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각형 바깥에서 찾아낸 즐거움
회화가 지닌 평면적 조형성을 입체로 확장하는 작가 홍정욱. 10월 25일부터 11월 15일까지 노블레스 컬렉션에서 그의 개인전 이 열린다.

홍정욱은 회화적 요소를 기반으로 화면 구조를 독창적으로 재구성한다. 그는 캔버스 같은 회화 재료를 활용하면서도 그 의미와 형태를 변형해 평면 작품이 실제 공간과 조화를 이루게 한다. 공간을 거대한 캔버스 삼아 작품을 하나의 요소로 배치하는 방식. 그렇게 그의 작품은 공간과 함께 호흡하며 설치와 평면 사이에서 독특한 위치를 점한다. 그의 작품에서 뿜어져 나오는 은은한 색의 빛과 섬세한 그림자는 철저히 계획된, 세심한 접근이 돋보이는 결과물이다. 입체적 회화와 회화적 입체의 경계를 넘나드는 홍정욱은 형식의 실험을 지속적이고 다각적으로 제시한다.

cacophony, Acrylic Color, Magnet, Wire, Wire Clothing and Wood-Ball on Shaped Canvas and Decagonal Satin-Acrylic Panel, 60×60×19cm, 2024.
다양한 형태의 입체 작업은 회화의 본질에 대한 질문, 즉 캔버스 해체에서 시작되었다고요. 그 계기가 궁금합니다. 페인팅 작업을 하면서 본질적인 궁금증이 생겼어요. 누구도 시키지 않았지만 당연하게 캔버스에 그림을 그려왔고, 이를 회화라는 장르로 불렀죠. 그러던 중 문득 ‘왜 꼭 사각이어야 할까’ 혹은 ‘왜 꼭 벽 중앙에 걸려야 할까’라는 의문이 생겼고, 이는 새로운 실험의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확장성을 탐구하며 사각형 캔버스를 넘어 면을 깨고 부피, 그리고 공간과 구조까지 넓히는 작업을 하게 된 거죠. 이 과정에서 기존 회화적 요소를 재고하고, 새로운 형식과 매체를 통해 표현할 수 있는 다양한 가능성을 모색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작업에서 특히 중점을 둔 주제는 무엇인가요? 작업 초기부터 ‘본질’에 집중해왔어요. 인간의 심리라든지, 중력의 시각화, 그리고 일상에서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이는 모든 것에 깊은 호기심을 느꼈죠. 이런 주제는 서로 연결되어 그물망처럼 얽히고, 하나의 유기체처럼 진화했습니다. 지금은 형식주의에 관심이 많습니다. 시각예술에서는 시각이 가장 중심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제가 말하고 싶은 건 ‘환경에 따른 구조적 형식주의’라는 개념인데, 여기서 ‘환경’은 원래 뜻보다는 주어진 상태인 ‘상황(situation)’과 ‘기반(ground)’의 의미에 가깝습니다. 그라운드는 백그라운드(background)가 될 수도, 플레이그라운드(playground)가 될 수도 있죠. 형식주의에 집중하는 이유는 작가로서 예술에서 시각적 부분이 종종 묻히는 것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해야 한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작품의 마침표는 작업실이 아니라 연출되는 공간에서 찍어야 한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그만큼 공간과의 조화를 중요시하는 거겠죠. 작품은 단순히 벽에 걸릴 때가 아니라 주변 공간과의 상호작용에서 생명을 얻는다고 믿습니다. 장소의 특성을 고려하지만, 때로는 그것을 의도적으로 무시해요. 이러한 접근 방식에서 순간의 위트가 중요한 역할을 하죠. 마치 숨바꼭질을 하듯, 관람객이 찾을 수 있도록 포인트를 숨기는 방식으로 작업합니다. 작가로서 오랜 시간 술래 역할을 해와서인지, 이제는 흥미로운 공간을 빠르게 캐치하는 능력이 생겼어요. 이런 관점은 단지 공간의 물리적 특성뿐 아니라 색감이나 재료에도 적용됩니다. 관람객이 작품을 통해 즐거움을 느끼고, 예상치 못한 발견을 할 수 있도록 위트를 부여하고 싶습니다. 결국 공간과 색채, 재료가 조화롭게 어우러질 때 작품은 단순한 형체를 넘어 관람객과 깊은 소통을 이끌어낼 수 있다고 믿습니다.
