이영균(youngkyoon@noblesse.com)
사진 제공 리경스튜디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