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예찬, 그리고 보컬 레슨
기사로 못다 전한 스위스 출장의 뒷이야기와 노래 잘하고 싶은 한 남자의 고군분투기.
헝가리의 유명 블로거 마르타와 출장 중 60세 생일을 맞은 싱가포르 <뉴욕타임스>의 제인, 체코
“나 출장이야” / Editor 김이신
이 말에 대한 남편의 대답은 한결같다. “다시 태어나면 나도 잡지 기자 할까 봐.” 내 출장을 여행 비슷한 것으로 본다는 의미다. 잡지 기자들은 패션, 뷰티, 자동차 등의 글로벌 브랜드와 각국 관광청과 호텔 등에서 끊임없는 출장 러브콜을 받는다. 특히 <노블레스>는 쉽게 경험하기 힘든, 특별한 일정의 출장이 많다. 그러나 출장후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건 그곳에서 새로 맺은 인연, 그들과 함께 짬짬이 나눈 시간이다.
지난 4월 마지막 주에 다녀온 스위스 출장도 그랬다. 바젤과 로잔, 제네바의 건축과 미술을 돌아본 이 출장은 스위스 관광청의 초대로 진행한 인터내셔널 미디어 트립이었다. 체코와 헝가리, 스페인, 영국, 싱가포르, 홍콩 그리고 한국에서 온 나까지 총 7명의 기자가 가족처럼 한 팀을 이뤄 일주일을 보내는 일정이었다. 바젤에서의 첫 미팅. 약간의 설렘과 긴장감을 안고 미팅 장소에 도착한 순간, 각국 대표 기자(!)들을 보고 깜짝 놀랐다. 홍콩 기자와 나를 제외하고는 모두 50대 이상, 그마저도 둘뿐이고, 모두 60~70대 이상으로 보이는 할머니 할아버지였던 것. 저녁을 먹기 위해 식당으로 이동하는 길, 부드러운 눈동자의 헝가리 기자가 옆으로 다가와 친근하게 말을 건넸다. 열네 살, 열 살 두 아들을 둔 마르타(Marta)는 잡지 편집장 출신으로 현재 뷰티와 라이프스타일 위주의 콘텐츠를 소개하는 파워 블로거였다. 아직 한국에는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다며 한국의 문화에 대해, 우리 책에 대해 열심히 물었다. 한국 나이로 쉰 살이지만 출장 멤버 중에서는 나이도 바로 내 위라 우리는 그렇게 자연스럽게 짝꿍이 되었다.
다음 날 오전, 스위스 전통 식당에서 점심을 먹게 되었는데, 메뉴판을 보며 “이것도 괜찮고 저것도 괜찮을 것 같다”고 하자 친절히 “그럼 둘 다 시켜서 나눠 먹자”며 ‘서양인은 음식을 셰어하는 것을 꺼린다’는 나의 인식과 편견을 한순간에 무너뜨렸다. 그녀는 바젤의 추운 날씨를 대비하지 못한 내 얇은 옷을 보고 본인의 패딩을 선뜻 빌려주기도 했다. “고맙다”고 하자 지난 크리스마스 세일 때 산 건데 가격을 한번 맞혀보라며 30달러에 산 그 패딩을 “계속 불어나는 미술관 프레스키트 때문에 마지막 날 여행 가방에 넣을 자리가 없어지면 그 패딩 너 줄게”라고 유머러스한 한마디를 날렸다.
이번 출장은 평균 나이가 높고 연령 차가 크기 때문인지 마치 대가족 일가의 여행 분위기를 풍겼다. 특히 로잔 관광청에서 고급 레스토랑에 마련한 저녁식사 자리는 모두에게 아름다운 추억을 선사했다. 저녁을 먹으며 한창 수다를 떨고 있는 우리 테이블로 난데없이 웨이트리스가 촛불을 켠 케이크를 가져왔다.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서로를 쳐다보자 관광청의 데이비드가 “제인! 예순 번째 생일을 로잔에서 맞아줘서 정말 영광이에요”라며 싱가포르 <뉴욕타임스> 기자에게 케이크와 선물을 전하는 것이 아닌가. 우리는 큰 박수와 함께 건강을 기원하는 메시지로 제인을 축하했고, 이어진 와인 토스트와 환상적인 치즈 덕분에 디너는 자정이 되어서야 마무리되었다. 호텔로 돌아오는 길에 누군가 “기념사진을 남겨야죠”라고 외쳤고, 인적 끊긴 로잔의 길 한복판에서 70대 할아버지부터 30대 초반의 손녀로 이루어진 대가족 출장팀은 로잔에서의 최고의 순간을 남겼다.
어느덧 일주일이 지나고 다시 각자의 도시로 떠나야 하는 날이 돌아왔다. 식사 때마다 “호텔 벨보이에게 확인해보니 스위스는 벨보이도 다들 4개 국어를 하더라고. 아, 우리도 스위스에서 태어났어야 해”, “하늘 좀 봐. 이런 멋진 하늘을 두고 런던으로 떠나야 한다니. 우리 여기 한 이틀만 더 있다 갈 수는 없을까?”라며 스위스 예찬을 하기 바빴던 멤버들. 작별을 앞두고 기자들과 관광청 홍보 담당자가 서로 아쉬운 포옹을 나누던 중 출장 내내 긍정의 에너지를 불어넣던 마르타가 외쳤다. “우리 이 멤버로 다시 한 번 떠나죠. 이번엔 스위스 동부로!”
