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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나니까 청춘이다

LIFESTYLE

청춘의 아름다움은 시공간을 초월한다. 아름다움을 후회 없이 만끽하면 좋겠지만 우리는 시간이 지나서야 그때가 가장 눈부신 시절이었음을 깨닫는다. 마음만은 청춘이라며 자신을 위로하고 싶을 때 라이언 맥긴리의 사진을 보라. 환상적으로 빛나는 청춘의 한 장면에 마음이 흔들린다면 여전히 푸른 봄날을 살고 있다고 믿어도 좋다.

 

라이언 맥긴리의 작품 ‘Bathtub, 2005’ 앞에 서서 한참을 바라봤다.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녀 친구들이 좁은 욕조에 뒤엉켜 앉은 채 뭐가 그리 즐거운지 천진난만하게 웃고 있는 순간을 포착한 작품이다. 왜 남녀가 함께 있는지 성별의 구분은 무의미하고 하나같이 누드임에도 야하지 않고 그저 밝고 예쁘기만 하다. 청춘이 라이언 맥긴리의 작품 전체를 대변하는 단어라면 누드는 그의 미학을 완성해주는 표현 방법이다. 옷을 입지 않은 모습이 얼마나 자연스럽고 감성적인지 보여주며, 역설적으로 그래서 더 패셔너블하게 다가온다.

미국 출신 포토그래퍼 라이언 맥긴리는 사진 예술계에서 하나의 아이콘이다. 주변의 아티스트 친구들,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주말이면 술을 마시며 파티를 즐기던 이들의 생생한 일상을 필름카메라로 촬영한 사진은 특유의 몽환적인 색감과 함께 ‘라이언 맥긴리 스타일’이라는 말을 만들어내며 대중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2003년 스물네 살 때 휘트니 뮤지엄에서 최연소 작가로 개인전을 열었으며 이 기록은 아직도 깨지지 않았다. 뉴욕에서는 그를 앤디 워홀 같은 아티스트로 키우려 한다는 말이 들릴 정도다.

그의 사진은 청춘이라 불리는 세대가 겪어야 하는 냉혹한 현실은 거세되고 반짝반짝 빛나는 판타지만으로 가득하다. 해결책은 제시하지 않은 채 ‘아프니까 청춘’이라는 영혼 없는 말잔치에 지쳤다면, 라이언 맥긴리의 사진은 마치 꿈을 꾼 것 같은 기분 좋은 환각을 선물한다.

나이에 상관없이 라이언 맥긴리의 사진에 열광하는 이유는 명백하다. 이제 막 물이 오른 청춘, 혹은 그 시절이 좋았다고 추억하는 이에게도 똑같이 소중하고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은 것이기에 그의 사진을 보면 빨려들듯 공감할 수밖에 없다. 모든 걸 벗어던지고 사진 속에서 자유롭게 뛰놀고 싶은 욕망을 일깨우는 힘이 있다.

11월 7일부터 대림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첫 개인전 <청춘, 그 찬란한 기록>을 위해 서울을 찾은 라이언 맥긴리를 만났다. 조금 피곤해 보였지만 수십 번이고 받았을 법한 질문도 처음 듣는 것처럼 친절하고 성실하게 답해주는 다정한 사람이었다. 록 스타 같은 그의 인기는 전시회 오픈 전날 팬 사인회에 몰린 인파를 보며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사진과 패션을 좋아하는 20대 힙스터들은 물론 같은 포토그래퍼에게도 그는 동경의 대상이었다. 이번 전시에서는 그를 유명하게 만든 뉴욕의 자유로운 일상이 담긴 초기 시리즈부터 미국 전역을 횡단하며 환상적인 풍경을 포착한 ‘로드 트립(Road Trip)’ 시리즈, 동물과 함께 촬영한 ‘애니멀(Animal)’ 시리즈 등 라이언 맥긴리의 작품 전반을 한눈에 볼 수 있다. 또한 라이언 맥긴리가 직접 기획한 록 밴드 시규어 로스의 뮤직비디오 ‘Varuo’의 영상을 감상하며 그가 얼마나 비주얼에 천부적 감각을 지녔는지도 알 수 있다.