말씀하신 위트에 컬러도 큰 역할을 할 것 같은데, 색과 관련한 영감은 주로 어디서 얻나요? 색은 직감이라고 생각해요. 그 직감을 위해선 근육을 키우듯 트레이닝이 필요하죠. 그래서 레퍼런스를 꾸준히 찾아요. 특히 디자인용품에서 색의 힌트를 많이 얻습니다. 전체적 색감보다는 원하는 느낌을 내는 조합을 찾죠. 디자이너들은 판매를 위해 많은 연구와 통계로 얻은 컬러 조합을 사용하거든요. 그 결과들이 뇌에 쌓이고 자연스럽게 근육이 쌓일 수 있도록 시간을 들여 얻은 산물이라고 할 수 있죠. 작업 과정에서는 하나의 색을 메인으로 두고 변주를 찾아요. 전시장이나 자연에서 영감을 얻을 때도 있고요.
작품을 살펴보면 뼈대인 나무를 휘고 그 위에 천을 씌우는 등 작업 과정이 복잡해 보입니다. 이전에는 작업마다 설계도가 있었죠. 지금도 제 작업실엔 설계도가 쌓여 있어요. 작품의 외형은 복잡해 보이지만 설계도는 심플한 경우도 있고, 반대로 외형은 단순해도 설계도는 복잡한 경우도 있습니다. 그렇게 많은 설계도가 이제는 제 머릿속에 저장된 것 같아요. 현재는 감각에 의존하며 작업하고 있습니다. 가끔 실수도 하지만, 그 실수는 제 작업을 발전시키는 원동력이 됩니다. 이제는 오히려 실수를 즐기기도 하고요. 이러한 경험이 응축되어 현재 제 감각을 형성한다고 생각해요.
나무, 철사, 유리 등 다양한 재료를 사용하지만, 그중 오브제를 불투명하게 가리는 듯한 특수 재료가 눈에 띕니다. 뿌연 막처럼 보이는 ‘바리솔’이라는 재료는 주로 조명 기구에 많이 씁니다. 평면에 다양한 색의 구조물을 붙이고 바리솔로 가리면 안에 있는 색이 은은하면서 섬세하게 빛나죠. 보통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거나 물체를 올리는 방식을 생각하잖아요. 저는 전시장에서 공간적 탐구를 하듯이 캔버스에서도 측면성과 후면성, 그리고 캔버스 천과 프레임의 관계를 깊게 살펴봤어요. 바리솔은 캔버스 천을 덮으며 그 역할을 대신하고, 안에 있는 오브제는 캔버스 천과 프레임 사이에 자리 잡죠. 10여 년 전부터 바리솔을 연구해왔지만, 선보이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 과정에서 보존성도 계속 테스트했고요. 다른 종류의 천도 많이 연구했지만, 바리솔은 팽팽한 긴장감과 내부 구조물의 색을 부드럽게 드러내 특히 매력적인 재료라고 생각해요.
노블레스 컬렉션에서 작가님의 개인전
최근 화집을 출간하셨는데, 일반 화집과 달리 자연 풍경에 놓인 화보 형식이 흥미롭습니다. 출간하게 된 배경이 있다면? 이번 화집을 통해 지금까지 제 작업을 정리해보고 싶었어요. 첫 개인전부터 지금까지 모든 자료를 아카이빙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거든요. 그래서 이렇게 방대한 자료를 집대성한 화집을 꼭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특히 갯벌에서 촬영한 사진이 포함되어 있는데, 이 아이디어는 사진가와 논의하면서 탄생한 것입니다. 화집에 차별성을 두고 싶었고, 전시장이나 공공 미술로 보여주지 못한 장소에 놓인 작품을 조명해보고 싶었죠. 이번 화집은 제 작업의 또 다른 새로운 시도를 담고 있다고 생각해요. 물론 전시장에서 제 작품과 함께 화집도 만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향후 실험하고 싶은 새로운 주제나 아이디어가 있나요? 시도해보고 싶은 작업이 정말 많아요. 그중 두 가지를 말씀드리면 첫째, 아주 작은 작품이 큰 공간에서 숨 쉬는 작업을 해보고 싶습니다. 큰 작업이 공간을 압도하는 것이 아니라 아주 작은 작품이 큰 공간을 장악하는 형태로요. 그리고 또 하나는 시간성을 담는 작업을 하고 싶어요. 재료의 본질적 물성을 바탕으로 느리게 흘러가는 시간을 표현하는 거죠. 이런 구조물 수천 개를 만들어낸다면 시간에 따라 서서히 변하는 대형 설치물을 완성할 수 있지 않을까요.
에디터 조인정(ijcho@noblesse.com)
사진 김제원(인물), 양이언(작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