‘프로 보컬 인스티튜트’의 전기영 원장을 찾아간 에디터에게 전 원장은 보컬 테스트부터 진행했다. “음정은 정확한 편이지만 고음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진단과 함께 고음에 도움이 되는 몇 가지 기술을 전수했다.
나도 노래 잘하는 남자가 되고 싶었다 / Editor 이기원
노래를 잘하는 건 아니었지만 못하는 것도 아니었다. 적어도 노래방을 적당히 즐길 수준은 됐다. 하지만 세월은 쇠도 녹슬게 만든다더니 성대도 녹슬었나 보다. 얼마 전 후배들과 들른 노래방에서 나는 충격에 빠졌다. 예전에는 잘만 부르던 노래인데 이번에는 고음부에서 부끄러운 ‘삑사리’를 여러 번 내고 말았다. 이어서 내가 마이크를 잡고 소리를 쥐어짤 때마다 룸 안은 산사처럼 고요해지고, 후배들은 고개를 숙인 채 책자만 뒤적이고 있었다. 그건 ‘빨리 끄고 앉아서 탬버린이나 쳐’라는 신호였다. 난 언제부터 고음을 잃어버린 걸까.
‘프로 보컬 인스티튜트’라는 보컬 양성 기관을 찾았다. 전기영 원장은 노래를 제대로 배우고 싶어서 1990년대 후반 미국으로 건너가 유명 음악 학교 MI(Musicians Institute)에서 보컬을 전공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한국에서 몇 안 되는 발성학 전문가다. SG워너비의 김진호, 2AM의 창민, 이지훈 등 쟁쟁한 가수들이 그의 손을 거쳤다.
이런 교육기관을 찾는 이들 중 다수는 역시 오디션 프로그램 지원자다. 스타가 되고 싶은 어린 가수 지망생들이 이곳을 찾는다. 두 번째는 목을 많이 쓰는 아나운서나 강사들이다. 발성법을 배우면 목을 보호하고, 자신의 언어를 좀 더 명확하게 전달할 수 있어서다. 마지막은 나처럼 노래를 좀 더 잘하고 싶은 일반인이다. 얼마 전에는 한 기업 임원이 이곳을 방문했다고 한다. 클라이언트와 노래방에 갈 때마다 분위기가 얼어붙는 게 고민이었던 그는 생존을 위해 노래를 배운 케이스다. 어쨌든 궁금했다. 노래도 배우면 잘할 수 있는 걸까?
전 원장은 테스트 삼아 좋아하는 노래 한 곡을 불러보라 했다. 나는 들국화의 ‘걱정 말아요 그대’를 불렀다. 예상대로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하는 부분에서 음 이탈이 계속 이어졌다. 그의 평가 내용은 이랬다. “음정은 정확한 편이지만 고음을 내는 방법을 몰라 듣기 싫은 소리가 나온다. 후렴에 들어가면 지르고, 좀 힘들다 싶으면 가성으로 소리를 뒤집는다.” 대부분의 사람이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초보에게 유용한 몇 가지 팁을 줬다. 우선 양 볼의 보조개 정도 위치를 손가락으로 가볍게 누르고 그 상황에서 입술을 부르르 털면서 발성하는 훈련이 있다. 두 번째는 윗니와 아랫니 사이에 손가락을 끼우고 턱이 아래로 부드럽게 떨어지게 만든 상태에서 발성하는 훈련이다. 둘 모두 입안에 공간을 만들기 위함이다. 보통 고음으로 갈수록 후두가 위로 올라가면서 공간이 좁아지고, 이럴 때 음 이탈이 생긴다. 하지만 이런 훈련을 계속하면 턱이 자연스럽게 아래로 떨어지면서 후두를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다고 한다. 선 채로 벽을 밀면서 발성을 연습하는 방법도 있다. 하품하듯이 가슴을 펴면서 소리를 내면 훨씬 더 고음을 내기 쉽다고 한다.
하지만 좀 더 쉬운 길이 궁금했다. 중요한 순간에 쓸 수 있는 모르핀 같은 비법은 없을까. 전 원장은 그런 건 없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하루 만에 식스팩이 생길 수 없는 것처럼 성대도 마찬가지라고, 꾸준한 단련만이 답이라고.
그가 알려준 방식대로 일주일간 틈나는 대로 연습했다. 의식적으로 복식호흡을 했고, 입안에 공간을 만드는 연습도 했다. 훈련 덕택인지 같은 곡을 다시 불렀을 땐 좀 더 쉽고 부드럽게 올라가는 것처럼 느껴지긴 했다. 적어도 음 이탈은 생기지 않았으니 효과를 보긴 한 걸까? 그렇다고 ‘음악대장’처럼 노래를 할 수 있었던 것도 아니다. 일주일은 큰 변화를 겪기엔 너무 짧은 시간이었다. 다만 꾸준히 훈련하면 좀 더 나아지리라는 확신은 들었다.
전 원장은 이런 얘기를 들려줬다. “시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세상에 고치지 못할 음치는 없다”고. ‘중에서 상으로’ 가는 건 어렵지만 ‘하에서 중으로’ 가는 건 트레이닝으로 충분히 가능하다는 말이었다. 노래에 자신 없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교육기관의 문을 두드려보는 것도 괜찮겠다. 적어도 평생 노래방을 두려워하며 사는 것보단 낫지 않겠나.
에디터 김이신 (christmas@noblesse.com) 이기원 (lkw@noblesse.com)