‘Highway’, 2007

당신을 만난다고 하자 비슷한 나이대의 포토그래퍼들의 반응이 굉장했어요. 패션과 사진을 좋아하는 10~20대 소년 소녀뿐 아니라 같은 포토그래퍼들에게도 당신은 아이코닉한 존재예요. 인기의 비결이 뭘까요? 제 작품을 가능한 한 많은 이들이 접하길 바라서 사람들에게 알려졌다고 생각하면 무척 신나요. 제 작품의 주제는 아주 보편적인 인간의 몸과 본성에 관한 것이어서 누구나 쉽게 감상할 수 있어요. 작품에 대해 함께 얘기하거나 팬들을 만나는 건 늘 즐거워요. 누군가 사인을 해달라고 하거나 함께 사진을 찍자고 하면 언제나 응해요. 아티스트에게 팬이 많다는 건 행운이니까요.

라이언 맥긴리의 사진과 어울리는 단어를 꼽으라면 젊음, 자유, 반항 같은 것이 떠올라요. 당신의 작품에 언젠가 노인이 등장하는 순간도 올까요? 사실 우리는 매일 늙어가고 있잖아요. 저는 젊은 사람이든 노인이든 사진 찍는 걸 좋아해요. 하지만 나이에 상관없이 사진 찍을 때 아이처럼 행동하는 사람들을 특히 좋아해요. 아이들이 남의 눈을 신경 쓰지 않는 것처럼 개방적이며 자유롭게 움직이는 사람들이요. 아이들이 몸을 움직이는 걸 보면 긴장하지 않고 아주 유연해요.

빛과 컬러에 대한 감각을 타고난 것 같아요. 당신이 유독 좋아하는 컬러 톤, 빛이 궁금해요. ‘매직 아워’라고 불리는 때를 아세요? 일출이 시작되기 2시간 전, 일몰이 시작되고 2시간 후, 그 시간대를 좋아해요. 빛이 가장 부드럽고 하늘은 푸르거나 보랏빛, 분홍빛이 돌면서 땅거미가 지기 시작해요. 제가 사진을 찍는 가장 중요한 시간이죠. 이른 새벽 막 잠에서 깨어 아무도 방해하지 않는 시간에 사진을 찍으면 퀄리티도 확실히 달라요.

야외에서 누드로 촬영하면서 위험한 순간도 많았을 텐데 당신의 사진 속 인물들은 무척 자연스럽고 생동감이 넘쳐요. 자연스러운 움직임을 포착하는 비결이 뭔가요? 계속 반복해서 촬영하는 거예요. 자연스럽고 편안해 보이는 순간을 포착하려면 아주 많은 시간을 함께해야 해요. 촬영하기 직전까지 준비를 철저히 하고, 촬영이 시작되면 모델들이 편하게 뛰놀면서 예상 밖의 즉흥적인 그림이 나오길 기다리죠. 그리고 가장 자연스럽고 리얼한 사진을 볼 줄 아는 예리한 눈을 가져야 해요. 뛰어난 사진가가 되는 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건 좋은 사진을 고르고 에디팅할 줄 아는 능력이에요.

일주일에 서너 번은 콘서트에 갈 정도로 음악을 사랑한다고 들었어요. 오늘 아침에는 어떤 노래를 들었나요? 좋아하는 뮤지션을 알려주세요. 드레이크(Drake)의 새 앨범에 실린 ‘Hold on’이라는 노래를 들었어요. 드레이크는 꼭 들어보세요. 더 스미스(The Smiths)는 제가 가장 좋아하는 밴드고, 뮤직비디오 작업을 함께한 시규어 로스(Sigur Ros)의 음악도 즐겨 들어요.

1 ‘Fireworks_Hysteric’, 2007-08
2 ‘Bathtub’, 2005
3 ‘Laura(thunderstorm)’, 2007
4 ‘Purple_Beacon’, 2011

에르메스와 함께 작업한 영상을 봤어요. 마지막에 로고가 떠오를 때까지 어디서도 에르메스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죠. 무척 평화롭고 정적인 비주얼이 인상적이었는데 어떤 컨셉으로 작업한 건가요? 그들이 제게 영상을 만들어달라고 했을 때 촬영에 대한 전권을 준 거나 마찬가지였어요. 하고 싶은 건 뭐든 하라고 했죠. 브랜드에서는 제 시각이 에르메스를 대변할 수 있기를 바랐어요. 아마 제 스타일로 에르메스의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아요. 대중이 에르메스에 대해 느끼는 이미지를 바꾸길 원해서 저를 고용한 거겠죠.

사춘기 시절의 라이언 맥긴리는 어떤 소년이었나요? 저는 여덟 형제 중 막내로 자랐어요. 거의 형과 누나들 손에 자랐고 그들은 제 영웅이었죠. 그때의 감성이 아직 제 안에 남아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인지 제 사진 속 많은 모델들이 제 형과 누나의 10대 시절 모습을 무척 닮았어요. 뉴저지에 살았는데 학교 수업이 끝나면 매일 뉴욕으로 넘어가서 스케이트보드를 타곤 했어요. 반항심도 많고 골칫거리인 시절도 있었죠.

한 인터뷰에서 당신이 동성애자라 작업할 때 더 에너지를 낼 수 있었다는 말을 했어요. 제가 동성애자라는 사실은 제 안의 반항심을 더 강하게 만들었어요. 너무 많은 사람들이 동성애자를 혐오하는 문화 속에서 자라고 있으니까요. 어릴 때는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이 정말 힘들어요. 알다시피 자라면서 배우는 그대로 인생이 풀리진 않아요. ‘그래, 난 동성애자야’라고 어느 순간 깨닫게 되죠. 그 후 삶의 모든 것이 달라져요. 자신만의 규칙을 만들고 거기에 따라야 해요. 자라면서 배운, 사회가 따르라고 강요하는 방식으로 살 순 없다는 걸 알게 되죠.

성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작업에 어떤 영향을 끼쳤나요? 저는 ‘됐다 그래, 규칙 따위는 이제 없어’라고 생각했어요. 제 형은 제가 어릴 때 에이즈로 죽었어요. 어렸지만 형을 그렇게 떠나보낸 경험이 있고, 커밍아웃을 한 후 제 인생이 어떻게 보이길 원하는지 스스로 결정할 수 있었어요. 제 사진은 제가 살면서 경험한 많은 역경과 비극에 대한 반응이라고 봅니다. 그 모든 걸 제 작품 안에 담았어요. 혹은 제 작품의 감성이 생겨나는 기본이 된다고도 할 수 있죠.

포토그래퍼라는 직업이 세상의 차별로부터 당신을 보호하는 무기가 된 걸까요? 카메라는 강력한 마법 상자 같아요. 평소에는 요구하지 못할 것을 사람들에게 해달라고 할 수 있어요. “당신의 누드를 촬영해도 될까요?”라고 말할 권리를 주죠. 카메라가 없는데 이런 말을 하면 제가 미쳤다고 하겠지만 이 작은 마법 상자는 사람들에게 뭐든 하라고 할 수 있는 자격을 줘요.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고 명성을 얻게 되면 그게 마법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당신도 많이 고민하고 시행착오를 겪었지만 지금은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아가고 있죠. 힘든 시간을 통과하고 있는 젊은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나요? 저 역시 반항적인 영혼을 가지고 있는데 자기가 정말 하고 싶은 것을 하라는 말을 하고 싶어요. 그리고 저는 모험이라는 단어를 좋아해요. 어릴 때 마크 트웨인의 <톰 소여의 모험>을 무척 좋아했어요. 사진 작업도 모험을 떠나는 것과 같아요. 예를 들면 저와 사진 작업을 하면 2~3개월 정도 여행을 하게 되는데, 젊을 때는 지금 당장 떠나자 하면 언제든지 떠날 수 있죠. 그런 마인드가 곧 젊음이고요. 저는 이처럼 젊은이들만이 가지고 있는 반항정신, 끊임없이 질문하는 태도가 세계관에 나타나면 좋겠어요.

에디터 고현경
사진 이영학(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